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壤

2023. 2. 27. 07:29나의 이야기

북한 학계는 부루나의 이두식 표기가 '평양(平壤)'[23]이라고 본다. 또 다른 별칭으로는 버드나무의 고장이라는 뜻의 유경(류경, 柳京)이 있다.[24] 류경호텔의 류경도 여기서 따온 명칭이다. 고려시대의 명칭에서 비롯한 서경(西京)이라는 역사적 표현도 있다.

평양(平壤)은 '밝은 나라', '광명의 땅'을 나타내는 우리 옛말 '바라나'의 한문표기이다.  



바라나는 '바라=밝은(明)', '나=땅'을 의미한다고 <어원으로 밝히는 우리 상고사>에서 박병식 선생은 주장한다.



평(平)은 바라(밝), 부루(붉)를 나타내기 위하여 차용한 한자이다. 바라는 벌(原)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ㅂ이 ㅎ 으로 변하면서 일본어에서는 하라/하루/바루로 읽기도 한다.



양(壤)은 땅, 나(나라)를 의미한다. 나=내가 되어서 냇가를 뜻하는 천(川)을 사용해서 평천(平川), 평군(平郡) 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고대에 우리 민족이 터를 잡고 살던 중심지는 모두 '광명의 땅'을 뜻하는 평양이라고 불렸다.



북한 대동강 평양이 대표적이지만 고조선의 중심지로 추정하는 남만주 양평(壤平), 요양(遼陽), 조양(朝陽)이나 하북성의 노룡(盧龍), 고대 요임금의 유적지로 알려진 산서성 임분(臨汾)은 모두 평양이었다.



북경의 옛 이름인 북평(北平), 평주(平州), 낙랑군(樂浪郡) 역시 평양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지금 남만주 해성을 평양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평양이라는 지명과 함께 항상 붙어 다니는 명칭으로 낙랑과 패수가 있다. 낙랑(樂浪)은 '즐거운 물결'이라는 아름다운 미칭으로 큰 강을 끼고 생활의 중심지가 된 평양의 다른 표현이다.



이 말 역시 '광명의 땅"을 나타내는 우리말로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고구려의 침공으로 멸망한 낙랑공주의 나라인 낙랑국은 북한 평안도 일대이거나 남만주 어디쯤으로 비정할 수 있다.



한자로 '낙(樂)'이라고 표현하는 우리말은 평양과 마찬가지로 바라/버러/부루이다. 물결 랑(浪)은 우리말 '나'를 나타낸다. 이외에도 '나=내'를 표현하기 위해서 천(川), 천(泉), 수(水), 해(海)자를 빌려 오기도 한다



옛적에는 통일된 문법이 없다보니 기록자의 편의대로 음역, 의역, 이두식 표현이 동원된 것이다.



패수(浿水)는 강을 의미하는 만주어 피라(Pira)에서 나온 말이다. 패수의 위치를 두고 역사학자들의 고증이 제각각인 이유는 패수는 고유명사가 아니고 강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이다.



고추모 대왕이 건넜다는 비류수(沸流水)는 피라를 한자로 음사한 강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평양이라고 알려진 곳은 예외없이 큰 강이 흐른다.



북한 대동강, 만주 요하, 대능하, 하북성 난하, 조하(조선하), 산서성 황하의 지류인 분수는 평양, 패수, 낙랑이라는 별칭과 함께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중국 역사가들은 이처럼 물과 함께 살아온 고대 한민족을 '기인수거(其人水居)' <산해경>, 혹은 '의대수이거(依大水而居)'<삼국지>라고 표현했다. 물을 의지하고 물과 함께 살았는 말이다.



고대 한민족은 일산일수(一山一水)마다 작은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 앞에는 물과 뒤로는 산에 의지한 곳이 골, 고을이다. 한자로 홀(忽), 혹은 구려(句麗)라고 썼다.



낙랑홀, 미추홀, 할힌골은 옛적에 작은 나라, 고을이었다.

만주와 하북성에는 송화강, 흑룡강, 서요하, 동요하, 대릉하, 난하, 조하, 황하 등 길고도 지류가 많은 강이 산을 감돌아 흐른다.



고조선의 첫 도읍지 평양은 물가에 건설한 광명의 나라, 밝땅(밝달)이었다. 대홍수를 만나 옮긴 곳이 야트막한 야산, 아사달(朝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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