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조사3수(淸平調詞三首)/청평조(淸平調) - 이백(李白)

2023. 1. 24. 13:52한시

                청평조사3수(淸平調詞三首)/청평조(淸平調) - 이백(李白)
                청평조사(淸平調詞)

其一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 구름은 그대의 옷인 듯, 꽃은 그대의 얼굴인 듯한데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노화농) : 봄바람 난간을 스치고 이슬 맺힌 꽃은 영롱하기 그지없네.
若非郡玉山頭見(약비군옥산두견) : 만약 군옥산 위에서 만나지 못한다면
會向瑤臺月下逢(회향요대월하봉) : 달 밝은 요대의 달빛 아래서 만나리라

* 청평조(淸平調)는 본래 악부(樂府)의 제목이며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에 얽힌 이야기이다.
당나라 현종이 침향정(沈香亭) 앞에다 모란을 심고 그 꽃이 만개했을 때, 양귀비와 함께 노닐며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정경을 당시의 궁중시인이었던 이태백에게 노래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에 이태백은 술에 만취되었으나 즉석에서 귀비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연작 3수를 지었다. 이 三首의 시는 이백에게는 영예와 모욕을 동시에 안겨다 준 것이었다.
처음에는 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았으나 이를 시기한 宦官高力士(환관고력사)의 모함에 의해 이백은 궁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고력사는 이 시에서 이백이 양귀비를 천한 출신이자 끝에 가서는 평민의 몸으로 쫓겨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조비연(趙飛燕 : 前漢 성제의 황후)에 비유했다고 하여 양귀비로 하여금 이백을 쫓아내게 했던 것이다.

* 淸平調(청평조) : 唐代의 大曲 중의 하나로, 후에 詞牌(사패)로도 쓰였다. 청나라 때 편찬된 《御定詞譜》(卷40)에는 “당나라의 大小曲의 명칭은 《敎坊記》에 보인다.……竹枝, 柳枝, 浪陶沙 등의 곡조는 唐의 小曲이고,……淸平調, 水調, 涼州, 伊州 등의 곡조는 唐의 大曲이다.[唐之大小曲名 見教坊記……如竹枝柳枝浪陶沙等調 唐之小曲也……淸平調水調涼州伊州諸調 唐之大曲也]”라고 하였다.
* 〈淸平調〉는 唐 玄宗이 양귀비와 함께 모란꽃을 구경하면서 李白에게 지어 바치게 한 노래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 ‘雲想’과 ‘花想’의 ‘想’은 ‘像’과 같은 뜻으로 구름 모양에 양귀비의 치마저고리를 비유하고, 꽃의 모습에 그녀의 얼굴을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꽃은 모란을 지칭한다.
* 檻(함) : 난간 또는 격자가 있는 창문을 지칭한다.
* 露華(로화) : 이슬방울을 꽃에 비유한 표현이다.
* 群玉山(군옥산) : 신화와 전설에 西王母가 거처한다고 전하는 산의 이름이다. 《穆天子傳(목천왕전)》에 “신묘년 天子가 북쪽으로 원정을 나갔다가 동쪽으로 돌아올 때 黑水로 돌아왔다. 계사년에는 群玉(군옥)이라는 산에 도착하였다.[辛卯 天子北征東還 乃循黑水 癸巳 至于群玉之山]”라고 하였고, 군옥산의 주석에 “곧 《山海經》에 이르기를 ‘군옥산은 서왕모가 거처하는 곳이다.’라고 했다.[卽山海云 群玉山 西王母所居者]” 하였다. 《山海經》의 주석에 “이 산은 옥돌이 많아 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此山多玉石 因以名云]”라고 하였다.
* 瑤臺(요대) : 옥으로 만든 누대라는 뜻으로, 서왕모를 비롯한 선녀들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其二
一枝濃艶露凝香(일지농염노응향) : 활짝 핀 꽃가지에 향기가 이슬에 맺혀
雲雨巫山枉斷腸(운우무산왕단장) : 비구름 되겠다던 무산선녀도 애간장 끓는구나.
借問漢宮誰得似(차문한궁수득사) : 묻노니 한궁에서는 누가 양귀비 같이 아름다운가?
可憐飛燕倚新粧(가련비연의신장) : 아리따운 조비연이 새로 몸단장하고 기대어 있네.

한 떨기 모란과 같이 양귀비의 자태는 요염하고, 마치 모란에 향기 어린 이슬이 맺혀 있는 듯 그녀의 피부는 향기를 머금고 있는 듯한데, 초나라 懷王은 꿈속에서 만났던 무산의 신녀를 만나길 원하여 부질없이 애간장을 태웠다. 양귀비와 같이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절세미인이 漢나라 궁실엔 누가 있을까 생각하여보니, 成帝의 총애를 받았던 趙飛燕조차도 새로 화장을 고쳐야 양귀비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 청평조사(淸平調詞) : 청평조(淸平調)라고도 하는 음악의 곡조에 맞추어 지은 가사. 여기의 시는 연작(連作) 세 수 중에서 두 번째 시이다.
* 일지농염(一枝濃艶) : 한 가지의 농염한 모란꽃, 양귀비를 비유한 말이다.
* 로응향(露凝香) : 모란꽃에 맺힌 이슬방울에 향기가 응결되었다. 양귀비의 전신에서 풍기는 요염한 풍정을 비유했다.
* 운우(雲雨) : 남녀간의 정사(情事)를 지칭하는 말.
* 무산(巫山) : 초나라 양왕(襄王)이 고당(高塘)에서 놀았을 때 꿈속에 무산의 여신과 정을 나누었는데 이별에 즈음하여 그 여인이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찾아오겠소."라고 했다. 이튿날 잠에서 깬 초왕은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고 단장(斷腸)의 슬픔에 젖어들었다고 한다.
* 왕(枉) : 부질없이, 하염없이.
* 차문(借問) : 잠시 묻노니.
* 한궁(漢宮) : 한 나라 궁중에서, 당(唐)을 두고 한 말이다.
* 가련(可憐) : 귀엽다, 예쁘다.
* 비연(飛燕) : 한나라 성제(成帝)의 사랑을 받았던 조비연(趙飛燕), 신분이 낮았으나 출중한 미모로 반첩여(班첩여)를 물리치고 왕후자리에 앉았으나 동생 합덕(合德)의 질투로 폐서인(廢庶人)된다.
* 의(依): 의지한다. 조비연조차도 그냥은 비길 수 없고 새롭게 화장에 의지해야 겨우 양귀비에 비길 수 있다는 말이다.
* 一枝紅艶露凝香(일지홍염노응향) : ‘一枝紅艶(일지홍염)’은 모란의 아름다운 자태로 양귀비를 비유한 것이다. ‘露凝香(노응향)’은 모란에 이슬이 맺혀 향기를 머금고 있다는 뜻으로 이 역시 양귀비의 농염한 자태를 표현한 것이다. 모란과 양귀비에 얽힌 이야기에 대하여 《靑瑣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明皇(현종) 때 모란을 바친 자가 있는데, ‘楊家紅’이라고 불렀으니 楊勉家의 꽃이기 때문이다. 고역사에게 명하여 이 꽃을 가져다 양귀비에게 바치게 하였는데, 양귀비가 막 화장을 하려고 할 때여서 양귀비가 손으로 꽃잎을 집자, 얼굴을 매끄럽게 하는 지분이 손에 묻어 있다가 꽃잎 위에 찍혔다. 현종이 그 꽃을 보고 까닭을 묻자 양귀비가 이 사실을 말하니 현종이 명하여 仙春館에 심게 하였는데, 다음해 꽃이 필 때 윗면에 손가락 자국이 붉게 찍혀 있었다. 현종이 꽃을 감상하다 이 꽃을 보고 놀라 기이하게 여겨 ‘一捻紅’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뒷날 악부 중에 〈一捻紅曲〉이 있다.[明皇時 有獻牡丹者 謂之楊家紅 乃楊勉家花也 命力士 將花上貴妃 妃方對粧 妃用手拈花時 勻面脂在手 卽印於花上 帝見之問其故 妃以狀對 上詔於僊春館栽 來歲花開 上有手印紅迹 帝賞花 驚異其事 乃名爲一捻紅 後樂府中 有一捻紅曲]”라고 하였다.
​* 雲雨巫山枉斷腸(운우무산왕단장) : 춘추전국시대 楚나라 懷王이 高唐에 놀러갔다 꿈에서 巫山의 神女와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雲雨’는 신녀가 자신을 소개하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밤에는 비가 된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후대에는 회왕과 신녀가 나눈 사랑을 뜻하여 남녀간의 교합을 의미하는 말로 쓰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宋玉의 〈高唐賦〉에는 “옛날에 선왕(懷王)께서 高唐에 놀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잤는데, 꿈에 한 부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첩은 巫山의 여인으로 고당에 들렀는데 군왕께서 고당에 놀러왔다는 소리를 듣고 枕席을 모시고자 하였습니다.’라고 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가 떠나면서 말하기를 ‘첩은 무산의 남쪽 높은 언덕의 돌산에 사는데, 다만 아침에 구름이 되고 저녁엔 비가 되어 아침마다 밤마다 陽臺의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과연 아침에 보니 그녀의 말과 같았다. 그러므로 사당을 세우고 ‘朝雲’이라 칭하였다
* 可憐飛燕倚新妝(가련비연의신장) : ‘飛燕(비련)’은 漢나라 成帝의 총애를 받아 왕후가 된 趙飛燕(조비연)을 지칭한다. 절세미인으로 歌舞에 뛰어났는데, 성제가 미행할 때 그녀를 발견하고 입궁시킨 뒤 許皇后(허황후)를 폐위시키고, 그녀의 동생인 合德(합덕)과 함께 총애하여 후궁으로 삼았다. 이 자매는 이후 십여 년간 영화를 누리다 성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합덕이 자살하고, 후에 庶人으로 강등된 조비연 또한 자살하였다. 자매가 함께 제왕의 총애를 받고 사치와 영화를 누리다 모두 정변에 휩싸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는 점에서 양비귀는 조비연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其三
名花傾國兩相歡(명화경국양상환) : 모란꽃도 미인도 서로 즐거움에 취한 듯
常得君王帶笑看(상득군왕대소간) : 바라보는 임금님 웃음도 가시질 않네.
解釋春風無限恨(해석춘풍무한한) : 살랑 이는 봄바람에 온갖 근심 날리며
沈香亭北倚欄干(침향정북의난간) : 미인은 침향정 북쪽 난간에 흐뭇이 기대어 있네.

* 743년 침향정 못가에서 현종(玄宗)이 양귀비(楊貴妃)를 데리고 모란을 보며 즐기던 중, 이백을 불러 명창 이귀년이 그 자리에서 부를 새 노래의 가사를 지으라고 명했다. 이때 이백은 술에 만취되었으나 즉석에서 귀비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시 세 수를 지었다.
그러나 전에 술에 취해 환관 고력사에게 신발을 벗기게 한 일로 고깝게 생각해오던 고력사가 위 싯귀 중 양귀비를 한(漢)나라의 성제(成帝)를 유혹한 조비연(趙飛燕)과 비유한 대목을 들어 양귀비를 부추겨 참소함으로써 이백이 추방되었다고 한다.

* 모란과 나라가 기울어도 모를 만큼 아름다운 양귀비가 서로 기뻐하며 사랑하니, 현종은 항상 웃음을 지으며 이들을 바라본다. 이들은 봄바람이 일으키는 온갖 시름을 풀어버리고,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모란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 名花傾國兩相歡(명화경국양상환) : ‘名花’는 모란을, ‘傾國’은 傾國之色(경국지색)의 준말로 여기서는 양귀비를 지칭한다. 모란은 봄에 피는 가장 화려한 꽃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花中之王’으로 칭해졌다. 당대의 시인 劉禹錫은 〈賞牡丹〉에서 “모란만이 진실로 國色이니, 꽃이 피는 시절에는 京城을 감동시킨다.[唯有牡丹眞國色 花開時節動京城]”라고 하였다. 傾國之色은 漢 武帝와 李夫人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李夫人이 처음 무제의 부름을 받게 된 것은 그의 오빠 李延年이 부른 〈佳人歌〉를 통해서였다. 이연년은 “북방에 佳人이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 보면 나라가 기운다네. 어찌 경성과 경국을 모르리오마는, 가인은 다시 얻기 어렵다네.[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再難得]”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러한 佳人이 그의 여동생이라는 말을 듣고 불러 가무를 보이게 하였다고 전한다.
* 解釋春風無限恨 :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解釋’은 ‘풀어버리다’, ‘해소하다’는 뜻이며, ‘春風無限恨’을 봄바람에 지는 꽃을 보고 느끼는 감상과 같이 봄날에 느끼게 되는 무한한 우수로 보아 현종이 양귀비와 모란을 보면서 봄날의 시름을 잊는다고 보기도 한다. 한편 ‘解識’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는데, 이 경우는 ‘봄바람이 일으키는 끝없는 한을 안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다음 구와 연결시켜 이해하면 전자의 경우는 봄바람이 일으키는 끝없는 한을 잊고 난간에 기대어 모란을 감상한다는 뜻이 되고, 후자의 경우는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봄바람에 지고 만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난간에 기대어 모란을 바라본다는 뜻이 된다.
* 沈香亭(침향정) : 慶興宮(경흥궁) 앞 연못의 동쪽에 있는 정자로, 침향목으로 만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현종이 이곳에 모란을 옮겨 심도록 하고, 양귀비와 함께 감상하다 이백을 불러 〈청평사〉를 짓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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