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음악의 정신성(精神性)

2018. 4. 10. 16:59알아두면 조은글

거문고 음악의 정신성(精神性)에 대한 재음미(再吟味) : 한명희(韓明熙)*

1996년 제1회 동양음악학 국제 학술회의(동아시아의 현악기)의 발표 논문

 

동일한 명칭의 예술이라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그 개념이나 의미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진부한 상식에 속한다. 예를 들어 ‘음악’이라는 낱말을 놓고 보더라도 그 동일어휘의

내포개념은 서양과 동양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하나의 개념으로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전체를 속단하고 규정하려드는 타성에 곧잘 빠져들곤 한다.

저간의 한국 음악계에 팽배하고 있는 음악관, 다시 말해서 음악은 어디까지나 소리에서

출발하여 소리로 끝나는 물리적인 현상이라는 즉물적이고도 규격화한 음악관도 그 중의

하나이다. 특히 합리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서구문화가 유입된 이래 모든 음악행위는

어디까지나 물리적 소리의 세계인 음향적 범주속에서만 논의되고 실천되어오는 것이 그간의

관행이었다. 이처럼 음향자체만을 중시하고 음악자체에만 비중을 두려는 다분히 서구적인

음악관에 우리가 지나치게 매몰된다면 자명한 귀결이겠지만 우리는 어제의 우리네 음악적

진실을 간파하지 못함은 물론 전통음악의 진면목이 왜곡된 채 많은 것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 좋은 예가 한국의 거문고 음악이다. 만일 거문고 음악을 두고 즉물적인 음향적 사실에만

매달린다면 우리는 거문고 음악의 역사적 진실은 물론 그 본연의 속성을 터득할 수가 없다.

거문고 음악은 오랜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음향적 사실자체 보다도 오히려 음향외적인

정신적 의미망이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해왔음이 분명하겠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거문고 음악은 달을 가르키는 선사(禪師)의 손가락과 같은 존재라고 하겠다.

선승(禪僧)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우리는 스님의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아야하듯,

거문고 음악의 진면목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거문고 음악이 상징하고 내포하는

내면의 정신세계를 꿰뚫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거문고 음악의 요체(要諦)를

이해하는 첩경이다. 그만큼 거문고 음악에는 전통적으로 시대적 역사성과 형이상학적

정신성이 짙게 배어있음이 사실이다.

 

거문고 음악은 그 탄생부터가 다분히 은유적이고 합자연적이며 우주론적이다.

우선 거문고 악기의 명칭부터가 범상치 않다. 그것은 분명 소리를 내는 도구로서의 악기이되

악기 이상의 정신성을 내포하고 있다. 검을 현(玄)의 글자는 하늘을 뜻하기 때문에

현금(玄琴)이란 곧 천금(天琴)의 뜻이라고한 박시인(朴時仁)의 주장이 그러하고, 단군왕검의

예에서처럼 우리말의 ‘감’이나 ‘검’, ‘곰’ 등은 모두 신성함을 뜻하며 따라서 ‘감’고의 변성어인

거문고는 신성한 악기라는 의미라고 풀이한 양주동(梁柱東)의 학설 등이 또한 그러하다.

 

거문고 음악의 특수성을 암시하는 근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거문고의 창시자인

왕산악(王山岳)이 백여 곡의 신곡을 작곡해서 탄주하니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은 거문고 음악의 초월적 신비성을 한층 부추겨주고 있다.

혹자는 이 같은 서술을 빌미로 왕산악의 음악행위 자체를 허구로 보려는 경향도 없지 않으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실은 어디까지나 정사(正史)로서의 <三國史記>에 기재된 내용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거문고 음악에 관한 사서(史書)의 기록은 사실이되 다만 표현법을 당시의

관행대로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는 등의 은유적 서술을 취했을 뿐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 좋은 예를 우리는 <尙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순(舜)임금을 도와서 악교(樂敎)를 관장했던

기(夔)가 음악을 연주하니 뭇 짐승들이 춤을 추었다. ‘擊石拊石 百獸率舞’는 기록이

그것이다. <尙書>의 이 기록을 문자대로 읽는다면 분명 황당한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음악이 연주되자 짐승들이 춤을 추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은유적 표현으로 간주해서 그 배면의 상징세계를 꿰뚫는다면 이 말은 조금도 잘못된 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백수솔무(百獸率舞)란 곧 여러 악기가 균형을 이루며 정연한 질서를

만들어가면, 그 속에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는 지극한 조화경이 펼쳐지게 된다는 뜻을

암시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백수솔무의 앞에 등장하는 ‘八音克諧 無相奪倫 神人以和’라는

문장이 곧 그것이다.

<삼국사기>의 ‘현학래무’(玄鶴來舞)도 똑같은 맥락이다. 짐승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지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지극한 조화의 세계에 맞닿을만한 오묘한

경지를 함축한 말이 곧 ‘현학래무’(玄鶴來舞)이다. 한마디로 왕산악의 거문고 음악이 내밀한

우주의 섭리에 상통할 만큼 훌륭했음을 상징한 어법인 것이다.

 

이처럼 거문고 음악은 초창기부터 상징적인 의미와 동양적인 자연관을 짙게 함축하고 있으며

당시의 음악관이나 시대사상을 온전하게 구유(具有)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고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음악을 그들의 우주론적 자연관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음악의 뿌리는 태일(太一), 즉 도(道)랄 수도 태극(太極)이랄 수도 있는

음양(陰陽)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에 있다고 한 <呂氏春秋>의 기록 ‘樂之所由來者遠矣

生于度量 本于太一’이 그렇고, 모든 음들은 그들이 움직일 때 상호영향을 미치는 같은

짝의 대상물이 있다(五音乃各有所引動 或引天 或引地 或引日月星辰 或引四時五行 或引山川

或引人民万物)는 <太平經>의 내용이 그러하다.

움직임(動)에 의해서 발생되는 음들은 전체 우주 속의 삼라만상과 상호작용을 하기 마련이라는

내용이 곧 <太平經>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느 특정음을 발성했을 때 그 특정음은

자신의 고유한 주파수나 채널의 유기적인 관계에 놓인 수다한 대상들과 동시에 감응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일종의 동기감응(同氣感應)인 셈이다.

이처럼 사람의 소리는 외계의 사물에 영향을 미치고, 역으로 외계의 사물의 움직임은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며 결과적으로 소리의 정체를 좌우한다.

<禮記> 「樂記」의 ‘人心之動 物使之然也 感於物而動 故形於聲’이 곧 그것이다. 사리가 이렇고

보면 진정한 음악이란 곧 천지와 함께 공존의 조화를 꾀하는 것(大樂與天地同和 大禮與天地

同節)일 뿐 아니라 그것은 곧 장자가 말한 하늘의 음악(天樂)이랄 수도 있고, 공자가 말한

소리가 없는 무성지악(無聲之樂)이랄 수도 있으며 노자가 말했듯이 인간의 청각에는 포착되지

않는 소리(大音希聲)의 차원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음악관, 이 같은 시대사조를 배면에 깔고 태어난 것이 거문고 음악임을

우리는 현학래무(玄鶴來舞)라는 축약된 표현에서 읽을 수 있다.

 

거문고 음악이 오늘날의 음악개념처럼 범상한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는 흔적은 이 뿐이

아니다. 비록 희미한 증거이기는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잘 알려진 바처럼 신라인 옥보고(玉寶高)가 지리산 운상원(雲上院)에 들어가 거문고를

50년이나 배우고 스스로 30곡을 짓기도 했다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옥보고는 속명득(續命得)에게 거문고 음악을 전했고 속명득은 다시 귀금(貴金)선생에게

전했는데, 귀금선생 역시 지리산에 입산하여 나오지를 않았다.

이때 신라왕은 금도(琴道)가 단절될까 두려워한 나머지 이찬(伊飡)벼슬의 윤흥(允興)으로

하여금 대책을 강구케했다.

남원공사로 부임한 윤흥은 안장(安長)과 청장(淸長)을 간택하여 귀금선생에게 거문고를

배우게 했다. 귀금선생은 그들에게 거문고를 가르치되 은밀한 것은 전수시키지 않았다.

이에 윤흥은 부인과 함께 귀금선생 앞에 나가서 극진한 예를 베풀며 왕명을 이행할 수

있게 되기를 간청하니, 그제서야 귀금은 표풍(飄風)등 비장(秘藏)의 3곡을 전수해 주었다.

(羅人 沙飡 恭永子 玉寶高 入地理山雲上院 學琴五十年 自製新調三十曲 傳之續命得

得傳之貴金先生 先生亦入地理山不出. 羅王恐琴道斷絶 謂伊飡允興 方便傳得其音.

遂委南原公事 允興到官 簡聰明少年二人 曰安長淸長 使詣山中傳學 先生敎之 而其隱微不以傳.

允興與婦偕進曰 吾王遣我南原者 無他 欲傳先生之技 于今三年矣 先生有所秘而不傳

吾無以復命 允興棒酒 其婦執盞膝行 致禮盡誠 然後傳其所秘飄風等三曲 - 移記)

 

이같은 내용의 <삼국사기>의 사료(史料)를 유심히 음미해 보면 우리는 과연 지난날의 거문고

음악은 음악이되 음악 이상의 의미심장한 무엇을 담고 있었음을 이내 간파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신라왕이 금도(琴道)의 단절을 두려워한 나머지(羅王恐琴道斷絶)

이찬(伊飡)이라고 하는 높은 관등(官等)의 사람을 남원까지 특사로 보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단지 거문고 음악의 명맥이 끈길 것을 염려한 정도가 아니라 거문고의 도(道), 즉 금도(琴道)가

단절될까봐 일국의 왕이 두려운 마음까지 가졌던 것이다. 또한 신라의 17관등 중에서

이찬은 최상위의 제 2관등이다. 진골(眞骨)출신 만이 오를 수 있는 이 관등은 관직으로

치면 장관직 이상에 해당된다. 이 같은 고귀한 신분의 인물이 금도(琴道)를 계승하기 위해서

부인과 함께 귀금선생 앞에 나가서 무릎을 꿇어 헌주했던 것이다. 과연 귀에 좋고 마음에

와 닿는 음향적 차원의 악곡을 전수받기 위해서였을까. 분명 그 같은 배경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당시 거문고 음악의 실체를 가늠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단서들도 취합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거문고 음악가들이 대개 입산 불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중과 함께하기 마련인 음악치고는 무언가 다른 점을 느끼게 한다. 귀금선생이 전수하기를

꺼리며 비장했던 표풍(飄風)을 비롯해서 옥보고가 지은 악곡 중에서 상원곡(上院曲),

중원곡(中院曲), 하원곡(下院曲), 현합곡(玄合曲), 강천성곡(降天聲曲) 등은 다분히 선가(仙家)

내지는 도가(道家)적인 여운을 남기고 있다.

표풍(飄風)은 선가의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의 표풍을 연상시키고 상원곡, 중원곡, 하원곡은

도가의 삼청(三淸)이나 상원삼궁(上元三宮), 중원삼궁(中元三宮), 하원삼궁(下元三宮)을

생각게 하며, 현합곡(玄合曲)은 곧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을 뜻하는 현일(玄一)의

뜻이 담겼는가 하면 강천성곡(降天聲曲)은 장자의 천악(天樂)의 경지를 암시함이 분명하겠기

때문이다.

더욱이 30곡의 거문고 음악을 작곡한 옥보고가 말년에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는 기록도

거문고 음악의 정체를 살피는데 좋은 단서가 되지만, 무엇보다도 당시의 거문고 음악이

선가사상(仙家思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보다 유력한 증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효소왕(孝昭王) 2년(A.D 693년)에 거문고는 신문왕(神文王) 때의 신적(神笛), 즉

만파식적(萬波息笛)과 함께 신기(神器)로서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했었다는 자료가 그것이다.

단편적인 자료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중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거문고가 한낱 소리를 내는 도구에 불과하다면 그처럼 신성시하여 천존고에 비장해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악기의 기능 그 이상의 함축성을 지녔음에 분명한 것이다.

더구나 음양(陰陽)사상에 입각한 신적(神笛)과 함께 보관했었다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지만

천존고(天尊庫)의 천존(天尊)은 바로 도가의 지고한 신(神)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던가.

 

한편 삼국시대의 선가적(仙家的) 색채와는 달리 후대의 거문고 음악은 점진적으로

유가적(儒家的)인 음악관으로 변용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거문고 음악이 그 예이다.

유교를 국시(國是)로 한 시대였기에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조선조의 거문고 음악은 도처에서

유교적인 체취를 발견할 수가 있다. 세세한 예증은 생략하겠지만 몇몇 관찬(官撰) 악보의

서문이나 많은 문사들의 악론이나 사적인 거문고 악보의 음악관들을 일별하면 대개의 경우

음악을 인격완성에 연결시키고 있다.

우주론적이며 합자연적인 선가적(仙家的) 거문고의 전통이 인성의 도야와 이풍역속(移風易俗)

이라는 유가적(儒家的) 현실문제로 지향점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유가의 악론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금(琴)은 곧 금(禁)이라고 해서 모든 마음의 사기(邪氣)를

정화하려 했던 예가 그렇고,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리면 이직자량지심(易直子諒之心)이 절로

우러난다는 예가 그러하며,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예(禮)는 해서 무엇하고 악(樂)은 해서

무엇하느냐는(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경우가 모두 그러하다고 하겠다.

 

음악이 인격완성의 필수조건이었던 사실을 단적으로 증언하는 말은 바로 『논어(論語)』에서

나온 간략한 결론, 즉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사람은 음악을 통해서 도덕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을 조화롭게 융합시켜서 이상적인

인간완성을 기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감정의 동물인 인간은 희로애락을 구유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때의 감정이 법도에 어긋나면 자연히 사회적 혼란이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선왕(先王)들은 좋은 음악으로 인간의 감정을 올바르게 향도하여 사회의 혼란을 예방한다는

악론은 이풍역속의 사회기강과 연결되어 있고, 난잡한 음악이 유행하면 나라가 망하기

일수라는 말(五音皆亂迭相陵謂之慢 如此則國之滅亡無日矣)은 정치나 국운에 연관된 음악관이고,

음악은 천하의 대제(大齊)라는 말이나 음악은 하늘을 본떠 만드는 것이고 예는 땅을 본받아

만드는 것(樂由天作 禮以地制)이라는 말들은 음악과 천하 내지는 우주를 결합시킨 음악관들이다.

이처럼 유가적 음악관은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인성(人性)을 중시하는

유가의 음악관은 인격완성을 그 핵으로 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조선조의 거문고 음악에 투영된 정신적인 색채가 주로 인격완성에 모아져 있음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거문고 음악에 나타나는 음악 외적인 측면, 다시 말해서 관념적인 정신성(精神性)에

관해서 개괄해 보았다. 특히 본고에서는 거문고 음악의 초창기랄 수 있는 신라시대의 거문고

음악에 관해서 촛점을 맞춰보았는데, 여기서 우리는 거문고 음악이 함축하고 있는 음악외적인

정신세계, 즉 선가(仙家)에 뿌리한 우주론적이고 합자연적이며 범아일체(凡我一體)적인

관념성(觀念性)을 십분 헤아릴 수가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의 음악적 정의로 어제의

거문고 음악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자각하게 되었고 과거의 거문고 음악은

새로운 기점에서 새로운 척도를 가지고 바라봐야 비로소 그 실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음악풍토와 연관해서 마땅히 온고지신해야 할 명제가 있다.

과거의 거문고 음악이 내포한 정신성을 오늘의 음악상황에 연계하여 새로운 지평의 음악개념을

도출해내는 작업이 그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우선 대중화와 세속화로 치닫는

저간의 음악적 세태를 순수무구한 신성성(神聖性)으로 균형을 잡는 일을 비롯해서, 인간성의

황폐화를 부추기는 음악행태를 전인적(全人的), 풍류적(風流的)인 음악전통으로 보완해야하며,

생태계가 파괴되는 심각한 환경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거문고 음악 본연의 천인합일

(天人合一)적이요 자연귀의(自然歸依)적이며 우주론(宇宙論)적인 정신세계를 음악의 궁극적

이념으로 설정하는 일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작업은 한국음악의 발전은 물론 다가오는 21세기의 새로운 세계음악 사조의 창출과도

직결된 문제이다.

거문고 음악의 정신성을 음미해 본 각별한 소이연(所以然)도 바로 이 점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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