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서예특강-32] 원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서예가

2012. 6. 6. 10:54서예가

32. 원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서예가

 

원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서예가는 조맹부와 선우추이다.

조맹부(趙孟頫, 1254-1322)의 자는 자앙(子昻)이고 스스로 송설(松雪)이라 불렀으며, 또한 구파(鷗波)ㆍ수정궁도인(水晶宮道人)이라 불렀다.  그는 송나라 종실인 진왕(秦王) 덕방(德芳)의 후예로, 그의 선조가 저택을 호주(湖州)에서 하사받았기 때문에 호주(湖州, 지금의 浙江省) 사람이 되었다.  송나라가 망한 뒤에 그는 집에 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있었다.  원 세조후(世祖后)가 남은 유민을 찾다가 조맹부의 인품과 학문을 깊이 사모하여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로 제수하였다.  그의 시문은 맑고 아름다워 세속을 벗어난 정취가 있었다.  그의 글씨는 처음에 종요(鍾繇)와 왕희지를 배웠고 만년에는 이옹(李邕)의 필의를 섞었다.  그는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 배움이 쌓이고 공력이 깊어 전ㆍ예ㆍ해ㆍ행ㆍ초서가 당시 뛰어나지 않음이 없어 드디어 서예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당시에 인도의 승려가 만 리를 멀다하지 않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와서 그의 글씨를 구하여 묵보(墨寶)라고 여겼다.

선우추(鮮于樞, 1256-1301)의 자는 백기(伯機)이고 호는 곤학산민(困學山民)이다.  그는 대도(大都, 지금의 北京) 사람이나 또한 어양(漁陽, 지금의 河北省 薊懸) 사람이라고도 하며 벼슬은 태상사전부(太常寺典簿)를 지냈다.  그는 어려서 장천석(張天錫)에게 글씨를 배웠으나 옛사람과 같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겼다.  뒤에 분발하여 글씨를 배움에 필력이 굳세고 기이한 자태가 저절로 나왔으며 현완법(懸腕法)으로 큰 글씨와 소해서를 잘 써서 조맹부에게 높게 평가받았다.  원나라 서단에서 유독 조맹부와 선우추가 각기 독자적인 풍격이 있었으나, 뒤에 조맹부가 선우추의 글씨를 질투하여 그의 글씨를 대량으로 사들여서 모두 없앴기 때문에 전해지는 묵적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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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민락(與民樂)
글쓴이 : 설촌(雪村)청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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