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7. 15:51ㆍ周易의 理解
참....
무슨 책이 해답지도 아니고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꾸역꾸역 내어놓는다.
이런 책 첨봤다.
글자 한 톨도 버릴게 없구나!!!
답글을 詩經의 한구절로 주시더라.
그후로 詩經에 대한 도전은
내꿈이다. 아직 시작도 못했지만.
동북아시아인들은
詩經과 易經을 통해 사유를 소통했다.
유럽인들에겐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 신앙이
문명 소통의 기본 코드였던 것처럼.
이책... 후달달이다... ㅎ
난 가끔 인연같은 책을 만나곤 한다.
이런 책은 저자의 삶의 노정이 담겨있다.
이 책은 답습된 사유가 아닌
인류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담겨있다.
선학의 탐구정신이 담긴 감사한 책이다.
<들어가며>
본격적인 주역 '훑기'에 들어가기 전에
편향적인 시각을 바로잡자고 도서관에 들렀는데 별로 책이 없더라구요.
사실 서점에서도 찾고자 하는 책을 만나긴 어렵죠.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촉박하여 자료가 부실합니다.
깨끗한 스캔을 뜬다거나 포토샵으로 보정을 해서
좋은 자료를 제공해 드리면 좋겠지만,
본문의 내용도 타이핑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핸드폰으로 캡쳐했네요.
그냥 올린 글만 대충 훑어보시면서 참고하셔도 좋고,
<하늘의 빛 정역, 땅의 소리 주역>(송재국/예문서원) 책을 보시면서
이 사람은 이 많은 글들 중에 이런 부분에 밑줄을 긋고 있구나 쯤으로
비교하면서 읽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易은 시간이고,
順逆은 시간의 개념을 정의하는 중요한 단서랍니다.
동서남북을 정하는 것은 기준점, 소통의 실마리를 정하는 것이죠?
나침판은 정해진 북쪽을 가르키기 때문에 방위를 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무리 좋은 강의(나침판)를 들어도 기준이 바로서지 못하는 소용없습니다.
동양적 사유의 근본은 順逆에 있더군요.
순역의 개념을 이렇게 상세하게 풀어놓은 책은 첨 봅니다.
교수님들 강의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친절한 글이더군요.
주역에 도전하시는 분들은 꼭 챙겨보셨으면 하는 좋은 책입니다.
(1)
종교와 신화는 어떤 방법으로든 지속될 수밖에 없다. 주석글에 김지하가 勞謙으로 讚되어 있어 시껍했다. 다행히 인간적인 예우인지라 이 책을 얻은 기쁨이 반감되지 않아 너무 기쁘다.
정신에 대한 추앙은 하느님에 속해있는 靈의 신성성에 입맞춤하는 일이다. 하느님의 신성을 모독하고 십자가를 짓밟은 者에게 어찌 勞謙君子의 칭호가 마땅하겠는가! 정역이 읽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짓거리이므로 김지하에 대한 유명은 단언코 虛名이다.
이 책의 저자인 송재국 교수야말로 勞謙君子이다. 易을 읽은 長子(震)로서의 소임에 충실하여 하늘을 존숭하고(謙) 민중을 위한 中孚의 수고(勞)를 아끼지 않고 참으로 알차고 맛난 과실은 길러 대접해 줌에 진심으로 감사한 말씀 올린다
(2)
헐~ 이런 경우를...ㅠㅠ
이 책이 2010년 12월 초판이니
2012년 겨울의 김지하의 행보를
이분은 어찌 생각할지 궁금하네.
이 勞謙君子에게서
勞謙의 찬사를 받았던 영광을 입고도
선학으로서 부끄러운 길을 택할 수 있다니.
참... 제자에게 큰 누가 되는 스승도 있군.
김지하의 재주란
다 개발린 기름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실색했을 듯하여 안타깝네.
참....
그러니 이루기(成)보가
지킴(止)이 더 어렵고 고되다는 것을...
김지하의 율려학회와 생명존중 운동이라..
그대가 지지한 박근혜로 인해
400명의 생명이 참극을 당했을때
도대체 김지하 너님은 어떤 생각을 하였던고?
허........
正易을 선언하며 호사한
칭명을 얻기엔 몹시 부끄럽도다!!
<頣>
사람 마음이 곡식 거름되어
꽃잎되는 이치를 어찌 알까?
(1)
이땅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 참 힘들다.
우리같은 일반 소시민이
전문가가 되어야 살수 있는 나라.
백성이,
법.경제.정치를 모르면 죽어야 하는 나라.
내조국 대.한.민.국! 우울하다.
(2)
日用而 날마다 일용하나
不知 알지못하다.
不知란,
한글을 매일 사용하나...
그 창제 원리를
백성이 알지 못함과 같은 것이다.
治國의 큰 이치를 모르면서도
安土에 깃들어 일상의 삶을
착한 심성과 부지런함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백성의 不知를 말한다.
백성의 不知가 죄가 되는 때이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평안에 감사하며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不知의 삶이
목젖까지 부끄러운 시대이다.
아이들의 웃음에서 부서져 흩어지는 행복들에 멈칫 죄스러움을 느끼는 날들이다.
이 시대의 아픔이 곳곳에 포말하며 不知한 백성을 옥죈다.
너희 정치인들 너무 나쁘다.
(1) 豫는 樂이다
聲
音
樂
舞
豫는 樂이다. 고대의 樂은 만파식적(피리=籥)과 같은 의미를 부여받고 있었으며, 그 대나무 피리의 마디에 담겨진 곡식의 숫자의 용량크기 에 따라 <도량형>의 최소단위가 정해졌다. 도량형이 통일 되었다는 것은 국가를 통치하는 기본이 된다. 공평무사하니 백성들이 즐겨 따른다(隨).
(2) 한자의 3요소는 形, 音, 義다
音이란 聲-音-樂로의 변화값이 되는데,
聲은 경쇠(磬=殸)의 소리로 근원적인 태초의 음(巴), 양(士)의 소리 값이다.
磬은 궁중악기중 모든 악기의 소리값을 기준잡기 위해 쓰이는 악기다.
이것은 태초의 자연의 소리를 상징한다.
音은, 立의 白(말하다)이다.
立은 사람을 뜻하는 人(사람), 大(성인), 立(位가 있는 사람, 公人)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에 쓰인 생활언어가 되겠다.
義란,
이 글자는 말그대로 '으~리!!!'다. 지킨다는 뜻을 가진다.
羊이란 부족의 상징이기도 하고 '생명'(仁)을 뜻한다고도 했다.
我는 手(扌)와 戈들 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지키다.
戈는 단순한 창(矛)과 구별되는 무기(武)이다.
부족을 상징하는 부착물로 치장한 의장용 무기다.
목적은 武이다. 正+戈, 부족 또는 國의 차례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義는 그 공동체의 <정신>을 지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자의 3요소가 形, 音, 義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形은
象이자 卦의 값과 동일한 뜻이다. 보여지는 글자의 모양이다.
音은
약속된 소리값이다.
義는
뜻, 의미를 意라고 표현하지 않고 義라고 정의하고 있다.
왕필이후의 易을 정의한 이름도 義理易이다.
한자의 3요소 중 義는 한자로 표현되는 문자가 일상생활적 언어를 넘어서
철학과 정신(義)을 포함한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자는 동양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된 뜻풀이가 불가능하다. 음양과 오행, 천지인 사상을 담아내고 있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짜여져 있는 언어체계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뜻글자로 氣의 소리를 담는다.
한글은 소리글자로 質의 소리를 담는다.
한자와 한글이 함께 어우러질 때라야 人間의 삶과 역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다. 이럴 때라야, 소리는 和의 값인 <樂>으로 완성된다. 한자는 분명 동이족의 언어가 모태이므로 한자와 한글은 모두 韓族의 문화유산이 틀림없다. 당당히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
(3) 정명
명칭은 가장 짧은 어휘로 표현한 어떤 것에 대한 정의다.
국가에 대한 명칭도 그러하다.
秦은 泰와 禾로 표현되고 있다.
진나라의 영화가 곡창지대의 풍요로움에서 富를 취하였다는 얘기다....
周는 성곽(城-口-京)을 둘러싼 京畿의 곡창지대를 표현하고 있다.
역시 주나라도 농업국가이다.
魯와 朝鮮
공자의 노나라는 농업국은 아니었던 듯 하다.
白(말하다,曰)는 者, 伯에서 보듯 맏이이며 제사장을 의미하며, 魚,角,色,身에서 나타나는 생명(곡옥)과 영생에 관한 표현으로 보아도 天과의 교감에 특별한 재능을 가졌던 族이었을 것이다. 공자가 어렸을때 제기로 소꼽놀이를 할 정도였으니 그게 맞다.
중요한 것은 朝와 鮮.
<朝>
朝는 東과 의미가 동일하다. 日가 앞으로 十, 뒤로 十으로 20旬이 되고 10은 오행*음양으로 10干의 日을 헤아리는 방식이다. 월은 60일 단위로 헤아렸다. 2달이 하나로(朋) 묶인다. 朋은 用으로 날을 헤아린다는 뜻이 된다. 해가 묵은 10을 밀면서 새로운 10을 끌고 오는 형국으로 떠오르는 모습인데 달(月)이 떠있다. 새벽이다. 해가 떠오르는 동방 艮방으로 明夷(동이족)을 의미하는 동시에 해가 떠오르는 晋이다.
<鮮>.
魚는 생명(魚,角,色,身)과 광명(火, 灬, 太陽)이다.
羊의 의미는 善이다. 생명의 소생을 뜻한다.
공자의 사상을 가장 축약시켜 보여주고 있는 언어값이다.
善은 仁이며, 仁은 생명을 소생시키는 힘이다.
陰陽사상의 철학 값은 陽, 삶을 목적으로 틀이 짜여있다.
공자의 철학은 생명, 소생, 영생을 목표값으로 하고 있다.
우리 고대사를 통해 이어오는 거대한 제천의식은
鮮, 韓부족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다.
신과의 소통하는 종족이며, 생명사상을 근본으로 한다.
동양철학의 언어(意未素) 흐름의 최대 축약값은
羊(소생)과 隹(離,火, 灬, 太陽 )이다. 모두 東夷에 귀속되고 있다.
後에 차차로 확인해 보자.
<鮮>
1. 곱다
2. 빛나다
3. 선명하다
4. 깨끗하다
5. 새롭다
6. 싱싱하다
7. 좋다
8. 적다
9. 드물다
10. 생선
11. 날것(익히지 않은 것)
12. 물고기 이름
<魯>
1. 노둔하다(老鈍-: 늙어서 재빠르지 못하고 둔하다)
2. 미련하다
3. 노나라(魯--)
4. 나라 이름(주나라의 제후국)
5. 성(姓)의 하나
(관련자료)
http://blog.daum.net/pulsup/124
灬 불 화
1. 불, 열과 빛
2. 타는 불
3. 화재(火災)
4. 화, 한의학 용어
5. 양, 태양(太陽)
6. 화성(火星), 별 이름 ...
7. 긴급(緊急)함의 비유(比喩ㆍ譬喩)
8. 동아리, 한패
9. 동행자(同行者), 동반자(同伴者)
10. 급하다(急--)
11. 불사르다, 태우다
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본뜸. 화산이 불을 뿜는 모양이라고도 일컬어짐. 나중에는 火(화)가 化(화)와 같은 음(音)이므로 물건(物件)의 모양을 변경(變更)시키거나 없애는 것이라고 설명(說明)하지만, 아주 옛날엔 毁(훼☞태워서 없애 버리다)와 음(音)이 비슷하였음
<武>라는 것은,
난폭한 자를 억누르고 무기를 거두워 싸움을 중지시키며 큰 나라를 보유하여 공을 세우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민중을 화락하게 하며 물자를 풍부하게 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한민족의 한울신앙
우주가 펼쳐진 수: 十, 午
<東夷族, 태양을 쏘다>
天神으로 태양신이다.
矢
화살을 쏘는 일, 과녁을 적중시키는 일을 時中과 동일한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矢는 大(성인남자)가 산가지(卜)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기후를 예측하는 행위이며 제왕의 책무이자 제후들의 소임이다....
夬
'과녁을 맞추다' 決의 '결단하다'의 뜻이다.
時中의 의미를 갖는다.
侯는 제후를
候는 기후의 뚯을 갖는다.
侯에丨(뚫을 곤)이 더해졌다.
산가지(卜)로 예측하는 일이니 제후의 소임이 기후에 대한 측정과 판단임을 나타내는 것이겠다.
獲鳥와 射準 / 執中과 得時 / 고대인들이 신명의 덕에 통달하는(通神明之德) 고유한 방법이자 과정이다.
<侯>
1. 제후(諸侯) 2. 임금 3. 후작 4. 과녁 5. 오직 6. 어찌 7. 아름답다
<候>
1. 기후(氣候),계절(季節) 2. 철,때 3. 5일,닷새 4. 상황(狀況),상태(狀態) 5. 조짐(兆朕),증상(症狀),징후(徵候) 6. 염탐꾼(廉探-),망꾼(望-) 7. 살피다,망보다(望--) 8. 염탐하다(廉探--) 9. 방문하다(訪問--), (안부를)묻다 10.관측하다(觀測--), 탐색하다(探索--) 11.돈을치르다, 지불하다(支拂--) 12.기다리다
<矢>
1. 화살 2. 산가지(算--:수효를셈하는데에쓰던막대기) 3. 똥,대변(大便) 4. 곧다,똑바르다 5. 정직하다(正直--) 6. 베풀다(일을차리어벌이다, 도와주어서혜택을받게하다), 늘어놓 다 7. 시행하다(施行--) 8. 맹세하다(盟誓--), 서약하다(誓約--) 9. 무너뜨리다,훼손하다(毁損--) 10.어그러지다
<夬>
1. 터놓다 2. 정하다(定--),결정하다(決定--) 3. 나누다,가르다 4. 쾌괘(夬卦:육십사괘의하나)
<태양을 쏘아 맞추다>
주역 卦의 구성은 錯縱의 관계로 구성된다.
乾男의 손은 雷(나무)이고 坤女의 손은 風(바람)이다.
그런데 風은 본래 땅에 뿌리를 박고 있으니 나무(木)이다.
雷는 하늘에 본성을 두고 있으니 또 바람(風)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둘은 동일한 한 몸이다.
澤는 雷와 飛伏(드러나고 숨다)의 관계이고,
艮은 巽과 飛伏의 관계이니 결국 兌-巽-艮-震은 동일한 무언가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天地人의 人(생명력)이다.
乾男은 땅에 머물러(雷) 呂를 고동시켜 춤추게 하고,
坤女는 하늘에 머물며(風) 하늘의 律을 흔들어 깨운다.
서로 맞잡은 손은 하나가 되었으며 일체로써 合徳하였다.
그들의 몸짓은 오로지 한점을 향한다.
太虛의 生命力으로 한알의 씨앗으로 잉태 되었다.
그 太虛의 깊은 자리에서 이 신비의 金鷄의 날개짓을
그윽히 살피는 자가 있으니 矢다.
5土의 黃裳을 두른이 帝이다.
그가 팽팽히 쥐고 있던 화살은 놓았다.
명중이다. 夬이다. 과녁에 명중했다. 時中이다.
天之曆數在爾躬
成言乎艮
四營而成易
己日乃孚 革而信之
革言三就
북방수렵문화는 羊 - 3
남방농경문화는 隹 - 2
漢 문자체계에 숨어있던 羌族(姜)의 문화코드의 실체를 잡았다....
羊토템 요소는 한자 속에 꽤 깊은 사유를 점유하고 있다.
隹토템 요소는 卵胎설화, 주작과 금계와 봉황으로 상징이 광범위하다.
동물토템을 통한 표현 방식의 변화는 유목민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농경 정착생활로 바뀌게 되는 현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농경생활을 위한 농기구, 수확물을 지켜내기 위한 무기의 필요가 청동기.철기 제련기술을 발전시킴으로서 주변 떠돌이 세력을 제압하거나 자발적인 흡수가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변화에 대한 표현이겠다.
이 책에서의 정역(후천개벽)에 대한 신앙적 요소는 건너뛴다. 세차운동에 의한 지구축의 변화는 지구생명체에 있어서 단순한 구원의 메세지로만 이해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地母神의 입장에선 인간도 지렁이도 매일반의 귀한 생명체일터이므로 진화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지구 생명체는 동일하면서도 또다른 질서체계를 갖게 될것이다.
易의 시작은 매우 단순한 밤낮의 변화로부터 생겨났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사유에서의 易의 발전은 몹시 복잡하게 발전하겠지만 자연현상은 고대나 현대에나 똑같은 활동을 반복할 뿐이다. 이 3-2-3數 분화의 세계에 대한 사유는 자연의 변화를 인식하는 인간의식의 변화일 뿐이다. 따라서 3-2-3數 분화를 자연철학으로만 접근하기로 한다.
수렵생활을 하던 원시생활은 자연과 나와의 수직적 관계이다. 하늘과 땅의 변화와 생명체인 나의 관계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커던 만큼 하늘과 땅의 변화에 민감했을 것이다. 천지인 3才다.
3才는 음양-四象-8卦로 3번의 변화를 이루는데 계사전의 표현대로 천지인 3才를 각각 음양의 對待관계로 발전시킨 것이 爻의 6位이다. 모든 개념들은 상대적 개념을 통해 구체적인 현상으로 인지되고 표현되어진다. 달이 뜨는 밤과 해가 뜨는 낮(天-上), 남자와 여자(人-中), 겨울과 여름(地-下)쯤으로 이해하는 것이 명확하다.
밤 / 낮 (天) -- 陰陽
밤(春秋) / 낮(春秋) -- 4象
밤春(남) / 밤春(여) / 밤秋(남) / 밤秋(여) /
낮春(남) / 낮春(여) / 낮秋(남) / 낮秋(여) -- 8卦
3才 변화 數의 배열은 이러하다.
자연의 변화 그대로의 차례 數이니 이해하기 아주 쉽다(易)!
요순시대(唐.虞) - 동방족
夏 - 서방족
殷 - 동방족
周 - 서방족
이후의 역사에서도 중원은 항상 이민족의 패권다툼이 치열했다.
이런 동북아시아의 동-서 패권 다툼양상은 당연한 것이겠다.
수협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생활패턴이 변하면서 사회공동체 의식이 가장 크게 자리잡았을텐데, 그것은 수평적 관계에 대한 사유의 발전으로 이어졌을 것이며, 정착생활과 농경생활에 따른 계절의 순환과 반복되는 不易의 요소에 대한 순차적이며 반복, 순환하는 순서를 표현하기 위한 64卦가 1貞8悔의 법칙에 따라 배열되었다.
이 64괘, 8괘의 중복적(2) 배열은 지극히 인위적인 人事적 표현방식이다. 수평적인 공동체, 사방의 공간성에 대한 인식과 상하 사회계급에 대한 정당성과 같은 인위적인 개념들이 부여된 형태이므로 자연적 數 개념이 절대 아니다. 괘의 象은 36개의 象만 지니며 그것에 대한 순서나 배열은 序卦의 봉건적 논리에 따른 순열과 차례를 지니게 된다.
이 64괘의 체계를 자연수의 관점에서 보자면 선천팔괘의 2제곱(再) 확장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선천팔괘의 배열은 雷-離-澤-乾(順), 風-坎-艮-坤(逆)의 음양의 消長의 象으로 배열되므로 계절변화와 밤낮의 변화(기후)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卦氣設의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乾坤 효진도, 泰否 효진도와 같이 64괘의 진설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易의 표현방식에 대한 이러한 자연철학적인 단순 관점은 易의 본래 의미에 합리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할뿐 아니라, 복잡한 철학적 관념으로 무장하지 않아도 아주 간단하게 씨앗(1)이 다시 씨앗(10-열매)으로 순환된다거나, 이미 씨앗 속에 완성(열매-씨앗)을 향한 프로그램이 완벽하게 장착되어 있는 이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역에 대한 神明의 3수 분화는 따로 얘기하자.
옛 문명의 제단에 '네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라' 라는 메시지가 '네 심장을 바쳐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경우, 때때로 지나친 종교적 해석은 마음과 심장 사이를 혼돈하여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어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정역>에 대한 종교적 해석은 세차운동으로 인한 지구의 자전축의 변화을 <후천개벽> 시대의 도래로 보고 현재의 지구의 기울기가 바로 잡히는 때를 물질만능적 세계의 종말...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易의 목적은 利用厚生에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이러한 종교적 해석에 대해선 판단을 보류한다.
각설하고 오늘은,
선천팔괘-후천팔괘-정역의 3易이 선포하는 각각의 우주관을 살펴보기로 하자.
문왕팔괘(후천) - 漢代의 상수학
복희팔괘(선천) - 宋代의 의리학
일부정역 - 19세기
<문왕팔괘>는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건설해가는 漢나라의 통치철학을 담고있는 우주관이다. 땅의 律呂법칙을 다루고 있으므로 땅을 일구어(利用) 풍요로운 소출을 얻기 위한(厚生) 목적으로 발달된다. 땅(地)을 통해 발현되는 우주운동의 원리이다. 현상계의 존재성은 밤에 대한 낮처럼 상대성을 통해 드러나므로 陰陽의 상대성(2수분화)에 대한 기술이 두드러진다.
<복희팔괘>는 漢代 상수학의 여러 분파(상수/의리/점험/도가양생) 중에서 '주역참동계'의 도가양생학적 우주관에서 전승된다. 불사의 영생약인 단약을 만들기 위한 화후조절법으로 활용되었는데, 화후란 솥뚜껑을 乾, 솥단지를 坤으로 하고, 수은(火)과 납(水)를 제련하여 영약을 얻기 위해 사용하게 되는 불조절법이다. 태양의 뜨고 지는 현상에 따른 온도변화의 법칙에 따라 불을 조절하여 단약을 제련한다. 도가양생적 우주관은 소우주인 人體를 통해서 작동되는 우주의 원리다.
이런 <복희팔괘>가 엉뚱하게 宋代에 큰 힘을 발휘하는데, 난삽하고 방만해진 漢代의 관방 상수학을 반대하여 힘을 얻게 된 의리역의 밑그림이 된다. 주돈이의 태극도를 시작으로 발전하게 된 복희팔괘의 여러 도식들은 宋代 주자를 거쳐 조선개국 철학인 조선성리학으로 전래되어 우리 역사와도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주돈이의 태극도는 소우주인 <인체>에서 운영되는 우주 생명운동의 도식으로 우주정신인 <태허>로부터 태극-음양-오행-삼라만상으로 확산.분화 작동되는 우주원리가 逆으로 수렴되어 우주정신으로 집결, 응축하여 1點이 되는 원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주돈이 이후의 역학가들의 관심은 땅의 운영법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神明)의 생성원리, 우주정신의 생성 원리를 찾는데 있었다는 얘기겠다.
그들의 관심은 神明의 출산이다. 丑未(5.10)土를 중심축으로 <陽의 順行>을 따라 출발한 지구의 土化作用 원리가 10土(无極=太虛)의 극점을 건너며 <逆行의 시간>으로 흐름이 바뀌며 <우주정신(神明)>으로 수렴된다. <정역>은 우주정신(神明)의 출산 도식이다.
<정역圖>는 <2.7火-地天泰-陽운동>이 수직으로 바로서며 2火(月)+7火(日)의 결합으로 明이 되어 火(心-우주정신)이 중앙에 위치함을 數로 나타내고 그것의 속성을 7(地卦)+2(天卦), 지천태(泰, 생명, 우주의 生生之意)라 기록하고 있으며, 중앙의 <우주의 心=우주정신>에 5土(坤), 10土(乾)의 <산파>의 권능이 부여되었음을 선언했다.
1巽은 順行으로 정신운동(花), 6震은 逆行의 물상운동으로. 1.6水(辰戌태양한수)는 <후천팔괘>의 땅의 율려 운동을 나타내고 동쪽에는 꽃을 피우기 위한 8木 陽의 1巽운동이 강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서쪽에는 열매(씨앗)를 맺기 위한 9金 陰의 6震운동이 강하게 활동하고 있음이 표현되었다. 동쪽엔 8木의 지나친 발산을 4金(坎)이 살짝 견재하면서 자라나기 시작하여 9金으로 힘이 왕성해지면 활동을 접기 시작한 3木(兌)를 포위하여 씨앗(생명=정신=神明)을 출산하며 우주생명운동의 한주기를 끝맺는다.
<正易, 씨앗이 품은 우주정신>
이 씨앗으로부터 생명소생의 기적이 순환 반복된다. 씨앗에는 단순한 물리적 유전인자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유전인자까지 고스란히 기록되므로 씨앗에는 태초의 1과 완성의 10이 동시에 存하는 것이다. 씨앗은 우주 정신의 단편, 한조각이 아니라 그 자체로 태극(1)이며 우주전체(10)의 완전하고 완벽한 '완성체'가 된다.
正易이 선포하고 있는 우주관은 이 시작(1)이면서 동시의 완성(10)인 씨앗(생명정신=우주원리)에 대한 고찰이며 도식이다. 이것은 지구의 자전축이 흔들려 지구운동이 뒤바뀌어야만 작동되는 우주원리가 아니며 태초로부터 현 순간 까지도 모든 생명체들의 生死 순환을 통해 끈임없이 증명되어온 우주정신의 생성.작동 원리이다.
正易의 원리에 대한 해석이 종교적 테두리에 갖힌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옛선조들의 끊임없는 사유의 노고가 폄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보편적이며 있는 그대로의 태초로부터 시작되고 지속되어온 우주의 운행원리이므로 '우리' '나'라는 생명체를 품고 있는 모태로서의 우주에 대한 앎(知)을 추구하는 우주觀으로 쿨하게 해석됨이 옳다.
3才 : 2*2*2 (2分*2至*動靜) = 8卦
陰陽: 8律*8呂 = 64卦
易은 어디까지나 먹고 사는 일(食)의 문제였다.
지구, 땅의 사정을 헤아리는 일이라는 뜻.
1은 지구
2는 2分2至 (4: 춘분-추분, 동지-하지) 乾坤坎離
8은 2*2*2(변화=動靜) 乾坤坎離 / 巽- 澤, 震-艮
64卦 (對待) - 지구의 생명활동(원리8*물상8=64)
天-伏-원리-氣-陽의 進退 - 律
地-飛-물상-質-陰의 本末 - 呂
<天地人, 人은 變이다>
3才(팔괘)에서의 人은 變입니다. 시시각각 멈추지 않는 변화원리가 되는 4가지 요소를 말합니다. 乾의 氣的인 요소는 흩어지고(巽) 모입니다(兌). 坤의 땅의 物的 변화는 ...싹터 자라나고(震-屯) 성장을 멈춥니다(艮-蒙). 人은 변화의 주체인 神明입니다. 動靜이며 우주의 호흡이며 律呂(운행법칙, 우주원리)죠.
지난번 살펴봤듯이 漢代의 文王팔괘는 땅을 운영하는, 즉 농산물의 풍요로운 소출을 얻어내는 것이 정치.사회적인, 현실적인 목적이었죠. 철학은 결국 同시대 사람들의 '시대정신'이자 사회적 목적을 반증하는 단서가 되죠.
先代 - 복희
漢代 - 문왕
宋代 - 복희
하늘의 운행(자연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우주를 觀하던 복희팔괘에서, 우주원리에 반응하는 땅의 물상변화를 觀하던 문왕팔괘로 바뀌고, 그후 宋代에서는 다시 복희팔괘로 易철학의 중심 用이 바뀌었다는 의미는 뭘까요?
3易의 팔괘도를 살펴보자면 복희-문왕-정역의 변화는 우주원리의 변화가 아니라 그것을 관찰하는 철학자의 눈의 촛점이 어디를 보고 있고 무엇을 사유하고 있느냐에 따른 <관점>의 변화라는걸 알수 있습니다.
우주는 하늘만으로 땅만으로, 개별적 사유가 가능한 대상일 수 없으므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따라 제시된 우주도식의 배치가 다를 뿐이죠.
<正易>에서는 문왕팔괘에서 살짝 비틀어 비스듬히 설정된 乾과 坤의 팔괘도에서 흐려진 우주精神, 神明에 대해 집중 조명해 보기로 하고 망원경의 촛점을 다시 되돌려 비틀어진 乾坤의 軸을 正方으로 세웁니다. 이 철학자의 목적은 신명의 잉태와 출산 싯점을 조명하는 것입니다. 永生.蘇生에 대한 신비를 밝히고자 함이죠.
문왕팔괘도에선 一陽始生의 子方(1)과 神明, 우주정신인 乾方(10)이 하나로 통일 되지 못하고 비틀려있죠? 망원경의 촛점이 땅에 맞추어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乾의 軸이 비틀려 있기 때문입니다.
정역팔괘에선 乾(2.7火-神明)方과 北斗(太虛)의 子方, 즉 우주의 중심축과 지구의 천구축이 일직선으로 일치되면서 우주정신이 곧 인간의 정신으로 합일되는, 10의 완성과 1의 始生점이 일치되는 도식이 완성되고 있습니다. 경이롭죠?
數와 象을 兼하여 도식을 읽으면 정역팔괘는 卵의 형태로 흰자위(1.6水-羊水)와 노른자위(2.7火-核.생명잉태)의 그림으로 나타나지요? 羊水라는 표현은 水土合德의 의미입니다. 坎離의 소음군화 2.7 中央의 바깥으로 4.9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껍질입니다. 씨앗(卵)이 완성되었군요.
이 우주도식은 1.6水(땅의 德)와 2.7火(하늘의 明)을 일치시키면서 水火의 64卦 스토리(旣濟-未濟卦)에 마침표를 찍어, 우주드라마의 막(4.9金)을 내립니다. 완벽한 신화의 완성이군요. 황홀하네요.
<易의 관찰자 시점>
인식이란 상대적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람의 일이다. 헤아림, 事이며 濟이다.
3才는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이다.
...
존재(상태/현상/드러남)는 2數 분화하는데 밤은 낮에 의해 존재성이 드러나고 낮은 밤에의해 고유의 성질이 확인된다.
인식은 나(관찰자)로부터 시작한다.
하늘의 동정과 땅의 동정,
그리고 관찰자의 인식하고 헤아리는 행위.
3才이며 동시에 5行이다.
易은 動이고 사람의 인식(人)을 전제로 한다.
3 - 5 는 變動의 숫자이고
2 - 8 는 現象의 숫자이다.
1 觀
5 變
10 濟
<體用, 생명의 뫼비우스띠>
선천팔괘의 雷風이 손을 맞잡고 있다.
하늘과 땅이 얼싸 안으며 神明을 낳는다.
神明은 씨앗이며 永生과 蘇生에 대한 약속이다.
하늘이 낳은 우뢰는 땅을 고동시키고
땅이 낳은 바람은 하늘과 땅의 노래를 소통시킨다.
호흡과 심장박동이다.
그것이 뫼비우스띠를 이루며 神明으로 완성된다.
易은 변함없이 생명의 순환를 약속하는구나!!!
風는 땅에 세워진 나무다.
하늘과 땅, 하늘과 인간을 잇는 야곱의 사다리다.
선천팔괘의 推衍은 생명의 법칙 그대로이다. 장남 震과 장녀 巽은 나무의 생장점인 우듬지다. 다음 생애의 成長을 앞장서갈 생명활동의 힘찬 깃발이다.
후천팔괘에서는 巽이 辰土合德의 순간과 겹쳐있다. 여전히 물상의 성장을 돕느라(中孚) 부산하다. 辰月은 땅이 옥문을 활짝열고 야곱의 사다리(巽)를 세워 하늘과 소통한다. 만화가 방창하고 있다.
정역팔괘에서는 장남과 장녀가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소명은 역시 中孚에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공양하고 아래로는 만물을 키워내는 소임은 변함없어 수고롭기만 하니, 그들이 곧 勞謙君子이겠다.
중요한건 주역 爻位의 음양 명칭인 用六과 用九의 正名이겠는데, 보는 바와 같이 땅의 물상작용은 1.6水의 작용이요, 하늘의 정신작용은 4.9金의 작용이다. 用九는 씨앗의 用을, 用六은 물화된 꽃의 用을 드러내고 있다.
用은 末이다.
用九의 本은 씨앗(9乾-6戌)에 있고 앞으로(順行) 만물의 만화방창한 모습(中華)를 펼쳐보이게 될거라는 것이고 用六은 本이 꽃과 열매(8巽-1辰)에 있고 遠心力으로 順行하던 작용에서 救心力으로 逆行하여 씨앗을 영글게 하는 수고로운 생명활동을 운행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명리해석에도 물상법(用六)와 정신작용(用九)의 관점의 해석이 合德될 때라야 인간 命의 올바른 推衍이 가능해진다는 말이 되겠다.
<四象은 易의 서술어이다>
생명탄생의 신비를 담고 있는 주역 下經의 첫번째 卦는 咸괘입니다. 澤과 山은 멀찌감치 떨어져 수줍음으로 서로를 탐색합니다. 10-1-2-3-4(雷)로 乾의 심장(離)이 두근거리고(動), 5-9-8-7-6(風)으로 坤의 심장(坎)이 뛰면서(動) 서로를 향해 달려갑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달려와 만난 자리에서 육체적인 합일(5土)과 정신적인 합일(10土)인 正易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感이며 愛이고 仁의 心이며, 하늘의 정신(恒)입니다. 지구는 온통 이 感의 미라클로 들썩입니다. 파괴와 죽음과 폭력은 결코 感일 수 없으며 神의 뜻일 수 없습니다.
『착한 인류』 - 도덕은 진화의 산물인가
http://mizibooks.tistory.com/95 이 리뷰글 참 맘에 든다. 좋다.
<黃極 5位, 진화된 착한 인류>
一夫 선생의 正易이 증산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의 聖經 텍스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대략이 난감한 마음이 든다. 원문을 접하기 어려운 본인 입장에선 일부 선생이 직접 新종교의 교주노릇을 자처하셨을지 궁금하다.
正易은 우주의 게놈지도이다. 프랙탈化 되어 있으므로 體用원리에 따라 운영은 계속 반복, 확산, 분화하여 모든 생명체 체세포의 생성원리로 세분화 되거나, 또 일방으론 體用의 딜렉토리가 단계별...로 접혀 들어가며 태초의 우주적 한점인 太虛(玄)로 귀납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지구 지축변화에 따른 후천세계의 도래'라는 종교적 입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기도 하고, 神의 인격성을 고민하지 않아도 우주와 만물의 숨결로써 생명을 主濟하시는 神의 本體性만으로도 충분히 종교적인 본인인지라 별고민없이 이 문제는 넘어간다.
宋代이후의 易학자들의 관심은 땅의 운영원리에 대한 논고를 넘어서 인간의 정신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다. 心의 작용을 血脈을 주관하는 생리적 기능과 정신작용으로 구분하였으며, 이제마의 사상의학에서는 心의 정신(神明)작용을 本體로 설정하고 인체의 생리작용인 用은 四象(비-신, 간-폐)으로 논하였다.
인체의 12경맥은 삼양삼음의 體의 易을 표현하고 있고 묘유양명조금의 經脈은 인체의 정신작용(神明)의 生成을 해석하고 있다. 우주가 吸(블랙홀)을 통해 근본인 太虛로 돌아가듯, 봄에 싹을 틔운 생명이 씨앗으로 한생애를 갈무리 하듯, 우리의 정신 또한 매일의 일상을 통해 성장하고 여물어 神明으로 귀납된다.
이렇게 생성된 인간 개체의 神明은 다시 우주의 본체(太虛)적 神明과 합일되어 하나가 되니, 인간 개체인 末端이 우주정신인 本體와 하나된다는 人乃天의 消息이다.
이것이 孔子之學이 선포한 인간의 5土位다. 太虛의 神明이자 仁이며, 母心이고, 生生之意의 낳고낳고자 함이요, 기르고 기르고자 함(中孚)이다. 正易은 바로 인간 정신의 진화, 도덕성의 生成과정을 기록한 게놈지도이다.
(1) 하늘은 낳고 땅은 기르다.
頣과 中孚의 자리가 有別하군요.
民은 만물의 자리이니 자손 생육의 소임을 갖지요.
知는 하늘이 요구하는 백성들의 소임이 아닙니다.
頣은 知를 일깨우는 소임이요, 中孚의 소임은 만물이 그러하듯 어린 새끼 새에게 먹이를 물어 배를 채워주는 육체적 생존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아이에게 젖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네의 맡은 바의 소임입니다.
頣의 소임은 어미새와 새끼가 안전하게 머물수 있는 터전과 먹거리를 제공하는 位입니다. 그런 그들이 知에 머물지 않고 제 배를 가득 가득 채워넣기 바쁩니다. 꾸역 꾸역 소화도 되기 전에 또 아구아구 배를 채워 넣습니다.
(2) 神의 존재성(원리-과학)와 인격성(믿음-종교)
64卦의 서괘전 해석에는 복희易, 문왕易, 正易이 총체적으로 그려있는데 왜 일부선생의 정역이 完成의 易이라 하는지 잘모르겠다. 정역의 종교적 해석이 일부선생 본인이 의도한 바는 절대 아닐 것이다.
지구 세차운동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지구의 몸놀림이다. 지축변화는 당연히 지구 생태계의 생물들에게 매우 위협적이고 현생인류 출현의 직접적인 진화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지구는 한때 거대한 생명群인 공룡의 멸종을 선택하기도 했다. 지구가 거듭되는 재부활하는 생명소생의 기적과 힘을 포기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지만 현생인류群의 멸종을 허락할 수 있다. 엄밀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다른 형태의 생물群이 이 땅의 주인(?)이 될수 있다.
易의 주체는 사람이다. 관찰자 시점이 존재한다. 이 관찰자 시점이 終하면 書易의 스토리는 막을 내리는 것이다. 지구 지축변화는 질서의 변화이고 易이 갖는 본래의 목적인 天下 인간事의 경륜은 사살상 무의미한 虛의 상태가 된다. 후천개벽 세상과 人事는 결단코 별개의 문제이다.
다만 일부 선생께서 우주와 그 생명력을 신앙하고 이 위대한 질서와 지구의 호흡을 찬양했다면 인간 중심의 신앙관이 아니라 이미 인류의 생존과는 무관한 총체적 우주의 神明에 복종하고 찬미했을 것이다. 그 후천개벽이 인간사의 질서에 직접 개입하리라는 종교적 관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人乃天(孕-열매), 사람이 하늘을 품다>
易에 대한 體用 프랙탈 구조다. 생명나무(枼) 끝자락의 꽃눈자리(巽)는 씨앗이 맺히는 자리다. 이 작은 한알의 씨앗이 우주의 본체로 회귀하여 同一한 존재의 位를 갖는 신비를 보라!
작은 나뭇가지는 쉴새 없이 바람에 재잘거리고 변덕스럽게 흔들려 중심이 없는듯 하늘거리지만 그 여리디 여린 마지막 자리에 잎눈과 꽃눈을 만들어 새로운 부활을 준비하는 자연은 또 얼마나 신비롭더냐?
끝자리가 처음자리가 되는 신비. 그러니 우리 民草의 여린 풀잎속이야말로 천지창조주의 거룩한 神明이 머무는 곳이다. 民이 곧 하늘이라. 그러니 하늘이 人格을 취할 때는 가장 낮고 누추한 자리, 마굿간이 제격이 아니더냐? 草가 곧 하늘이다.
뽕나무만큼 신성한 나무가 또 어디 있었으랴.
인류의 재앙인 큰 홍수로부터 인간을 지켜낸 것도 뿌리가 깊고 질겨 뽑히지 않았던 뽕나무 였고 허기진 배를 채워준 것도 오디 열매였고 거친 바람으로부터 몸을 의탁할 은신처가 되어 준것도 뽕나무 였다는 것이렷다.
그 무엇보다 뽕나무의 신성함은 누에를 키워내는 일이었는데 마법의 옷감을 만들어 내는 이 신비한 누에가 선택한 '생명의 나무'가 바로 이 뽕나무였다는 것.
어떻게 인류는 누에고치로 부터 옷감을 만들어 낼수 있었을까? 그 태고적으로부터 전승된 이 비단짷는 일은 도대체 어떻게 유래되었을까? 지금도 신기하기만한 그 인류의 재간은 사람들에게 우주를 主濟하는 神의 창조성을 빗댈만큼 특별했으리라.
...
하여, 우주의 太虛의 자리를 玄이라 했다.
幺(작을 요) : 누에고치, 실타래
玄(검을 현) : 메달려 있는 고치속이 깊고 어둡다. 현묘하다. 玄玄하다.
糸(가는실 멱) :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다.
系(이어맬 계) : 뽑은 실들을 이어붙이다.
絲(실 사) : 실로 짷은 비단(실크)
亥 玄+人 : 고치 속의 생명
孕 乃+子 : 胎 속의 생명, 씨앗
孚 爪+子 : 卵生 생명
...
口는 땅이다. 생명을 품어 기르는 자궁이다.
厶는 한움큼, 맺히다.
台는 자궁에 생명이 맺혔다는 뜻이다. 始.
育은 丄은 上으로 몸이 자라다.
能은 생명체의 복제능력이다. 또 하나의 몸을 품었다.
熊는 火(灬) '드러나다'를 더하여 출산하다가 된다.
그러므로 熊女는 인류를 출산한 첫어머니이다.
亥는 고치(玄)를 뚫고 나오는 생명(人)이다.
經은 옷감을 짜는 일로 '다스리다(濟)'의 뜻이다. 經輪.
문자란,
우주에 관한 생명의 消息를 담기 위해 존재한다.
문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글자로 함축된다.
天 하늘
地 땅
人 생명
<자료1> 문명의 흔적 http://phototour.tistory.com/1815
<자료2> 우주의 太虛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4351571176&ref=tn_tnmn#!/photo.php?v=695407950508346
<우주의 人格性이 사람(萬物)이 되다>
종교화 되어있는 대부분의 사유는 동일한 류의 스토리를 갖는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동북아시아 설화에선 여와의 항아리(壺)와 맞물리고 있으며 생명탄생의 산실(壼極 곤극)으로써의 생명의 모태를 상징한다.
여러 방식의 신앙은 神을 찾는 인간의 탐구방식이다. 그 궁극적인 물음은 人間에 있다. 이 신성한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이 더욱 신을 向하게 하는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부터 왔는가? 또 우리는 이미 예견된 죽음 앞에서도 어째서 끊임없이 우주를 탐색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신앙에 대해 고민했던 나로선 기독교 신앙의 구성이 동북아시아의 神에 대한 사유의 깊이를 쫒아갈 수 없음에 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종교는 神이 아닌 인간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변함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을 깊게 느꼈다.
神이 인간의 현상계와 별도의 3차원의 位에 존재하던 우리들의 호흡과 동일한 현상계에 널리 분포되어 존재하고 활동하는 거대한 우주라는 생명의 본체이던 그 절대적 진리와는 별도로 우리네 삶은 늦은밤 장독대앞 정한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간이다.
그것은 天雷无妄때문이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어느날 우리들 앞에 감당하지 못할만큼의 고통이 오면 그깟 신에 대한 정의가 무슨 소용이더냐? 종교를 코웃음 치는 자는 神의 축복을 받은 자다. 하늘에고 바다에고 큰바위를 붙들고 살려달라 애원할 필요가 없는 평안한 삶을 살았다는 방증이니...
그것이 또 미신이면 어쩌겠는가?
그 허망함을 붙들고 메달려야 하는 그는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이랴?! 물론 종교를 사교 또는 권력의 場으로 이용하는 자들을 말하는게 아니다. 이미 그들에겐 神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命理學,
생명성의 존재구조를 시간의 변화법칙으로 이해하다.
乾命은 10-1-2-3-4 로 順行한다.
坤命은 5-9-8-7-6으로 逆行한다.
대운을 세울때,
乾命은 월령을 기준으로 甲乙丙丁.... 順으로 대운을 정하고
坤命은 월령을 기준으로 癸壬辛庚.... 逆으로 대운을 정한다.
乾道와 坤道가 정해지는 이치는 건곤합덕의 순역의 道에 있다.
順逆을 이해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ㅠㅠ
시간의 順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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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팔괘의 후천개벽의 종교적 선언
정역에 대한 종교적인 해석에 대해서는 개별적 성향에 맡긴다.
인간이란 태어나면서 종교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정역의 종교적 해석을 믿고 안믿고는 별 의미가 없다.
본인의 주역접근은 用에 있으므로 찰나를 살아아가는 우리 보통사람들의 인간사를 해석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누군가 진실의 본질은 허접하다고 했던가?
우리네 민초들의 삶도 본질은 이렇게 허접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저 먹고 살아가는 일, 무탈하게 주어진 생을 마치는 일이 삶의 목표이다.
그저 내게 주어진 소명을 바로 알고, 이웃의 소명을 일깨우는 일에 조그만 보탬이 되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는다.
한의학을 바로 익히기 위해 시작한 명리학 공부는 본래의 한의학에 대한 열정도 모두 집어삼켜버리고
이제 조금씩 몇개의 손가락이 접혀지는 시간들 동안 늘 허당짓을 하게 한다. 멀고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허접한 우리네 인생이 우주생성원리의 속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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