足下

2023. 8. 10. 06:55간찰용어

발밑. 아주 가까운 곳이란 뜻으로 전하여 편지글 등에서 가깝고 대등한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쓰임.

중국에서는 황제와 태상황, 상황에게만 폐하라는 호칭을 쓰고, 황태자, 황후와 황태후, 태황태후에게는 전하라는 호칭을 썼다. 황후 폐하라고 부르는 건 근대에 들어 서양의 용법을 따른 것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보면 (태)황태후에게는 폐하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였다. 황태후 폐하는 송사에 2건, 한서에 1건, 진서 1회, 후한서 1회, 명사 3회 나온다. 황태후 전하는 금사에 2회에 나온다. # 폐하보다 격이 높은 표현은 없고, 동격의 표현으로 성하(聖下), 폐하보다 격이 낮은 표현으로 전하(殿下), 저하(邸下), 합하(閤下) 등이 있다.

일본은 천황과 미카도/황제라는 존칭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면서 정신적 지주이자 종교적인 교주와 같이 불러왔는데, 이후 독자적인 예법을 만들어 폐하라는 호칭을 처음에 오직 천황에게만 사용했으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서양의 영향을 받아 황후에게도 확대했고[7], 황태자는 전하라고 부른다.

한국은 원 간섭기를 제외한 고려 때까지 종(宗)이나 폐하(陛下)·태후(太后)·태자(太子)·절목(節目)·제조(制詔)를 칭하였다.[8] 조선/대한제국도 아관파천 이후에 대군주/황제 등 표현을 사용하였다.

춘추시대 진(晉)의 공자(公子) 중이(重耳)는 못된 첩에 빠진 아버지 헌공(獻公)으로부터 간신히 목숨을 건져 망명생활을 하다가 귀국하여 마침내 임금이 되었는데 이가 문공(文公)이다.

그에게는 일등공신 개자추(介子推)가 있었다.망명 19년을 하루같이 모시면서 중이가 배가 고플 때 자기의 허벅지 살을 잘라고깃국을 끓여주었던 사람이다.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귀국 후 그는 개자추를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후에 『아차!』하고 생각한 그는 즉시 신하를 보내 찾아 오도록 했지만 그는 이미 금산(錦山)으로 자취를 감추고 난 뒤였다.군대를 풀어 며칠을 두고 산을 뒤졌지만 허사였다.문공은 불을질렀지만 그는 산이 다 타도록 끝내 나오지 않았 다.어머니를 등에 업고 나무를 부둥켜 안은 채 불에 새까맣게 타 죽어 있었던 것이다.문공은 통곡을 했다.

그는 개자추를 애도하기 위해 매년 이날만은 일절 불을 피우지못하도록 했다.그래서 백성들은 찬밥을 먹어야 했는데 이것이 한식(寒食)의 유래다.뿐만 아니라 그는 개자추가 부둥켜 안고 죽었던 나무를 잘라 나막신을 만들어 그의 상징물로 삼아 신고 다니고는 발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오!슬프도다.내 발 아래(足下)에 있는 나막신아!』 이때부터 족하(足下)라는 말은 상대방에 대한 존칭의 대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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