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8. 09:30ㆍ알아두면 조은글
제목: 한자의 탄생
저자: 탕누어
출판사: 김영사
출판일: 2015,1,17. (2쇄 2.26) 독서일 2015.4.11.
- 창힐은 황제(黃帝)의 사관 또는 고대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그는 머리에 눈이 네 개 있고 신명(神明)과 통하며, 위로는 괴성(魁星)의 둥글고 굽은 형세를 관찰하고 아래로는 거북의 등 껍데기 모양과 새 발자국의 형상을 살펴,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 갑골문은 청 광서제 25년(1899년) 국자감 쾌주 왕의영이 말라리아에 걸린 친척을 c치료하기 위해 용골(용골)을 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실제 용의 뼈가 아닌 흙 속에 묻혀 있던 동물들의 뼈였다. 거북 껍질이나 동물의 뼈에 점복의 기록을 새긴 중요한 사료인 것이다.
출토된 거북의 껍질과 짐승의 뼈는 10만 점이 넘었고, 문자의 수는 4,000 여 개에 달했다.
- 갑골문에서 시작하여 금문(金文)을 거쳐 전서와 예서, 해서, 행서로 발전하고, 상형에서 회의(會意), 지사(指事),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 등 육서(六書)라 불리는 다양한 조자(造字)를 통해 정련된 것이 한자(漢字)이다.
- 나를 아는 사람은 내 마음에 근심이 많다고 하고, 나를 모르는 사람은 내가 뭔가 구하고 있다고 한다. : 이 백.
- 형성자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의미와 속성을 나타내는 부호, 의부(意符)라고 부른다. 또 하나는 소리를 대표하는 성부(聲符)이다. 강(江), 하(河), 송(松), 백(柏) 같은 글자이다.
- 갑골문자의 형성자의 비율은 27.4 퍼센트에 그치지만 진대(秦代)의 소전(小篆) 단계에 이르면 형성자의 비중이 87.39 퍼센트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 이집트의 문자 탄생은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대략 3,500년 정도 존재하다가 약 1500년전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문자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살인자는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이교도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려 했다. 로마 제국의 강력한 힘에 의거해 이집트 문지를 폐지하고 24개의 그리스 자모에 6개의 이집트 자모를 더해 콥트(Copt) 문자를 만들었다. 그 후 11세기 이슬람 역시 기독교와 같은 정책을 펼침으로서 콥트어와 문자가 모두 사라졌다.
- 식고불화(食古不化): 옛 사람들의 지식과 학문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변화할 줄 모름.
-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은 저마다의 흔적을 남긴다. : 인디언.
- 농경에 있어서 노동 리듬의 근거가 식물의 생장 속도와 변화라고 한다면, 목축에서는 동물의 생장 속도와 변화가 노동 리듬의 분명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 적비성시(積非成是); 나쁜 것이 쌓여서 옳은 것이 되는 것.
- 매하유황(每下愈況); 돼지의 살이 찌지 않은 아래 쪽 다리로 내려 갈수록 살찐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다.
매황유화(每況愈下): 상황이 갈수록 나빠진다.
- 무릇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
- ‘분(奔: 달리다, 야합하다)자의 원형은 빠르게 달려가는 세 개의 발자국, 세 개의 다리를 형상화한 상형자이다.
- 피부에 부호를 새긴 최초의 장인은 바로 야훼였고 처음으로 새김을 당한 사람은 인류의 세 번째 인물인 아담과 하와의 큰아들 카인이다. 그는 인류 최초로 계획 살인을 한 살인자였다. 이에 아훼는 그의 얼굴에 씻을 수 없는 기호를 남겼다.
- 타자와 상대적인 ‘나’라는 주체는 사뭇 애매한 존재다. 우리는 시각 등 감각기관과 사고체계를 갖고 있고 6척에 달하는 물리적 구조를 갖춘 신체를 갖고 있다. 동시에 비 물리적이고, 아득하게 넓은 시공간의 유동적 본질과 침투적 본질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만물이 나로 인하여 존재하거나’ 또는 ‘만물이 나와 함께 존재하는’ 합일의 느낌이 ‘나’를 사방으로 도망쳐 다니는 무형의 원형질처럼 쉽게 경계를 짓지 못하고 있다.
- ‘필(筆)’자의 원형인 ‘율(律)’, 즉 사람이 붓을 들고 있는 모습, ‘서(書)’자는 붓을 들어 먹물을 묻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화(畵)’자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책(冊)’은 줄을 이용해 죽간의 표준 모양을 나타내고 있고, 중요한 서적인 ‘전(典)은 두 손으로 공경스럽게 죽간 묶음을 받치는 모습이다.
‘빼버리다’, ‘제거하다’의 ‘산(刪)’은 서책 옆에 칼 한 자루가 놓여 잇는 모습으로, 글자를 새기기 위함이 아니라 잘 못 쓴 부분을 깎아 내고 다시 쓰는데 사용됐다.
- 톨스토이는 인과 관계를 믿었다. 모든 우연, 한 순간의 모든 선택이 최종 결과에 참여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 역사의 규칙을 발견하고, 역사의 필연적 방향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미친 놈이 아니면 사기꾼이 분명하다. : 칼 포퍼.
- 먼지 진(사슴 鹿이 세 개 있는)은 과거에는 39획에서 지금의 15획(塵)으로 줄어들었고 공산당이 간화시켜 6획(尘)이 되었다.
- 고대 이집트 문자에는 세 가지 표기 방법이 공존했다.
가장 번거로운 것은 그리스 어로 Hieroglyphic로 칭하는 서체로 기념비나 무덤의 벽면에 사용되었다. 그 의미는 ‘신성함’이다. 이것은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쓰기 힘든 원형 서체로서, 일상적인 정보전달이 아니라 경건함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전시적 목적으로 사용됐다.
다음은 그리스 어로 Hieratic이라는 서체로 ‘신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로 파피루스 위에 종교적인 제문이나 찬미 시를 적을 때 사용했기 때문에 간화가 비교적 빠른 서였다.
마지막 서체는 Demotic으로 민간인들이 사용했고 비교적 늦은 시기에 만들어졌고 엉성했다.
- 중국에서도 소전과 예서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사용했던 이유는 진 나라의 대대적인 정복 행동과 엄격한 법령이 더 간화된 서체를 개발하여 일상적인 문서 작업에 대응할 수요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서(隸書: 노예같이 천한 일을 하는 사라도 이해하기 쉽도록 한 글씨)의 유래이자 이름인 것이다.
- 이사(李斯)가 태산의 바위에 새긴 모범적인 소전체 글씨와 동한(東漢)의 채옹(蔡邕)이 남긴 오경 석각,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의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
- 너무 요원한 목표는 목표가 아니라 사기이고, 의미있는 목표는 반드시 가까운 미래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 알렉산드로 헤르젠.
- 제스처가 사람보다 더 정교하다. : 밀란 쿤테라.
-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쫓는다. :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