遺才論

2019. 4. 10. 09:23story

유재론(遺才論)

허균(許筠)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과, 함께 하늘이 맡겨 준 직분을 다스릴 사람은 인재(人才)가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다. 하늘이 인재를 태어나게 함은 본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해서이다.

 

爲國家者所與共理天職非才莫可也天之生才原爲一代之用

 

그래서 인재를 태어나게 함에는 고귀한 집안의 태생이라 하여 그 성품을 풍부하게 해주지 않고, 미천한 집안의 태생이라고 하여 그 품성을 인색하게 주지만은 않는다. 그런 때문에 옛날의 선철(先哲)-1들은 명확히 그런 줄을 알아서, 더러는 초야에서도 인재를 구했으며, 더러는 병사의 대열에서 뽑아냈고, 더러는 패전하여 항복한 적장을 발탁하기도 하였다. 더러는 도둑 무리에서 고르며, 더러는 창고지기를 등용했었다.

 

而其生之也不以貴望而豐其賦不以側陋而嗇其稟故古先哲辟知其然也或求之於草野之中或拔之於行伍或擢於降虜敗亡之將或擧賊或用莞庫士

 

그렇게 하여 임용한 사람마다 모두 임무를 맡기기에 적당하였고, 임용당한 사람들도 각자가 지닌 재능을 펼쳤었다. 나라는 복을 받았고 다스림이 날로 융성하였음은 이러한 도()를 써서였다. 그래서 천하를 다스리는 큰 나라로서도 혹시라도 그러한 인재를 놓칠세라 오히려 염려하여, 근심 많은 듯 앉거나 누워서도 생각하고 밥상머리에 앉아서도 탄식했었다.

 

用之者咸適其宜而見用者亦各展其才國以蒙福而治之日隆用此道也以天下之大猶慮其才之或遺兢兢然側席而思據饋而歎

 

그런데, 어찌해서 산림(山林)과 초택(草澤)-2에서 보배스러운 포부를 가슴에 품고도 벼슬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하며, 영특하고 준수한 인재들이 지위 낮은 벼슬에 침체하여 끝내 그들의 포부를 시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이 있는가! 정말로 인재를 모두 찾아내기도 어렵고, 쓰더라도 재능을 다하도록 하는 일은 또한 어렵다.

 

奈何山林草澤懷寶不售者比比而英俊沈於下僚卒不得試其抱負者亦多有之信乎才之難悉得而用之亦難盡也我國地褊人才罕出蓋自昔而患之矣

 

우리나라는 땅까지 좁아, 인재가 드물게 나옴은 예부터 걱정하던 일이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인재 등용하는 길이 더욱 좁아져, 대대로 벼슬하던 명망 높은 집안이 아니면 높은 벼슬에는 오를 수 없었고, 암혈(巖穴)이나 띳집에 사는 선비라면 비록 재주가 있더라도 억울하게 쓰이지 못했다. 과거 출신이 아니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없어, 비록 덕업(德業)이 매우 훌륭한 사람도 끝내 경상(卿相)-3에 오르지 못한다. 하늘이 재능을 부여함은 균등한데, 대대로 벼슬하던 집안과 과거 출신으로만 한정하고 있으니 항상 인재가 모자람을 애태움은 당연하리라.

 

入我朝用人之途尤狹非世胄華望不得通顯仕而巖穴草茆之士則雖有奇才抑鬱而不之用非科目進身不得躡高位而雖德業茂著者終不躋卿相天之賦才爾均也而以世胄科目限之宜乎常病其乏才

 

예부터 지금까지 시대가 멀고 오래이며, 세상이 넓기는 하더라도 서얼(庶孼) 출신이어서 어진 인재를 버려두고, 어머니가 개가(改嫁)했으니 그의 재능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으니, 어머니가 천하거나 개가했으면 그 자손은 모두 벼슬길의 차례에 끼지 못한다. 변변찮은 나라로서, 두 오랑캐 나라 사이에 끼어 있으니, 모든 인재들이 나의 쓰임으로 되지 못할까 오히려 염려하더라도 더러는 나라 일이 구제될지 예측하지 못한다.

 

古今之遠且久天下之廣未聞有孼出而棄其賢毋改適而不用其才者我國則不然毋賤與改適者之子孫俱不齒仕路以區區之國介於兩虜之間猶恐才之不爲我用或不卜其濟事

 

그런데, 반대로 자신이 그러한 길을 막고는 자탄하기를,

인재가 없군, 인재가 없군.”

하니, ()나라로 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웃 나라에 알리지 못할 일이다.

 

乃反自塞其路而自歎曰

無才無才

何異適越北轅而不可使聞於隣國矣

 

한 사내한 아낙네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은 그들을 위해 감상(感傷)-4하는 것인데, 하물며 원망하는 남정네홀어미들이 나라 안의 절반이나 되니, 화평한 기운을 이루는 것은 또한 어려우리라.

 

匹夫匹婦含冤而天爲之感傷矧怨夫曠女半其國而欲致和氣者亦難矣

 

옛날의 어진 인재는 대부분 미천한 데서 나왔다. 그 시대에 우리나라의 법을 사용했다면, 범문정(范文正)은 정승의 공업(功業)이 없었을 것이고, 진관(陳瓘)반양귀(潘良貴)는 직신(直臣)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양저(司馬穰苴)위청(衛靑)과 같은 장수, 왕부(王符)의 문장(文章) 등은 끝내 세상에 쓰이질 못했으리라.

 

古之賢才多出於側微使當世用我之法是范文正無相業而陳瓘潘良貴不得爲直臣司馬穰苴衛靑之將王符之文卒不見用於世否

 

하늘이 낳아주셨는데 사람이 그걸 버리니, 이건 하늘을 거역하는 짓이다. 하늘을 거역하고 하늘에 빌어 영명(永命)할 수 있던 사람은 없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하늘을 받들어 하늘의 뜻대로 행한다면 경명(景命)-5을 또한 맞이할 수 있으리라.

 

天之生也而人棄之是逆天也逆天而能祈天永命者未之有也爲國者其奉天而行之則景命亦可以迓續也


1) 옛날의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

2) 초원(草原)과 수택(水澤)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민간 또는 재야를 비유적으로 이름.

3) 판서나 정승

4) 하찮은 일에도 쓸쓸하고 슬퍼져서 마음이 상함.

5) 크나큰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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