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31. 11:16ㆍ한시
조선시대 해어화(解語花)들의 애절한 노래.
기녀들을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는 뜻에서 ‘해어화(解語花)’ 또는 ‘화류계여자(花柳界女子)’라고 했다고 한다.
이익(李瀷)은 그의 ‘성호사설’에서 기생(妓生)은 양수척(揚水尺)에서 비롯됐다고 하였다. 양수척은 곧 유기장(柳器匠)인데, 고려가 후백제를 칠 때 가장 다스리기 힘든 집단이었다. 이들은 원래 소속이 없고 부역에 종사하지도 않았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버드나무로 키·소쿠리 등을 만들어 팔고 다녔다. 후일 이들이 남녀노비로 읍적(邑籍)에 오르게 될 때, 용모가 고운 여자를 골라 춤과 노래를 익히게 하여 기생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생의 발생을 무녀(巫女)의 타락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즉 고대 제정일치사회에서 사제(司祭)로 군림하던 무녀가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이 분화되는 과정에서 기생으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원래부터 세습되어 내려온 기생 이외에도 비적(婢籍)으로 떨어져 내려와 기생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역신(逆臣)의 부녀자들이다. 고려시대에 근친상간의 금기를 범한 성서예부시랑 이수(李需)의 조카며느리를 유녀(游女)의 적에 올린 경우와, 조선 초기 사육신(死六臣)의 처자들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또 조선 광해군 때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친정어머니를 제주감영의 노비로 삼았다.
기생은 노비와 마찬가지로 한번 기적(妓籍)에 올려지면 천민이라는 신분적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기생과 양반 사이에 태어난 경우라도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에 따라 아들은 노비, 딸은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생이 양민으로 되는 경우도 있었다. 속신(贖身)이라 하여, 양민 부자나 양반의 소실이 되는 경우 재물로 그 대가를 치러줌으로써 천민의 신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기생이 병들어 제 구실을 못하거나 늙어 퇴직할 때 그 딸이나 조카딸을 대신 들여놓고 나오는데 이를 두고 대비정속(代婢定屬)이라 했다. 고전소설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에는 양반의 딸이 아버지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기생이 되는 얘기도 있다. 이러한 기생은 조선사회에서 양민도 못되는 이른바 팔천(八賤)의 하나였다. 다만 그들에게 위안이 있다면 양반의 부녀자들과 같이 노리개를 찰 수 있었고, 직업적 특성에 따라 사대부들과의 자유연애가 가능했다. 또 고관대작의 첩으로 들어가면 친정을 살릴 수 있었다. 기생은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는 뜻에서 ‘해어화(解語花)’ 또는 ‘화류계여자(花柳界女子)’라고도 하였다.
우리나라 고전문학사에 길이 남을 이 시조작품을 쓴 사람들은 기생들이다. 불후의 시조시인으로 꼽히는 송도 명기 황진이(黃眞伊)는 시조뿐 아니라 한시도 많이 남겼으며, 특히 서경덕과의 일화는 유명하다. 부안 명기 이매창(李梅窓)은 당시 문인이며 명신인 허균·이귀 등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조선 중종 때 선비들이 그녀의 시비(詩碑)를 세워주었다. 송이(松伊)·소춘풍(笑春風) 등 시조시인으로 이름을 남긴 기생들이 상당수에 이르는데 그녀들이 국문학에 끼친 영향 중 가장 큰 것은 고려가요의 전승이라 하겠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짙은 정한(情恨)의 고려가요는 대부분 그녀들의 작품으로 보여지는데 얼마전 19세기 전반 평양의 기생 67명과 기방 주변의 남성 5명의 삶을 그린 산문 소품 ‘綠派雜記’가 공개됐다. 환락적 풍모나 ‘성 노리개’식의 부정적 인상과는 거리가 먼 기생들의 삶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 예혼을 불러 일으킨다고 했다./ 임병호 논설위원
최근에 발굴된 녹파잡기(綠波雜記)는
조선시대 기생·기방을 소재로 한 산문을 개척한 첫 단행본이며 ‘조선해어화사’ 등 한국 기생사를 체계화한 것이며 역사학자 고 이능화 선생도 접하지 못했던 풍속사의 주요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평양(平壤)은 옛적 ‘색향(色鄕)’으로 불리던 곳이다. ‘녹파잡기(綠波雜記)’는 고려 중기의 시인 정지상(鄭知常)이 평양을 무대로 쓴 시 ‘송인(送人)’ 중 마지막 구절 ‘별루년년첨록파(別淚年年添綠波)’에서 딴 것으로 명지대 안대회(한국한문학)교수가 최근 찾아냈다.
‘녹파잡기(綠波雜記)’는 개성 명문가 출신의 시인 한재낙(韓在洛·생몰연대 미상)이 평양에서 내로라하는 기생들을 직접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산문인데 풍속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한재낙(韓在洛)은 개성의 자연·사적 등을 기록한 ‘고려 고도징(高麗古都?)’을 썼던 조선 정조·순조 무렵의 저명한 학자인 한재렴(韓在濂·1775~1818)의 친동생이다.
녹파잡기(綠波雜記)에는 평양 기생들을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그 예는
기생 초제에 대해서는
기생들의 인간다움은 사랑이야기에서 두드러진다.
열한 살 초제는 비 내린 어느 날, 벼슬아치 행차에 ‘출장’ 나가려다 가죽신에 구멍이 났다. 어찌할 바 모르는 그녀를 위해 더벅머리 소년이 신을 벗어주고 맨발로 갔다. 그녀는 소년의 신발을 꼭 감싸 쥐고 말했다. “저 비록 어리지만 처녀의 몸으로 다른 이의 신발을 신었다. 규방 여인의 행실이 변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그와 인연을 맺게 되면 오늘 일 때문일 것이다.”
한번 기적(妓籍)에 올려지면 천민이라는 신분적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이면서 자기들의 순수한 마음을 노래한 작품들은 우리나라 고전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쓴 사람들이 기생들이다
春愁(춘수) 금원 김씨(錦園金氏)
池邊楊柳綠垂垂 蠟曙春愁若自知
지변양류록수수 납서춘수약자지
上有黃隱啼未己 不堪趣紂送人時
상유황은제미기 불감취추송인시
시냇가의 실버들 유목색 가지
봄시름을 못 이겨 휘늘어지고
꾀꼬리가 꾀꼴꾀꼴 울음 그치지 못하는 것은
임 이별의 슬픔 이기지 못함인가
금원 김씨(錦園金氏)1817∼?.) 호(號)는 금원(錦園)이고,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삼호정시단(三湖亭詩壇)의 동인이다
원주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병을 자주 앓아 몸이 허약하므로 그의 부모가 글을 배우도록 했는데, 글을 뛰어나게 잘해서 경사(經史)에 능통했고, 고금의 문장을 섭렵하여 시문에 능했다.
평생 남자로 태어나지 못하였음을 한하면서 1830년(순조 30)3월 14세 때 남자로 변장하고 단신 금강산을 유람하여 견문을 넓혀 시문을 짓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돌아와서 시랑이며 규당(奎堂)학사인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다.
본래 원주(原州)사람이나 1845년에 김덕희(金德喜)의 소실로 그와 함께 서도와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1847년에 돌아와 서울 용산에 있는 김덕희의 별장인 삼호정(三湖亭)에 살면서 같은 처지의 벗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을 규합하여 시문을 지으면서 시단(詩壇)을 형성하였다.
玉屛(옥병) -취선(翠仙)-.
洞天如水月蒼蒼 樹葉蕭蕭夜有霜
동천여수월창창 수엽소소야유상
十二擴簾人獨宿 玉屛還羨繡鴛鴦
십이확염인독숙 옥병환선수원앙
마을 하늘 물처럼 맑고 달빛 푸르며
지다 남은 잎에 서리가 쌓일 때
긴 주렴 드리우고 혼자 잠을 자려니
병풍의 원앙새가 부럽기만 하구나
白馬江 懷古 -취선(翠仙)-호 雪竹 김철손(金哲蓀)의 소실.
晩泊皐蘭寺 西風獨倚樓
만박고란사 서풍독의루
龍亡江萬古 花落月千秋
룡망강만고 화락월천추
늦게 고란사에 배를 대이고
시름 잠겨 다락 머리 앉았노라니
강물은 말없이 흘러 가는 데
낙화암에 꽃진 천년에도 달만 밝구나
離別(이별)-일지홍(一枝紅)성천(成川)의 기생-
駐馬仙樓下 慇懃問後期
주마선루하 은근문후기
離筵樽酒盡 花落鳥啼時
이연준주진 화락조제시
말은 다락 아래 매어 놓고
언제 또 오시려나 은근히 묻네
임 보내려는 때 술 떨어지고
꽃 지고 새도 슬피 우는구나
秋月夜(추월야)-추향(秋香)-
移棹淸江口 驚人宿驚飜
이도청강구 경인숙경번
沙白月無痕 山紅秋有色
사백월무흔 산홍추유색
노를 저어 맑은 강 어귀에 이르니
인적에 해오라기 잠깨어 날고
가을이 짙은 탓인가 산빛은 붉고
흰 모래엔 달 자취 없구나
長霖(장림 장마비)-취연(翠蓮-자는 일타홍(一朶紅)
十日長霖若未晴 鄕愁蠟蠟夢魂驚
십일장림약미청 향수납납몽혼경
中山在眼如千里 堞然危欄默數程
중산재안여천리 첩연위란묵수정
열흔이나 이 장마 왜 안 개일까
고향을 오가는 꿈 끝이 없구나
고향은 눈 앞에 있으나 길은 먼 千里
근심 어려 난간에 기대 헤아려보노라
매화 梅花 -매화(梅花)
매화 옛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음직도 하다마는
춘설이 어지러이 흩날리니 필듯말듯 하여라
梅花 노등걸에 봄졀이 도라오니
노퓌던 柯枝에 픗염즉도 *다마*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니 필동말동 *여라
지은이 : 매화(梅花). 생몰년 미상, 조선시대 평양 기생. 애절한 연정을 읊은
시조 8수(그중 2수는 불확실함)가 『청구영언』에 전한다
꽃피는 시기만으로도 너무 일찍 핀다하여 조매(早梅), 겨울에 핀다 하여 동매, 눈 속에도 핀다하여 설중매, 종류에 따라 봄기운이 완연할 때 피는 춘매까지 매화를 두고 부르는 이름은 셀 수 없이 많다. 성급한 매화로부터 시작하는 꽃 소식은 숨을 돌리느라 잠깐 쉬었다가 금세 산수유, 생강나무, 진달래, 목련으로 이어지고 개나리, 살구꽃, 벚꽃, 복숭아꽃으로 맺음을 하면 봄이란 계절이 훌쩍 우리를 떠나가 버린다. 우리의 인생도 봄과 같이 어느날 훌쩍 떠나버리고 말리라.
待郞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능운 (凌雲).
郞去月出來 月出郞不來
랑거월출내 월출랑불래
相應君在處 山高月出遲
상응군재처 산고월출지
임 가실 제 달 뜨면 오마시더니
달은 떠도 그 임은 왜 안 오실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임의 곳은
산이 높아 뜨는 달 늦은가 보다
재회의 기약은 순조롭게 지켜지지 않는다. 더구나 달뜨면 오겠다는 약속은 허망하기만 하다. 달이 떠올랐건만 임은 오지 않고, 기다리는 심정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 안타까움을 ‘임 계신 곳의 산 높아 뜨는 달이 늦다’ 라고 달랜다. 임 그리는 마음이 이리도 한량없는 것이리라.
어이 얼어 자리-한우(寒雨)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 베개와 비취 이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서 잘까 하노라
어이 얼어 잘이 므스 일 얼어 잘이
鴛鴦枕(원앙침) 翡翠衾(비취금)을 어듸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비 맛자신이 녹아 잘 노라
지은이 : 한우(寒雨). 조선 선조 때 임제(林悌)와 가까이 지내던 평양 기생.
황진이의 무덤에서 추모의 정을 나누고,
임제(1549-1578)는 군사를 정돈하여 다시 평안도로 향했다.
그런데 평양근처에 도달하자 한양으로부터 새로 부임하는 병마절도사가 대기 하고 있다가,
선조임금의 어명을 하달 삭탈관직, 모든 전권을 인계한뒤 헌 바지저고리에 대금 하나 달랑들고 방랑자가 되었다.
초가을 부슬비는 내리고 해는 서산머리에 황혼을 남기고 저물고 있어, 무작정 성밖의 허술한 주막에 들어 헛간에 몸을 감추려 했는데 주모가 나와 왠 손이 헛간에 주무시려 합니까? 하고 안으로 들어 오라하니,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내리고 들에는 찬비 내린다
오늘은 찬비 마잣시니 얼어잘까 하노라.
하며 극구사양하니....
어히 얼어자리 어이하여 얼어자리
원앙금 비취금을 어디두고 얼아자리
오늘은 찬비 마잣시니 녹아잘까 하노라.
하며 안으로 모시고 들어가 대금가락과 시문을 즐기며 편한밤을 보냈다 는데...
시조집(時調集)에 보면 이 두 시조가 나란히 실렸는데 주모의 이름은 한우(寒雨)라는 것 밖에는 전해지는 게 없다.
죽서(竹西)가 십 세 때 지음
落花天氣似新秋 夜靜銀河淡欲流
락화천기사신추 야정은하담욕류
却恨此身不如雁 年年未得到原州
각한차신부여안 년년미득도원주
꽃이 지는 봄은 첫 가을과 같네
밤이 되니 은하수도 맑게 흐르네
한 많은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
해마다 임이 계신 곳에 가지 못하고 있네
病中 -竹西-
淹病伊來一笑稀 夢魂長是暗中歸
엄병이래일소희 몽혼장시암중귀
此身若使因成鳥 不暫相離到處飛
차신약사인성조 부잠상리도처비
병이 난 뒤로 웃을 일 하나
없고 꿈속에서 혼만이 어둠 가운데(당신에게)돌아가네
이 몸이 이러다가 죽어 새가되면
잠시라도 떠나지 않고 그곳(당신이 있는 곳)마다 날아 다니리
晩春 만춘 -죽서(竹西).
落花天氣似新秋 夜靜銀河淡欲流
락화천기사신추 야정은하담욕류
却恨此身不如雁 年年未得到原州
각한차신부여안 년년미득도원주
꽃이 지는 봄은 첫 가을과 같네
밤이 되니 은하수도 맑게 흐르네
한 많은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
해마다 임이 계신 곳에 가지 못하고 있네
지은이 : 죽서(竹西). 철종 때 사람. 서기보(徐箕輔)의 소실
죽서박씨(竹西朴氏)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죽서(竹西). 박종언(朴宗彦)의 서녀이며, 서기보(徐箕輔)의 소실이다. 대략 1817∼1851년에 생존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워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와 고시문(古詩文)을 탐독하였고, 소식(蘇軾)·한유(韓愈)를 숭모하였다.
10세에 이미 뛰어난 시를 지어 천재성을 발휘하였는데, 시문은 매우 서정적이며 대개 임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여심과 기다리다 지친 규원(閨怨)을 나타내는 내용이다.
미모가 뛰어나고 침선에도 능하였다 하며, 동시대의 여류시인인 금원(錦園)과는 같은 원주사람으로 시문을 주고 받으며 깊이 교유하였다. 병약하여 30세 전후에 죽었다.
저서로는 《죽서시집》 1책이 있다.
河橋(은하수 다리) -연희(蓮喜)-
河橋牛女重逢夕 玉洞郞娘恨別時
하교우녀중봉석 옥동랑낭한별시
若使人間無此日 百年相對不相移
약사인간무차일 백년상대부상이
은하수 다리에서 견우직녀 이 날 저녁에 만나
옥동에서 다시 슬프게 헤어지네
이 세상에 이 날이 없었더라면
백년을 즐겁게 살아가리
黃昏-죽향(竹香)-호는 낭각(琅珏). 평양 기생.
千絲萬縷柳垂門 綠暗如雲不見村
천사만루유수문 녹암여운부견촌
忽有牧童吹笛過 一江烟雨自黃昏
홀유목동취적과 일강연우자황혼
실버들 천만 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서
구름인 듯 인가를 볼 길 없더니
문득 목동이 피리불며 지나간다
강 위에 보슬비요 날도 저물어 가누나
황혼 竹香
心有腹飢爲開門 溢爲華燈明人村
심유복기위개문 일위화등명인촌
擦去因連汝悲過 山而年齒之黃昏
찰거인연여비과 산이연치지황혼
마음이 배고프다 문을 열거든
넘쳐나는 인가만 불을 밝히고
스쳐가는 인연이 너를 슬프게 지나가고
산의 나이도 저물어 가는구나
履霜曲(이상곡)―작자 미상
비가 내리다가 개고 눈이 많이 내린 날에
서리어 있는 수풀의 좁디좁은 굽어돈 길에
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
잠을 빼앗아간 내 임을 생각하니
그러한 무서운 길에 자러 오겠는가?
때때로 벼락이 쳐서 無間地獄에 떨어져
고대 죽어버릴 내 몸이
내 임을 두고서 다른 임을 따르겠는가?
이렇게 하고자 저렇게 하고자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는 期約입니까?
맙소서 임이시여 임과 한 곳에 가고자 하는 기약뿐입니다
작자 ·연대는 미상이다. 창녀의 노래라 하여 조선 성종(成宗) 때 서경별곡(西京別曲) 쌍화점(雙花店) 등과 아울러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배척되었던 속요(俗謠)이다. 그러나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실려 전하는 그 내용은 그다지 음란한 것이라 볼 수 없으므로, 혹시 성종 때 고쳐 지은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履霜曲 이상곡:고려(高麗) 시대(時代)의 가곡(歌曲)의 하나
麗謠 여요:고려(高麗) 때의 민간(民間) 노래. 동동(動動), 쌍화점(雙花店), 가시리, 정석가(鄭石歌), 사모곡(思母曲), 만전춘(滿殿春), 『서경별곡(西京別曲)』, 이상곡(履霜曲), 『청산별곡(靑山別曲)』 등이 『악장가사(樂章歌詞)』, 『악학궤범(樂學軌範)』 등에 전(傳)함
梨花雨(이화우 ) 훗뿌릴 제 ”(계량桂娘),
梨花雨(이화우)흣릴 제 울며 잡고 離別(이별)님
秋風落葉(추풍낙엽)에 저도 날 각가
千里(천리)에 외로온 만 오락가락노매
배꽃 흩어뿌릴 때 울며 잡고 이별한 임
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배꽃이 흩날리던 때에 손 잡고 울며 불며 헤어진 임
가을 바람에 낙엽 지는 것을 보며 나를 생각하여 주실까?
천 리 길 머나먼 곳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배꽃이 비처럼 흩날릴 때의 이별의 정화, 낙엽 지는 가을날에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 멀리 떨어져 있는 임과의 재회에 대한 염원 등을 여성의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냈다.
계랑(桂娘,癸娘)(1513~1550).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 본명은 이향금(李香今). 호는 매창(梅窓)·계생(癸生)·계랑(桂娘:癸娘). 부안의 이름난 기생으로 가사·한시를 비롯하여 가무·현금(玄琴)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여류예술인이었다. 작품으로는 〈가을생각 秋思〉·〈술취한 나그네에게 주다 贈醉客〉·〈봄날의 원망 春怨〉·〈무제 無題〉·〈스스로 한함 自恨〉·〈감회를 남김 遺懷〉·〈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등 가사와 한시 70여 수 외에 금석문까지 전해지고 있다. 작품집으로 〈매창집〉 1권이 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送人 양양 기생
弄珠灘上魂欲消 獨把離懷寄酒樽
농주탄상혼욕소 독파이회기주준
無限烟花不留意 忍敎芳草怨王孫
무한연화불유의 인교방초원왕손
사랑을 나눈 시냇가에서 임을 보내고
외로이 잔을 들어 하소연할 때
피고 지는 저 꽃 내 뜻 모르니
오지 않는 임을 원망하게 하리
참 고 : 농주(弄珠)―연인과 함께 사랑을 속삭임.
傷春-계생(桂生) 혹은 매창(梅窓). 부안 기생
不是傷春病 只因憶玉郞
불시상춘병 지인억옥랑
塵豈多苦累 孤鶴未歸情
진기다고루 고학미귀정
이것은 봄이 감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임을 그리워한 탓이네 티끌 같은 세상
괴로움도 많아 외로운 목숨 죽고만 싶네
지은이 : 계생(桂生), 혹은 매창(梅窓). 부안 기생. 『매창집(梅窓集)』이 전한다.
청산은 내 뜻이오 -황진이(黃眞伊).
靑山은 내 뜻이오 綠水는 임의 情이로다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잊어 울면서 가는가
靑山은 내이오 綠水 님의 정情이
綠水 흘너간들 靑山이야 변(變)손가
綠水도 靑山을 못니저 우러예여 가고
지은이 : 황진이(黃眞伊). 생몰 미상. 조선 중종때의 명기. 개성 출신.
半月반월-- 황진이(黃眞伊)
誰斷崑崙玉 裁成織女梳
수단곤륜옥 재성직녀소
牽牛一去後 愁擲碧空虛
견우일거후 수척벽공허
崑崙(곤륜)의 귀한 玉을 누가 캐어
織女(직녀)의 얼레빗을 만들었는가
오마던 임 牽牛(견우) 안 오시니
근심에 못 이겨 허공에 던진 거라오
기생 홍랑,
멧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손데.
자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최경창과 기생 홍랑 조선시대 최고의 명문가라고 할 수 있는 해주 최씨의 문중 산에 그녀의 무덤과 비석이 버젓이 있으며, 그 문중에서는 지금까지도 해마다 시제와 제사를 홍랑에게 지내고 있다. 조선시대의 기생으로는 유일하게 사대부의 족보에까지 올라간 홍랑
생강 한 배를 싣고 와서 얻은 돈이 바닥이 났으니, 돈이 나올 구멍은 깜깜했다. 재물을 말끔히 빼앗기고 기생집에서 쫓겨난 생강장수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돈 떨어지자 임 떨어진 생강장수였다. 집에 돌아갈 노자까지 떨어진 장사꾼은 길가 목노집 툇마루에 걸터 앉아 막걸리 잔을 들이키면서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아무리 뉘우쳐 보았자 행차 뒤의 나발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서당에서 얻어 들은 지식으로 즉흥시 한 수를 읊었다.
遠看似馬目 近視如濃瘡
원간사마목 근시여농창
兩頰無一齒 能食一船薑
양협무일치 능식일선강
멀리서 보면 말의 눈깔도 같고
가까이서 보면 진무른 헌데 같은데,
두 볼에는 이빨도 하나 없으면서
어찌 생강 한 배를 꿀꺽 먹어 버렸나.
생강 한 배, 그 많은 돈을 깡그리 털어 넣고 얻은 소득이 이런 꼴로 나타난 것이다.
돈에 악착스러웠던 것은 비단 평양 기생 뿐만은 아니었다. 어느 고을에건 이런 유형의 기생들은 몇 명씩 있게 마련이었다. 그러면서도 유난히 평양 기생들이 악명 높고 두드러진 것은 평양이 워낙 대도시요, 거기서 기생들에게서 녹아난 거부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송행(送行) 조선초기(朝鮮初期)의 기생(妓生) 덕개(德介)-
琵琵聲裡寄離情 怨入東風曲不成
비비성리기리정 원입동풍곡불성
一夜高堂香夢冷 越羅裙上淚痕明
일야고강향몽냉 월나군상루흔명
비파소리에 이별하는 정을 담아 보낼 때
그 원한 동풍에 섞여 곡조가 틀리노라
하룻밤의 향기로운 꿈이 식어갈 때
비단치마 위에 눈물 흔적만 남는구나
상공(相公)을 뵈온 후에 (장기(將棋) -기생 소백주(小 栢舟)-
相公(상공)을 뵈온후에 (象)
事事(사사)를 믿자오니 (士)
拙直(졸직)한 마음에 (卒)
病(병)들까 염려하니 (兵)
이리(마) 저리(차) 하니 (馬,車)
백년 同抱(동포) 하리라 (包)
상공(相公)을 뵈온 후에 사사(事事)를 믿자오매
졸직(拙直)한 마음에 병들가 염려이러니
이리마 저리차 하시니 백년(百年) 동포(同抱)하리이다
-해동가요(海東歌謠)-
<해동가요>의 기록에 의하면, 이 시조는 광해군 때 평양 감사로 있던 박엽(朴燁)이 손님과 함께 장기를 두면서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던 기생 소백주(小栢舟)에게 명하여 짓게 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시조는 장기를 비유하여 대감에 대한 소백주(小栢舟) 자신의 연정(戀情)과 믿음을 노래하였다. 비유와 어휘의 적절한 구사가 매우 뛰어나다
진주(珍珠) -평양의 명기(名妓) 진주(珍珠)-
貝上珍珠有何能 能歌能舞詩亦能
패상진주유하능 능가능무시역능
能能之中又一能 無月三更弄夫能
능능지중우일능 무월삼경롱부능
패주 위의 진주 무엇이 능한 바더냐
노래와 춤 시문에 모두 능하네.
능한 가운데 또 한가지 능함이 있으니
달 없는 밤 삼경에 지아비 회롱함이 능함일세
청기(請棋) -평양의 명기(名妓) 진주(珍珠)-
國色詩名世盡知 無由會面浪相思
국색시명세진지 무유회면랑상사
一言堪喜還堪限 該把文章當奕棋
일언감희황감한 해파문장당혁기
온 세상이 다 아는 그 님은 詩도 잘 짓는다.
만날 길은 없어도 생각만 흐르는구나.
고운 님의 말 한마디 기쁘고도 한스러워
우선 글 한 수를 지어 바둑 대신 보냅니다
꿈에 뵈는 님이 - 명옥(明玉) 청구영언(靑丘永言)
꿈에 뵈는 님이 신의(信義)업다 하건마는
탐탐(貪貪)이 그리올 졔 꿈 아니면 어이보리
져 님아 꿈이라 말고 자로자로 뵈시쇼.-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무속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꿈에서조차 그리운 임을 보지 못할 것을 걱정하면서, 임이 그리울 때 그나마 꿈에서 자주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山村(산촌)에 밤이 드니-千錦(천금) 생몰미상 朝鮮時代 기생
산촌에 밤이 드니 먼딋 개 즈져온다.
시비를 열고 보니 하늘이 챠고 달이로다.
뎌 개야 공산 잠든 달을 즈져 므삼하리오
한밤 중에 고요한 산촌의 하늘에는 차갑게 느껴지는 달이 휘엉청 밝고, 어디선가 멀리서 개가 짖어대는 소리만이 산골을 울린다.
초장의 '산촌'이나 중장의 '달' 그리고 종장의 '공산'과 '개가 짖는 소리'등은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한층 자아내고 결국 '므삼하리오'에는 임을 기다리는 마음을 자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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