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4. 09:46ㆍ한국의 글,그림,사람
漁父詞(어부사) - 張志和(장지화)
- 일명 <어가자(漁歌子)>라고도 하는 당대 교방곡(敎坊曲)의 하나이다.
西塞山前白鷺飛 서새산전백로비 / 서새산 앞으로 백로가 날고
桃花流水鱖魚肥 도화유수궐어비 / 복사꽃 흐르는 물에는 쏘가리 살쪘구나
靑箬笠綠簑衣 청약립녹사의 / 푸른 댓잎 삿갓에 초록 도롱이 두르고
斜風細雨不須歸 사풍세우불수귀 / 바람에 흩날리는 보슬비에도 돌아 갈 줄 모른다.
觀我齋 趙榮祏 - 강상조어도(江上釣魚圖)
- 鱖魚(궐어): 쏘가리
- 장지화(張志和)는 당(唐)나라 때 은사(隱士)로 초명(初名)은 장구령(張龜齡), '지화'는 나중에 숙종(肅宗) 임금이 내린 이름이다. 그는 신선술을 익혀 술을 서말(三斗)이나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눈위에 누워서도 추위를 몰랐다 한다. 그는 강호(江湖)에 은거하면서 '연파조도'(煙波釣徒), 또는 현진자(玄眞子)라 자호(自號)했다. 늘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미끼를 달지 않았으니 그 뜻이 물고기에 있지 않았다(每垂釣 不設餌 志不在魚也). 사람들은 그를 연파조수(煙波釣叟)라 불렀다.
그는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다. 명나라 화가 동기창(董其昌)은 그의 문집≪畵旨(화지)≫에서 "옛 사람들은 일품(逸品)을 신품(神品)보다 위인 맨 꼭대기에 놓았으니 역대로 오직 장지화(張志和)만이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昔人以逸品置神品至上,歷代唯張志和可無愧色)라고 했다.
그는 태호(太湖)와 오흥(吳興)의 초계(苕溪)와 삽계(?溪)를 오가며 고기잡이하며 은거했다. 그가 이곳에 이르러 "물 위에 둥실 뜬 집을 지어 초계와 삽계 사이를 오가기를 바란다"(願爲浮家泛宅 往來苕霅之間)고 했다는 고사(故事)는 유명하다. 초계(苕溪)와 삽계(霅溪)는 절강(浙江)성 오흥현 남쪽에 있는 강이다.
임포(林逋)가 서호(西湖) 고산(孤山)에서 매화(梅花)를 아내로, 학(鶴)을 자식으로 삼아(梅妻鶴子) 은거했다면, 장지화(張志和)가 나무꾼을 계집종으로 삼고, 어부를 사내종으로 삼아 은둔생활을 했다. 이로부터 초비어노(樵婢漁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관재(貫齊) 이도영(李道榮) - 조어도(釣魚圖)>
<謙齋 鄭敾 - 조어도(釣魚圖)>
<謙齋 鄭敾 - 조어도(釣魚圖)>
<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 - 유하조어도(柳下釣魚圖)>
<묵로 이용우(墨露 李用雨) - 조어도(釣魚圖)>
<玄齋 沈師正 - 조어도(釣魚圖)>
<玄齋 沈師正 - 조어도(釣魚圖)>
<현진(玄眞) - 조어도(釣魚圖)>
<毫生館 崔北 - 조어도(釣漁圖)>
'한국의 글,그림,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司空圖詩品帖 - 정선 (0) | 2019.08.30 |
---|---|
[스크랩] 매화(梅花) Plum Blossoms (0) | 2019.01.04 |
어부사(漁父詞) - 장지화(張志和) (0) | 2018.08.24 |
[스크랩] `심향 박승무` (0) | 2018.08.23 |
'600년 한국서예사'오세창의 <근묵> (0) | 2018.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