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0. 09:26ㆍstory
계주문(戒酒文)
정철(鄭澈)
내가 술을 즐기는 이유가 네 가지 있다. 마음이 불평하여 마시는 것이 첫째이고, 흥취가 나서 마시는 것이 둘째이고, 손님을 대접하느라 마시는 것이 셋째이고, 남이 권하는 것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넷째이다.
某之嗜酒有四。不平一也。遇興二也。待客三也。難拒人勸四也。
마음이 불평스러우면 순리대로 풀어버리면 될 것이고, 흥취가 나면 시가(詩歌)나 읊조리면 될 것이고, 손님을 접대할 때는 정성으로만 하면 될 것이고, 남이 아무리 끈덕지게 권하더라도 내 뜻이 이미 굳게 서 있으면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좋은 방도를 버리고 한 가지 옳지 못한 데 빠져들어 끝내 혼미(昏迷)하여 일생을 그르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不平則理遣可也。遇興則嘯詠可也。待客則誠信可也。人勸雖苛。吾志旣樹。則不以人言撓奪可也。然則捨四可。而就一不可之中。終始執迷。以誤一生。何也。
내가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쉬면서 다섯 번이나 임금님의 소명(召命)을 받았는데, 금년 봄에는 마지못해 병을 무릅쓰고 조정에 달려가 소(疏)를 올려 사퇴하기를 청했다. 그러니 내 뜻이 정말 산수를 즐기는 데 있다면 의당 두문불출하여 자취를 감추고 언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余休官退處。五承恩旨。到今年春。迫不得已。力疾趨召。陳疏乞退。志在丘壑。則當杜門斂跡。愼言與行可也。
그런데 동정(動靜)이 일정하지 못하고 언어가 늘 실수를 범하는 등 온갖 사망(邪妄, 간사하고 망령됨)한 것들이 모두 이 술에서 나오곤 한다. 술이 한창 취할 때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속시원히 언행을 마구 했다가, 술이 깬 뒤에는 다 잊어버리고 취했을 때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남이 혹 취했을 때의 일을 얘기해 주면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믿지 않다가 나중에 참으로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고 나면 부끄러운 생각에 꼭 죽고만 싶어진다.
而動靜無常。言語失宜。千邪萬妄。皆從酒出。方其醉時。甘心行之。及其醒也。迷而不悟。人或言之。則初不信然。旣得其實。則羞媿欲死。
그러나 오늘도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 내일 또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여 허물과 후회가 산더미처럼 쌓이되 그 허물을 만회할 날이 없는지라, 나와 친한 사람은 나를 슬퍼해 주고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은 더럽다고 침을 뱉곤 한다. 그래서 천명(天命)을 더럽히고 인기(人紀: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모멸함으로써 명교(名敎:인륜을 밝히는 교훈)에 버림을 받은 것이 적지 않다.
今日如是。明日又如是。尤悔山積。補過無時。親者哀之。疏者唾之。褻天命。慢人紀。見棄於名敎者不淺焉。
이달 초하루에 가묘(家廟)에 하직 인사를 드리고 국문(國門)을 나와 강가에 이르러 강을 건너려고 할 적에 나를 전송 나온 사람이 배에 가득했다. 이 때 홀연히 한양 쪽으로 머리를 돌려 나의 과거사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 자신이 마치 남의 집에 뛰어 들어가 도둑질한 사람이 창·칼 속에서 간신히 뛰쳐나와 백주에 사람을 만나자 몹시 놀라 당황하고 군박(窘迫)하여 몸둘 곳이 없는 꼴과 똑같아서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종일토록 전전긍긍해 마지않았다.
月之初吉。辭家廟。出國門。臨江將濟。送者滿舟。回首洛中。追思旣往。則恰似穿窬之人。抽身鋒鏑。白日對人。惶駭窘迫。無地自容。終日踧踖。如負大罪。
내가 다시 강가에 돌아왔는데, 이 때 마침 선친(先親)의 기일(忌日)을 당했다. 나는 목이 메어 눈물을 삼키면서 애통해하는 가운데 일말의 선심(善心)이 우러나서 마침내 개연히 스스로 다음과 같이 반성한다.
及去而更來于江上也。先忌適臨。嗚咽呑聲。哀慘之中。善端萌露。遂慨然自訟曰。
어찌하면 명도(明道:북송의 유학자 程顥의 호) 같은 경지에 이르러서도 사냥하기 좋아하던 마음이 10여 년 뒤에 다시 우러나왔고, 어찌하면 담암(澹庵:남송의 명신이며 유학자인 胡銓의 호) 같은 경지에 이르러서도 그 심한 고초를 겪은 터에 여색을 그리도 대단히 사모하였던가?
참으로 잡아 간직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뜻이라, 이 마음과 이 뜻을 누가 주장하는고. 주인옹(主人翁:마음)이여, 항상 스스로 경계하여 각성할지어다. 진실로 이 말과 같이 하지 못한다면 내가 어떻게 다시 이 강물을 보겠는가.
喜獵何到於明道。而萌動於十年之後。好色何到於澹菴。而繫戀於動忍之餘。難操者心。易失者志。心兮志兮。孰主張之。主人翁兮。常惺惺兮。苟不如此言。吾何以更見江水兮。
만력 5년(1577,선조 10) 4월 7일에 서호정사(西湖亭舍)에서 쓴다.
萬曆五年丁丑四月。書于西湖亭舍。
<松江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