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8. 09:03ㆍ알아두면 조은글
제목: 명작순례
저자: 유 홍준
출판사: 눌와
출판일: 2013,11,15. (3쇄 12.15) 독서일 2014.8.29.
- 매사에 교육과 훈련은 모방에서 시작한다. 좋은 것을 따라하는 모방은 결국 경험의 축적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만의 눈을 갖게 된다.
- 이정의 난에는 전아(典雅)함이 들어 있고, 능호관 이인상의 난에는 강직(강직)함이 있다. 표암 강세황의 난에는 향기가 서려 있는데, 수월헌 임희지의 난에는 춤사위가 있다. 소호 김응환은 부드러운 춘란을 많이 그렸는데, 운미 민영익은 기운찬 건란(建蘭)을 즐겨 그렸다. 추사 김정희는 예서(隸書)법으로 난을 그려 고졸한 멋이 있고, 흥선대원군은 거기에 초서(草書) 필법을 더하여 날렵한 자태를 뽐낸다.
- 통일 신라 말기, 문경 봉암사를 세운 지증대사는 ‘먼저 깨우친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배운 것을 나누어 주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라는 나뭇꾼의 말에 깨우쳐 대중과 함께 했다.
- 절벽이라 난초도 꺼꾸로 자랐고
돌에 막혀 대나무도 드문드문하네.
절개란 힘든 일이지만 평안할 때나 험난할 때나 변함이 없고
절벽에서 뿜는 향기는 여전히 그윽하다네.
(崖懸蘭亦到 石且竹從疎 苦節同夷險 危香郁自如) :조광조.
- 문인들은 대개 한 분야에서만 장기를 발하면서 일인일기(一人一技)의 일과예(一科藝)라는 기풍이 일어났다. 학포 양팽손은 산수, 두성령 이암은 강아지, 연천자 신잠은 대나무 그리고 신사임당은 조충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충암은 새 그림을 잘 그렸다.
- 조선 시대 도화서에서 화원을 뽑는 시험을 취재(取才)라고 하는데 취재에서는 대나무 잘 그리는 것을 제일로 쳤다. 두 과목을 선택하여 시험을 치르면서 대나무에서 통(통)을 받으면 5점이고, 산수는 4점, 인물과 영모는 3점, 화초는 2점이었다.
- 선조는 임진왜란을 겪은 무능한 임금으로 평하지만 문인들은 선조 연간을 ‘목릉성세(穆陵盛世)’라며 문화적 성숙을 칭송한다. 목릉은 선조의 능호이다.
- 글을 쓰면 아는 것 모르는 것 죄다 드러나니
쓰려고 하지만 아직 쓰지 않을 때가 좋구나.
(書以出紛紛知不知 吾樂子欲書未書時)
: 간이당 최립 <욕서미서>
- 말하는 것이 입이 아니라 손가락에 나타나 있고,
듣는 것은 귀가 아니라 맞잡은 손에 나타나 있네.
(語者不形於口而形於指 聽者不形於而而形於拱): 간이당.
- 계(契/禊)는 사대부들이 친목을 위해 시와 술을 즐기며 어울린 모임으로 수계(修契)라고도 한다. 역사적 유래로는 4 세기 동진의 왕희지가 소홍 난정에서 41명의 명사들과 어울린 난정수계(蘭亭修契), 8 세기 다 나라 백거이를 중심으로 한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 12세기 송 나라 사마광을 중심으로 한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등이 있다.
- 조선 회화사에는 3대 기인이 있다. 17세기 인조 때 연암 김 명국, 18 세기 영조 때 호생관 최북, 19 세기 고종 때 오원 장승업이다.
- 1636년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갈 때 연암을 데려간 것은 탁월한 선발이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일본 집에는 다다미 한 장 크기의 ‘도코노마(床間)’라는 공간이 있어 그림이나 글씨를 걸고 그 아래 꽃꽂이를 장식하는 것이 집안 장식의 정석이다.
연암은 한 화원이 두 번 간 유일한 화원이다.
-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리시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 고야
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 듯이 있거라. : 공재 윤두서의 한글 시조.
- 문장가에는 삼품이 잇는데 신품(神品), 법품(법品), 묘품(妙品)이 그것이다
화가에 비유해서 말한다면 김명국은 신품에 가깝고, 이징은 법품에 가깝고, 윤두서는 묘품에 가깝다. 학문에 비유하자면 김명국은 태어나면서 아는 자(生而知之), 윤두서는 배워서 아는 자(學而知之), 이징은 노력해서 아는 자(困而知之)이다.
이를 서예가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김명국은 봉래 양사언, 이징은 석봉 한호, 윤두서는 안평대군 이용에 해당된다.
김명국의 폐단은 거친 데 있고, 이징의 폐단은 속됨에 있고, 윤두서의 폐단은 작음에 있다.
작은 것은 크게 할 수 있고, 거친 것은 정밀하게 할 수 있으나 속됨 것은 고칠 수가 없다.
김명국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며, 윤두서는 배울 수 있으나 이룰 수는 없고, 이징은 배울 수 있고 또한 가능하다. : 남태응의 <청죽화사>
- 내 시와 자네 그림을 바꿔봄세
경중이 어이 값 매기는 사이로 따지겠는가
시는 가슴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니
누가 쉽고 누가 어려운 지 모르겠구나.
(我詩君畵換相看 輕重何言論價問 詩出肝腸畵揮手 不知誰易更誰難) 사찬의 시와 겸재의 그림.
- 대개 화가는 두 파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세속에서 원법(原法)이라 일컫는 것으로 곧 나라에 이바지하는 화원의 화법이다. 또 하나는 유법(儒法)으로 신운을 위주로 하는 선비의 그림이다. – 원법의 폐단은 정신이 드러남이 없어 진흙으로 빚어 놓은 것처럼 경직되었다는 점이며, 유화의 폐단은 까마귀나 흑돼지처럼 모호하고 거칠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현재 심사정의 그림이 제일이라고 추앙하고, 어떤 사람은 공재 윤두서의 그림이 제일이라고 추숭하는데, 그림이 온 나라에 알려진 것은 비슷하다.
: 이규상 <일몽고>의 <화주록>
- 춘화는 음화(淫畵)와 다르다. 외설과 예술의 차이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항상 문제지만 그 잣대는 역시 작품의 예술성 여부에 있다.
유럽 중세의 춘화는 나이브 페인팅에 가까운 순진한 것이고,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춘화는 궁중화의 연장선에 있으며, 프랑스 혁명기에는 일러스레이션이 많다. 19 세기 리얼리즘 시대에는 귀스타브 쿠르베가 레즈비언을 그린 <게으름과 음탕>, 여자성기를 클로즈업한 <세기의 기원>이라는 작품이 있고, 20 세기에는 피카소, 고갱, 에곤 실레,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이 있다.
- 일본의 우키요에 춘화는 한결같이 남녀 모두 옷을 입고 있으며 과장된 성기를 노출 시키고 잇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 춘화 역시 갖가지 변태적 장면이 요란하게 연출되고 있다. 반면 조선의 춘화는 서정성과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실내 가구와 집기들의 묘사나 자연 풍광이 그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그 표현 또한 대단히 정밀하다.
- 한 시대의 사회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성의표현이다. :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 건곤일회첩(신윤복), 운우도첩(김홍도)
- 그림에는 그것을 아는 자, 사랑하는 자, 모으는 자가 있다. 한 갓 쌓아두는 것뿐이라면 잘 본다고 할 수 없다. 본다고 해도 어린 아이가 보듯 하고 벙어리가 웃는 듯한다면 칠해진 것 이외에는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니 아직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해도 오직 붓, 채색, 종이만을 취하거나 형상의 위치만을 구한다면 아직 안는 것은 아니다. 안다는 것은 형태와 법도는 물론이고 깊은 이치와 조화를 잘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림의 묘는 사랑하는 것, 보는 것, 모으는 것의 겉 껍질 같은 태도가 아니라 잘 아는데 있다.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 갓 모은 는 것이 아니다. : 석농 김 광국의 <석농화원>의 유한준의 발문.
- 서재에는 축 하나 정도만 거는 것으로 족하다. 때로는 바꾸어 걸어 여름 봄에는 추경. 동경. 가을 겨울에는 하경. 춘경을 택하고 산에 살고 있으면 수경, 물 가에 살고 있으면 산경을 걸어야 한다. 축 아래로는 작은 탁자를 놓고 작은 괴석이나 작은 화분을 하나 놓으면 된다.
그림을 양쪽 벽면에 마주 거는 것은 심히 속된 것이다. 벽에는 여백을 두어야 한다.
<산림경제>의 ‘懸畵法’
- 감상은 잘 하되 수장을 못하는 이는 가난하되 눈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 박지원<筆洗說>
- 난초를 치는 법은 예서를 쓰는 법과 가까워서 반드시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있은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조희룡 무리들이 나에게서 난 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을 그리는 법식 한 쪽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문자향이 없기 때문이다. 추사.
- 산을 그리면서 진짜 산처럼 그리니
진짜 산이 그림 속 산과 같네.
사람들은 진짜 산을 좋아하지만
나만은 그림 속 산을 사랑한다네.
(畵山如眞山 眞山如畵山. 人皆愛眞山 我獨愛畵山) : 북산 김수철 <매우행인도>의 화제
- 일호 남계우는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라고 불릴 때, 몽인 정학교는 괴석을 잘 그려 ‘정괴석’을 불렸다.
- 그림 중에는 난을 그리기가 가장 어렵다. 난초 그림의 뛰어난 품격이란 형사(형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지름길이 잇는 것도 아니다. 또 화법만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열심히 많이 그린 후에야 가능하다. – 아무리 9천9백9십9분에 이르렀다고 해도 나머지 1분은 원만하게 성취하기 어렵다.: 석파 흥선대원군<난화첩>에 추사 발문.
- 석파의 난은 대단히 개성적이다. 난초를 그리는 법에 의하면 입은 사마귀 배처럼 불룩하다가 쥐 꼬리처럼 뻗으라고 했다. 이를 ‘당두(螳肚)에 서미(鼠尾)’라고 했는데, 석파의 난초 잎은 당두가 짧고 야무진 반면 서미가 맵시 있게 뻗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 사란작의(寫蘭作意): 난을 그리면서 뜻을 일으킨다.
희기사란(喜氣寫蘭): 기뻐하는 기운으로 난을 그린다. : 석파의 문자도장.
- 1918년 ‘서화협회’를 심전 안중식이 결성해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 무화재청은 50 년 이상 된 유물은 등록문화재 심사 대상에 올리고, 100 년 이상 된 유물 중에서 보물. 사적 등을 지정하며 그 중 뛰어난 것을 국보로 승격시킨다.
회화 중에서 현재 국보로 지정 된 그림의 주인공은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 다섯 명뿐이다.
- 책 중에서도 기독교와 불교의 경전은 인쇄와 장정에 갖은 정성을 다하였다.
불경은 인도에서 처음 만들어진 불경은 나무 껍질에 썼다고 해서 패엽경(貝葉經)이라 불렀다.
8 세기에 목판 인쇄본이 등장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석가탑에서 출토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구광정대다리니경>이다.
- 도가 있어도 행하지 못한다면 술에 취하는 것만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면 잠을 자는 것만 못하네.
선생은 술에 취해 살구꽃 그늘에서 잠들었는데
세상에 이 뜻을 아는 사람 없다네.
(有道不行不如醉 有口不言不如睡 先生醉睡杏花陰 世上無人知且意) : 이기 <취수선생 화상찬>
- 한양 정남쪽 문을 숭례문이라고 하는 데, 양녕대군이 현판 글씨를 썼으며 민간에서는 남대문이라 부른다. : 이수광<지봉유설>, 이긍익<연려실 기술>
숭례문 편액은 곧 신장(신숙주의 아버지)의 글씨로 깊이 뼈 속까지 치고 들어 갔으며 … 추사<완당전집>
숭례문 글씨는 신장 또는 양년대군의 글씨로 전해 왔는데 숙종 때 문을 수리하다 보니 대들보에 유진동의 글씨라고 적혀 있어 이제까지 구전으로 전한 것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 남태응 <청죽만록>
- 봉래 양사언은 안평대군,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시대 4대 명필로 꼽히고 있다. 안평대군은 유려하고 격조 높은 행서(行書), 한호는 정확하고 뚜렷한 해서(楷書), 김정희는 강렬한 개성의 추사체로 이름이 높았다면, 양사언은 거칠 것 없는 호방한 초서(草書)가 특기였다.
- 혼이 담기지 않은 작품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은 에스프리(esprit)이다.
-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옵소서
밤비에 새잎 나가든 나인가 여기소서. : 홍랑
묏버들 꺾어 천 리 먼 임에게 보내노라
나를 위해 뜰 앞에 심어 놓고 보소서
행여 밤비에 새 잎 돋으면 알아 주소서
초췌하고 수심 어린 눈 섭은 첩의 몸임을
(折楊柳寄與千里 人爲試向庭前種 須知一夜新生葉 憔悴愁眉是妾身): 고죽 최경창 <飜方曲>
- 여성 한글 글씨는 언문 내간체라고 하는 편지 글씨체가 있고, 궁체라고 해서 멋지게 공들인 글씨가 있다. 그러나 홍랑의 글씨는 그 어느 것과도 다르다. 필획의 굵기에 변화가 없어 정중한 맛이 담겨 있다. 그래서 소박하고 애틋한 분위기가 살아난다.
- 세상에는 한석봉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업지만 추사를 아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선조 연간에 려말 선초부터 유행하던 송설체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당시 명필인 한석봉은 이를 왕희지체로 전환시킨 장본인이다. 송설체는 균정미(均整美)가 있는 반면에 유약한 면이 있는데다 근 200년 유행을 하다 보니 글자가 판에 박힌 듯 변화가 없었다. 이에 서체의 변혁을 요구하는 시점에서 고전적인 왕희지 글씨를 배운 한석봉이 등장한 것이다.
- 1583년 선조 16년 41세의 석봉은 선조에게 <해서 천자문>을 쓰라고 명을 받았다. 이 글씨는 임짐왜란이 끝나고 1601년 궁중에서 목판으로 간행 되었다. 이것이 서예교과서인 <석봉 천자문>이다. 55세에는 <초서 천자문>도 썼다.
- 동국진체는 옥동 이서와 그의 벗인 공재 윤두서가 시작하여, 공재의 이질인 백하 윤순이 이어받았고, 백하의 원교 이광사에서 완성되었다.
- 백하는 전적으로 글자의 구성을 위주로 하고, 원교는 전적으로 획을 위주로 하였다. 백하는 방법(방법)보다 원법(원법)을 즐겨 구사하고, 원교는 원법보다 방법을 방법이 많다. 백하의 글씨는 자태가 좋고 원교의 글씨는 기세가 좋다. .. 그래서 백하는 초서라 하더라도 원교는 비록 해서라도 반드시 우울한 심기를 떨치듯 삐뚤다. : 이 규상 <서가록>
- 그대는 집 밖으로 행하고
나는 집 안에 앉아 있네.
집 밖엔 무엇이 있던가.
집 안에는 원래 불기운이 없다네.
(君從宅外行 我向宅中坐 宅外何所有 宅中元无火): 초의 대사.
- 십장생이란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열 가지 경물과 동식물로 자연에선 해, 달, 산, 내, 식물로는 대, 소나무, 영지, 동물로는 거북, 학, 사슴 등을 일컫는다.
- 창덕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낙선재(樂善齋)라는 현판은 추사의 친구이기도 한 섭지선의 글씨이고 주련은 추사의 스승 옹방강의 글씨다. 정문에 걸린 <장락문(長樂門)>은 흥선대원군이 쓴 것으로 중후함과 멋이 가히 감동적이다.
- 어보는 왕실에서 제작한 의례용 도장이다. 왕세자로 책봉되면 ‘왕세자인’, 왕비로 받아들여지면 ‘왕비지보’라는 도장을 만들어 주었다. 조선 왕실에 어보 366과를 제작하였고 322과가 전한다. 어보는 기본적으로 거북이나 용 모양의 손잡이에 끈이 달려 있는 도장이다.
- 국새는 왕명과 외교문서에 찍는 인장으로 국왕의 상징이다. 중국에서는 진시황이 국새를 화씨옥으로 만든 뒤, 옥새는 황제의 상징이 되었고 제후격인 왕의 국새는 금인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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