榜下捉婿

2023. 3. 12. 10:25나의 이야기

옛날 중국 송나라 시절에 유행했었다는 말.

‘방하착서(榜下捉婿)’

즉 ‘과거 합격을 알리는 방 아래에서 사위를 잡는다.’는 뜻.

중국 고대에도 데릴사위를 극도로 싫어하였는데요, 데릴사위는 남권 사상이 가득 찬 봉건 사회에도 지위가 가장 낮아 차별을 비웃음을 받고 차별을 당했습니다. 가난해서 여자의 집안에 들어가서 사는 데릴사위가 왜 사람들이 싫어했을까요?

<사기>에서는 데릴사위를 ‘비록 데릴사위는 여자의 남편이지만, 마치 사람 몸에 생긴 사마귀와 같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도 아깝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데릴사위는 가난하고 부득이한 상황에 여자 집에서 사는 남성인데, 고대 사회에서 이들의 생존 상황은 매우 비참했습니다.



먼저, 데릴사위의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갖지 못하고 어머니의 성을 가지게 되어 대를 이을 권리가 없었고, 다음은 데릴사위는 아내가 죽으면 자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빈털터리로 집에서 쫓겨날 수 있어 자생 자멸을 해야 했습니다. 또한 남권 사회에서 데릴사위는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도 여자의 눈치를 봐야 했으니 그때 당시 남성의 입장에서는 매우 치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해서 결혼을 하지 못한 남성들은 혼자 살더라도 데릴사위가 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송나라 전에는 국가가 데릴사위에 대해 엄격한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율법은 데릴사위와 자손들은 3대 이내에 벼슬을 할 수 없고, 3대 이외의 자손들은 벼슬을 하더라도 조상이 데릴사위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 데릴사위로 사는 것은 본인 외에도 자손들까지 부끄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데릴사위보다 더 지위가 낮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접각부(接脚夫)’ 입니다. 접각부는 여성이 남편이 죽은 후, 집안의 노인과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데 고대 여성들은 밖에 나가는 게 편하지 않거나 혼자 부담하기 어려울 때 남편으로 맞이하는 가난하고 못생긴 남자를 말합니다. 접각부는 여성 집안에 들어온 후, 소처럼 일을 하여 노인과 부인과 전 남편이 낳은 아이를 키워야 합니다. 문제는 접각부의 지위는 데릴사위보다 더 낮은데, 십수 년 동안 부인의 자식을 키워 성인이 된 후 부인이 죽으면 자식들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니, 접객부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게 아니라 집안에서 노동 도구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더 비참한 것은 접각부는 생육을 할 권리도 없었는데요, 여성은 스스로 자식을 부양하기 어려워서 접각부를 맞이하였기에 온갖 방법을 다해 접각부와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았고, 접각부도 자신의 지위 때문에 아이를 낳더라도 나중에 비천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원나라 이후부터 데릴사위의 지위는 차츰 나아졌지만, 그래도 남성들은 스스로 지위를 낮춰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걸 매우 기피했습니다. 데릴사위와 비슷한 개념으로 ‘방하착서(榜下捉婿)‘라고 있었는데, 겉으로 보면 다 여성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데릴사위와 같지만, 실은 재력이 있고 지위가 높은 집안이 훌륭한 사위를 얻기 위해 장원에 급제한 인재를 사위로 청하는 것이라 지위는 당연히 데릴사위보다 높았습니다. 이런 문화 때문에 데릴사위는 실력도 없고 출세할 길이 없는 남성이 주동적으로 여성의 집안에 들어가는 것이라 지금도 남성들이 싫어하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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