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아문(如是我聞)

2023. 9. 16. 06:10즐거운 사자성어



여시아문(如是我聞)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쓰는 용어


이와 같이(如是) 나는 들었다(我聞),
또는 내가 들은 바는 이와 같다는 뜻의 이 말은
불자가 아니라도
불경을 암송할 때 처음 나오는 것이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조금도 거짓이 없이 진실 되게 옮긴다는 의미를 갖는다.
我聞如是(아문여시), 聞如是(문여시)라고도 한다.

불교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은
유교의 ‘공자왈’과
기독교의 ‘예수, 가라사대’와는 방점의 주체가 다르다.

말[가르침]을 편 주체보다는
말을 들은 주체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그 누가 아닌 내가 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들었다’는 그 말 속에는
내가 들은 그 말에 대한 진실성과 책임감을 보증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누가 말을 했기 때문에 그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들은 그 말이 실제 진실함을 나 스스로 확인하였기 때문에
그 말을 소중한 가르침으로 되뇌며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그 가르침을 이와 같이 진리로서 확인했다는 것이다.


如 : 같을 여(女/3)
是 : 옳을 시(日/5)
我 : 나 아(戈/3)
聞 : 들을 문(耳/8)

(유의어)
문여시(聞如是)
아문여시(我聞如是)


부처에게서 들은 교법(敎法)을 그대로 믿고 따르며 적는다는 뜻으로, 경전(經典) 첫머리에 쓰는 말이다. 석존(釋尊)의 제자인 아난이 경전의 첫머리에 쓴 데서 비롯되었다.

이와 같이(如是) 나는 들었다(我聞), 또는 내가 들은 바는 이와 같다는 뜻의 이 말은 불자가 아니라도 불경을 암송할 때 처음 나오는 것이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부처님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존칭으로 고대인도 샤카(Sākya/ 釋迦) 민족의 성인을 뜻하는 모니(muni/ 牟尼)란 뜻이다. 본명은 성이 고타마(Gautama, 瞿曇/구담), 이름이 싯다르타(Siddhārtha, 悉達多/실달다)인 것도 상식이 되어 있다.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부처님 말씀은 어떻게 불경으로 남아 전해졌을까.
훌륭한 말씀이라도 전하는 사람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면 신뢰받지 못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열반(涅槃)하기 전까지 25년간 시중을 들었던 아난타(阿難陀)의 기억으로 전해졌다.

석가모니의 사촌이며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아난타는 곁에서 가장 많은 말을 들었으므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도 불린다. 그렇더라도 자기 개인의 의견이 아닌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는 뜻을 강조하여 경전 앞에 썼다.

초기 불교의 경전은 석가의 사후 제자 중의 영도자 역할을 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불린 마하가섭(摩訶迦葉)의 영도로 결집사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대반야경(大般若經)의 전반적인 주석서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아난이 모든 경전의 앞에 어떤 글자를 붙여야 하는지 여쭙자 부처님께서 답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모든 경전의 앞에 제가 들은 바는 이와 같습니다란 말을 두면 된다(一切經首置 如是我聞等言)."

좀 더 풀이를 옮겨 보면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는데 '이와 같이(如是)'의 의미가 바로 믿음이라 했다.

그러면서 깨끗한 믿음이 있어야 불법에 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믿음을 말하는 표현은 열반 500년이 지나 편찬된 초기 경전에도 그대로 전통이 이어졌다고 한다.

부처님이 어디서 누구에게 설법한 내용은 이와 같다고 전한 아난의 말은 사실대로 전하는 뉴스와 닮았다. 없는 사실을 전하고 실제보다 부풀려 말하고,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느끼게 하는 점이 크다.

목소리 크게, 여러 매체를 동원하여 동시다발로 전한다고 해도 사실이 아니면 일시적인 믿음은 곧 사라진다. 전하는 사람이나 그 내용이나 믿음이 앞서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여시아문(如是我聞)

◼ 정의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으로, 아난다가 붓다의 가르침을 사실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로 경전의 첫머리에 쓰는 불교 용어이다.

◼ 개설

팔리어로는 evam me suttam, 산스크리트어로는 evam mayā śrutam이며, 직역하면 "이와 같이 나에게 들렸다"는 의미이다.

내 의지로 들은 것이 아니라, 붓다가 말한 대로 나에게 들려진 것을 그대로 여기에 전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아문여시(我聞如是), 문여시(聞如是)라고도 한다.

◼ 내용

초기불교의 경전은 붓다의 열반 후, 제1차 결집에서 마하까삿빠(대가섭)가 주도하여 정리되었다. 붓다가 깨달은 후 25년 되는 해부터 붓다의 비서(侍子)였던 아난다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고 시작하며 다섯 니까야를 암송하였고, 당시 모인 참가자(전체 500명)와 함께 외워(合誦) 전했다.

따라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은 아난다가 듣고 붓다가 말한 것을 증명하는 표현으로 경전의 첫 머리에 제시되었다.

여시아문(如是我聞)은 붓다의 가르침을 온전히 전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초기 경전의 주석 문헌에 이 구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의 해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란 자신에 의해 일어난 상태를 인정하지 않고, 앞의 청문(聽聞)을 설명하고, '이것은 내가 네 가지 담대함(四無畏)과 열 가지 힘(十力)를 갖추고, 우왕(牛王)의 지위에 있고, 사자후를 하며, 일체 존재의 최상자, 법의 자재자, 법왕, 법주, 법의 섬, 법의 귀의처, 정법의 최상전법자이고 정각자인 저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것이다.

여기에서 의미 또는 법 또는 형식에 대해서 의문이나 의심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모든 천신과 인간이 이 법에 대한 불신(不信)을 소멸시키고, 믿음의 성취를 일으키고 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고 고타마의 제자는 말하면서 가르침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믿음을 키운다.
(디가 니까야, 범망경/梵網經, 주석서, DN-a, I, 29)

대승 경전인 '대반야경'의 주석서인 '대지도론'에서 여시아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시(如是)'에 대한 해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불경은 어찌하여 처음에 '이와 같이'라는 말을 하는가? 답: 불법의 대해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다. '이와 같이'의 의미는 바로 믿음이다.

만약 사람의 마음에 깨끗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있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없다. 믿지 않는 자는 '이 일은 이와 같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믿지 않는 모습이다.

믿는 자는 말한다. "이 일은 이와 같다." 비유하면 소가죽이 부드럽지 않을 때는 구부리지 못하는 것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도 이와 같다.

비유하면 소가죽이 이미 부드럽다면, 쓰임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
(대지도론/大智度論, T.25, 62하~63상)

붓다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가르침을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여시아문(如是我聞)은 붓다의 가르침을 들은 그대로 전한다는 점을 경전의 처음에 분명히 밝히는 표현으로 삽입된 말이다.

초기 경전에서 사용된 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표현은 붓다가 완전한 열반에 들고 500년 정도가 지난 기원 전후부터 대승 운동가들에 의해 성립한 대승불교의 경전들에도 초기 경전의 전통을 이어받아 사용되었다.

대반야바라밀다경, 묘법연화경, 화엄경, 불설무량수경 등의 대표적인 초기 대승 경전은 모두 여시아문(如是我聞) 또는 아문여시(我聞如是)로 시작한다. 대승 경전도 붓다의 설법이라고 대승 경전 편찬자들은 주장했던 것이다.

◼ 의의와 평가

여시아문(如是我聞)은 초기 경전 편집에서 아난다에 의해 사용되어 경전의 내용이 붓다에게 유래함을 분명히 말해준다.

하지만 붓다가 완전한 열반에 든 지 500년 후에 편찬된 대승 경전도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며 붓다의 가르침임을 드러내고 있다.

대승불교권에서는 대승 경전에 사용된 여시아문이라는 문구를 통해 대승 경전도 붓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여시아문이 의미하는 바가 지금까지도 그대로 인정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시아문의 '여시'는 '이와 같이' '아문'은 '내가 들었노라(내게 들려주셨다)'란 뜻인데, 아난 자신이 석가모니로부터 전해 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 말한다는 거이다.

불교 경전에서는 육성취라 하여, 대부분의 경전에 여시아문 외에도 일정한 체제에 따라 기재하도록 하는데, 그 체제는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여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如是我聞, 一時佛在某處[5], 與大比丘衆某某[6]俱.

번역하면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에 계시며 큰 비구 □□ 등도 함께 계셨는데...

여기서 여시(如是)는 신성취(信成就), '이와 같이 '라는 뜻으로 '이와 같음'(모든 경의 법체),
아문(我聞)은 문성취(聞成就) 즉 '나(아난)에게 들려 주셨다'는 것(전달자),
일시(一時)는 시성취(時成就) 즉 그 불경의 법어가 나오게 된 시기,
불(佛)은 주성취(主成就), 즉 불경의 법어를 설법하는 주체 즉 석가모니 부처를 말하며,
재모처(在某處)는 처성취(處成就), 즉 법어의 설법이 이루어졌던 장소,
여대비구중모모구(與大比丘衆某某俱)는 중성취(衆成就) 즉 그때 아난과 함께 설법을 들었던 비구 및 보살들의 수와 이름이 들어간다.[7]

(한역문)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음독) 여시아문 일시 불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해석)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슈라바스티)의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무리 1250인과 함께 계셨다.
금강경
이 여섯 가지가 합쳐져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이 성립되기 때문에 육성취라 부른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들 즈음에 아난이 직접 석가모니에게 "여래 멸후에 법장(法藏)을 결집 편찬할 때 첫머리에 무슨 말을 두어야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석가모니가 모든 불경의 첫머리에 "여시아문(如是我聞) 일시불(一時佛) 재모방모처(在某方某處) 위제사중(爲諸四衆) 이설시경(而說是經)이라 하라."라고 대답하였다고 전한다.# 불교식 육하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열반경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입적한 후에 아난다가 사부대중을 모아 경전을 결집(結集)하면서 자리에 올라가 맨 처음으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네 글자를 소리내어 불렀을 때,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대중은 모두 "바로 어제까지 부처님을 뵈었는데 오늘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고 말하고 있구나. 정말 부처님께서는 이제 열반에 드셨고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단 말이냐?" 하며 큰 소리로 통곡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란 자신에 의해 일어난 상태를 인정하지 않고, 앞의 청문(聽聞)을 설명하고, ‘이것은 내가 네 가지 담대함[四無畏]과 열 가지 힘[十力]를 갖추고, 우왕(牛王)[8]의 지위에 있고, 사자후를 하며,[9] 일체 존재의 최상자, 법의 자재자, 법왕, 법주, 법의 섬, 법의 귀의처, 정법의 최상전법자이고 정각자인 저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것이다. 여기에서 의미 또는 법 또는 형식에 대해서 의문이나 의심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모든 천신과 인간이 이 법에 대한 불신(不信)을 소멸시키고, 믿음의 성취를 일으키고 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고 고타마의 제자는 말하면서 가르침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믿음을 키운다.
디가 니까야, 범망경(梵網經) 주석서, DN-a, I, 29
불법의 대해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다. “이와 같이”의 의미는 바로 믿음이다. 만약 사람의 마음에 깨끗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있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없다. 믿지 않는 자는 “이 일은 이와 같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믿지 않는 모습이다. 믿는 자는 말한다. “이 일은 이와 같다.” 비유하면 소가죽이 부드럽지 않을 때는 구부리지 못하는 것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도 이와 같다. 비유하면 소가죽이 이미 부드럽다면, 쓰임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
대지도론(大智度論) T.25, 62하~63상. “모든 불경은 어찌하여 처음에 “이와 같이”라는 말을 하는가?란 질문에 답하여.

초기불교의 경전은 붓다의 열반 후, 제1차 경전 결집에서 마하가섭이 주도하여 정리되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25년째 되는 해부터 석가모니의 시자(侍子)로써 석가모니의 설법 내용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었던 제자 아난다[10]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말로 서두를 떼며 불경을 암송하였고, 당시 결집에 모인 5백 명의 참가자와 함께 이를 합동으로 통째 암송해서 전했다. 이때 '여시아문'은 아난다가 듣고 붓다가 말한 것을 증명하는 표현으로 경전의 첫 머리에 제시되었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전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동시에 당시 모인 5백 명의 비구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석가모니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은 결집에서 뺐다고 한다.

여시아문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출판사,불교칼럼,불교관련 종합문화지도,양동림의 시집등이 있다.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여시아문'이라는 제목의 연재 평론을 신쇼사의 잡지 『신쇼』(新潮) 1948년 3월부터 연재하였는데, 이 평론은 당시 "기성 문단에 대한 선전포고"라고까지 불렸으며, 이 연재평론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시가 나오야의 혹평에 대해 반박하기도 하였다. 다만 '여시아문'은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함으로써 미완으로 끝났으며, 그의 사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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