徂年-정약용

2022. 10. 10. 15:17사람과사람들

茶山 丁若鏞 [다산 정약용]

丁若鏞(1762年 英祖38年∼1836年 憲宗2年)은 朝鮮 後期의 文臣, 實學者로 本貫은 羅州(只今의 京畿道 南楊州市 鳥安面 陵內里 召川, 馬峴 出身). 字는 歸農, 美庸, 號는 茶山, 俟菴, 籜翁, 苔叟, 紫霞道人, 鐵馬山人. 堂號는 與猶이다. 父親은 晉州牧使 丁載遠이며, 母親은 海南尹氏로 尹斗緖의 孫女이다. 4男2女 中 4男으로, 1836年 2月22日 鄕里에서 죽었다. 夫人은 豊川洪氏이다. 諡號 文度이다. 15歲 때 豊川洪氏와 婚姻하여 6男3女를 두었으나 4男2女는 夭折하고 丁學淵, 丁學遊와 壻郞 尹昌謨가 있다. 1776年 正祖 卽位 後 戶曹佐郞에 任命된 父親을 따라 15歲 되던 해에 上京하였으며, 妹夫인 李昇薰을 통해 李瀷의 著述을 얻어 보고 實學에 눈뜨게 되었다. 1783年에 會試에 合格하여 經義進士가 되었으며, 이 무렵부터 西學에 關心을 가지기 始作했다.

1789年 式年文科에 及第하고 假注書를 거쳐 檢閱이 되었으나, 가톨릭 敎人이라 하여 南人의 彈劾을 받고 海美에 流配되었다가 10餘日 만에 풀려 나왔다. 1792年 修撰으로 있으면서 西洋式 築城法을 基礎로 한 城制와 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築造 中인 華城(水原城) 修築에 寄與하였다. 1794年 33歲에 京畿道 暗行御史로 나가기도 하였으며, 이듬해 兵曹參議로 있을 때 周文謨事件에 둘째 兄 若銓과 함께 連累되어 金井道察訪으로 左遷되었다가 1797年 承旨에 올랐고, 谷山府使를 거쳐 1799年 다시 兵曹參議가 되었으나 謀陷을 받아 辭職하였다.

1799年에 著述한 『田論』에서는 土地 私有를 基盤으로 하는 地主制를 不正하고 土地 國有를 原則으로 하는 基礎 위에서 農民들이 共同 耕作하여 生産物을 分配하자는 主張을 폈다. 正祖가 世上을 떠난 後 1801年(純祖1年) 2月 辛酉敎難 當時 天主敎道들이 靑나라 神父 周文謨를 끌어들이고 逆謀를 꾀했다는 罪名으로 李家煥, 李承薰, 權哲身 等을 비롯하여 兄인 若銓, 若鍾과 함께 逮捕 流配되었고, 뒤에 黃嗣永 帛書事件에 連累되어 康津으로 移配되었다.

流配地인 康津 茶山 기슭에서 流配에서 풀려날 때까지 18年間 學文에 沒頭, 政治 社會 制度의 改革, 地方 官僚의 刷新, 土地制度의 改革과 農業 改良, 奴婢制 廢止 等에 대한 수많은 著述을 통해 實學을 集大成하였다. 1818年 李泰淳의 上疏로 流配에서 풀렸으나 官職에 나아가지 않고 與猶堂이 있는 京畿道 廣州 本家로 돌아와 學文에 沒頭했다.

61歲 때에는 『自撰墓誌銘』을 지어 自敍傳的 記錄으로 整理했으며 500餘 卷에 이르는 尨大한 著書를 整理하여 『與猶堂全書』를 編纂하였다. 이 가운데『經世遺表』는 國家 經營에 관한 哲學과 制度 改革을 깊이 論議한 것이며 『牧民心書』는 牧民官에 의해 隨行되어야 할 地方 行政의 規範과 原則을 强調한 것이다. 『欽欽新書』는 『牧民心書』의 刑典部分을 補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詩才에도 뛰어나 朝鮮 後期 農民들의 삶을 事實的으로 그려낸 詩文을 많이 남겼으며, 온갖 迫害 속에서도 西學을 통해 西歐의 科學 知識과 合理主義的 世界觀을 導入하는 데에 앞장섰던 改革的인 知識人이었다. 1910年(隆熙4年) 奎章閣提學에 追贈되었다.

著書에 『與猶堂全書』가 있고, 그 속에『牧民心書』 『經世遺表』『欽欽新書』『麻科會通』『毛詩講義』『梅氏書平』『尙書古訓』『尙書知遠錄』『喪禮四箋』『四禮家式』『樂書孤存』『周易心箋』『易學諸言』『春秋考徵』『論語古今注』『孟子要義』等이 실려 있다.


自撰墓誌銘 [자찬묘지명]

爾紀爾善 (이기이선)
너는 너의 착함을 기록하여,

至於累牘 (지어루독)
서너 장에 이르고

紀爾隱慝 (기이은특)
숨겨진 악을 기록하여,

將無罄竹 (장무경죽)
누락 없이 하려고 한다.

爾曰予知 (이왈여지)
너는 말하지, 나는 아노라

書四經六 (서사경육)
사서와 육경이라고,

考厥攸行 (고궐유행)
하지만 행한 바를 생각하면,

能不愧忸 (능불괴뉴)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爾則延譽 (이즉연예)
너는 명예를 바라겠지만,

而罔贊揚 (이망찬양)
찬양할 것 하나 없다.

盍以身證 (합이신증)
어찌 몸으로 증명하여,

以顯以章 (이현이장)
덕을 드러내고 밝히지 않느냐.

斂爾紛紜 (렴이분운)
네 번다함을 거두면,

戢爾猖狂 (집이창광)
네 미친 짓을 베어내어

俛焉昭事 (면언소사)
힘써 하늘을 섬긴다면,

乃終有慶 (내종유경)
마침내 경사 있으리라.


이 銘에서 丁若鏞은 남은 生涯 동안 昭事에 힘쓰겠다고 했다. 分明하게 하늘을 섬기겠다는 말인데, 造物主를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天命의 存在를 믿고 天命에 順應한다는 말이다.



丁若鏞은 流配에서 풀려나 故鄕으로 돌아온 뒤 四言詩 「徂年(가는 歲月)」을 지어, 스스로의 허물을 反省했다. 이 詩의 小序에서 그는 󰡒󰡐가는 해󰡑란 늙음을 哀惜히 여긴 것이다. 허물과 後悔가 깊이 쌓이기만 하고 善으로 옮아갈 날은 남아 있지 않으니, 근심스레 스스로 哀悼하고 벗에게 불쌍히 여겨주길 바란다󰡓라고 했다. 모두 3章이고, 章마다 12句로 되어 있다.


徂年 [가는 세월]

三章之一

駸駸徂年 (침침조년)
내달려가는 세월이어,

欻焉旣暮 (훌언기모)
훌훌 해가 저물었다.

氷雪凌凌 (빙설능능)
눈과 얼음 켜로 쌓여

阻玆平路 (조자평로)
평지를 막았구나.

總角有聞 (총각유문)
총각 때 명성 있더니

白首無譽 (백수무예)
흰머리에는 명예 없어라.

夕而造愆 (석이조건)
저녁에도 잘못 저지르니

朝焉已悟 (조언이오)
아침에 어찌 깨달았으랴.

悟而不改 (오이불개)
깨닫고도 고치지 않음은

如塗塗附 (여도도부)
진흙에다 진흙 더함이라.

念彼良士 (념피양사)
저 어진 선비는 생각 하노라

怛焉往愬 (달언왕소)
가서 진정으로 하소하리라.



三章之二

駸駸徂年 (침침조년)
내달려가는 세월이여,

欻焉其馳 (훌언기치)
훌훌 달려가는구나.

嗈彼鳴鴻 (옹피명홍)
옹옹 우는 저 홍곡새는,

集于澤陂 (집우택피)
못가에 모여 있도다.

撫玆華髮 (무자화발)
이 흰머릴 매만지며,

慨獨永思 (개독영사)
슬피 홀로 색각하노라.

夕惕攸悔 (석척유회)
저녁에야 근심하고 후회하지만,

朝已蹈之 (조이도지)
아침에 이미 저지른 것을.

巍哉顔氏 (외재안씨)
우뚝하여라 顔淵이여,

悔斯无祗 (회사무지)
후회가 없고자 하였다지.

豈無友朋 (기무우붕)
어찌 벗님이 없을까만,

耿耿自悲 (경경자비)
망통말통 홀로 슬퍼라.



三章之三

駸駸徂年 (침침조년)
내달려가는 세월이여,

如彼逝波 (여피서파)
흐르는 물 같구나.

百卉潛蹙 (백훼잠축)
온갖 꽃 다 이울고,

山雪嵯峨 (산설차아)
눈 쌓인 산만 드높아라.

顧玆衰頹 (고자쇠퇴)
쇠한 이 얼굴 돌아보니,

如景旣俄 (여경기아)
햇빛이 경각이듯 하여라.

蓁薉弗淸 (진예불청)
묵은 걸 맑히지 못하고,

寤歎且歌 (오탄차가)
깨여 탄식하고 또 노래 할 뿐.

民之弗悔 (민지불회)
인민이 후회 않는 것은,

尙亦有義 (상역유의)
그래도 의리에 부합한다만,

悔而不改 (회이불개)
나는 후회하고 안 고치면,

云如之何 (운여지하)
그 일을 어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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