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意恂 의순. 艸衣詩藁 초의시고 / 精選詩選集정선시선집?譯註역주

2017. 8. 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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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사상총서・불교편 09
精選詩選集정선시선집・譯註역주


Seon Poetry
Collected Works of Korean Buddhism, vol. 9
역주 이진오
엮은곳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意恂 의순

艸衣詩藁 초의시고

 

 

奉呈籜翁先生 탁옹(籜翁)1) 선생께 올림

富送人以財 부자는 재물을 보내 주고
仁送人以言 어진이는 좋은 말을 해준다는데
今將辭夫子 이제 선생님을 떠나려고 하면서
可無攸贈旃 드릴 것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先敬舒陋腹 먼저 경의를 표하고 누추한 속마음을
請陳隱几前 선생님의 책상 앞에 내놓을까 합니다.


眞風遠告逝 참된 기풍이 멀리 사라져버리자
大僞斯興焉 거짓 기풍이 크게 일으나니
閭巷滿章甫 세상에 선비라는 이는 가득하여도
千里無一賢 어디에도 어진 이라곤 없습니다.
州里旣悐悐 이미 걱정스런 지경이 되었으나
蠻貊理固然 오랑캐 땅에서는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我生當此時 저는 이러한 시대에 태어났고
質亦非堪姸 자질 또한 곱지 못한 터라
所以行己道 자신의 도를 행하고자 하여도
將向問無緣 어디 물어볼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歷訪芝蘭室 훌륭하다는 이들을 두루 찾아보았지만
竟是鮑魚廛 결국은 어물전에 지나지 않았었지요.
南遊窮百城 남쪽으로 수많은 지방을 다니면서
九違靑山春 여러 해 세월만 보내었습니다.

 

豈謂窮海曲 어찌 궁벽진 바다 모퉁이라 하겠습니까
天降孟母隣 맹자의 어머니가 찾던 좋은 이웃을 하늘이 내려주시니
德業冠邦國 덕업은 나라에서 으뜸이요
文質兩彬彬 문채와 자질이 함께 찬란하며
燕居恒抱義 편안히 계실 때에는 항상 의로움을 품고
經行必戴仁 행동할 때에는 반드시 어짐을 지니었습니다.
旣滿如不盈 이미 가득차도 모자란 듯이 하시며
常以虛受人 늘 텅 빈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셨습니다.
君子貴遇時 군자는 때를 만남을 귀중히 여기지만
不遇亦不嚬 만나지 못하여도 찡그리지 않으셨습니다.
道大本不容 도가 크면 본래 수용되기 어려운 법
流落且誾誾 영락하여서도 온화한 마음을 그대로 지녔습니다.

 

我爲求此道 제가 이 도를 구하고자 하여
遠來致恂恂 멀리서 와 정성을 들이다가
且將違座側 이제 선생님 곁을 떠나려고 하니
摳衣請諄諄 저에게 자상한 가르침 내리시길 공손히 청합니다.
儻贈謝車言 선생님께 드리는 감사의 말씀을
鏤肝復書紳 간장에 새기고 다시 허리띠에도 적어 두겠습니다.

 

1) 탁옹(籜翁) :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별호. 초의 선사가 24세일 때 이 시를 보내었으며, 당시 다산의 나이는 48세였다. 초의 선사는 다산으로부터 유학과 시에 관한 가르침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溪行 시냇가를 거닐며


採蔌休溪畔 나물을 캐다 계곡가에 쉬노라니
溪流淸且漣 시냇물은 맑고도 잔잔하구나.
新藤經雨淨 새싹 돋은 등나무는 비를 맞아 깨끗하고

古石依雲娟 묵은 돌은 구름과 벗하여 아름답구나.
嫩葉憐方展 어린 새잎은 갓 펼치어 어여쁘고
蕤花欣未蔫 드리워진 꽃은 싱그러운 모습이 좋구나.
靑巖當繡屛 푸른 바위는 수놓은 병풍이 되고
碧蘚代紋筵 푸르스름한 이끼는 무늬 방석을 대신하네.
人生亦何求 사람이 살면서 또한 무엇을 구하랴?
支頤澹忘還 턱을 괸 채 편안하여 돌아가기를 잊네.
滄涼山日暮 서늘한 산 속에 날은 저물어가는데
林末起暝煙 숲 끝에는 어둑한 연기 피어오르네.

 

 

登寒碧堂 한벽당2)에 올라
-乙亥 初入京都之行 - 을해년(1815) 처음으로 서울로 들어가는 길에


田衣當水榭 시골 옷차림으로 물가의 정자에 올랐더니
云是故王州 이곳이 옛날 왕의 고을이란다.
谷靜禽聲遠 계곡이 고요하여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오고
溪澄樹影幽 시냇물이 맑아 비치는 나무 그림자 그윽하구나.
迅商催晩日 서풍이 바삐 불어 저무는 날을 재촉하고
積雨洗新秋 계속 내린 비는 초가을 풍경을 씻어주네.
信美皆吾土 참으로 아름답구나 우리 땅이여!
登臨寧賦樓 올라와 보며 누각에서 시를 지어보노라.

 

2) 한벽당(寒碧堂) : 조선 초기에 지어진 누각으로,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다.

 

 

潤筆菴 윤필암(潤筆菴)3)


削立蒼崖路欲窮 깎아지른 푸른 언덕 길도 끊긴 듯
精藍蕭灑翠微中 푸르스름한 기운 속에 절의 모습 깨끗하구나.
水因照影方知淨 물 위에 비치는 그림자 보니 깨끗함을 알겠고
山到無雲始見空 산은 구름이 사라져야만 하늘을 볼 수가 있네.
礙日何妨剗茂綠 해를 가린들 어떠랴 무성한 녹음 그대로 두고
惜春不遣掃殘紅 봄을 아끼는 마음에 시든 꽃도 쓸지 않네.
前程但得無岐派 앞으로 가는 길에 갈림길이 없으니
不向人尋西復東 누구를 찾아 동쪽 서쪽 다닐 필요 없다네.

 

3) 윤필암(潤筆菴) :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용문사에 딸린 암자, 고려 중엽 묘덕이 창건하였다. 6.25때 소실되고 터만 남아있다.

 

 

晩蘇以五古一首見贈 次韻奉呈,

幷衍爲七言一首 以寄二首.
만소(晩蘇)4) 노인이 오언고시 한 수를 보내어 왔기에 그 운에 따라시를 지어 올리고,

아울러 칠언시 한 수를 덧붙여 모두 2수를 드림〉


幽谷雲初開 깊은 계곡에 구름이 개이고 나니
寒巖上明月 차가운 바위 위로 밝은 달이 솟아오르네.
靜對明月坐 밝은 달을 마주하고 고요히 앉았으니
細想猶起滅 이런 저런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구나.
起滅滅盡處 일어나고 사라짐도 다 사라져 없어지는 곳에
始與眞常依 비로소 참됨이 항상 함께하네.
若復起眞想 만약 여기서 참되다는 생각을 또 일으킨다면
是亦非艸衣 이 또한 초의가 아니라네.

爲問晩蘇老 만소 노인에게 묻노니,
此事爲然麽 이 일이 과연 그러한가?
鳶魚能飛躍 소리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이5)
豈不以其我 어찌 나로 인해서가 아닌가?
如此和會得 이와 같이 이해가 된다면
二聖垂印可 두 성인6)도 인가를 내리리라.

 

一間茅屋半間雲 한 칸 초가집에 구름이 반칸이요
二友相尋一是月 두 벗이 서로 찾으니 그 중 하나는 달님이라.
雲隣相將月友居 구름 이웃이 함께하고 달님이 벗해 사니
淸風時來扣寂滅 맑은 바람이 한번씩 와서 적멸을 두드리네.
歷歷孤明勿形段 형체는 없지만 또렷하고 홀로 밝아
生來與伊爲所依 살면서 그에게 늘 의지하네.
淸灑灑空心中眼 마음의 눈을 맑고 깨끗하게 하며
赤條條落體上衣 몸 위의 옷은 아무 것도 없이 빛나게 하네.
內外中間覓總無 안과 바깥, 중간 어디를 찾아도 없으니
無中大有是甚麽 없는 가운데 크게 있는 이것이 무엇인고?
分手上下曾指出 아래 위로 가리켜서 알려주었으니
物物上具獨尊我 물물마다 홀로 높은 나7)가 있도다.
若人理會遮般我 만약 이러한 나를 알아챈다면
許君無可無不可 그대가 가하지도 불가하지도 않음8)을 인정하리라.

 

4) 만소(晩蘇) : 본명은 이희(李曦).

5) 소리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 : 약동하는 만물의 모습을 상징하는 표현이다.『주역』에 나오는 말.
6) 두 성인 : 부처님과 공자를 말하는 듯하다.
7) 홀로 높은 나 : 석가모니가 처음 태어나서 “하늘의 위와 하늘의 아래에서 오직 나만이 홀로 높다.”라고 한 이야기에서 온 말. 여기서는 선불교적인 개념으로 원용되었다.
8) 가하지도 불가하지도 않음 : 원래는 『논어』 「미자편」에 나오는 말인데, 미리 가부를 정하지 않고 사세의 정당성에 따라 유연하게 판단하는 성인의 마음씀씀이를 이른다.

 

 

歸故鄕 고향으로 돌아가 보니9)


遠別鄕關四十秋 멀리 고향을 떠나온 지 사십 년
歸來不覺雪盈頭 돌아와 보니 어느 새 머리에 눈이 가득하네.
新基艸沒家安在 잡초에 묻힌 땅 어디에 집이 있었던지?
古墓苔荒履跡愁 오래된 무덤도 이끼에 덮이어 걷기도 쉽지 않네.
心死恨從何處起 마음이 죽었는데 한이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가
血乾淚亦不能流 피가 말라 눈물 또한 흐르지 못하네.
孤筇更欲隨雲去 지팡이 하나로 다시 구름 따라 떠나려 하니
已矣人生愧首邱 사람이 살면서 고향 찾은 것 부끄러워라.

 

 

9) 초의선사는 15세에 고향인 전라남도 무안을 떠나 출가하였다. 40년 만에 돌아와 보았다면 55세쯤이었을 것이다.

 

 

 

492 정선 시선집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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