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서예특강-30] 晩唐에서 가장 유명한 서예가

2012. 6. 6. 10:53서예가

30. 晩唐에서 가장 유명한 서예가

 

만당(晩唐)에서 가장 유명한 서예가는 유공권(柳公權)이다. 

유공권(柳公權, 778~865)은 자가 성현(誠懸)으로 경조 화원(京兆 華原, 지금의 陝西省) 사람이며, 벼슬은 태자소사(太子少師)에 이르렀다.  그의 서예는 처음에 왕희지를 배우고 또한 안진경과 구양순을 스승으로 삼으니, 용필은 힘이 있고 결구는 엄격하면서 굳세다.  그는 여러 서예가들의 필법을 섞어 스스로 하나의 체를 이루었으므로 그의 글씨를 ‘유체(柳體)’라 부른다.  특히 바른 해서로 유명하고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안진경과 더불어 ‘안유(顔柳)’라 불린다. 

유공권은 시서중금(侍書中禁)으로 목종(穆宗)․경종(敬宗)․문종(文宗) 등 3대를 섬겼다.  당나라 원화(元和) 15년 목종이 즉위하여 유공권을 불러 필법에 대해 가르침을 구하자 유공권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용필은 마음에 있으니 마음이 바르면 붓이 바르다. 

用筆在心, 心正則筆正


목종은 이 말이 비록 서예의 이치를 논하였지만 실제는 필간(筆諫)임을 알았다.  당시 공경대신 집안의 비판(碑版)은 모두 유공권의 손에서 나왔으며, 만약 유공권이 글씨가 아니면 불충불효로 여겼다.  외국사절이 공물을 바치러 왔을 때도 반드시 유공권의 글씨를 구매하였으니 국내외에 명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종은 여름에 서안의 서명사(西明寺)에서 학사들과 연구(聯句)를 하였는데 금강경 비에 종요․왕희지․구양순․우세남 등의 필의가 있는 글씨라고 만족해하였다.  문종은 유공권에게 궁전의 벽에 연구(聯句)를 쓰게 하였는데 각 글자의 지름이 5촌이었다.  문종은 이를 보고 감탄하고 이렇게 말했다. 


설령 종요와 왕희지가 다시 살아나도 이와 같을 것이다.

卽便鍾王復生也不過如此.


이것을 보면 목종이 유공권의 글씨를 매우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전해지는 그의 묵적으로는 <송리첩제발(送梨帖題跋)> 등이 있다.  비각 작품은 매우 많은데 중요한 것으로는 <신책군비(神策軍碑)>․<현비탑비(玄秘塔碑)>등이 있다. 


출처 : 여민락(與民樂)
글쓴이 : 설촌(雪村)청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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