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도전! 64卦] 01-1. 乾卦, 시간을 세우다 (원문독해)

2017. 7. 27. 17:45周易의 理解

 

乾괘에 대한 첫번째 자료는 원문 전체를 둘러보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 글의 구성은 6爻에 대한 각각의 해석이 6번 반복되어 풀이 되어 있습니다.

 

乾는 天門, 坤은 地戶로 64괘로 들어가는 문인데,

乾은 理(원리)를, 坤은 氣(물질의 생성, 만물의 방창)이 이루어지는 땅의 사정을 대표합니다.

 

따라서 乾卦에서는 64괘의 운행원리에 대한 시각을 정확히 바로잡아 주기 위해서

6번을 반복하여 각각 다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6번을 시각적으로 반복한 것은 괘를 구성하는 6개의 爻位가 곧 우주 전체를 뜻하므로

乾卦가 64괘를 모두 아우르는 전체적인 괘, 즉 골격(幹)에 해당하는 괘임을 시사하고자 함이겠습니다.

 

乾卦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64괘 중의 하나인 1/64의 개별적 시각이 아닌 64를 한꺼번에 묶는(束) 1(元-原)로써의 乾입니다. 집을 세우는 주춧돌과 기둥(幹)으로서의 乾의 象에 주목해야 합니다.

 

6爻의 성격과 爻位는 기본 골격(幹)이므로 개별 64괘를 해석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고 가야할 싯점이기도 한거지요.

각각의 괘는 乾卦를 바탕으로 두고 한켜한켜 건물을 꾸미고 채워가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건곤괘를 <책꽂이> 에 비유했습니다.

나머지 괘들은 건곤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되는 모습(象)을 포착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책장에 꽂혀 쓰임을 받았다가 제자리에 꽂혔다가를 반복하는 <책>으로 비유됩니다.

 

 

그러므로 乾괘는

1. 64괘를 모두 아우르는 宗으로써의 乾卦

2. 坤에 대비되는 陽卦를 이끌어가는 우두머리(首)로써의 乾卦

3. 64괘중의 하나의(1/64) 괘로써의 乾卦를 아울러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64괘는 서로 1개의 卦象을 2가지 시각으로 觀하여 읽는 도전괘(倒轉卦)로 묶이는 것과 시각을 달리해도 똑같이 1개의 象으로 읽히는 부도전괘(不倒轉卦)로 이루어집니다. 쉽게 8괘의 象으로 설명하면 다음 예시와 같습니다. 부도전괘는 상하로 시각을 나누어 봐도 中하고 正하여 象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기준이 되고 줄기(幹)가 되는 괘들이기에 正方의 卦입니다.

 

반면 間方의 4維 괘상은 음양이 치우쳐 있으므로 象이 보는 시각(상하)에 따라 달리 보이지만 실상 같은 것을 달리 의식하는 것 뿐입니다. 4象으로 구분되지만 실상 2象(動靜-開闔)입니다. 앞으로 64괘를 공부할때 이런 <인식의 기준>을 놓치면 매우 공부가 난해해 집니다.

 

易은 簡易(간이-간단하고 쉽다)합니다.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으면 易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乾  離   坎   坤

☰☲☵☷ =     ☰   ☲   ☵   ☷    =  4象

                    乾    離   坎  坤

 

                    風         雷

☶ =     ☱         ☶           =  2象

                    澤        

                         陰(--)      陽(一)

                                     

 

 

이렇게 부가된 설명없이 원문자료만 깔끔하게 제시하는 까닭은

주역을 읽는 데 있어서는 문장의 형태(象)도 기록자들이 책을 찬술(撰述) 하면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한 방식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동양의 고전텍스트는 암송위주로 재편집 되어 있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마르고 닳도록 이 원문의 형태를 통째로 으로 취했을 것입니다.

프랙탈의 象으로 언제라도 개합이 가능했다는 얘깁니다.

 

주역의 모든 글들은 건곤으로 닫고(闔) 64괘로 열고(開)가 가능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색종이 접기>처럼 어디에서 각을 접는가의 문제겠지요.

 

 

원문에 대한 자세한 義理易的 해석은 가원선생님의 동영상 강론의 도움을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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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고전에 대한 원문해석을 접근하는 자료는 차고도 넘쳐납니다. 

그러니 그것을 다시 재해석해서 전달하는 것은 무의미 하죠.

 

저와 여러분들은 원문에 대한 해석 보다는 이 <색종이접기>에 눈을 맞춰보려 합니다.

그래야 휴대하기가 간편해지기 때문이고, 그래야 用이 능수능란해질 테니까요.

 

能手能爛도 주역과 관련있는 사자성어입니다.

산가지를 셈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부린다는 뜻인데 束과 柬(揀)에 주의해 살펴보죠.

주역으로 占筮를 펼칠때 괘를 얻기 위해 산가지를 다발로 묶는 것을 束,

그 묶음(束)을 통해 얻은 괘상을 다시 분별하여 해석하는 것을 柬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 쓰여진 의미소들이 의미심장하죠? 火는 태양입니다. 隹죠.

우리가 쏘아맞출 과녁입니다. 우리는 저 건곤()의 빗장을 열고 묶여 있으나

엄연히, 분명하게 분별()되어 있는 괘상들을 풀어헤쳐 볼 것이며,

다시 펼쳐졌던 64괘의 象을 저 글자처럼 단아하게 하나의 글자로 접어볼 것입니다.

 

 

 

 

<원문자료>

 

 

乾 元亨利貞.

 

건(乾)은 네 가지 덕,

만물의 시초인 원(),

만물의 성장인 형(),

만물의 이룸인 이(),

만물의 완성인 정()을 가지고 있다.

 

(1-1) 初九  潛龍 勿用.
(1-2)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1-3)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1-4) 九四  或躍在淵 无咎.
(1-5)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1-6) 上九  亢龍 有悔.
(1-0) 用九  見羣龍 无首 吉.

   

(1-1) 초구(初九)는 못에 잠겨있는 용이니, 쓰이려 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1-2) 구이(九二)는 못에서 나타난 용이 밭[지상(地上)]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

(1-3) 구삼(九三)은 군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을 것이다.

(1-4) 구사(九四)는 용이 시기가 알맞은 때에는 뛰어오르기도 하다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연못에 편안히 있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1-5) 구오(九五)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

(1-6) 상구(上九)는 지나치게 높이 올라간 용이니, 뉘우침이 있을 것이다.

(1-0) 구(九)를 쓰는 것은 여러 용(龍)을 살펴보되 우두머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길하다.

 

 

彖曰, 大哉 乾元 萬物資始 乃統天.

雲行雨施 品物流形. 大明終始 六位時成 時乘六龍 以御天.
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大和 乃利貞. 首出庶物 萬國咸寧.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위대하구나, 건원(乾元)이여 만물의 생성이 모두 이것에 힘입어 시작하니, 바로 하늘의 덕을 통합한 것이로다. 구름이 흘러가고 비가 내리니, 각가지 사물들이 형체를 이룬다. 크게 원(元)을 의미하는 시작과 정(貞)을 의미하는 끝을 밝히면 육위(六位)가 때로 이루어지니, 때로 여섯 용(龍)을 타고서 하늘을 날아다닌다. 건도(乾道)가 변(變)하여 화(化)함에 각각 성(性)과 명(命)을 바르게 하니, 태화(太和)를 보존하고 그것에 합치하여 이에 이(利)하고 정(貞)하다. 성인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으로 나와 천도를 행하니 만국이 모두 편안하다.

 

 


象曰, 天行 健 君子以 自彊不息.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하늘의 운행이 건실하니, 군자(君子)가 보고서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


(2-1) 潛龍勿用        也.
(2-2) 見龍在田        德施普也.
(2-3) 終日乾乾        反復道也.
(2-4) 或躍在淵        无咎也.
(2-5) 飛龍在天        大人造也.
(2-6) 亢龍有悔     盈不可久也.
(2-0) 用九天德     不可爲首也.

 

(2-1) 잠겨있는 용(龍)이니 쓰이려 하지 말라는 것은 양(陽)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2-2)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다는 것은 군자의 덕(德)이 이미 널리 베풀어져 나간 것이다.

(2-3) 종일토록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일상생활을 되풀이하는 데에 반드시 도(道)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2-4) 용이 알맞은 때에는 뛰어오르기도 하다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연못에 편안히 있다는 것은

        나아감에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2-5) 나는 용(龍)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大人)의 일이다.

(2-6) 지나치게 높이 올라간 용이니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가득 차면 변하여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2-0) 구(九)에 처하는 방법은, 천덕(天德)은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文言曰

 

元者 善之長也.

亨者 嘉之會也.

利者 義之和也.

貞者 事之幹也.

 

君子

體仁 足以長人.
嘉會 足以合禮.
利物 足以和義.
貞固 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者 故曰 乾元亨利貞.

 

[문언전(文言傳)]에 말하였다. 사람에게 있어서 원(元)은 모든 선(善)의 으뜸이고, 형(亨)은 모든 아름다움이 모여 있는 것이고, 이(利)는 의로움이 화평하게 행해지는 것이고, 정(貞)은 모든 일의 주간(主幹)이 되는 것이니, 군자(君子)가 인(仁)을 체득하는 것은 남의 우두머리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며, 사람들 간의 회합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예(禮)에 충분히 합하는 것이며 사물이 순리(順利)롭도록 하는 것은 의(義)를 충분히 조화롭게 하는 것이며,정(貞)하고 견고한 것은 충분히 일을 주간할 수 있는 것이니, 군자(君子)는 이 사덕(四德)을 행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건(乾)은 원(元)하고 형(亨)하고 이(利)하고 정(貞)하다 한 것이다.

 

 

(3-1) 初九曰 潛龍勿用 何謂也.

        子曰 龍德而隱者也. 不易乎世 不成乎名 遯世无悶.

        不見是而无悶 樂則行之 憂則違之 確乎不可拔 潛龍也.


(3-2) 九二曰 見龍在田利見大人 何謂也. 

        子曰 龍德而正中者也. 庸言之信 庸行之謹 閑邪存其誠.

        善世而不伐 德博而化. 易曰 見龍在田利見大人 君德也.


(3-3) 九三曰 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 何謂也.

        子曰 君子進德脩業. 忠信 所以進也, 脩辭立其誠 所以居也.

        知至至之 可與也. 知終終之 可與存也. 是故, 居上位而不驕 在下位而不憂.

        故乾乾 因其時 而惕 雖危 无咎矣.


(3-4) 九四曰 或躍在淵无咎 何謂也.

        子曰 上下无常 非爲邪也. 進退无恒 非離羣也.

        君子進德脩業 欲及時也 故无咎.


(3-5) 九五曰 飛龍在天利見大人 何謂也.

        子曰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本乎天者 親上 本乎地者 親下. 則各從其類也.


(3-6) 上九曰亢龍有悔 何謂也.

        子曰貴而无位 高而无民 賢人在下位而无輔. 是以動而有悔也.

 

초구(初九)에 말하기를 “잠겨 있는 용(龍)이니 쓰이려 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공자(孔子)가 말씀하셨다 “용같은 성덕(聖德)을 가진채 은둔하고 있는 사람이니, 세상 따라 변하지 않으며 명성을 이루려 하지도 않아, 세상에 은둔하면서도 근심하지 않으며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해도 서운해 하지 않아, 뜻을 펼 수 있는 즐거운 세상이면 도(道)를 행하고 도가 행해질 수 없는 걱정스런 세상이면 떠나가서, 뜻이 확고하여 빼앗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잠겨있는 용(龍)이다” 

 

구이(九二)에 말하기를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공자(孔子)가 말씀하셨다 “용같은 성덕(聖德)을 지니고 정중(正中)한 위치에 나와 있는 사람이니,평소에 말을 신용 있게 하고 행동을 조심하여, 사(邪)를 막아 성(誠)을 보존하며, 세상을 선하게 하고도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며,덕(德)이 넓게 퍼져 남들이 교화되는 자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하였으니, 이는 군주의 덕(德)이다” 

 

구삼(九三)에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공자(孔子)가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덕(德)을 진전시키고 업(業)을 닦는다 충(忠)ㆍ신(信)은 덕(德)을 진전시키는 것이고,말을 다듬어 가고 그 성(誠)을 확립하는 것은 학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도달할 데를 알아 가므로 더불어 분기점을 선별할 수 있고,마칠 데를 알아 마치므로 더불어 의(義)를 보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아랫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쓰고 힘써 그 때를 따라 두려워하면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는 것이다” 

 

구사(九四)에 말하기를 “시기가 알맞으면 뛰어오르기도 하다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연못에 편안히 있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오르고 내리기를 일정하게 하지 않는 것이 간사함이 되는 것은 아니며, 나아가고 물러서기를 항구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동류(同類)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군자(君子)가 덕(德)을 진보시키고 업(業)을 닦는 것은 때에 미처 [도(道)를] 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행동이 허물이 없는 것이다”

 

구오(九五)에 말하기를 “나는 용(龍)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같은 소리는 서로 호응하고같은 기운은 서로 찾아가서,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龍)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그리하여 성인(聖人)이 나타나면 만인(萬人)이 우러러본다 하늘에 근본한 것은 위를 가까이 하고땅에 근본한 것은 아래를 가까이 하는 것이니, 각기 그 유(類)를 따르는 것이다” 

 

상구(上九)에 말하기를 “지나치게 올라간 용(龍)이니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귀하기는 하나 지위가 없으며 높기는 하나 백성이 없으며 현인(賢人)이 아랫자리에 있기는 하나 나에게 도움을 줄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움직였다가는 후회할 일이 있는 것이다”

 

 

(4-1) 潛龍勿用         也.
(4-2) 見龍在田      時舍也.
(4-3) 終日乾乾      行事也.
(4-4) 或躍在淵      自試也.
(4-5) 飛龍在天      上治也.
(4-6) 亢龍有悔   窮之災也.
(4-0) 乾元用九   天下治也.

 

(4-1) 잠겨 있는 용(龍)이니 쓰이려 하지 말라는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고,

(4-2) 현룡(見龍)이 밭에 있다는 것은 때에 따라 멈추라는 것이고,

(4-3) 종일(終日)토록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훌륭한] 일을 한다는 것이고,

(4-4) 시기가 알맞은 때에는 뛰어오르기도 하다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연못에 편안히 있다는 것은

     스스로 시험을 한다는 것이고,

(4-5) 비룡(飛龍)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윗자리에 있어서 다스린다는 것이고,

(4-6) 항룡(亢龍)이니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궁극까지 가서 당하는 재앙이고,

(4-0) 건원(乾元)의 용구(用九)는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5-1) 潛龍勿用   陽氣潛藏.
(5-2) 見龍在田   天下文明.
(5-3) 終日乾乾   與時偕行.
(5-4) 或躍在淵   乾道乃革.
(5-5) 飛龍在天   乃位乎天德.
(5-6) 亢龍有悔   與時偕極.
(5-0) 乾元用九   乃見天則.

 

(5-1) 잠룡(潛龍)은 쓰지 말라는 것은 양(陽)의 기운이 잠겨 들어 감춰져 있기 때문이고

(5-2) 현룡(見龍)이 밭에 있다는 것은 천하(天下)가 문명(文明)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고,

(5-3) 종일토록 힘쓰고 힘쓴다는 것은 시대와 함께 힘을 다해 행하는 것이고,

(5-4) 시기가 알맞은 때에는 뛰어오르기도 하다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연못에 편안히 있다는 것은 건도(乾道)가 비로소 변혁하는 것이고,

(5-5) 비룡(飛龍)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마침내 천덕(天德)에 있는 것이고,

(5-6) 항룡(亢龍)이니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시대와 함께 다 끝이 났다는 것이고,

(5-0) 건원(乾元)의 용구(用九)는 이에 하늘의 법칙을 볼 수 있는 것이다

 

 

乾元者 始而享者也. 利貞者 性情也.
乾始 能以美利, 利天下 不言所利 大矣哉.

大哉 乾乎 剛健中正純粹 也. 六爻發揮 旁通也.

時乘六龍 以御天也 雲行雨施 天下平也.

  

건원(乾元)은 시작하여 형통한 것이고, 이(利)와 정(貞)은 [건(乾)의] 성정(性情)이다.

건(乾)의 시작하게 해 주는 덕이 아름다운 이(利)로써 천하를 이롭게 하는데

이롭게 해 준 대상을 굳이 일일이 말할 수 없으니, 이로움이 크구나.

위대하다, 건이여 강건(剛健)하고 중정(中正)하고 순수(純粹)한 것이 정(精)함이여!

육효(六爻)로 알려 주는 것은 두루 건덕의 실정(實情)을 알려 주는 것이다.

때에 맞추어 육룡(六龍)을 타고 천도(天道)를 운행하니, 구름이 다니고 비가 내려 천하가 화평하다.

 

 

(6-1) 君子以成德爲行, 日 可見之 行也. 潛之爲言也 隱而未見 行而未成. 是以君子 弗用也.

 
(6-2) 君子 學以聚之 問以辨之 寬以居之 仁以行之. 易曰 見龍在田利見大人 君德也.


(6-3) 九三 重剛而不中 上不在天 下不在田  故乾乾 因其時而惕 雖危无咎矣.
(6-4) 九四 重剛而不中 上不在天 下不在田  中不在人 故或之. 或之者 疑之也 故无咎.


(6-5) 夫大人者 與天也合其 

                      與日月合其 

                      與四時合其 

                      與鬼神合其  吉凶.

     先天而天弗違, 後天而奉天時 天且弗違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


(6-6) 亢之爲言也 知進而不知退 知存而不知亡 知得而不知喪.

        其唯聖人乎 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 唯聖乎.

 

구일(九一), 군자(君子)는 덕(德)을 이루어 행실로 삼으니, 날마다 볼 수 있는 것이 행실이다. 잠(潛)이란 말은 숨어서 나타나지 않아 행실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君子)가 쓰지 않는 것이다.

 

구이(九二), 군자(君子)가 배워서 지식을 모으고 물어서 분변하며 너그러움으로 생활하고 인(仁)으로 행하나니, 역(易)에 이르기를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하니, 이것은 인군(人君)의 덕(德)인 것이다.

 

구삼(九三)은 거듭된 강(剛)이고 중(中)의 자리에 있지 못하여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지상(地上)]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건건(乾乾)하여 그 때를 따라 두려워하면 위태롭더라도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구사(九四)는 거듭된 강(剛)이고 중(中)의 자리에 있지 못하여,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지상에 있지 않고 가운데로는 인간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혹(或)이라고 하였으니, 혹(或)이란 의심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구오(九五), 무릇 대인(大人)이란 천지(天地)와 그 덕(德)이 같으며, 일월(日月)과 그 밝음이 같으며, 사시(四時)와 그 질서가 같으며, 귀신(鬼神)과 그 길흉(吉凶)을 판단하는 것이 같다. 그러므로 하늘보다 먼저 예측하여도 하늘의 도가 어긋나지 않으며 하늘이 벌여 놓은 상황 보다 뒤에 하여도 천시(天時)를 받들어 행한다 하늘도 이 대인을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 어기겠으며, 귀신이 어기겠는가!

 

상구(上), 항(亢)이란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을 모르며, 생존할 줄만 알고 망할 줄을 모르며, 얻는 것만 알고 잃을 줄을 모르는 것이니, 오직 성인(聖人) 뿐일 것이다. 진퇴(進退)와 존망(存亡)의 이치를 알아 정도(正道)를 잃지 않을 수 있는 이는 오직 성인(聖人) 뿐일 것이다.

 

 

독해 텍스트 출처: 한국고전 조합DB (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A )

출처 : 우주의 숨결를 헤아리다
글쓴이 : 박순임(풀섶)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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