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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바이
요바이(일본어: 夜這い)란 밤중에 성교를 목적으로 모르는 사람의 침실에 침입하는 일본의 옛 풍습이다.[1] 주로 농촌지역에서 남성이 여성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서일본에서 보이는 풍습으로, 간토 이북지방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婚, 嫁, 結婚 등의 글자를 예전에는 요바후(よばふ), 요바히(よばひ)라고 불렀으며, 이는 부르다는 뜻의 동사 요부(呼ぶ)의 재활용형인 つまどい, つままぎ 등과 더불어 구혼을 위해 남자가 여자의 침소에 들어오는 행위를 의미했다. 일본의 옛 혼인풍습은 결혼후에도 남자가 여자 집에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이 때문에 이러한 행위도 요바이라고 불렀다. 요바이를 "夜這い"로 표기하게 되자 이 행위는 부모나 상대의 허락없이 이성의 침실에 몰래 침입하는 불순한 행위..
2022.10.10 -
閫候
閫候 곤후 閫 문지방 곤 候 기후 후 뜻풀이부 1. “閫履”와 같다. 《寒暄箚錄 1, 氣候》 閫候․閫履․閫況․閫制․莅閫. 閫候: 서간문에 병․수사의 안부를 물을 때 쓰는 말. 지방의 병마절도사 안부를 물을때
2022.10.10 -
籌司
조선 시대 군무(軍務)와 정사(政事)를 논의하던 비변사(備邊司)를 달리 이르는 말. [유사어]변사(邊司). 비국(備局). 비변사(備邊司). 비변사[備邊司] 비변사는 조선후기 국방과 군사에 관한 기밀뿐 아니라 국정 전반을 총괄한 최고의 기구이다. 중종 대에 남북 변방에서 발생하는 국방관계의 긴급한 사안을 대처하기 위한 임시기구인 지변사재상(知邊司宰相)을 고쳐 비변사를 설치하였다. 이후 명종 대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정식기관이 되었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그 기능이 강화되어 조선후기 국정을 처리하는 최고관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비변사는 1865년(고종 2) 3월 의정부와 통합되어 폐지되었다. 이칭으로 비국(備局), 주사(籌司), 주당(籌堂), 묘당(廟堂)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전기 비변사] 임시 군..
2022.10.09 -
秧食
모낼 때의 음식. 方憂秧食 數日後 卽擬委人奉. 留勅廳下以須之 幸甚也, 박세당(朴世堂), 21(禮)-62 분야문화‧생활 ■ 유형문헌 秧 앙 모 앙 부수 禾 (벼화, 5획) 모양자 禾(벼 화) + 央(가운데 앙) 총획수 10획 획순보기 유니코드 U+79E7 뜻풀이부 1. 모, 볏모 2. 묘목(苗木) 3. 치어(稚魚) 4. 모내기 5. 모내기하다 6. 심다 7. 재배하다(栽培--)
2022.10.09 -
Mbti 202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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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다라나이
くだらない '가치가 없는, 굉장하지 않은, 시시한'의 의미를 지닌 일본어. 한자로 下らない라고도 표기하기도 하며, ない가 ん으로 바뀌어 '쿠다랑(くだらん)'으로 변형되는 경우도 있다. 그 어원에 대해서는 일본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는데 가장 지지받는 학설들은 다음과 같다. 1.1. 교토에서 비롯되었다는 설[편집]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교토는 천황이 거처하는 곳으로 문화의 중심지였다. 일본의 에도시대에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는 에도였으며, 이 때문에 일본내의 물자 이동은 교토에서 양질의 물건들이 만들어져 에도로 옮겨진 후 그곳에서 소비되는 형태였다. 이렇게 교토에서 생산되어 에도로 옮겨지는 것을 '내려오다'라는 뜻의 '下(くだ)る' 라고 표현하였는데, 개중에 품질이 떨어져 에도로 내려보내지 않는 저급한 물건들..
202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