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맹부, <二羊圖> 외

2012. 6. 6. 11:06서예가

 

 

 

조맹부(趙孟頫) 1254~1322

조맹부는 호주(湖州-오늘의 절강성 오흥) 출신으로 자는 자앙(子昻), 호는 송설도인(松雪道人)인데

조오흥(趙吳興), 조영록(趙榮祿), 조문민(趙文敏)이라고도 한다.

다섯살부터 서예를 습득하기 시작했는데 날마다 적게는 몇천 자, 많게는 몇만 자를 썼다고 한다.

그는 송(宋)나라 황족 출신이지만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와 그 후 다섯 황제를 섬겼다.

특히 인종(仁宗)의 총애를 받고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 영록대부(榮祿大夫)가 되었다.

 

 

 

조맹부의 적벽부(赤壁賦)

 

 

 


조맹부는 書畵詩文에 출중한 원나라 제일의 문인으로

그림은 산수(山水), 화조(花鳥), 죽석(竹石), 인마(人馬)등을 모두 잘 그렸다.

그는 당(唐)나라와 북송(北宋) 화풍을 본뜬 복고주의(復古主義)를 주장하고 실천하면서

원나라시기 산수화에서의 지도적 역할을 했다.

조맹부는 서예에서 왕희지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왕희지의 글씨를 열심히 배웠다.

그는 여행 중에 우연히 왕희지의 난정서(蘭亭敍) 탁본을 얻어 배를 타고 가던 중

13일 동안 매일 그것을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난정13발(蘭亭十三跋)이다.

 

 

 

 

   

 

 조맹부(趙孟頫), 《이양도(二羊圖)》,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 원, 25.2×48.4㎠, 미국 프리어 갤러리

 

 

 

▲ 조맹부(趙孟頫), 《작화추색도(鵲華秋色圖)》, 종이에 채색, 원(1295년), 28.4×93.2㎠, 대북 고궁박물원

 

그림에서 작화추색도권(鵲華秋色圖卷)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은 중국 산수화 역사에서 이정표적인 작품이다.

이 그림은 현장에서 그린것이 아니고 고향에 돌아온 후 친구 주밀(周密)과 함께 북방의 경관을 그려보면서

완성한 작품이다.

주요작품으로는 그림 강촌어락도(江村漁樂圖), 서예작품 난정첩십삼발(蘭亭帖十三跋),

여중봉명본척독(與中峰明本尺牘)등이 있고 문집에 송설재문집(松雪齋文集)이 있다.

 

 

 

 

     

                                                     인기도(人騎圖)

 

 

 

 

                                                     조량도(調良圖)

 

 

 

조맹부는 산수화 외에도 도석화 인물도 화조화 말 염소와 양 같은 여러 소재에 모두 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서예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안진경 이후 남송의 서법을 물리치고 왕희지의 전형으로 복귀할 것을 주장했던 그는

그의 호를 따서 松雪體라고 명명되는 서체로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송설체가 원 명 청 그리고 고려와 조선에 미친 영향을 실로 지대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서예의 기법과 융합되었는데,

특히 난초와 대나무, 괴석의 그림에서 서법과 회화의 형상을 탁월하게 융합시켰다.

그는 왕유에서부터 시작하여 북송의 문동과 소동파로 이어진 문인화를 중흥시켰으며

그 중에서도 소위 매, 란, 국, 죽의 사군자는 그에게 와서 확실한 장르로 정립된다.

 

 

 

 

 

 

 

 

 

 
                                       송(宋), 미불, <춘산서송도(春山瑞松圖)>

 

 

 

 

 

 

 

 

 

 

 

 


             

출처 : 그 어느날 오후
글쓴이 : 알래스카 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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