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漢詩와 書藝 - 歸田園居 3 陶淵明

2013. 1. 9. 11:10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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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田園居 3 전원에 돌아와서

  - 陶淵明 도연명 -

種豆南山下(종두남산하) 남산아래에다 콩을 심었거니

草盛豆苗稀(초성두묘희) 잡초만 무성하고 콩은 드물다

晨興理荒穢(신흥리황예) 새벽같이 일어나 풀 뽑고 잡초 매어

帶月荷鋤歸(대월하서귀) 달빛을 벗하고야 호미 메고 집으로 오네

道狹草木長(도협초목장) 길은 좁고 수풀은 무성하여

夕露沾我衣(석로첨아의) 저녁이슬에 내 옷이 다 젖는구나

衣沾不足惜(의첨부족석) 옷이야 젖은들 애석할 것 없지만

但使願無違(단사원무위) 다만 내 원하는바 어긋나지 말았으면

 

도연명 (陶淵明, 365년 ~ 427년)은 중국 동진의 시인이다. 자는 원량(元亮), 본명을 잠(潛), 자를 연명(淵明)이라고도 한다. 오류(五柳) 선생이라고 불리며,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심양 사람. 동진 초기의 군벌의 대인물 도간(陶侃)의 증손이라 하는데, 부조(父祖)의 이름은 분명치 않다. 하급 귀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친은 일찍 사망했다.

젊어서 면학에 전념하여 입신의 포부를 가졌으나 29세경에 비로소 주(州)의 관리로서 관직에 임했다. 그 후 13년간 지방 관계에 있었으나 입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팽택령(彭澤令)을 80일간 근무한 후 향리로 돌아갔다. “내 5두미(斗米)의 봉급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향리의 소인에게 절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 말은 현(縣)을 시찰하러 온 군의 관리(郡 아래 縣이 있다)에게 절을 할 수 있겠느냐 하고 현령의 자리를 내동댕이쳤을 때의 명문구이다. 그때 전원으로 돌아갈 심경을 말한 것이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그의 시는 현재 4언시(四言詩) 9수, 5언시 120수 정도가 남아 있다. 내용은 전원에서의 은사의 생활을 읊은 것, 자적(自適)의 심경을 토로한 것, 지방관리와의 증답시(贈答詩), 영사(詠史), 의고(擬古) 등이 주가 된다. 한아(閑雅)한 취향 속에도 때로는 격한 감정이 나타나 있으며, 소동파는 “그의 시는 소박하나 그 실(實)은 아름답고(綺), 파리하지만(苟) 실은 풍부(裕) 하다”라고 평하고 있다.

 

연인의 꿈 

 

출처 : 紫軒流長
글쓴이 : 紫軒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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