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0. 16:25ㆍ한시
이백 (李白, 701년 ~ 762년)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또는 적선인(謫仙人)으로 당 대의 시인이다.
낭만주의 시인으로 시의 신선이라는 ‘시선(詩仙)’의 칭호를 듣고 있다.
촉나라 금주 창륭현(蜀郡綿州昌隆縣) 출생으로 지금의 사천성 강유(江油)시 청련(青蓮)향이다.
안휘 당도현(安徽 當涂縣)에서 61세에 죽었다.
이백은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25세에 촉(蜀) 지역을 떠나 강남(江南), 산동(山東), 산서(山西)
등지를 여행하며 평생을 보냈다. 한때 도교에 심취했다. 그런 영향으로 그의 작품에는
과장되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녹아 있다.
이백은 여행을 통해 맹호연(孟浩然, 689~740)이나 두보(杜甫, 712~770) 같은 시인들과
만나게 된다.
그는 정치적 포부가 커서 당시의 부패한 정치 상황에 불만이 많았고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개혁해보려는 의지가 강했다. 43세 때, 도사 오균(吳筠)의 천거로 724년 현종의 부름을
받아 수도 장안에 들어가서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관직을 받았다. 그러나 그 직책은
왕의 술자리에서 시를 짓고 흥을 돋우는 자리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포부가 큰 이백에게는 맞지 않는 자리였다. 이백은 무력감으로 술에
빠져 지내게 된다. 결국 술에 취해 현종의 신임을 받던 환관 고력사(高力士, 684~762)에게
모욕을 주고 이를 계기로 궁궐에서 쫓겨난다.
장안을 떠나 낙양(洛陽), 개봉(開封) 등지를 돌며 여행을 하는데 이때 낙양에서 두보를
만난다. 이후 여러 곳을 떠돌다 안녹산(安祿山, 703~757)의 반란이 일어났을 무렵 영(永)왕
인(璘)이 병사를 일으켰을 때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영왕이 숙종(肅宗)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감옥에 갇힌 후 결국 귀주(貴州)의 야랑(夜郞)으로 유배된다.
59세 때 곽자의(郭子義)의 도움으로 풀려나고 이후 여러 곳을 떠돌다 안휘성 당도에서 병사한다.
이백의 생애는 한마디로 방랑이었다. 그런 영향으로 그의 시는 주로 엄격한 규칙보다는
자유로운 악부나 칠언절구(七言絶句)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그의 작품은 1,000여 편이 있는데, 대표작으로는 〈촉도난(蜀道難)〉, 〈행로난(行路難)〉,
〈장진주(將進酒)〉, 〈이태백집(李太白集)〉등이 있다.
작품의 줄거리
여산폭포의 거대하고 신비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백은 원래 악부와 가행을 잘했는데 이는 악부와 가행의 형식이 자유로워서 자유분방한
감정을 가장 적합하게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형식이 다른 연작시였지만
이백의 자유자재한 능력을 보여주었고 이후 시인들의 창작에도 큰 참고가 되었다.
작품의 원문과 해석
이 작품은 725년 당 현종 13년 전후로 이백이 금릉 지역을 유람하면서 여산(廬山)을
들렀을 때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으로는 작품 속 두 수의 체제 이질성을 근거로 같은
시기에 창작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제1수]
西登香爐峰 서쪽으로 향로봉에 오르니,
南見瀑布水 남쪽에서 폭포를 만났네.
掛流三百丈 떨어지는 물줄기 삼백 장이라.
噴壑數十里 수십 리 골짜기가 온통 물보라네.
欻如飛電來 느닷없이 번갯불 치는 것 같고,
隱若白虹起 흰 무리 숨어 있다 일어난 것 같네.
初驚河漢落 처음에는 은하수 떨어진 줄 알고 놀랐는데,
半洒雲天裡 절반이 구름 속에 숨은 것 같네.
仰觀勢轉雄 올려다보니 생긴 모습 웅장하여,
壯哉造化功 장엄함이 공을 들인 조화로구나.
海風吹不斷 바닷바람이 그치지 않고 부니,
江月照還空 강에 비친 달빛은 다시 하늘 비치네.
空中亂潀射 하늘에서 어지러이 튀는 물줄기,
左右洗靑壁 좌우 양쪽에 이끼 낀 푸른 벽 씻어 내리네.
飛珠散輕霞 흩어진 물방울 날아 무지개가 되고,
流沫沸穹石 흘러내린 물보라 바위에서 솟구치네.
而我樂名山 나는 본래 이름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對之心益閑 그것들 대하고 나니 마음 더 넓어지네.
無論漱瓊液 신선들 마시는 물은 말할 것 없이,
且得洗塵顏 이 물로 세상의 먼지 씻어버렸네.
且諧宿所好 또 내가 오래 바라왔던 것이니,
永願辭人間 오래도록 인간 세상을 떠나 살고 싶네.
[제2수]
日照香爐生紫煙 향로봉에 햇빛 비쳐 자색 안개 생기고,
遙看瀑布掛前川 멀리 보니 폭포는 긴 강줄기를 매달았네.
飛流直下三千尺 물줄기 날아 내려 길이 삼천 자이니,
疑是銀河落九天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 것 같네.
이 두 수는 체제가 다르다. 제1수는 오언고시이고, 제2수는 칠언절구이다.
내용도 부분적으로는 중복되었다. 각각의 작품을 살펴보면 제1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이루어졌다. 첫 번째 부분은 폭포의 기묘한 장관을 그림 그리듯 표현하였고,
두 번째 부분은 그 속에 자신의 뜻과 마음을 표현하였다.
제1수에서 시인은 향로봉에 올라 폭포의 거대함에 놀라 이를 은하수인 줄 알았지만
이마저도 절반만 본 것이다. 아래로 날아 내리는 폭포수의 장관에 놀란 자신의 마음도
넓어져서 신선의 삶도 부럽지 않게 되니, 폭포가 있는 자연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제2수에서는 폭포가 있는 향로봉에 햇빛이 비추니 안개가 있고, 이 모습이 마치 강을 매달아
놓은 듯하다고 표현하였다. 그래서 폭포 길이가 삼천 자이고 은하수 같다고 하는 것이다.
작품 속의 명문장
飛流直下三千尺 물줄기 날아 내려 길이 삼천 자이니,
疑是銀河落九天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 것 같네.
과장된 기술로, 규모의 웅장함을 표현하였다. 일반적으로 한 자는 30센티미터여서 작품에
등장하는 폭포는 900~1,000미터의 높이일 것이다. 그래서 그 폭포가 은하수 같다고
과장하여 표현한 것이다.
廬山
광산(匡山)이라고도 불리는 여산은 중국의 명산 중 한 곳이다. 주(周)나라 때 광(匡)씨 성을
가진 일곱 형제가 이곳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는데, 그들이 거처한 오두막집(廬)이
변하여 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의 강서(江西)성 구강九江)시 북쪽에 있다. 북쪽은 양쯔강, 동쪽과 남쪽은 보양호에
닿아 있으며 서쪽만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주봉은 피라미드 모양을 한 한양봉(漢陽峰,
1,474미터)이다. 작품에 나오는 향로봉은 여산 북쪽의 봉우리 이름이다.
운무가 자욱하게 낀 것이 마치 향을 피운 후에 올라가는 연기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여산은 예로부터 중국 문인들이 많이 다녀간 곳으로 중국문학의 산실이라 할 만한 곳이다.
중국 역사상 이 산을 다녀간 문인들이 남긴 문학 작품은 4,000여 수를 헤아린다고 한다.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백거이(白居易, 766~826)의
〈비파행(琵琶行)〉,소식(蘇軾, 1037~1101)의〈제서림벽(題西林壁)〉등이 유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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