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사(김영안)

2017. 2. 8. 09:06알아두면 조은글

제목: 서예사
저자: 주준걸.  역자: 곽노봉 외
출판사: 다운샘
출판일: 2016,9,9.     독서일 2016.11.20.

- 갑골문자는 최초의 서예작품이고, 갑골문을 새긴 주술인은 최초의 서예가라 할 수 있다.

- 상. 주 나라는 청동기 시대이다. <종정문>은 곧 청동기의 명문으로 이를 ‘금문(金文)’이라고도 부르며, 고문의 대전(大篆)에 속한다.

- <석고문(石鼓文>>은 당 나라때 섬서성 봉상현에서 발견된 것으로 각석(刻石)의 종주라 일컫는다. 문자는 10개의 북 모양 돌에 새겼기 때문에 석고문이라 부른다.

- 진 나라 소전(소전)은 필획이 마치 철과 돌과 같고 글씨는 말아 움직이는 것과 같다. 서체는 근엄하고 공정하면서 예스러우며 두터운 기운이 스스로 존재한다. 용필은 둥글고 윤택하며, 골기가 풍성하고 고르며, 모나고 둥근 것이 묘하게 뛰어났다. 그러므로 ‘옥저전’이라 일컫는다.

- 진 나라의 글씨에 여덟 가지 서체가 있었으니, 첫째는 대전, 둘째는 소전, 셋째는 각부(刻符), 넷째는 충서(蟲書), 다섯째는 모인(摹印), 여섯째는 서서(署書), 일곱째는 수서(殳書), 여덟째는 예서(隸書)라 일컫는다. : <설문해자.서>

- 진 나라에서 성행했던 서체는 전서이고, 한 나라에서 통용했던 서체는 예서이다.

- 한 나라가 일어나자 초서(草書)가 있었다.(韓興有草書) : <설문해자.서>

- 장초서는 즉 예서를 빠르게 한 것이다,(章草書卽隸書之捷): 장회관 <서단>

- 전서를 초솔하게 쓴 것이 곧 초전(草篆,古隸)이다. 둥글게 전환하는 것을 평평하고 곧게 변화시켜 이후 한예로 발전하였고, 다시 파책과 기복을 더해 팔분서(八分書)가 되었다.

- 초서는 장초서, 금초서(今草書), 광초서(狂草書)로 발전했다.

- 서예사에서 해서(楷書). 행서(行書)는 영향이 컸던 서체이고, 위진남북조 시기에 성취가 이루어졌으며, 종요. 왕희지, 왕헌지로 말미암아 기초가 다져졌다.

- 서예는 마음의 그림이다(書, 心畵也>: 양웅.

- 글씨의 형체를 만듦은 모름지기 그 형태를 들여야 한다. 마치 앉은 것 같고, 걸어가는 것 같고, 나는 것 같고, 움직이는 것 같고… 종횡으로 형상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비로서 서예라 일컬음을 얻을 수 있다. : 채옹 <필론>
(爲書之體, 須入其形. 若坐若行, 若飛若動….縱橫有可象者, 方得謂之書矣)

- 붓의 머리를 감추고 꼬리를 보호하면 힘은 가운데 있고, 붓을 내려 쓰면 필획의 살갗은 아름답다. 그러므로 필세가 오는 것을 그칠 수 없고, 필세가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오직 붓이 부드러우면 기괴함이 여기에서 생긴다. : 채옹 <구세>

- 서예라는 것은 한산하게 하는 일이다. 글씨를 쓰고자 하려면, 먼저 회포를 풀어 한산하게 하여 뜻에 맡기고 성정을 멋대로 한 후에 글씨를 써야 한다. 채옹<필론>
(書者, 散也. 欲書先散懷抱, 任情恣性, 然後書之)

- 종요(鍾繇, 151-230)에게 삼체가 있었으니, 첫째는 명석서(銘石書)로 가장 묘하다. 둘째는 장정서(章程書)이니 비서로 전하는 것을 소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셋째는 행압서(行押書)로 서로 안부를 묻는 것이다.

왕희지(王羲之, 307-365)는 종요에서 나와 뒤집는 것을 바꿔 굽게 했고, 팔분서 필세를 감소하여 없앴으며, 용필은 내연법을 숭상하여 모나게 꺾는 것을 운용하였으니, 이른 바 왕희지의 한번 밀쳐 곧바로 내려 긋는 ’일탁직하(一拓直下)’의 법이다. ; 호소석.
- 초서와 행서가 섞인 서체는 마치 맑은 바람이 소매에서 나오고, 밝은 달이 품에 들어오는 것과 같다 (草行雜體, 如靑風出袖, 明月入懐)

- 당 태종이 ‘이왕(왕희지,왕헌지)’의 글씨를 매우 좋아했는데, <난정서>가 변재 스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감찰어사 소익을 파견해 속임수로 이를 취해 ‘소익잠난정’이란 고사가 나타났다.
이세민은 <난정서>를 조모. 한도정. 풍승소. 제갈 정등 4명에게 몇 본을 임서 하도록 했고,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 등에게도 임서 하도록 했다. 원본은 이세민과 함께 순장하였다.

- 당 나라 통치자들이 남조에서 유행했던 둥글게 꺾어 흐르는 듯 아름다운 ‘이왕’풍을 제창함으로 북비는 억압을 받았다. 청 나라 중엽에 이르러 북비(北碑)가 출토되었다,
북비의 웅강한 기질과 생명력이 풍부한 서체는 완원. 등석여. 포세신. 조지겸. 강유위등이 찬미하였다.

- 평저하고 부드럽게 조화된 곳은 우세남과 같고, 아름답고 굳센 곳은 저수량과 같으며, 또한 구양순의 험준하고 가파른 자태는 없다. : 양수교 <평비기>

- 구양순(歐陽詢, 557-641) 은 벼슬이 태자솔경령이라서 세칭 ‘구양솔경’이라하며, 그의 글씨를 ‘구체’ 또는 ‘솔경체’라 일컫는다. 구양순의 아들 구양통은 ‘소구’라 한다.

- 우세남(虞世南, 558-639)는 벼슬이 비서감영흥공이라서 ‘우영흥’이라 불렀다.
‘우세남은 흰 두루미가 구름을 빙빙 동고, 사람이 붉은 정수리를 우러르는 것과 같다. :포세신.

- 저수량(저수량, 596-658)의글씨는 ‘글씨에서 금이 나오고, 행간은 옥같이 윤택하며, 필법은 온아하고, 아름다움은 사방에 많다’고 <당시평전>에서 평하고 있다.

- 후세 사람들이 글씨를 논할 때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 육간지 모두 이론이 있으나 장욱에 이르러서는 비난과 단점이 없었다.: <당서>
장국의 초서, 이백의 시가, 배민의 검무를 삼절이라 일컬었다.

- ‘안근유골(安筋柳骨)이란 안진경의 근력과 유공권의 골력을 말한다.

- 시는 두보, 문장은 한유, 글씨는 안진경, 그림은 오도자에 이르러 고금의 변화와 천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마쳤다. ; 소식.

- 유득공(778-860)은 용필은 마음에 있으니 마음이 올바르면 글씨가 올바르다.

- 필력이 좋은 것은 골이 많다, 골이 많고 육이 적은 것을 근서라한다 : 위부인 <필진도>
(善筆力者多骨, 多骨微肉者謂之筋書)

- 해서는 점과 획으로 형질을 삼고 전환하는 것으로 성정을 삼는다. 초서는 점과 획을 성정으로 삼고 전환하는 것을 형질로 삼는다. 초서는 전환함이 어그러지면 글씨를 이룰 수 없지만, 해서는 점과 획이 어그러져도 오히려 문자를 기록할 수 있다. : 손과정 <서보>

- 전서는 완연하면서도 통함을 숭상하고, 예서는 정미하면서도 긴밀하고자 하며, 초서는 흐르면서도 유창함을 귀히 여기고, 장초서는 법식이 있으면서도 간편함을 힘쓴다.

- 글씨를 쓰는 데 어그러짐이 있고, 합함이 있다. 합하면 유창하고 아리따우며, 어그러지면 시들고 성글다.

- ‘오괴오합(五乖五合)’
첫째 정신이 기쁘고 일이 한가로운 것이 첫 번째 합함이요, 은혜를 느끼고 아는 것을 따르는 것이 두 번째 합함이요. 시기가 온화하고 기운이 온윤한 것이 세 번째 합함이요. 종이와 먹이 서로 발하는 것이 네 번째 합함이요. 우연히 글을 쓰자고 함이 다섯 번째 합함이다.
마음이 급하거나 몸이 머무는 것이 첫 번째 어그러짐이요. 뜻을 어기고 형세를 굽히는 것이 두 번째 어그러짐이요. 바람은 건조하고 날이 더운 것이 세 번째 어그러짐이요. 종이와 먹이 알맞지 않는 것이 네 번째 어그러짐이요. 정신이 나태해지고 손이 막히는 것이 다섯 번째 어그러짐이다. 어그러짐과 합함의 사이에서 우열은 서로 차이가 난다. 때를 얻음은 그릇을 얻음만 못하고,
그릇을 얻음은 뜻을 얻음만 못하다.

- 서예 실천에서 점. 획, 선의 곡직. 조윤. 엄류. 경질. 신속. 지중. 골력. 주려 등 많은 대립적 요소의 어긋남과 합함에 대한 변화와 통일이 있어야 한다.

- 대저 글을 쓰려고 하면, 먼저 먹을 갈면서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조용히 하며 미리 자형의 크고 작음, 눕고 우러름, 평영하고 곧음, 떨치고 움직이는 것을 생각하여 근맥이 서로 연결되도록 하는 뜻이 붓 앞에 있은 연후에 글씨를 써야 한다; 왕희지

- 매번 한 글자를 쓸 때마다 모름지기 여러 가지 필의를 운용한다.

- 서예의 배움은 법에 있고, 묘함은 사람에게 있다. 법은 사람마다 전할 수 있으나 묘함은 반드시 흉중에서 홀로 얻는 것이다. 묘함은 법에 있지 않다. : 조보지 <계조집>

- 글씨를 안다는 것은 붓을 꽉 잡는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붓이 가는 바를 크게 들어 법도를 잃지 않음에서 얻어진다. : 소식.

- 송 나라 사대가는 소식, 황정경, 미불, 채양을 가리킨다.

- 글씨를 쓰는 법에서 학식이 얕고, 본 것이 협소하며, 배움이 부족한 세 가지가 있으면 끝내 오묘함을 다 할 수 없으니, 나는 마음. 눈. 손이 이를 얻었다. : 소식(1037-1101),

- 필치는 둥글고 운치는 뛰어나며, 문장으로 천하에 묘하고, 충의는 해와 달의 기운을 꿰뚫어 송나라에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으로 마땅히 제일로 추대해야 할 것이다.
: 황정경(1045-1105)의 소식에 대한 칭송.

- 원 나라 초기에 사대부들은 안진경 글씨를 배워 이전 사람이 흉내 낸다고 하나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집오리와 같았다. 대덕(1297-1307)과 연우(1314-1320) 연간에 글씨를 잘 쓴다고 일컫는 자는 반드시 파서의 등문원, 어양의 선우추, 오흥의 조맹부로 귀속된다. 조맹부가 나옴으로부터 비로소 진 나라의 유명한 글씨를 알았을 뿐이다. : 우집 <논서>

- 조맹부는 원 나라 대가로 ‘조체’를 창조해 일대 서풍을 열어주었다. 청 나라 건륭제는 조맹부의 글씨를 매우 숭상해 청나라에 보급시켰으며, 조맹부, 선우추를 ‘이웅(二雄)’으로 불렀다.

- 하루는 법첩을 임서하고, 하루는 마땅히 모색을 구하였다 (一日臨帖, 一日應請索) : 왕탁.
옛 것을 법으로 심는 것과 자유로운 모색을 서로 결합하는 것으로 방종과 수렴을 보완하여 상생시킨 특수한 방법이다.

- 차라리 졸할지라도 공교하게 하지 말고, 차라리 미울지언정 아리땁게 하지 말고, 차라리 지리할지언정 가볍고 매끄럽게 하지 말고, 차라리 진솔할지언정 안배하지 말라. : 동기창.
(寧拙毋巧, 寧醜毋媚, 寧支離毋經滑, 寧直率毋安排)

- 힘은 두텁고 생각은 가라앉으며, 근은 흔들고 맥은 모인다. 강유의
(力厚思沈, 筋搖脈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