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 10:51ㆍ한시
고려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손꼽히는 서하(西河)선생 임춘(林椿)은 무신정권시대를 살다간 불우한 시인이다.
그의 자는 기지(耆之), 본관은 예천이며 서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서하선생이라고 칭한다. 그는 재주가 탁월했고 시·문에 능하여 일찍이 이름이 알려졌으나, 의종24년(서기1170년)에 일어난 정중부난 때 거의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목숨을 구했고, 그 후 세 차례나 과거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하여 끝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세상을 원망하고 가난을 한탄하며 시와 술과 바둑으로 유랑생활을 하다가 30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임춘은 죽림칠현 중에서 특히 이인로(李仁老), 이담지(李湛之)와 친분이 아주 두터웠다. 이인로와는 시로써 사귄 친구였고 이담지와는 술친구요 바둑친구였다. 임춘이 죽은 뒤 이인로가 그의 유고를 모아 『서하선생집』 6권을 엮어냈다.
그가 비록 변변한 벼슬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전기가 고려사 열전에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주옥같은 시·문이 후세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서하선생집』에 보면 어느 청명한 가을날 임춘이 친구 이담지의 집을 찾아가 함께 술 마시고, 바둑도 두고 밤늦게까지 정담을 나누면서 지은 시 몇 수가 나온다.
한가한 틈에 지팡이 짚고
옛 친구 집 찾아갔네.
친구의 주량은 나보다 적지만
시를 보는 안목은
나보다 훨씬 높았네.
정다운 이야기에
밤이 깊은들 어떠하랴.
무더위 지나간 뒤
처음 만난 자리로다.
붓을 휘두르니
멋진 시 쏟아지고,
술독을 열자
맑은 흥취가 넘친다.
옛적에 맹공(孟公)은
손님 수레 연못에 던졌고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고향집을 사랑했다네.
누각에 불어오는 솔바람,
창에 비치는 대나무 그림자,
책상머리엔 귀뚜라미 소리,
지붕 끝에는 달이 걸렸네.
찬바람불어 단풍잎 날리고
엷은 구름 하늘에 떠 있다.
동산 숲 금곡원보다 낳고
풍물은 화서(華胥)와 같다.
바둑 두며 한가히 승패 다투다가
(對奕閒爭局)
등불아래 자리 옮겨 책을 본다.
(移燈更看書)
이 놀이 참으로 아까워서
이별한 뒤에도 잊지 못하겠네.
*맹공: 중국 한나라 때 인물. 손님을 좋아하여 손님이 찾아와 술을 마실 때면 손이 타고 온 수레바퀴 못을 빼서 연못에 던져 버렸기 때문에 손님이 급히 돌아가고자 해도 가지 못했다는 고사가 있음.
*중국 진나라 때 시인 도연명은 고향이 그리워서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고향으로 돌아갔음.
*금곡(金谷): 중국 진나라 때 부호. 석승의 별장
*화서(華胥): 평화스런 나라. 옛날 신화시대 황제가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 화서나라에서 태평한 광경을 보았다는 고사가 있음.
이인로가 지은 파한집(破閑集)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다.
어느 달 밝은 가을 밤. 사직 하순(咸淳), 선달 이담지, 선달 옥화우(玉和遇) 등이 관동(冠童: 사학의 학생) 6, 7명을 거느리고 귀법사 돌다리에 모여 간소한 술자리를 열고 옛 사람의 운을 써서 시를 지었는데 이담지가 먼저 읊었다.
「여름 더위는 바람이 쓸어가고
가을 뜻은 달이 머금고 온다.」
(夏炎風掃去秋意月含來)
멋진 시구에 함순과 옥화우는 깜짝 놀라 스스로 항복하고 말았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그 시는 임춘선생의 글귀다. 아마도 취리(醉李: 이담지)가 몰래 표절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시상이 합치된 것인지 모르겠다. 어째서 독옥(毒玉: 옥화우)은 그 걸 모르고 스스로 굴복했단 말인가?”
위의 이야기는 서하 임춘의 시를 찬양하는 일화이다. 이담지는 술을 절제 없이 마셔 항상 취해서 살았기 때문에 취리(醉李)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옥화우는 고집이 세어 남과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독옥(毒玉)이라 불렸다고 한다.
서하선생 임춘은 고려의 죽림칠현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의 친구 이인로가 자신의 저서 파한집에서 “임춘의 시문학은 소동파(蘇東坡: 중국 송나라 때 대 문장가)의 진요(眞要)를 체득했다.”고 찬양했으며, 임춘이 이인로에게 보낸 서신에도 “나와 그대는 비록 소동파의 글을 읽지는 않았지만 구법(句法)이 거의 같다.”고 썼다. 두 사람은 서로를 시·문의 고수로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서하 임춘이 바둑친구 이담지의 집에 놀러가서 읊은 시 이다.
초가을 이슬비 갠 뒤
문득 그대가 생각났네.
우린 서로 만나는 날 적지만
만나면 반가와 웃었지.
아이 불러 푸른 대자리 펴니
매끄러운 물결무늬 섬세하도다.
쪽마루에 술통 열어놓고
(金樽開小軒)
섬돌가에 바둑판 벌여놓았네.
(玉局臨幽砌)
밤 깊어 외로운 달 떠오르니
솔숲에 그림자 어지러워라.
계절의 변화를 함께 느끼는지
풀벌레 소리도 애처롭게 들린다.
두건(모자)을 벗어젖힌 채
마음 놓고 떠들다 보니
밤 시간이 한해 같이 길구나.
깜빡깜빡 잠 못 이루고
옛이야기 하며 눈물 흘렸네.
서하 임춘이 정승 이광서(李光緖)의 봉엄사 죽루(竹樓) 시에도 바둑을 읊은 구절이 나온다.
처마 앞 대나무 숲
지난해 보다 더 늘어났고.
무성한 봄 죽순도
큰 줄기로 자랐구나.
술 마신 숲속에는
빈 술통이 수북하고
바둑 끝난 그늘에는
바둑판만 쓸쓸히 놓여있다.
(飮酣林下金樽凸碁罷陰中玉局寒)
조통(趙通)은 고려 죽림칠현의 한사람이다. 그의 자는 역락(亦樂)이며 전라도 옥과현 출신이다. 고려 명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언(正言)에 이르렀고 신종이 즉위한 뒤 외교관으로 금나라에 건너갔다가 억류된바 있으며, 그 후 「간의대부」「국자감」「대사성」 등을 역임하고 「한림학사」에 이르러 벼슬을 사직한 뒤 시, 술, 바둑을 즐기며 노년을 신선처럼 보냈다.
조통의 집은 당호가 취화당(聚華堂)이다. 명망 높은 인사들이 모여 노는 집이라는 뜻이다. 어느 비 오는 날 서하선생 임춘이 조통의 집 취화당을 방문하여 주인과 함께 바둑도 두고 고상한 청담을 나누면서 하룻밤을 보낸 뒤 아래와 같이 시 한수를 지었다.
한가한 가운데 취화당에 모여
끝없는 이야기에 흥미도 많았네.
주역을 물으러 ‘왕담’의 집 찾았고
내기바둑에 ‘사안’은 별장을 걸었지.
가을 빛 깊어가니 동산 숲 새롭고
저녁 비 부슬부슬 잠자리 서늘하다.
지난날 강남에서 멀리 헤어졌는데
돌아보니 오늘밤 침상을 마주했네.
閑中相共聚華堂
袞袞淸談興味長
問易每過王湛宅
圍碁曾賭謝公莊
秋光暗淡園林換
晩雨霏微枕簟凉
他日江南成遠別
却思今夜對藜床
*왕담(王湛)은 중국 진나라 때 인물로 주역에 통달했음.
*사안(謝安)은 중국 동진시대의 재상. 풍류를 좋아하여 부견과 싸운 비수전투를 앞두고도 태연하게 자기의 조카 사현과 별장을 걸고 내기바둑을 두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임춘이 이 시에서 왕담과 사안의 고사를 인용한 것은 그가 조통을 찾아가 바둑도 두고 주역에 대해 토론했음을 의미한다.
'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여창 鄭汝昌 (0) | 2018.05.01 |
---|---|
김굉필,김구등의 한시 (0) | 2018.05.01 |
이백(李白)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0) | 2018.04.10 |
月三首 - 杜甫 (0) | 2018.04.10 |
把酒問月 (0) | 2018.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