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漢詩와 書藝 / 春日還郊 - 王勃

2013. 1. 9. 11:12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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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日還郊(춘일환교) 봄날 교외로 나와 王勃

閑情兼嘿語(한정겸묵어) 한가한 마음에 말은 묵묵

携杖赴岩泉(휴장부암천) 지팡이 짚고 바위샘으로 갔네

草綠萦新帶(초록영신대) 초록이 새 허리띠처럼 엉켰고

榆青綴古錢(유청철고전) 느릅나무 푸른 싹은 옛 동전처럼 맺혔네

魚床侵岸水(어상침안수) 강바닥은 강언덕을 침식하고

鳥路入山烟(조로입산연) 새만 다니는 길은 안개묻힌 산속으로 이어지네

還題平子賦(환제평자부) 돌아와 장형(張衡)의 <歸田賦>를 흉내 내어 지으니

花樹滿春田(화수만춘전) 꽃과 나무가 봄밭에 가득하네

 

왕발 [王勃, 650~676]

자 자안(子安). 강주(絳州) 용문(龍門:山西省 河津縣) 출생. 일설에는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 출생이라고 한다. 수(隋)나라 말의 유학자 왕통(王通)의 손자이다. 조숙한 천재로 6세 때 문장을 잘하였고, 17세 때인 666년 유소과(幽素科)에 급제하였다. 젊어서 그 재능을 인정받아 664년에 이미 조산랑(朝散郞)의 벼슬을 받았다. 왕족인 패왕(沛王) 현(賢)의 부름을 받고 그를 섬겼으나, 당시 유행하였던 투계(鬪鷄)에 대하여 장난으로 쓴 글이 고종(高宗) 황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중앙에서 쫓겨나 쓰촨[四川] 지방을 방랑하였다. 뒤에 관노(官奴)를 죽였다는 죄로 관직을 빼앗기고 교지(交趾:베트남 북부)의 영(令)으로 좌천된 아버지 복치(福畤)를 만나러갔다가 돌아오던 중, 배에서 바다로 떨어져 익사하였다.

양형 ·노조린(盧照鄰) ·낙빈왕(駱賓王) 등과 함께 초당(初唐) 4걸(四傑)이라 불리는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 시인이다. ‘왕양노락(王楊盧駱)’이라 불렸던 그는 종래의 완미(婉媚)한 육조시(六朝詩)의 껍질을 벗어나 참신하고 건전한 정감을 읊어 성당시(盛唐詩)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5언절구(五言絶句)에 뛰어났으며, 시문집 《왕자안집(王子安集)》 16권을 남겼다

 

 


출처 : 紫軒流長
글쓴이 : 紫軒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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