散人

2022. 10. 2. 02:36水西散人

散人 [sǎn rén]
汉语词语
本词条是多义词,共3个义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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散人是一个汉语词汇,读音为sǎn rén,指那些平庸无用的人或不为世用的人,也指闲散自在的人。
出处:《墨子·非儒下》:“君子笑之,怒曰:‘散人焉知良儒!’”《庄子·人间世》:“ 匠石归,栎社见梦曰:‘女将恶乎比予哉……而几死之散人,又恶知散木!’”
中文名
散人
拼音
sǎn rén
涵义
闲散自在的人
出处
《墨子》、《庄子》
引申
4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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溯源
释义
1.平庸无用的人。《墨子·非儒下》:“君子笑之,怒曰:‘散人焉知良儒!’”《庄子·人间世》:“ 匠石 归,栎社见梦曰:‘女将恶乎比予哉……而几死之散人,又恶知散木!’”
2.不为世用的人;闲散自在的人。 唐 陆龟蒙 《江湖散人传》:“散人者,散诞之人也。心散、意散、形散、神散,既无覊限,为时之怪民,束於礼乐者外之曰:‘此散人也。’” 宋 司马光 《和宇文公南途中见寄》:“深慙白首恋微禄,不向青山为散人。” 清 纪昀 《阅微草堂笔记·槐西杂志一》:“云水散人,拙於应对,不如避之为佳。”
3.一说:玩世不恭,放任自流,不受束缚的人。
4.散人也指某些可转职游戏中的未转职玩家。这类人一般集合了所有职业的技能,在一类游戏中,由于逆天的技能,到达了某种临界点后会受到限制,在另一类游戏中,由于哪个方面都不精,即便聚集了各种职业的技能,综合实力也不高。
溯源
闲散之人还是无用之人
白玉蟾祖师自号“武夷散人”,孙不二元君号“清静散人”,王处一祖师号“玄靖散人”。京剧《空城计》里诸葛亮也唱道:“我本是卧龙岗散淡的人。”唐陆龟蒙《江湖散人传》:“散人者,散诞之人也。心散、意散、形散、神散,既无覊限,为时之怪民,束於礼乐者外之曰:‘此散人也。’”好像散人就是闲散、散淡、懒散、松散的意思。

“武夷散人”白玉蟾
事实果然是如此吗?
窃考散人一词,最早出现在《庄子·人间世》里面。说是有个匠人(应该是个木匠)带着徒弟出游,到了齐国,看到一颗大社树(社稷之神多附于树木之上),粗百围,高十仞。围观的群众很多,匠人的弟子也站在那看了好久,跟匠人说:“我跟着您出来这么长时间了,第一次看到这么大的木材,而您却看都不看,是为什么呢?”匠人说:“哎呀,不要说了,那就是散木。用来做船会沉掉,拿来做棺椁会迅速地腐朽,拿来做家具会很快坏掉,做柱子很容易生虫子,这木材拿来是没用的,所以才长这么大。”
晚上的时候,匠人回到住处。白天所见附于那颗树的社神来托梦,说:“你要把我跟那些成材的木头比吗?你看那些梨树、山楂、柚子树、樟树,果子成熟了就有人来攀折,枝干被破坏,这个就是因为自己可以用,才遭受如许之苦,所以都长不大。天下万物莫不如此。我求无用久矣,今天才得偿所愿。你一个快要死的散人,又哪里知道散木呢?”
匠人以无用之树为散木,社神以匠人为散人,其实也是揶揄了一下匠人。所谓散人,其实就是无用之人。[1]
看似无用 实则有道
在我们平常人的概念里,说一个人没用,那是骂人的话。但是在庄子的思想里,无用恰恰是好事情。因为世间人物,皆以有用害其生,唯无用者得以全其生。比如《人间世》里的这棵树,就是如此。《庄子·列御寇》中说:“巧者劳而知者忧,无能者无所求,饱食而敖游,泛若不系之舟,虚而敖游者也!”另外在《逍遥游》里面,惠施跟庄子说:“我有一棵大树,但是这树呢,大枝臃肿,不中绳墨;小枝卷曲,不中规矩。没什么实际的用途。跟你这个人差不多。”庄子说:“今天你有大树,但是却担忧它没用,为什么不树之于无何有之乡,广莫之野,彷徨乎无为其侧,逍遥乎寝卧其下。也不用担心会有人来砍伐。无所可用,就不会有什么困苦了。”

산(散)이란 말은 근대음악사의 근간을 이루는 산조(散調)란 말을 통해 공식화된다. 그러나 산조가 위치하고 있는 위대성에 비해 산조란 의미 해석은 ‘허튼수작’이나 하는 ‘허튼가락’정도로 폄하되고 있다. 과연 우리음악사에서 갖는 산조의 비중을 고려해 볼 때 산이란 의미에 대해 이런 정도로 해석의 여지를 달기에는 문제가 있다. 과연 산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음악사학의 찬란한 금자탑인 『악학궤범』에 보면 산형(散形)이란 단어가 눈에 띄는데, 산형의 의미는 아마도 악기음구조요해도(樂器音構造了解圖)인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산형이란 의미는 ‘악기의 음구조를 펼쳐놓은 것이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산의 의미는 “펼쳤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역경』(易經)에서 또한 산에 대해 이르길 풍이산지(風以散之)라 하여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고 있다.

산(散)이란 단어를 옥편(玉篇)에서 찾아보면 1.흩어지다 2.내치다 3.나누어지다 4.겨를 혹은 틈 5.한가롭다 6.엉성하다(소략하다) 7.뒤범벅되다 8.천하다 9.비틀거리다 등의 많은 뜻을 갖고 있다. 산의 용례를 몇가지 더 보면 ‘산록’(散錄)’이라 하여 붓 가는대로 적은 글을 나타내는 말이 있고 ‘산사’(散史)라 하여 재야의 문인은 칭하는 단어가 있다. 그리고 민간음악을 ‘산악’(散樂)이라 하기도 하고, ’산인‘(散人)이라하여 벼슬하지 않고 민간 세상에서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가르킨다. 이런 용례를 대략 종합해 보면 산(散)은 ’민간의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의 그런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하겠다. 동양학에서 단어는 곧 사상을 함축한다. 동양철학논법을 보면 기(氣)의 용례처럼 한 단어의 의미가 부단한 재해석을 통해 그 의미개연(意味蓋然)을 넓혀가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양철학논법은 그릇에 비유할 때, 의미 확장을 통해 부단히 확대해 나가는 그릇이다.


과연 산조가 나왔을 때 산조란 의미를 어떤 의미에서 붙였을까! 산이라 그릇을 ‘허튼 것’으로만 국한할 수 있을까! 과연 19세기 한국민족음악사를 대표하며 20세기를 여전히 풍미한 산조를 우리는 허튼짓으로 치부하여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폄하할 필요가 있겠는가? 한편으로 전 한종대 전통예술원장 고 백대웅교수는 산조를 허튼 짓으로 평가절하한 것은 마치 서양음악에서 새로운 음악을 바로크 즉 기괴한 음악이라 명한 것처럼,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에서 이런 작명(作名)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역사는 후세 역사기의 올바른 평가를 통해 바르게 세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당대사회에 널린 저간의 사정을 읽어보며 산조의 의미횡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산조가 등장한 19세기로 돌아가 19세기 전후의 역사문맥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19세기는 열린사회로 나아가는 근대적인 전환기였다. 특히 이 시대의 실학의 풍미는 한국문화의 르네상스를 열었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은 예술에 있어 비판적 리얼리즘의 형성을 촉진했다. 현실을 비판적(批判的)으로 구현화되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리얼리즘 의식의 확장은 곧 민중의식의 각성을 낳았고 민중예술의 급속한 성장을 낳았다. 유우춘같은 예술혼을 가진 해금주자가 등장하여 자의식을 표현한 예술을 구현하려했다. 한편 이 시기를 대표하는 실학논객(實學論客)중 초당 박제가는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미학을 논한다


‘맛’이란 어떤 것인가. 저 은하와 금수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순간에 마음과 눈이 함께 움직여 지척의 땅에 펼쳐진 이태(異態)를 살펴본다면, 족히 그 사정을 알 수 없지만, 세밀히 살펴보면 무궁한 맛을 얻을 수 있다. 무릇 물건의 무궁한 변화가 족히 마음을 움직이고 눈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미(味)인 것이니, 비단 입에서만 그 맛을 느낀다고 할 수 있겠는가’했다. 과연 이들이 논하는 맛(味)의 미학은 어떤 것인가! 이는 다분히 현실주의적 미학의 세계라 하겠다. 그런 면에서 성리학이 풍류를 통해 구현하려는 고도의 정신적인 이상과는 판이한 것이다.

즉 선(禪)적인 몰아경을 지향하며 수없이 되돌아(煥) 들며(入) 원형에 대한 집요한 회귀를 통해 본(本)의 세계로 몰두하며 돈(頓)의 경지를 넓혀나가는 영산회상 같은 풍류보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해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맛의 미학을 구현하려 한 데서 이런 미학관이 나왔다. 조선후기 실학자들은 다소 가시적으로 보이는 사대부들의 노래보다 초동급부의 자연스런 노래가 오히려 천리(千里)에 부합한 노래라 옹호했다.

산조의 등장은 그런 미학적인 배경을 갖는다. 맛의 미학처럼 소리의 미학 즉 맛있는 소리를 옹호하고 또한 지극히 인간적인 속내가 배인 그런 음악을 옹호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산조의 역사를 이루게 한 것이다.

한편 산조가 등장하기 이전에 판소리가 등극하고 풍물판굿이 전국을 돌며 바람을 일으키고 민중음악의 꽃인 들노래가 만화(萬花)하여 조선후기 예술의 심미의식을 일거에 양상이 변화됨은 물론, 민중이 예술의 주체로 등장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제 음악은 몇몇 학자의 심미감 속에 있는 것이 아닌 절대경지에 이른 장인들의 멋과 흥 그리고 삶의 역사가 담긴 예술로 위치한 것이다. 산조는 그렇듯 산의 보편적인 이미지인 ‘민간의 다듬어 지지 않은 자연스러움’이란 그런 상태의 맛을 내는 소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산조는 풍류음악인 영산회상과는 다른 경지를 구현했다. 반복하지만 풍류음악으로 대변되는 영산회상이 돌고 돌아가는 돈(頓)의 철학적인 경지를 이상으로 했다면, 산조는 맛을 펼쳐놓는 현실적인 미학의 세계를 열었다. 즉 영산회상은 모두(冒頭)로의 회구를 통해 근본을 넓히려는 철학적인 이상을 담고 있다면  산조는 현실주의적인 인간세계의 감성을 무한히 펼쳐 놓았다. 그런 현실적인 맛의 세계 속에서 자연스러움이 구가하는 자유로움의 경지가 바로 놀음(遊)의 세계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산조의 주요한 구성원리를 논할 때 필자는 놀음(遊)이라고 생각한다. 놀음을 통해 맛을 내는 것이 산조에 담긴 뜻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로 산조는 고도의 놀음 원리를 구현한 음악인 것이다. 그런 놀음의 원리가 산조를 낳았고, 시나위나 풍물판굿을 낳았다. 무엇하나 꺼릴 것 없는 천연의 자유스러움 그대로를 구가하는 경지에서 놀아나는 것이 바로 놀음의 절대경지이다.

진양에서부터 몰아나가다 결국 휘모리에서 구가하는 자유로움 속에서 만끽하는 해방감이야말로 산조의 맛이 아닌가. 혹자는 산조의 산(散)은 펼친다는 의미보다는 ‘모은다’는 의미로 본다. 펼치기 위해 모으고, 열기 위해서 조이고 해방 되기 위해서 틀에 얽매인다. 그러나 그런 틀을 교묘히 타고 해방되는 절정감을 구가할 때 비로소 산조 본연의 경지가 펼쳐진다했다. 그런 경지는 바로 민중판굿의 원리이기도 하다. 산조는 분명 놀음을 펼쳐놓는 것이다. 여기서 산조가 고도의 놀음을 펼치게 된 데에는 분명 영상회상의 연주(演奏)관습을 통해 얻는 생성론적 장단구조와 판소리를 통해 얻는 체화한 장단놀음 등이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바로 조선후기 기철학자 최한기가 장단은 호흡의 길고 장(長) 짧음(短)을 구조화한 것이라는 해석처럼 장단의 원리에 대한 이해는 곧 한국음악에 있어 주요한 형식 논리를 만들어 준다. 바로 장단은 음양오행이나 틈의 미학정도가 아닌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형식감을 만들어준다. 장단이란 형식의 완성이 바로 산조의 놀음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 그래서 산조는 장단 위에 가락을 펼쳐놓고 끊임없는 놀음을 하는 것이다. 결국 산조는 장단이란 수평적이면서도 생성론적인 장단구조위에 가락을 펼쳐놓고 놀고 노는 장단놀음이자 성음놀음이요, 소리를 그리고 시름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애이불비하고 낙이불류하게 놀아나는 소리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산조를 허튼 가락이 아닌 펼쳐놓고 노는 가락이다”라고 생각한다

목수 석石이 제나라로 가던 중 곡원曲轅땅에 이르러 그곳에서 토지신을 모신 사당의 상수리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나무의 크기는 소 수천 마리에게 그늘을 내줄만 했고, 둘레가 백 아름에 높이는 산을 굽어볼 정도였습니다. 열 길쯤 높이부터 가지가 뻗었는데, 배를 만들 수 있는 가지만 해도 십여 개나 되었습니다. 그 나무아래 구경꾼들이 장터처럼 붐볐지만, 목수 석은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지나쳐버렸습니다.
匠石之齊,至於曲轅,見櫟社樹。其大蔽數千牛,絜之百圍,其高臨山,十仞而後有枝,其可以爲舟者旁十數。觀者如市,匠伯不顧,遂行不輟。

넋을 놓고 구경하던 제자가 석에게 달려와 묻습니다.
“제가 도끼를 들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이래 이렇게 훌륭한 재목은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쳐버리시니, 어찌 된 일이십니까?”
弟子厭觀之,走及匠石,曰:「自吾執斧斤以隨夫子,未嘗見材此其美也。先生不肯視,行不輟,何邪?」

목수 석이 대답합니다.
“됐다. 그런 소리 말거라. 그건 쓸모없는 나무다. 그 나무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쉬 썩으며, 그릇을 만들면 쉽게 망가지고, 문짝을 만들면 진액이 흐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슬 거다. 그러니 저건 재목감은 아니란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으니, 저와 같이 오래 살 수 있었던 거지.”
曰:「已矣,勿言之矣!散木也。以爲舟則沈,以爲棺槨則速腐,以爲器則速毀,以爲門戶則液樠,以爲柱則蠹,是不材之木也,無所可用,故能若是之壽。

목수 석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데 사당의 상수리나무가 꿈에 나타나 말합니다.
“너는 나를 무엇에다 비교하려느냐? 너는 나를 쓸모 있는 훌륭한 나무와 비교하려는 거냐?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와 같은 과실수는 열매가 익으면 잡아 뜯기고, 뜯기다보면 꺾이게 된다. 큰 가지는 잘리고, 작은 가지는 꺾이지. 그 나무의 능력 때문에 삶의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주어진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중도에 요절한다. 스스로 세상의 배격을 자초한 셈이지. 만물 중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다. 또 나는 오랫동안 쓸모없기를 바래왔다. 몇 번이나 죽을 뻔 하다가 이제야 쓸모없게 되어 그것이 오히려 큰 쓸모가 되었다.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이렇게 클 수 있었겠느냐! 또한 너나 나나 모두가 하찮은 사물이면서 어찌 상대방만을 하찮다고 한단 말인가? 너같이 거의 죽어가는 쓸모없는 인간(散人)이 어찌 쓸모없는 나무(散木)를 알겠느냐?”
匠石歸,櫟社見夢曰:「女將惡乎比予哉?若將比予於文木邪。夫柤梨橘柚,果蓏之屬,實熟則剝,剝則辱;大枝折,小枝泄。此以其能苦其生者也,故不終其天年而中道夭,自掊擊於世俗者也。物莫不若是。且予求無所可用久矣,幾死,乃今得之,爲予大用。使予也而有用,且得有此大也邪!且也若與予也皆物也,奈何哉其相物也?而幾死之散人,又惡知散木?」

목수 석이 깨어나 그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듣고 있던 제자가 묻습니다.
“그토록 쓸모없기를 바랐다면, 어찌 사당의 나무가 됐을까요?”
목수 석이 주의를 주며 말합니다.
“쉿, 아무 말 말거라. 저 상수리나무는 그저 사당에 의지할 뿐이다. 그런데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욕설과 험담을 듣고 있구나. 사당나무가 안 되었다면 아마 잘렸을 것이다. 또한 저 나무가 자신을 보전하는 방법은 뭇 나무들과는 다르지. 그러니 정상적인 견해로 저 나무를 평가한다면 사실과는 아주 멀어지지 않겠느냐?
匠石覺而診其夢。弟子曰:「趣取無用,則爲杜何邪?」
曰:「密!若無言,彼亦直寄焉,以爲不知己者詬厲也。不爲杜者,且幾有翦乎. 且也彼其所保與眾異,而以義譽之,不亦遠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