紅桃

2019. 4. 10. 09:34story

홍도(紅桃)

유몽인(柳夢寅)

 


남원에 정생이라는 이가 살았지만 이름은 잊어버렸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퉁소를 잘 불었고, 노래도 잘했다. 의기가 호탕해서 사사로운 얽매이지 않았지만, 학문에는 게을렀다.

정생은 같은 고을에 사는 양가의 규수 홍도에게 구혼했다. 두 집에서는 혼사를 정하고 날짜를 기다렸다. 그러나 홍도의 아버지는 정생이 글을 배우지 못했기에 거절하려 하였다.

이에 홍도는 아버지의 결심을 전해 듣고 부모님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혼사는 하늘이 정하는 것입니다. 이미 날짜까지 정했으니, 마땅히 처음에 정한 사람과 혼인을 해야 할 일이지, 중도에서 그만두어서 되겠습니까?”

홍도의 아버지는 그 말에 느낀 바가 있었기에, 드디어 홍도는 정생과 결혼을 하였다. 결혼하고 두 해째에 홍도는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몽석이라 하였다.

 

南原鄭生者, 失其名. 少時善吹洞簫, 善歌詞, 意氣豪宕不羈, 懶於學問.

求婚於同邑良家, 良家有女名紅桃, 兩家議結. 吉日已迫, 紅桃父, 以鄭生不學辭之.

紅桃聞而言於父母曰

婚者天定也. 業已許定, 當行於初定之人, 中背之可乎?”

其父感其言, 遂與鄭結婚. 第二年生子, 名夢錫.

 

만력 임진년에 왜란이 터지자 정생은 활 쏘는 군사로 왜적을 막았다. 정유년에 명나라 총병 양원이 남원을 지키게 되자, 정생은 성안에 있게 되었는데, 홍도는 남장하고 남편을 따랐다. 군중에서는 아무도 그녀가 여자인 줄을 몰랐다,

아들 몽석은 할아버지를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가 피난하였다. 마침내 성이 함락되자, 정생은 총병을 따라 도망할 수 있었으나 홍도와는 서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내가 아마 명나라 군사를 따라갔을 것이라고 정생은 생각하고, 명나라 군대를 따라 이리저리 전전하다가 중국으로 들어갔다. 절강에 이르는 동안 줄곧 밥을 빌어먹으며 아내를 찾기 위해 방황하였다.

 

萬曆壬辰之變以射軍防倭. 丁酉, 楊總兵元, 守南原, 生在城中, 紅桃男服隨夫, 軍中莫之知也.

其子夢錫, 隨祖父入智異山, 避禍. 城陷, 生隨總兵得出, 而與紅桃相失.

謂其妻隨天兵而去, 生跟天兵, 轉入中國, 行乞至浙江, 遍求之.

 

하루는 명나라 군사의 도주와 함께 배를 타고 절강을 건너게 되었다. 정생이 달밤에 퉁소를 부니, 이때 가까이에 있던 다른 배에서 한 사람이 말하였다.

저 퉁소 소리는 전날 조선에서 듣던 노래의 곡조로구나.”

정생은 이 소리에 의심이 들어 말했다.

내 아내일 것이다. 내 아내가 아니라면 이 곡조를 어찌 알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다시 지난날 아내와 함께 부르던 노래를 읊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과연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정말 내 남편이다.”

정생은 매우 놀라면서 즉시 작은 배를 내어 타고 그 배의 뒤를 따르려고 하였다. 하지만 도주가 굳이 말리며 말했다.

이 배는 남만의 상선이요, 왜인과 서로 섞여 있는 모양이니, 당신이 간다면 이롭지 못할 것이고, 도리어 해가 있을 것이오. 내일 날이 밝으면 내가 처리해 줄 것이오.”

 

一日, 同天兵道主, 乘浙江船, 月夜吹簫, 隣船有一人語曰:

此洞簫, 似是前日朝鮮所聽之調也.”

生疑之曰:

無乃吾妻也, 若非吾妻, 何以知此調也.”

乃復吟前日與妻相和之歌辭, 其人抵掌大號曰:

此吾夫也.”

生大驚, 直欲乘小船往追, 道主固止之曰:

此南蠻商船, 與倭相雜者也, 爾如往, 無益, 反有害, 俟明發, 吾有以處之.”

 

날이 밝자, 도주는 집에서 부리는 하인들에게 돈 수십 냥을 주어 상선으로 가서 그 사람을 데려오도록 하였다. 그 사람은 과연 정생의 아내 홍도였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소리 내어 울었다. 뱃사람들도 모두 신기하게 여기면서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처음 남원성이 함락되었을 때, 홍도는 왜적에게 사로잡혀 일본으로 들어갔었다. 왜인들은 남장한 홍도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홍도는 남정네로 일을 하였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몸이 팔려 마침내 상선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남자들이 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해냈다.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못 하는 일도 있었으나 다행히 배 젓는 것을 돕는 일은 잘하였다. 남만에서 절강으로 오게 된 것은 조선으로 나갈 길을 찾고자 함이었다.

 

黎明, 道主給銀數十兩, 幷家丁數人, 諭以求之, 果其妻也. 相與握手, 失聲呼哭, 舟中無不驚異悲嘆者.

蓋南原陷時, 紅桃爲倭所虜, 入日本. 日本見男服, 不知婦也.

充之男丁, 轉賣隨商船, 凡男子之役, 或能或不能, 而善助刺船, 自南蠻至浙江者, 意欲因之還朝鮮也.

 

정생은 아내 홍도와 더불어 절강 땅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절강 사람들은 두 사람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여 은전과 곡식을 거두어 먹고 살게 해 주었다.

여기서 둘째 아들 몽진을 낳았는데, 몽진의 나이 열일곱이 되자 혼처를 구하려 하였다. 하지만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중국 사람들은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다.

 

生與紅桃, 乃居浙江, 浙江之人咸憐之, 各與銀錢米粟, 得以糊口.

生子夢眞, 年十七求婚, 以朝鮮之人, 故華人不許.

 

이때 마침 한 처녀가 나서 혼처를 구하는 몽진에게 말하였다.

제 아버님은 동쪽으로 출정하여 조선으로 나갔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분에게 시집을 가 조선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곳을 찾아서 초혼제라도 올리겠습니다. 만일 아버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혹시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처녀는 몽진에게 시집을 왔고, 두 사람은 살림을 차렸다.

 

有一人處子, 求婚夢眞曰:

吾父東征, 往朝鮮不還, 吾願嫁此人往朝鮮, 見父死所, 招父魂而祭之, 父如不死, 萬一或再逢.”

遂嫁夢眞居焉.

 

무오년에 북쪽에서 청나라가 일어나자 명나라에서 정벌에 나섰다. 정생은 군사로 뽑혀 유정의 군에 편입되어 적과 싸웠다. 싸움 끝에 유공이 죽자 오랑캐 군사들은 명나라 병사들을 남김없이 죽이려 하였다. 정생은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조선 사람이오.”

그러자 정생을 놓아주고 죽이지 않았고, 정생은 곧바로 조선으로 도망쳐 나왔다.

남원으로 내려오는 길에 공홍도(충청도) 이산현에 이르러 다리에 종기가 나서 침을 놓는 의원을 찾게 되었다. 의원은 예전에 명나라 군사였다. 명나라 군사가 돌아갈 때 따로 떨어졌다고 했다. 서로 이름과 성을 물었는데, 의원은 몽진의 장인이었다. 서로 연유를 묻으며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통곡을 했다.

 

戊午北征, 生募入劉綎軍, 征奴賊. 劉公敗死, 胡兵殲天兵殆盡. 生高聲曰:

吾非中國人也, 乃朝鮮人也.”

故釋不殺, 乃逃出朝鮮地.

下南原, 行到公洪尼山縣, 脚腫求針醫, 醫卽天兵也, 昔天兵撤回時落其後者也. 問其姓名居址, 乃其子夢眞之妻父也. 問其所由, 相持痛哭.

 

정생과 의원은 함께 남원으로 돌아와 옛날의 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큰아들 몽석을 보니 이미 혼인을 하고 자식까지 낳고 살고 있었다.

옛집에서 정생이 이미 아들과 만났고, 또한 아들의 장인과도 만난 지라, 그것은 약간의 위로가 되었을 뿐이었다. 만났다 헤어진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면 오히려 근심스럽고 기쁘지 않았다.

 

偕與歸南原訪生故居. 見子夢錫, 娶妻産子.

居故宅, 生旣與子遇, 復遇子之妻父, 稍慰孤寂, 而但與紅桃, 旣遇而旋失, 猶鬱悒無悰.

 

1년이 지났다. 그해 홍도는 살림살이를 전부 팔아 작은 배 한 척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중국 옷과 일본 옷, 조선 사람이 입는 복장도 각기 마련하여 절강을 떠났다.

중국인을 만나면 중국인 행세를 하고, 왜인을 만나면 왜인 행세를 하면서, 한 달 25일 만에 제주도의 추자도 밖에 있는 가가도에 이르렀다. 남은 양식이라곤 겨우 일곱 홉이었다.

 

旣一年, 紅桃轉賣家産, 賃小船, 與子夢眞及其婦, 作華倭鮮三色服, 自浙江發.

見華人, 以華人稱之, 見倭人, 以倭人稱之, 浹一月二十有五日, 泊于濟州之楸子島外洋佳可島, 見其糧, 只餘七合.

 

 홍도는 아들 몽진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 배 안에서 굶어 죽는다면 마침내는 고기 밥이 되고 말 게다. 차라리 저 섬으로 올라가서 목을 매는 것이 낫겠다.”

그러나 며느리가 굳이 말리며 말했다.

우리가 쌀 한 홉을 가지고 죽을 끓여 먹는다면 하루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엿새는 살 수 있습니다. 또 동쪽을 보면 아득하지만, 육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굶주리지만 참으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요행히도 지나는 배라도 만나서 육지에 건제 준다면 십중팔구는 살 수 있습니다.”

 

紅桃謂夢眞曰:

吾等在船飢死, 則終必爲魚食, 不如登島, 自縊而死.”

其婦固止之曰:

吾等一合之米, 煮粥飮, 以䭜一日之飢, 則足保六日, 且見東方, 隱照如有陸地, 不如忍飢求生. 幸遇行船, 渡陸地, 則是十八九生矣.”

 

몽진의 모친은 그 말을 따랐다. 바다에서 닷새를 더 보냈다. 마침 그날 통제사의 사수선이 와서 배를 대었다.

홍도는 사수선의 사공에게, 남원에서 남편과 헤어진 사정과, 절강에서 다시 만나 살았던 일, 그리고 남편이 북벌에 나가 죽은 일 등을 이야기하였다.

그 뱃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불쌍히 여겨, 홍도의 작은 배를 자기 배의 배꼬리에 달고 순천 땅으로 끌어다 주었다.

 

夢眞母如其言, 過五六日, 統制使斜水船來泊.

紅桃俱說與其夫南原相離之故, 浙江相合之事, 其夫死北征之由.

其船人聞而悲之, 將紅桃小船, 繫之船尾, 下于順天地.

 

홍도가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마침내 남원의 옛집으로 찾아왔다. 그 집에는 남편과 큰아들 몽석, 몽진의 장인인 중국인까지 함께 살고 있었다. 온 집안이 모두 온전하였고, 결혼하여 탈 없이 지내고 있어서 훨훨 날 듯 즐겁고 화락했다.

 

紅桃挈男婦, 訪南原舊址 夫與子夢錫, 夢眞之妻父華人, 同居焉.

非徒擧家俱全, 幷與婚媾而無恙, 其樂融融洩洩如也.

 

태사공은 말한다.

정생은 동쪽 나라 사람이다. 난리에 아내를 잃고 멀리 중국으로까지 찾으러 나섰고, 홍도는 또한 지아비를 싸움터에서 잃고 세 나라를 전전하며 남복으로 변장하여 살았고, 아들 몽진의 처는 이국인과 결혼하여 그 아비가 죽은 땅을 찾아 나섰다가 마침내는 일가가 한곳에 모이게 되었다. 여섯 사람이 합친 것이 모두 만 리 떨어진 풍랑 밖에서 이루어진 일이므로, 이 일은 보통의 이치를 넘어선 일이요, 생각 밖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지극한 정성이 신을 감동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기이하도다.”


史公曰:

鄭生東人也, 亂離失其妻, 遠求之中國, 紅桃失其夫於兵戈中, 入三國, 男服變容以全身, 夢眞妻自求與異國人爲婚, 求見父死所, 卒皆相會於一處, 一家六人, 不期合者, 皆在萬里風濤別境之外者, 雖出於理外萬一之幸, 而庸非所謂, 至誠感神者耶? 奇乎! 異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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