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智體

2019. 1. 17. 15:34松浩書室

신지체(神智體) - 글자로 그린 그림으로 읽는 시


글자의 모양으로 장난을 치고 그 글자를 통하여 시의 의미를 읽어 내는 재미있는 시를 보통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하여 신지체(神智體)라고 합니다.


먼저 아래의 글자들을 보고 그 의미를 추정해 보십시오. 과연 어떤 의미가 보이십니까?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c287015.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68pixel, 세로 175pixel

 


일심인복(日心人腹)으로 보이지만 어쩐지 글자의 모양이 이상합니다. 일심인복이라고 읽더라도 의미를 이해하기는 곤란한 문장입니다. 도대체 어떤 의미의 글일까요.


《골계총서(滑稽叢書)》에 실린 이야기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어떤 고을의 원님에게 격의 없이 지내는 문객이 있었는데 어느 날 총명한 첩과 동산 정자에서 봄놀이를 하고 있는데 그 문객이 심부름하는 아이를 통해 위와 같은 쪽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원님은 아무리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첩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日’字가 기니 長日이고, ‘心’字에 점이 없으니 무점심(無點心)이고, ‘人’字가 다른 글자보다 작으니 소인(小人)이고, ‘腹’字 가운데가 비었으니 복중공(腹中空)입니다. 즉 ‘날은 긴데 점심이 없으니, 소인의 배가 비었습니다(長日無點心 小人腹中空)’라는 말입니다. 이에 원님이 크게 웃으며 한 상을 잘 차려 보냈다고 합니다.


중국 송나라 신종(神宗) 때 북쪽 오랑캐의 사신이 와서 중국 시인들을 깔보며 태도가 방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를 접대하던 소동파(蘇東坡)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를 짓는 것은 쉬운 일이오. 그러나 시를 보기란 조금 어렵소.‘라고 말하고 아래와 같은 글을 써서 보여주었습니다. 아무리 읽어봐도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던 오랑캐 사신은 다시는 시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c280002.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01pixel, 세로 297pixel

 


그럼 이 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동파문답록(東坡問答錄)》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는데 절묘한 문자의 유희(遊戲)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亭(정)’은 길고<長亭>, ‘景(경)’은 짧고<短景>, ‘畫(화)’는 속이 비었다<無人畫>. ‘老(노)“는 크고<老大>, ’拖(타)‘는 옆으로 누웠고<橫拖>, ’笻(공)‘은 가늘고 길다<瘦竹笻>. ’首(수)‘는 돌려져 있고<回首>, ’雲(운)‘은 가운데가 끊어져 있고<斷雲>, ’暮(모)‘는 日(일)이 비스듬하다<斜日暮>. ’江(강)‘은 工(공)이 구부러져 있고<曲江>, ’蘸(잠)‘은 거꾸로 되어 있고<倒蘸>, ’봉(峯)‘은 山(산)이 옆으로 붙어 있다<側山峯>.


이 글을 다시 쓰면 다음과 같은 7언 절구의 시가 됩니다.


長亭短景無人畫(장경단경무인화)  긴 정자 짧은 햇살은 사람 없는 그림

老大橫拖瘦竹笻(노대횡타수죽공)  늙은이가 마른 대지팡이 옆으로 당겨보네.

回首斷雲斜日暮(회수단운사일모)  돌아보면 끊어진 구름에 해 저무는 저녁

曲江倒蘸側山峯(곡강도잠측산봉)  곡강에는 옆 산봉우리 거꾸로 잠겨 있네.


이러한 문자 유희는 조선시대에도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조선중기의 조위한(趙緯韓)의 문집이 있습니다. 그 문집에 실려 있는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c280005.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91pixel, 세로 1136pixel

 

‘郡(군)’은 작은 글씨이니 소군(小郡), ‘호(湖)’위에 있으니 임호상(臨湖上),

‘樓(루)’는 비스듬하니 위루(危樓), ‘淸(청)’은 보통보다 큰 글자이고 루(樓)에 바짝 붙어 있어 근태청(近太淸), ‘烟(연)’은 굵게 써서 농연(濃烟), ‘野(야)’는 크게 쓰고 획을 어지럽게 해서 미대야(迷大野), ‘雨(우)’는 반쪽을 잘라 편우(片雨), ‘城(성)’도 획을 거칠게 한 뒤 ‘우(雨)’자가 파고들게 만들어 입황성(入荒城) 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아래 시를 참조하면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小郡臨湖上(소군임호상)  작은 고을 호숫가에 임하여 있고

危樓近太淸(위루근태청)  높은 누각 푸른 하늘에 가깝다.

濃烟迷大野(농연미대야)  짙은 안개 넓은 들에 어지럽고

片雨入荒城(편우입황성)  황폐한 성에 보슬비 내린다.

遠峀斜陽盡(원수사양진)  먼 산굴로 지는 해 사라지고

橫塘細草平(횡당세초평)  횡당엔 가는 풀만 무성하구나.

空齋無一事(공재무일사)  빈 집에는 아무런 일 없으니

長嘯倚前楹(장소의전영)  앞 난간에 기대어 휘파람 분다.


이상의 작품들은 한자(漢字)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창작물들입니다. 한자의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문자로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참고자료: 한시미학산책정민 지음, 휴머니스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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