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사
2012. 6. 7. 08:25ㆍ서예가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글씨
한호(韓濩, 1548~1605) 후 조선 후기 서예의 조선화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로 평가되는 이광사의 행서(行書)이다. 이광사의 호는 원교(圓嶠), 수북(壽北)이고, 자는 도보(道甫)이다. 아래 작품은 이광사가 어떤 그림을 본 후 중국의 고개지(顧愷之)와 한비자(韓非子)의 화론(畵論)을 인용하여 높이 평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행서는 빠른 붓놀림과 글씨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동감(動感)이 뒤어난 작품으로 이광사의 스승이었던 윤순(尹淳, 1680~1741)의 영향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의 쓴 간지(干支)로 보아 이광사가 42세 때에 쓴 글씨임을 알 수 있다.
![10.10.10 진석, 공교육, 불화 027.jpg](http://blog.joinsmsn.com/usr/m/ul/mulim1672/1101/4d219fc27f5b3.jpg)
![10.10.10 진석, 공교육, 불화 028.jpg](http://blog.joinsmsn.com/usr/m/ul/mulim1672/1101/4d219fd01cce0.jpg)
![10.10.10 진석, 공교육, 불화 025.jpg](http://blog.joinsmsn.com/usr/m/ul/mulim1672/1101/4d21a03718e99.jpg)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역대 명화기(名畵記)에 실린 고개지(顧愷之)의 화론에는 사람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고 그 다음이 산수이고 그 다음이 개와 말이다. 돈대(墩臺)와 누각(樓閣)은 하나의 고정된 기물일 따름이므로 비교적 구리기 쉽다라고 하였고 한비자(韓非子)는 개와 말을 그리기 어렵고 귀신은 쉬우나 개와 말은 세상사람 누구나 그 생생한 모습을 보는 것이고 귀신은 진기하고 괴이한 형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그림은 당연히 신품에 드는 것이다.병인년 여름 이광사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