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명강(김영안)

2017. 2. 8. 09:13알아두면 조은글

제목: 인문학 명강
저자: 강석주 외
출판사: 21세기북스
출판일: 2013,7,5. (4쇄 7.22)     독서일 2016.5.27

- ‘나는 누구인가(Who I am?)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How to liv?)에 대하여 끊임 없이 질문하도록 요구했다.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는가(What to do?)에 대해 늘 숙고 해야 한다.

- 지식은 바깥의 것이 안으로 들어 오는 것이지만 지혜는 안의 것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 법정.

- 서양 철학은 ‘분석의 철학’이고, 동양 철학은 ‘화해의 철학’이다. : 팡퉁메이(方東美)

- 무불경(無不敬: 세상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존경의 대상이다.): 예기.

- 돌처럼 그냥 존재하는 인간, 식물처럼 살아가는 인간, 동물처럼 느낄 수 있는 인간, 사람답게 이해하는 인간의 네 종류가 있다. : 샤를 드 부엘.

- 인간의 이상적인 기준과 실존적인 조건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을 유학에서는 ‘수양’이라 한다.

-  孔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 不知禮 無以入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 논어의 마지막 구절.
삼부지(三不知)

-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배워서 아는 사람, 고난을 통해 배우는 사람, 고난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

- 身退安愚分, 學退憂暮境. 溪上始定居, 臨流日有省.  <退溪>
몸이 물러나니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고 학문이 자꾸 퇴보를 하니 늙음이 걱정일러라.
시냇가에 비로소 거처를 정하고 흐르는 물가에서 날마다 반성을 하네.

- 憂中有樂, 樂中有憂. 昇化歸盡, 復何求兮.
근심 가운데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가운데 근심 있네,
자연의 조화를 타고 다하여 돌아가니 더 이상 구할 것이 무엇이 있으랴.

- OECD 조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 소득 수준은 34위인데 행복 지수는 103위이다.
심각한 불균형을 안고 있다.

- 누구든 존재와 죽음의 기술을 배우지 않고서 어떻게 살 수가 있겠는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쇼펜하우어는 인문학을 ‘고전 작가들에 대한 연구’라고 말했다. 고전을 일고 연구하는 것이 곧 인문학이라 한 이유는 고전을 통해서야 비로소 우리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율곡은 ‘학문’을 지금의 전공 지식과는 달리 ‘삶의 기술’로 정의했다.

-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 노릇을 하자면 ‘공부(學問)’을 해야 한다. ‘공부’라는 것은 무슨 남다른,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관계와 거래에서, 일을 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을 배우는 것일 뿐이다. <격몽요결> 서문.
(人生斯世, 非學問 無以爲人. 所謂學問者 亦非異常別件物事也. 皆於日用動靜之間 隨事各得其當而已)

-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다고 해서 불행해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는 자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 공자에게는 ‘네 가지’가 없다. ‘자절사(子絶四)’라 한다.
첫 번째는 ‘의(意)’이다. 사족(partial)인 욕망이나 트라우마가 없다. 두 번째는 ‘필(必)’이다.
의지로 미친 듯이 돌진하는 것이 없다. 세 번째는 ‘고(固)’이다. 반복되는 경향이나 패턴이 없다. 네 번째는 ‘아(我)’, 즉 자아나 성격이 없다.

- 유교에서는 자기가 가지고 잇는 내재적인 생명력을 최고조로 발휘한다는 뜻에서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 한다. 솔개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날뛰듯이, 인간이 자신의 생명에 감춰진 힘과 권능을 최고조로 발양하게 된다는 뜻이다.

- 윌 듀란트는 철학은 지혜, 또는 깨달음의 추구라고 정의했고, 지혜는 살아가는 기술이며 그 최종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했다.

- 재물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게 분배되지 않음을 걱정한다. (不患寡而患不均)
: <논어>

- 여행을 통해 다름을 통해서 나를 아는 겁니다. 여행은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 화엄(華嚴)은 잡꽃들의 세계입니다. 장미로 도배된 세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다른 꽃이라는 걸 전제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지향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자기 꽃을 피워야 한’'는 것입니다.

- 하늘이 명하는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 도라는 것은 잠시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벗어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보이지 않는 것에 조심하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한다.
가려진 데서 가장 잘 드러나고, 적은 것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신중히 노력한다.
희로애락이 나타나기 전의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나타나서 모두 상황에 알맞게 되는 것을 화(和)라 한다. 중은 천하의 큰 뿌리이고, 화란 천하의 어디를 가나 통하는 도리이다. : 중용.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見乎微. 故, 君子 愼其獨也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 사기(史記)는 주인공이 200여 명이고, 등장인물이 4000명이 넘는다.
사기는 난서(亂書:어지러운 책)로 불리울 정도로 읽기가 어려운 책(難書)이었다.

- 130권 중 115권 <조선열전> 기원전 108년 한 무제에 의해 고조선이 멸망한다.

- 참새(큰 기러기)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燕雀安知鴻鵠之志) : 진승.

- 세상을 잘 다스리는 정치의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이용해 이끄는 것이며,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는 것이며, 그 다음은 백성을 가지런히 바로 잡는 것이고,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 <시경(詩經)>은 원래 제목은 <시(詩)>였다. 311편중 305편만 전한다. 기원전 2세기경 한 무제 때부터 <시경>이라 불렀다. 경(경)은 원래 베틀에 세로로 걸어 놓은 실, 즉 날줄을 뜻하는데, 이것은 베틀을 짜는데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에서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것, 영원불변의 진리’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 첫째, 시는 마음으로 느낀 것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사는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준다. 셋째, 개인이 어떻게 세상과 조화롭게 소통하며 방종과 타락에 이르지 않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넷째, 사는 온갖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카타르시스작용을 한다. 다섯째, 사는 인간의 존재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다. 여섯째, 새, 짐승, 풀, 나무 등의 생리와 명칭을 알게 해준다.
(詩, 可以興 可以觀, 可以羣 可以怨. 爾之事父 遠之事君. 多識魚鳥樹草木之名) : 공자.

- 공자는 시경을 일러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다. 사무사는 세속에 찌든 인간들을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시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뜻이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 <모지서>

- 중국에는 <연산>, <귀장>, <주역> 세 가지 대표적인 역서가 있었는데, 오늘날 주역만 남아있다.

- 포(暴)는 ‘천을 말다’라고 할 때는 ‘폭’이라고 읽고, 갑작스런 행동을 뜻할 때는 ‘포’로 읽는다.
폭군(暴君), 폭력(暴力)은 원래는 포군, 포력으로 읽어야 정확한 발음이다.

- <산해경>의 <해경>에 황제는 중원의 지배자였으니 변방의 치우의 도전을 받아 전쟁을 한다. 황제파 황제-응룡-발(가뭄의 신)과 치우파 치우-풍백(바람의 신), 우사(비의 신)의 전쟁은 황제의 승리로 끝났다.

- 사람은 죽으려고 하는 본능인 타나토스(Tanatos)적인 욕망이 잇고, 살아가려 하는 욕망인 에로스(Eros)적인 욕망 두 가지가 있다. 프로이드.

- 이 세상을 지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 인간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인카네이션(incanation), 즉 육화(肉化) 이다.

- 불교에서는 인간을 ‘비기(悲器)’, 즉 ‘슬픔의 그릇’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은 정말 슬픈 존재이다. 어떤 욕망이든 열심히 충족시키려 해도 잘 충족되지 않는다.

-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생명 본질은 올곧다. (人之生也直) : <논어>

- 방외인은 아미지만, 방의 경계에서 들어 가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면서 방의 주변을 맴돌며 이 세상의 비리를 고발하고 정의 관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경계인간’이라 한다. 사회적 용어로는 ‘마지널맨(Maginal man)’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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