나의 이야기(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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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발문
세한도 : 세로 23.7 가로 1388.95cm / 국보 제180호 추사 김정희가 그린 그림으로 국보 18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크기는 23cm*69.2cm. 세한도(歲寒圖) 발문(跋文)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此皆非世之上有(차개비세지상유) 購之千萬里之遠(구지천만리지원) 積有年而得之(적유년이득지) 非一時之事也(비일시지사야) 그대가 지난해에 계복(桂馥)의 운경(惲敬)의 두 책을 부쳐 주고, 올해 하장령(賀長齡)이 편찬한 120권을 보내 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이 아니다. 천만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 且世之滔滔(차세지도도) 惟權利之是趨爲之..
2023.11.05 -
《吾睡歌》 陈抟
《吾睡歌》 陈抟 吾爱睡,吾爱睡, 不卧毡,不盖被, 片石枕头,蓑衣覆地, 南北任眠,东西随睡。 轰雷掣电泰山摧,万丈海水空里坠。 骊龙叫喊鬼魂惊,臣当恁时正酣睡。 闲想张良,闷思范范蠡, 说甚曹操,休言刘备, 两三个君子,只争些闲气, 怎似臣,向清风岭头,白云堆里,展放眉头,解开肚皮, 且一觉睡。更管甚玉兔东升,红轮西坠。 【睡眠歌谣,为唐末宋初陈抟开创的歌谣类别,泛指自己或他人吟唱,睡前熟练吟唱而能让人更好睡眠的诗歌作品,人们可根据自己的喜好选择吟诵。】 陈抟(871年—989年),字图南,号扶摇子、白云先生、希夷先生(“夷”指视而不见,“希”指听而不闻),通晓易学和内丹学,道教视为神仙,尊称为陈抟老祖、希夷祖师等。 陈抟 五代末宋朝初期人,其生平事迹和出生时地众说纷纭,真伪难辨,一说普州崇龛县人(今重庆市潼南县崇龛镇)。一说华州华阴人(今陕西华阴一带),祖籍谯郡(今安徽亳州一带)..
2023.09.13 -
진단(陳摶)
진단(陳摶)은 유명한 잠의 신선(睡仙)으로 그의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다. 전하는 바로는 오대(五代) 말기, 북송(北宋) 초년에 한 어부가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홀로 고기를 잡아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강 속에 그물을 던지고 한나절을 기다렸는데도 한 마리 고기도 잡히지 않았다. 마지막에 그물을 끌어 올렸는데 그물에는 살갗이 자주 빛을 띤 공모양의 고깃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그는 매우 신기했고 이것이 무슨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치고 허기진 어부는 자세히 살펴볼 것도 없이 그 고깃덩어리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 끓여 허기를 채울 준비를 했다. 그가 불을 피울 때 갑자기 온 하늘과 땅이 캄캄해지며 천둥과 번개가 치고 광풍이 폭우를 동반하여 천지를 뒤덮을 기세로 내렸다. 어부는 매우 놀라..
2023.09.13 -
신선시 품평
신선시 품평 장삼풍 대도(大道)는 진인이 된 후 천지와 우주를 맘껏 노닐며 뭇신들과 구소(九霄 9층 하늘) 구름 밖에서 모임을 갖고 동천(洞天)과 복지(福地)의 여러 신선들을 찾아다녔다. 또 영주(瀛洲) 선산(仙山)의 신선들을 탐방해 시사(詩詞)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지냈다. 시(詩)란 신(神)의 영성(靈性)이 흘러나온 것이다. 장삼풍은 《시담(詩談)》[《장삼풍선생전집》8권 《수석한담(水石閑談)》의 일부]에서 여동빈(呂洞賓), 한상자(韓湘子), 남채화(藍采和), 곤륜마고(昆侖麻姑), 이백(李白 청일선인清逸仙人), 시신(詩神) 소식(蘇軾 소동파), 소옹(邵雍 소강절), 구처기(邱處機 장춘진인), 진단(陳摶) 등 여러 진인(真人)과 신선들의 오묘한 구절을 기록하고 다양한 천국의 다채로운 선풍(仙風)과..
2023.09.13 -
荀子
荀子, 그는 누구인가 荀子(BC. 325-238)의 명은 況이요, 자는 卿, 또는 孫卿이라 했다. 그는 전국시대 말기 趙나라에서 태어났다. 순자는 일찍이 齊나라의 稷下學宮(제나라 최고의 翰林院)에서 오랫동안 유학 연구와 강의에 종사하여 제나라에서 최고 학자로 받들었다. 그러나 순자는 그 후에 謀陷을 당해 楚나라로 망명하여 蘭陵令(난릉은 지금의 山東 蒼山縣 蘭陵鎭)을 역임하였다. 晩年에는 8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난릉에서 살았다. 그의 著作으로는 가 있다. 1. 순자는 儒家의 禮에 대하여 새로운 논리를 폈다. 순자도 공자가 말하는 예를 매우 중시하였다. 하지만 순자가 주창하는 예는 孔子의 예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공자의 예는 周禮였지만 순자의 예는 전국시대의 예였다. 뿐만 아니라 순자는 禮를 ..
2023.07.09 -
榜下捉婿
옛날 중국 송나라 시절에 유행했었다는 말. ‘방하착서(榜下捉婿)’ 즉 ‘과거 합격을 알리는 방 아래에서 사위를 잡는다.’는 뜻. 중국 고대에도 데릴사위를 극도로 싫어하였는데요, 데릴사위는 남권 사상이 가득 찬 봉건 사회에도 지위가 가장 낮아 차별을 비웃음을 받고 차별을 당했습니다. 가난해서 여자의 집안에 들어가서 사는 데릴사위가 왜 사람들이 싫어했을까요? 에서는 데릴사위를 ‘비록 데릴사위는 여자의 남편이지만, 마치 사람 몸에 생긴 사마귀와 같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도 아깝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데릴사위는 가난하고 부득이한 상황에 여자 집에서 사는 남성인데, 고대 사회에서 이들의 생존 상황은 매우 비참했습니다. 먼저, 데릴사위의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갖지 못하고 어머니의 성을 가지게 되어 대를 ..
202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