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0. 09:30ㆍstory
조설(釣說)
- 낚시 이야기
남구만(南九萬)
경술년(1670, 현종11)에 내가 고향인 결성(潔城)으로 돌아오니, 집 뒤에 작은 못이 있었는바 넓이가 수십 보이고 깊이가 6, 7척이 못 되었는데, 나는 긴 여름날에 할 일이 없으면 번번이 가서 물고기들이 입을 뻐끔거리며 떼 지어 노는 것을 구경하곤 하였다.
하루는 이웃 사람이 대나무 하나를 잘라 낚싯대를 만들고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들어서 나에게 주고 물결 사이에 낚싯줄을 드리우게 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서울에 살아서 낚싯바늘의 길이와 너비와 굽은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그저 이웃 사람이 준 것을 좋게 여겨서 하루 종일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였다.
歲庚戌余歸田潔城。家後有池。縱廣數十武。而深淺六七尺以下。余長夏無事。輒往見噞喁之。
一日隣人斫竹一竿。敲鍼爲釣以贈余。使垂綸於漣漪間。余在京師久。未嘗知釣鉤長短闊狹彎曲之度如何。以隣人之贈爲善也。垂之竟日。不得一鱗焉。
다음 날 한 손님이 와서 낚싯바늘을 보고 말하기를,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낚싯바늘 끝이 너무 굽어 안으로 향하였으니, 물고기가 바늘을 삼키기 쉬우나 뱉기도 어렵지 않다. 반드시 끝을 조금 펴서 밖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하므로, 내가 그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 밖으로 향하게 한 다음 또 하루 종일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였다.
明日有一客來見鉤曰。
是宜不得魚也。鉤之末太曲而向內。魚吞之雖易。吐之亦不難。必使其末少偃而向外乃可。
余使客敲而向外。又垂之竟日。不得一鱗焉。
다음 날 또 한 손님이 와서 낚싯바늘을 보고 말하기를,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낚싯바늘 끝이 밖으로 향하기는 하였으나 바늘의 굽은 둘레가 또 너무 넓어서 물고기의 입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하므로, 나는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서 바늘의 둘레를 좁게 한 다음 또다시 하루 종일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겨우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이었다.
明日又一客來見鉤曰。
是宜不得魚也。鉤之末旣向外而曲之圈且太闊。不可以入魚之口矣。
余使客敲而窄其圈。又垂之竟日。纔得一鱗焉。
다음 날 또 두 손님이 왔으므로 내가 낚싯바늘을 보여 주고 또 그동안의 사연을 말하니, 한 손님이 말하기를
“물고기가 조금 잡히는 것이 당연하다. 낚싯바늘을 눌러서 굽힐 적에는 반드시 굽힌 곡선의 끝을 짧게 하여 겨우 싸라기 하나를 끼울 만해야 하는데, 이것은 굽힌 곡선의 끝부분이 너무 길어서 물고기가 삼키려 해도 삼킬 수가 없어서 틀림없이 장차 내뱉게 생겼다.”
하므로, 나는 그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서 뾰족한 부분을 짧게 한 다음 낚싯대를 한동안 드리웠다. 이에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여러 번 물었으나 낚싯줄을 당겨 들어 올리면 혹 빠져 떨어지곤 하였다.
明日又二客來。余示以鉤。且語之故。其一客曰。
是宜得魚少也。鉤之抑而曲之也。必短其曲尖。使僅可以擘粒。此則曲尖太長。魚吞之不沒。必且吐矣。
余使客敲而短其尖。垂之良久。吞鉤者屢矣。然引綸而抽之。
옆의 한 손님이 보고 말하기를,
“저 손님의 설명이 낚싯바늘에 대한 말은 맞으나 낚싯줄을 당기는 방법이 빠졌다. 낚싯줄에 찌를 매다는 것은 부침(浮沈)을 일정하게 하여 물고기가 바늘을 삼켰는지 뱉었는지를 알기 위한 것이다. 찌가 움직이기만 하고 아직 잠기지 않은 것은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아직 다 삼키지 않았을 때인데 갑자기 낚싯줄을 당겨 올리면 너무 빠른 것이고, 찌가 잠겼다가 약간 움직이는 것은 바늘을 삼켰다가 다시 뱉을 때인데 천천히 당기면 이미 늦은 것이다. 이 때문에 반드시 잠길락 말락 할 때에 당겨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당겨 올릴 때에도 손을 높이 들고 곧바로 들어 올리면 물고기의 입이 벌어져 있어서 낚싯바늘 끝이 아직 걸리지 않아 고기가 낚싯바늘을 따라 입을 벌리면 낙엽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떨어져 버린다. 이 때문에 반드시 손을 마치 비질하듯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여서 들어 올려야 하니, 이렇게 하면 물고기가 막 낚싯바늘을 목구멍으로 삼킨 다음이어서 낚싯바늘의 갈고리 부분이 목구멍에 걸려 좌우로 요동을 쳐서 반드시 펄떡거릴수록 더욱 단단히 박힐 것이니, 이 때문에 반드시 잡고 놓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或脫而落焉。旁一客曰。
彼客之言。於鉤也得矣。於抽也遺矣。夫綸之有繫䕸也。所以定浮沈而知吞吐。凡動而未沈也。吞或未盡。而遽抽之則爲未及。沈而少縱也。吞且復吐。而徐抽之則爲已過。是以必於其欲沈未沈之間而抽之可也。且其抽之也。
抗其手而直上之。則魚之口方開。而鉤之末未有所搘。魚順鉤而張齦。如霜葉之脫條。是以必側其手勢。若汎篲然而抽之。然則魚方吞鉤於喉中。而鉤乃轉尖於呷裏。左激右觸。必有所㨛擸而爬牽焉。此所以必得無失也。
내가 또 그 방법대로 하였더니 낚싯대를 드리운 지 얼마 안 되어 서너 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다. 손님이 말하기를,
“법은 여기서 다하였지만 묘리는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하고는 내 낚싯대를 가져다가 스스로 드리우니, 낚싯줄도 나의 낚싯줄이요 낚싯바늘도 나의 낚싯바늘이요 먹이도 나의 먹이요 앉은 곳도 내가 앉은 자리였으며, 바뀐 것이라고는 단지 낚싯대를 잡은 손일 뿐인데도 낚싯대를 드리우자마자 물고기가 마침내 낚싯바늘을 머금고 올라와서 머리를 나란히 하고 앞을 다투어 올라왔다. 그리하여 낚싯대를 들어 올려 물고기를 잡는 것이 마치 광주리 속에서 집어 소반 위에 올리는 것과 같아서 손을 멈출 새가 없었다.
余又用其法。垂之移晷。得三四鱗焉。客曰。
法則盡於是矣。妙猶未也。
取余竿而自垂之。綸余綸也鉤余鉤也餌余餌也。坐之處又余處也。所易者特持竿之手耳。魚乃迎鉤而上。騈首而爭先。其抽而取之也。若探之於筐而數之於盤。無留手焉。
내가 말하기를,
“묘리가 이 정도에 이른단 말인가. 이를 또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하였더니, 손님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법(法)이니, 묘리를 어찌 말로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만일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또 이른바 묘리가 아니다. 기어이 말하라고 한다면 한 가지 할 말이 있으니, 그대가 나의 법을 지켜 아침에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저녁에도 낚싯대를 드리워서 온 정신을 쏟고 마음을 다하여 날짜가 쌓이고 달수가 오래되어 익히고 익혀 이루어지면 손이 우선 그 알맞음을 가늠하고 마음이 우선 앎을 터득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혹 묘리를 터득할 수도 있고 터득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혹 그 은미한 것까지 통달하고 지극한 묘리를 다할 수도 있으며, 그중 한 가지만 깨닫고 두세 가지는 모를 수도 있으며, 혹은 하나도 알지 못하여 도리어 스스로 의혹할 수도 있으며, 혹은 황홀하게 스스로 깨닫되 깨닫게 된 소이(所以)를 자신도 알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는 모두 그대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어찌 간여할 수 있겠는가. 내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余曰。妙蓋至此乎。此又可以敎余乎。
客曰。可敎者法也。妙豈可敎也。若可敎也。又非所謂妙也。132_474a無已則有一說。子守吾之法。朝而垂之。暮而垂之。專精積意。日累月久而習習而成。手且適其適。心且解其解。夫如是則或可以得之。與。其未得之與。或可以達其微而盡其極與。悟其一而昧其二三與。其或一未有所知而反有以自惑與。其或恍然自覺而不自知其所以覺者與。此則在子吾何與焉。吾所以告子者止於此矣。
나는 이에 낚싯대를 던지고 감탄하기를,
“손님의 말씀이 참으로 훌륭하다. 이 도를 미루어 나간다면 어찌 다만 낚시질에 쓸 뿐이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비유할 수 있다.’ 하였으니, 어찌 이와 같은 종류가 아니겠는가.”
하였다.
손님이 이미 떠난 뒤에 그 말을 기록하여 스스로 살피는 바이다.
余於是投竿而歎曰。
善夫。客之言也。推此道也。奚特用於釣而已哉。古人云小可以喩大。豈若此類者非耶。客旣去。
識其說以自省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