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암
2012. 6. 7. 08:27ㆍ서예가
석암 유용(劉墉)의 작품을 북경 수도박물관에서 발견했으나 조명이 어둡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설명을 살필 수 없었습니다. 유용은 우리나라 조선 후기 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서예가로 청나라 중기 강희 58년(1719) ~ 가경 9년(1804)까지 정치가이자 서예가로 활동한 문인입니다.
字는 숭여(崇如), 호는 처음에 목암(木庵), 후에 석암(石庵), 시호는 문청(文淸)입니다.
그는 劉石庵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山東省 諸城사람으로 재상인 劉統勳의 長子로 건융16년(1771)에 진사가 되었으며 다음해 한림원에 들어갔으며 가경2년(1797) 체임각(體仁閣) 태학사를 거쳐 재상이 되었습니다. 經,史, 諸子百家에 밝았으며 시문을 잘하여 題, 跋을 많이 남겼습니다.
張照와 더불어 첩학파(帖學派)의 최후 대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소해(小楷)와 行草서에 능했으며 서풍은 농묵을 사용하여 개성적이며 풍려(豊麗)하고 기골(氣骨)이 있으며 고아(高雅)한 정감이 있는 작품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 서적(書跡)을 종자(從子)인 환지(鐶之)가 집각(集刻)한 『청애당석각(淸愛堂石刻)』, 『서해루첩(曙海樓帖)』과 양동서(梁同書)와 합각한 『유양합벽(劉梁合璧)』이 있고 진적(眞跡)도 원의 하중(何中) 5언고시 『조기(早起)』를 쓴 계복(掛幅, 일본, 경도국립박물관)외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유문청공유집(劉文淸公遺集)』, 『응제시집(應制詩集)』이 있고 그 중에서도 논서칠절(論書七絶) 의 『학서우성(學書偶成)』30수가 유명하며, 『행서칠언년』이 남아있습니다.(네이버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