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서예특강-29] 中唐에서 가장 유명한 서예가

2012. 6. 6. 10:52서예가

29. 中唐에서 가장 유명한 서예가

중당(中唐)에서 가장 유명한 서예가는 안진경(顔眞卿)이다.

안진경(顔眞卿, 709-785)은 당나라의 대신으로 자는 청신(淸臣)이고, 경조만년(京兆萬年, 지금의 陝西省 西安)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산동성 임기(臨沂) 사람이라고도 한다.  일찍이 평원태수(平原太守)를 맡았고 벼슬은 이부상서(吏部尙書)태자태사(太子太師)에 이르렀으며 노군공(魯郡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안평원(顔平原)’‘안태사(顔太師)’‘안노공(顔魯公)’이라 불렀다.  안진경은 조정에 서서 정색을 하고 강직하면서 예의가 있었다.  덕종(德宗) 때 이희열(李希烈)이 반란을 일으킴에 그는 명을 받들어 앞에 나가 권유하다가 애석하게 목을 졸리어 죽게 되니 나이가 77세였다. 

안진경은 박학다재하며 창작 기교가 맑고 순수했다.  서예는 처음에 저수량을 배웠고 후에 장욱에게 가르침을 받고 필법을 깊게 깨달았다.  그는 전서 필의로 해서를 써서 필력이 가득 찼고, 단정하고 장중하면서 위대하며 기세가 삼엄하여 백세의 종주가 되었다.  그의 행서는 굳세고 아름다우면서 활달함이 자유로운 서풍은 왕희지 부자와 당나라 초의 여러 서예가들과 분명한 구별이 있어 중국서예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세상에서는 그의 글씨를 ‘안체(顔體)’라 불렀고 유공권과 더불어 ‘안유(顔柳)’라 병칭하기도 한다. 

안진경은 소년시절 외롭고 가난하여 종이와 붓이 없어 황토로 담에 글씨 쓰는 연습을 할 정도로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당나라 서예가의 필적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 중에 유독 안진경의 작품이 가장 많다.  혹은 산 바위에 새겨져 있고, 혹은 비각에 실려 있는 그의 글씨는 크고 위대함이 나타고 공덕의 성함을 나타내었다.  어떤 것은 장중하고 독실하여 가업을 잇는 정직함을 나타내었고, 어떤 것은 수려하고 영특함이 뛰어나 그의 뜻과 기운이 묘함을 형상했으며, 어떤 것은 물이 가득 괴듯 깊고 넓으면서 심후하여 업을 실천하는 순수함을 나타내었다.  이렇게 종횡으로 형상이 있고 숙이고 올림에 자태가 있어 세상 사람이 보배로 여겼다.  세상에 전해지는 묵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서고신(自書告身)><제질문고(祭侄文稿)> 등이 있으며, 비각으로는 <다보탑비(多寶塔碑)><마고선단기(麻姑仙壇記)> 등이 있고, 또한 집록(輯錄)으로는『안노공문집(顔魯公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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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민락(與民樂)
글쓴이 : 설촌(雪村)청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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