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행다로 다스리는 여름 / 한국의 美_여름 다스리기

2017. 8. 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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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_여름 다스리기


김홍도 ‘취후간화’(98.2x43.3㎝, 조선시대,국립중앙박물관) (醉後看花)

차를 즐기던 선조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집 안에서 담소를 나누는 선비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매화나무 아래서 어린 동자가 차를 끓이고 있다.



행다로 다스리는 여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여유를 만들면 불현듯 지독하던 더위가 저만치 사라져버릴 때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차 한 잔을 정성껏 우려 마시고 나면 얼음물로도 해결되지 않던 혹서가 뜨겁게 끓인 차 한 잔에 증발한다.
그래서 선조는 차 마시는 일에 ‘도’라는 정신을 붙였다.


아주 더운 날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부암동 구석에 자리한 무계원에 갔다.

무계원은 조선 말기 서화가 이병직의 집을 개조한 문화 공간이다. 한옥 안에서 2시간 동안 다도를 보여주는 강좌가 열린다기에 선뜻 신청했다. 그간 좋은 사람들이 내어주는 차를 받은 적은 많지만, 누군가에게 정성껏 차를 대접한 적이 없어 망설임 없이 신청서를 썼다.

돌아오는 길에 웬일인지 마음이 설레고 서서히 차오르며 더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게 됐다. 잠잘 시간도 부족하게 살면서 그런 여유를 낼 줄 몰랐는데, 바쁜 와중에도 한가함을 찾아내어 즐기는 것이 바로 차의 묘미가 아닌가 싶었다. 차에 깃든 정신을 어렴풋이 알게 된 순간이라 기억에 남는다.

차는 마음을 열고 깊은 이야기를 하게 하는 힘이 있다. 차 한 잔을 내어주는 일은 ‘너는 여유롭게 너의 말을 해도 된다. 나는 들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선조가 소중히 가꿔온 차 문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준 지혜이자 메시지다.


차, 심신의 방황을 잠재우는 약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노동은 ‘칠완다가’라는 시를 통해 차가 인간을 어떻게 치유하는지 묘사했다.


‘첫째 잔은 목구멍과 입술을 적시며,

둘째 잔은 외로운 번민을 씻어주네.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를 씻어주니 가슴속 남는 건 5천 권의 책뿐이네.

넷째 잔은 가벼운 땀이 솟아 평생의 불평은 모두 땀구멍으로 날아가고,

다섯째 잔에는 기골이 맑아지고,

여섯째 잔에 신선과 통했다네.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건만 느끼노니 양쪽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나네.’


처음 이 글을 읽으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차 몇 잔을 통해 신선의 삶까지 누려볼 수 있다니 차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물론 이는 우리 선조가 역사적으로 차를 어떻게 향유해왔는지, 다도 정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드는 생각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차는 임금이 베푸는 중요한 의식마다 등장했으며, 서민의 생활 속에서도 간절히 바라는 일에는 귀한 차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 예부터 차는 기호식품이나 음료수가 아니라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비우는 도구였다.


시대마다 차의 역할이나 가치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우리 민족의 소중한 시간은 언제나 차와 함께였다. 행다법은 바뀌어도 그 정신만큼은 변하지 않았기에 차는 ‘도’가 될 수 있었다. 선조의 끽다에 많은 영향을 끼친 <다경>을 보면 차의 위대함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다경>은 당나라 문인 육우가 쓴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다. 태어난 지사흘 만에 강가에 버려진 육우를 한 선사가 발견해 절로 데려와 기르면서 육우와 차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전국을 다니며 차를 맛보고 명사들과 만나면서 관련 자료를 모았고 10여 년에 걸쳐 책 <다경>을 완성했다.

저자 스스로 ‘경(經)’ 자를 붙여 경건함을 표할 정도니, 육우가 발견한 차의 세계는 종교의 세계만큼이나 넓고 깊었다. 육우가 사찰에서 차를 배운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차는 불교문화와 그 맥을 같이한다.

선사중에 훌륭한 차인(茶人)이 많았고, 또 명품 차도 사찰에서 많이 생산됐다. 선비들은 차를 배우려 주지 스님을 찾아가거나 명차를 맛보기 위해 차를 보시해주길 청하기도 했다. 선사들이 쓴 글을 보면 차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선차 정신을 이어가는 것으로 유명한 여연 스님이 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차>에는 여연이 오랜 세월 차와 함께 지내며 쌓은 지식이 망라돼 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서귀자돈수 스님의 시를 소개하는 대목이다. 여연은 ‘바쁜 일상에서 한 잔의 차는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성의 시간을 던져준다.

작고 아담한 찻잔속에 놓인 연둣빛 푸른 색깔과 향은 혀를 타고 목구멍을 적시며 넘어가 우리의 시린 영혼까지도 데워놓기 때문이다. 찻잔 안에는 천하를 담을 수 있는 우주가 있다’고 운을 떼며 서귀자돈수의 시 ‘차를 마시며’를 소개했다.


‘오후 지친 시간, 쓴 한 사발 차 어렴풋이, 한 가닥 밝음을 볼 수 있다. 소년 때부터 가난했던 마음, 이제 즐거움이, 즐거움이 될 수 없는 나이, 해질녘 긴 그림자, 어쩌다 마음껏 차 달여 마신 날이면, 저녁도 새벽처럼, 맑은 가슴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육우가 말한 ‘근심과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시면 된다’는 말과도 통한다. 우리 선조에게 차는 정신을 깨우고 다잡고 다스리는 수련의 하나였다.

조선 시대 천재 시인 김시습도 세속에 대한 울분과 방황을 잠재울 길이 없었다.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 출가해 설잠 스님이 됐다. 그리고 독서와 다도로 긴 방황을 마무리지었다. 차 생활로 다진 정신적 안정으로 책 10만 권을 읽었다고 하며, 직접 만든 차를 주변에 선물할 정도로 깊이 있는 다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시 ‘작설(雀舌)’을 보자.


남국의 봄바람 가볍게 불려할제
차나무 숲 잎새 아래 뾰족한 부리 숨겼네
연한 싹 가려내면 진정 신령스레 통하고
그 맛과 풍류 홍점의 다경에 실렸네
자순은 창기 중에서 가려 뽑는 것
봉병과 용단은 그 모양을 본뜬 걸세
푸른 옥병 넣어 타는 불로 달이면
게눈 같은 거품 일고 솔바람 소리도 울리네
산사 고요한 밤에 손들 둘러앉아
차 한 잔 마시니
두 눈이 맑아지네
당가에서 조금 맛보니 저인 촌사람인가
어찌 알리, 설다가 그처럼 맑은 것은


김시습은 세상을 떠돌다가 경주 금오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주변에 작설차나무를 심어 정성껏 키웠다고 한다. 차나무가 자라자 시도 짓고 차도 만들며 세간에 품은 분노를 조금씩 증발시켰다. 조선 시대의 또 다른 차인으로는 호부터 남다른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있다. 그는 차에 관한 글 40여 편을 남겼는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우리만의 차 문화를 잘 담고 있는 귀한 자료다.

나이 마흔에 유배를 가 18년을 살았으니 유배 생활이 그를 다인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산이 아암선사에게 차를 보내달라 청하는 ‘걸명소(乞茗疏)’라는 글을 보면 그가 차 향기에 얼마나 깊이 빠져들었는지, 차가 그의 삶에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요즘 차만 탐하는 사람이 되어 겸하여 약으로도 마신다오.

(…) 비록 기력이 쇠약해지고 정기가 부족해도 다인 기모경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막힌 것을 삭이고 헌 데를 다 낫게 한다 하여 이찬황(당나라 차인)이 차 마시는 버릇이 생겼소이다.

아침 햇살이 피어나고 뜬 구름이 희게 나는 맑은 날, 낮잠에서 갓 깨어나 명월이 시냇물에 비치는 때에, 끓는 찻물은 가는 구슬과 눈처럼 날아오르며 자순차의 향기를 드날리오.
(…) 목마르게 바라는 뜻을 헤아려 달빛과 같은 은혜를 아끼지 말기 바라오.’



강진 유배 시절 ‘목민심서’를 비롯한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난히 차를 곁에 두고
즐겼다. 다산초당 마당에는 솔잎을 태워 찻물을 끓이던 마당바위가 아직도 남아 있다. ⓒ최충식



다산의 지극한 차 사랑을 제자들이 모를 리 없었다. 다산이 유배를 끝내고 강진을 떠나게 되자 그의 제자들은 다산의 뜻을 기리기 위해 ‘다신계’를 조직했다. 제자 18명은 각자 돈을 걷어 몇 구역의 밭을 사고 1년에 두 번 모여 차를 만들어 다산에게 보냈다.
서로 협동해 차를 생산하고 차를 마시며 신의를 다지는 다신계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차는 정신뿐 아니라 몸을 낫게 하는 약으로도 널리 쓰였다. 차의 종류는 수없이 많으니 그 효능도 가늠할 길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물질적 측면에서도 귀히 여겼다.
신라 말 학자이자 문학가 최치원의 시문집 <계원필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고국의 사신이 없어 집에 보낼 편지를 부치기도 어려워 오직 척호의 시를 읊으며 바다를 건너가는 기별편을 기다립니다. 지금 본국의 사신을 태운 배가 바다를 지나가기에 저는 차와 약을 사고 이제 집에 편지를 부치고자 하옵니다.’


약이 귀하던 시대에 사신의 배에 차와 약을 함께 싣는다는 것은 약만큼이나 차가 생활에 중요한 물건이었음을 뜻한다. 불교가 융성한 신라 시대에 미륵보살과 문수보살에 차를 공양하는 풍습이 있었음도 차의 이런 위상을 방증한다. 어린잎으로 정성껏 덖어 만든 차는 쌀보다 귀한 명품으로 평가받았다.

차가 약이 되는 것은 오랜 세월 인정받고 있는 사실이다. <동의보감>은 “차는 냉한 식품이라 번열을 없애준다”고 했고, 조선 시대 문인 권응창이 지은 <우양저염역병치료방>에는 “소, 염소, 돼지의 전염병이나 치료제로 작설차 2량에 물 5되를 풀어 입에 부으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더해 현대 과학은 차의 성분 중 하나인 폴리페놀이 식중독과 전염병을 예방함을 밝혀냈다. 그 때문에 차는 여름에 특히 좋다. 병을 예방할 뿐 아니라 차만이 줄 수 있는 여유는 여름의 번잡함도 조용히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이름 봄에 채취해 불에 적당히 달궈진 가마솥에 덖거나 쪄서 잘 말린 녹차 잎은 손으로 쥐었을 때 단단하고 무거운 느낌이 든다. 물과 바람, 불이 조화롭게 빚어내 우린 맑은 차 한 모금은 마음의 정신까지 깊게 배어든다.



좋은 차와 찻자리로 누리는 호사


신라 시대 대표적 다인으로 꼽히는 충담이 경덕왕과 나눈 이야기는 우리 차 문화사에서 최초의 기록으로 평가받는 귀중한 자료다. <삼국유사>의 한 구절을 보자.


"경덕왕이 3월 삼짇날 귀정문 누상에 행차했다. 그때 한 스님이 앵통을 지고 남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경덕왕은 스님이 메고 있는 앵통 속을 살피게 했다.
스님의 앵통 속에는 차와 그것을 마실 때 쓰는 여러 도구가 들어 있었다.
경덕왕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충담이라고 합니다. 소승은 매양 3월 3일과 9월 9일에 경주 남산 삼화령에 있는 미륵세존에게 차를 달여 올리는데,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차를 한 잔 줄 수 있느냐?”
충담 스님은 극진히 차를 달여 왕에게 바쳤다. 충담 스님이 달인 차 맛은 아주 독특했을 뿐 아니라 차 그릇에서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부드러운 향기가 풍겼다."


이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차를 즐기는 아름다움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좋은 차를 즐기는 일은 차를 잘 만드는 일에서부터 찻자리를 정갈하게 하는 것, 그리고 차를 올바르게 음미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이어진다. 여연 스님은 차를 좀 마신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차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면 정신적 내용까지 가늠하게 된다고 했다.
아무리 차를 도라고 한들 도구를 정결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형식만 있을 뿐 차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자리에는 ‘청향보다 수다스러움과 번잡함’이 넘쳐난다고 했다. 올바른 찻자리는 무엇인지 여연을 통해 알아보자.


‘우선 찻자리는 상큼하고 청량해야 한다.

찻상과 차 도구를 깨끗이 씻어내고, 먼저 찻자리까지 정리해야 한다.

그러면 일단 그 찻자리는 청량함과 신선함이 넘쳐난다.

그런 다음 물을 준비하고 끓이고 차를 마시고 난 뒤의 찻자리 뒤처리까지가 마치 물 흐르듯 빈틈없고 완만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차의 도인 것이다.

그 같은 차의 살림살이는 바로 일상의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옛 다인들은 바로 차의 일상을 자신의 살림살이와 함께 여여하게 가꾼 것이다.

차의 도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차일까. 기본적으로 색, 향, 맛으로 나누어 평가할 수 있다.
차의 색은 맑고 푸른 것이 가장 좋고 찻잔의 물은 여린 쪽빛에 하얀빛이 도는 것을 최상으로 친다. 누런색이나 붉은색을 띠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았다.

한편 좋은 차의 향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겉과 속이 한결같은 순향, 설지도 익지도 않은 청향, 불김이 고르게 머문 난향, 곡우전에 신묘한 기운을 갖춘 진향으로 나누어 즐겼다.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이 상품이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좋은 차를 만들고 찾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명차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초의 선사는 <다신전>에서 차를 덖는 가마솥이 그 맛을 좌우한다고 서술했다.


“차를 덖을 때 불이 세면 차의 향이 맑고, 솥이 차면 차의 싱그러움이 모자란다.

불이 맹렬하면 설익은 채 겉만 타고, 땔감이 적어 너무 슬슬 불을 지피면 푸른빛을 잃는다.

또 불을 너무 오래 지피면 지나치게 익어버리고, 빨리 꺼내면 설익어서 되살아난다.

너무 익으면 누렇게 되고, 설익으면 검게 된다.

순리대로 차를 만들면 차 맛이 달고 거스르면 떫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차의 맛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얼마나 손이 가는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물, 바람, 불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된 좋은 차도 우려내는 시간을 너무 길게 하면 타닌 등의 물질이 산화되어 찻물의 색이 어두워지고 성질이 차가워지면서 향기마저 날아간다. 찻잎 속에 함유된 여러 비타민도 산화되어 영양가치가 떨어지니 주의해야 한다.


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녹차, 백차, 청차, 흑차, 황차, 홍차 등으로 분류한다.

백차는 어린 싹을 덖거나 비비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 차다.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약간의 발효만 일어나도록 하기 때문에 제다가 까다롭다.

여기서 좀 더 발효시킨 청차는 녹차와 홍차의 중간 공정으로 적정한 발효 정도를 맞춰야 만들어진다. 발효 농도에 따라 철관음, 오룡차, 포종차 등으로 나뉜다.

흑차는 잎이 큰 대엽종을 원료로 해 오랜 발효 과정을 거친 것이다. 제다 과정을 거친 찻잎이 검고 반지르르해 흑차라고 한다. 이와 달리 아예 가루로 만든 것도 있는데, 흔히 말차라 한다.

가루차를 만드는 일역시 쉽지 않다. 찻잎을 따기 15일 전부터 햇빛을 막는 차광 작업을 해야 하며, 채취한 찻잎을 신속히 찌고 급하게 건조시켜야 부드러운 말차가 완성된다. 또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곡우 전에 딴 어린잎이나 순으로 만든 차를 우전이라 하는데 녹차 중 최상급으로 분류된다.

곡우부터 4월 말까지 딴 찻잎으로 만든 차는 세작이라 하고, 이후에 더 커진 잎으로 만드는 것은 중작, 대작이라고 한다.


이제 차를 음미해보자.

‘행다’라고 하는 차 마시는 일에는 당연히 이 차를 만든 모든 수고로움과 차를 즐기는 순간에 대한 예의가 담겨 있어야 한다. 차를 받으면 마실 때는 오른손으로 찻잔의 옆을 살짝 들어 왼손바닥으로 받친다.

마실 때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눈으로 차의 색을 마시고 코로 향기를 마신 뒤 입에 머금어 참맛을 즐긴다. 이렇게 더운 날, 맑은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가 맑은 사유를 우려내고 깊은 내면의 심연을 만들 수 있듯 여름날 마시는 차 한잔으로 마음을 다스려보자.


글 김선미(자유기고가)

자료협조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도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차>(여연 스님 지음, 현암사 펴냄), <찻자리, 디자인하다>(이연자 지음, 오픈하우스 펴냄), <다경도설> (치우치핑 지음, 김봉건 옮김, 이른아침 펴냄)



information 1

고려 시대 봉채, 차 씨앗


고려 시대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선물을 보내는 풍습, 즉 지금의 예물과 같은 의미의 ‘봉채’가 있었다.
봉채로 차 씨앗을 보냈는데, 그 이유가 차나무는 씨앗으로 심어야만 자라고 나무도 대지에 깊이 뿌리내리는 직근성이라 옮기면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었다.

씨앗을 따로 심어도 한 나무로 합해 나오므로 신랑과 신부의 결합을 의미한다.


게다가 씨앗이 무성한 것은 자손의 번성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결혼 예물로 손색없는 물건으로 여겨졌다.



information 2

차 우리기


차는 만드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릴 때도 여러 방식과 이름이 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끓인 물에 잎차를 넣어 우리는 팽다법(烹茶法),
말차에 뜨거운 물을 부어 휘젓는 점다법(點茶法),

차를 차가운 물에 넣어 처음부터 같이 끓이는 자다법(煮茶法)이 있다.


백차나 청차 등 발효차는 2~3분 우리는 게 좋고,
녹차나 말차 등 부드러운 차는 1~2분 우리고 따르면 된다.

주로 세 번 정도 우려 마시는데, 첫차를 우린 뒤 두 번째 차는 30초~1분 안에 우리는 게 적당하다.



seasonal Tip


맑은 차 한잔과 함께하는 고즈넉한 행복



충남 예산과 제주도


추사 김정희, 그윽한 차향으로 다선삼매의 경지에 이르다


추사 김정희에게 붙는 수식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해동 제일의 문장, 추사체를 만든 당대 최고의 명필, 대실학자 외에도 ‘진정한 차인’이라는 수식어를 빼놓을 수 없다.

추사는 다산 정약용, 초의 선사 등 조선 후기의 여러 차인과 교류하며 우리 차 문화의 화려한 중흥기를 꽃피운 다인이다. 예산 추사 고택은 굳이 차인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적이다. 차인이라면 응당 남들이 맡지 못하는 차의 향기를 여기서도 진하게 맡을 수 있는데, 고택 곳곳에 걸린 주련들에서 특히 추사가 마시던 차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추사는 또 많은 다시를 남겼는데, 현재 추사 고택 안채의 주련에 추사가 쓴 다시의 일부가 걸려 있어 차를 향한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추사고택 뒷산인 앵무봉 너머에는 추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화암사를 비롯해 인근에 수덕사와 해미읍성 등의 관광지가 있고, 외암리 민속마을도 유명하다. 한편, 추사의 차에 대한 사랑을 얘기할 때 그의 유배지였던 제주도를 빼놓을 수 없다. 묶인 몸이 되어 한 잔의 차로 시름을 달래던 추사의 차향이 그가 머물던 적거지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9년 동안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한 추사는 그곳에서 초의선사를 비롯한 여러 차인과 차를 매개로 교류했으며, 차를 득도의 매개체로 삼는 다선삼매(茶禪三昧)의 경지에 이르러 추사의 차 글씨 중 백미로 꼽히는 ‘명선(茗禪)’과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추사 김정희의 영향으로 차 문화가 본격적으로 퍼진 제주도는 도순다원, 서광다원, 한남다원 등 총 142만 1,487m2(43만 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다원을 조성해 국내 차 산업을 이끌어오고 있다.

그 가운데 서광다원은 66만 1,160m2(24만 평)에 달하는 드넓은 부지에 각종 차나무 100만 그루가 자라고 있어, 사계절 싱그러움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서광다원이 펼쳐지는 길 초입에 국내 최초의 차박물관인 ‘오설록’이 있다. 동서양, 전통과 현대의 차 문화가 조화를 이룬 공간이자 자연 친화적인 휴식 공간으로, 제주도의 관광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찻잔을 형상화한 건물에 들어서면 차의 역사, 한국 차 문화 변천사, 차의 제다 과정, 세계의 차와 찻잔 등 유물 전시와 각종 영상물을 접할 수 있다.

3층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드넓은 다원을 시원스럽게 조망할 수 있다.


문의 추사 고택 041-339-8242, www.chusatotal.or.kr
추사 적거지 064-794-3089 서광다원 064-794-6600 설록차뮤지엄 오설록 064-794-5312



경남 하동 Ⓒ안수현


경남 하동
왕의 녹차, 천년의 향을 품다


하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녹차다. 야생차의 본향이자 신라 때부터 우리나라의 차 생산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신라 흥덕왕 때 당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공이 차 종자를 들여와 심은 이후 귀했던 차가 널리 퍼져 차 문화가 성행했다는데, 그때 차를 심은 곳이 바로 우리 차의 시배지, 지리산 쌍계사다.

쌍계사는 다인(茶人)들 사이에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절집 담장을 둘러싼 깊은 대나무 숲 속에 대바람 소리를 듣고 자라는 차밭이 있다. 차밭이라기보다 차나무 군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특히, 대나무 이슬을 받고 자란 죽로차(竹露茶)가 유명하다.
하동은 섬진강에 인접해 있어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토질 또한 수분이 풍부하고, 자갈이 많아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그뿐 아니라, 지리산 자락의 신선한 햇볕과 이슬을 머금고 자란 하동의 야생 찻잎은 맛과 품질 면에서 뛰어나고, 최고의 명품차가 이곳에서 생산되는데 이를 증명하듯 하동 녹차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에게 진상된 ‘왕의 녹차’로 널리 알려졌다.

하동 차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 정금리 도심마을에 위치한 도심다원이다. 도심다원 내 비탈에는 천년이 넘은 차나무가 있는데 한국의 최고령 차나무로 꼽힌다.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는 도심다원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야생 차밭도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재배지로서의 역사가 긴 만큼 차와 관련한 유적지나 명인, 이야기도 풍부하며, 화개장터 입구에서부터 쌍계사를 지나 신흥까지, 장장 12km 산야에 조성된 야생 차밭은 그 자체로 비경을 이룬다.


문의 하동 문화관광 1588-3186, tour.hadong.go.kr



전남 보성


전남 보성
광활하게 펼쳐진 초록 차밭, 싱그러움을 선사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시대부터 그 흔적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된 차 역사를 지닌 보성의 차밭은 호남정맥 분수령인 활성산(465m) 기슭에 주로 자리 잡고 있다. 보성읍과 율포 바닷가를 잇는 고갯길인 봇재 부근은 봇재다원, 대한다원 등 수십만 평에 이르는 차밭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대한다원은 아름다운 차밭으로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곳이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진초록 차나무 두둑과 산비탈에 키가 작은 차나무가 줄지어 빽빽이 들어서 있고, 삼나무 수만 그루가 광활한 차밭을 경호하듯 빙 둘러싸고 있다. 특히 아름드리 삼나무 진입로를 갖춘 대한다원은 흐린 날이면 안개가 자욱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대한다원과는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봇재다원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경이다. 대한다원이 산을 감싸고 있다면, 보성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봇재다원은 산을 펼치고 있는 셈인데, 산비탈을 푸르게 색칠하고 있는 녹차밭의 시원한 풍경이 장관이다.


문의 대한다원 061-852-4540, www.dhdawon.com
봇재다원 061-853-1117


에디터 조민진 포토그래퍼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선우

자료협조 설록차뮤지엄 오설록

참고도서 <손연숙의 차문화 기행>(손연숙 지음, 이른아침 펴냄)

참고자료<네이버 지식백과> 봇재다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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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9 Augus t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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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초원시명(蕉園試茗)〉, 종이에 담채, 28×37.8cm, 간송미술관


이인문(李寅文) 선동전다도(仙童煎茶圖). 간송미술관


이인문(李寅文) 누각아집도(樓閣雅集圖)


▲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의 '소나무 아래서 차를 마시다, 송하음다(松下飮茶). 18세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8폭 병풍 산정일장(山靜日長) 중 제5폭 부분도. 이인문(1745~1824) 개인 소장


 정수영 산처치자




「작설(雀舌)」


남국의 봄바람 부드럽게 이니
南國春風軟欲起


차숲 잎새 밑에 뾰족한 부리 머금었네
茶林葉底含尖觜


연한 싹을 가려내면 아주 신령스레 통하는 것
揀出嫩芽極通靈


그 맛과 품류는 옛 육우(홍점)의 『다경』에 수록되었네
味品曾收鴻漸經


붉은 싹은 잎과 줄기사이에서 뽑아낸 것
紫筍抽出旗槍間


봉병 용단 차 이름은 그냥 모양으로 본뜬 걸세
鳳餠龍團徒範形


푸른 옥병 속에 넣어 활화로 달여낼 제
碧玉甌中活火烹


게눈 같은 거품 생기며 솔바람 울리네
蟹眼初生松風鳴


산당 고요한 밤에 손들 빙 둘러앉아
山堂夜靜客圍坐


운유차 한번 마시면 두 눈이 밝아지네
一啜雲腴雙眼明


당의 집서 조금 맛보니 저이는 촌사람인가
黨家淺斟彼粗人


어찌 알리 설차가 그처럼 맑은 것을
那識雪茶如許淸


/ 『梅月堂詩集』卷之五, 「雀舌」.

매월당 김시습(梅月堂金時習, 1435-1493)





Brewing Tea on a Spring Evening (煎茶圖軸)




高仿系列之:明-文征明-品茶图 28cm×97cm


文徵明茶具十咏图轴 《茶具十咏图》轴,明,文徵明绘,纸本,墨笔,纵136.1cm,横26.8cm。


從款署中得知,此作品描繪的是:明嘉靖十三年穀雨前三天,蘇州的天池、虎丘等地正舉行茶葉品評盛會,作者因病未能參加,其好友送來幾種好茶,於是令小童汲泉、吹火、煮茶,自斟,自飲,自己品評茶葉之高下,自得其樂。


http://lydcr.lofter.com/?page=18&t=1435499962326



文徵明 惠山茶會圖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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