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영혼의 휴식을 주는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2015. 10. 4. 18:38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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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展

 

영혼의 휴식을 주는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7.11(토)-10.4(일) 한가람미술관 1, 2전시실

 

처음엔 만화인 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미소를 지닌 모나리자를 뚱뚱하고 귀여운 소녀로 만들었으니 누가 그걸 진지한 그림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가만, 내가 방금 ‘진지한’ 이라고 했나?

그림이 진지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깨진 지가 언제인데 여기서 또다시 그 수식어를 끄집어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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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한 장면이 캔버스에 옮겨진 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만화와 회화를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선입견은 한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신발 밑창에 들러붙은 껌처럼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떼어내려면 온도를 낮추어 굳어버리게 만들거나 시간이 지나 닳아 없어지게 만들거나 알코올 같은 특수 용매가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보테로의 그림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촌스러운 그림’, ‘바로크적인 키치’ 등으로 폄하되었다. 또한 대중적 인기에 비해 그의 그림에 대한 학술 서적이나 비평문도 별로 없었다.

 

그의 그림이 본격적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 독일에서부터다.
독일 비평가들이 보테로의 그림을 ‘사회를 바라보는 심술궂은 반어법’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정치인, 귀족, 부르주아 계급을 맹한 눈동자와 뚱한 표정을 지닌 비만한 사람들로 그렸으니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지배계급만 그렇게 그린 게 아니다. 그의 그림에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묘사된다.

사람만 그런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말, 개, 소,고양이 등의 동물도, 포도나 과일 등을 그린 정물도, 기타나 의자도, 심지어 나무나 꽃도 뚱뚱하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서 ‘심술궂은 반어법’이나 ‘지배계층을 향한 비판적 시선’을 운운하는 건 좀 억지스럽다. 대다수의 전문가는 그냥 재미있기만 한 그림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관람객을 무장해제 시키는 코드는 웃음!

 

전문가들은 그의 그림을 키치로 분류하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지만, 보테로는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에 속한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 앞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당대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몸매가 아닌, 마치 고무풍선에 바람이라도 불어넣은 듯 부풀려진 그림 속 인물들 앞에서 사람들은 무장해제된다.

그렇다고 그 웃음이 비웃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지함’을 벗어 던지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걷어낸 그림 속 인물들은 곧장 관람객의 마음을 열어젖힌다. 그건 관람객이 그림의 의미를 찾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술사의 맥락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징과 의미, 형식미, 양식적 특성, 역사와 사회적 맥락 등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그림도 아닐뿐더러 심오한 철학이나 미학적 용어를 써야만 설명할 수 있는 그림은 더더군다나 아니라는 걸 대중들은 금방 알아 차린다. 친근하고 편안하며 재미있는 그림. 현실적인 대상이지만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 무엇보다 만지고 싶고 먹고 싶어지는 그림. 예술작품이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는 또 무어란 말인가.

 

 

The President 1989

 

 

페르난도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났다. 콜롬비아는 우리에게는 낯선 나라다. 남미의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페루, 브라질과 면해 있고 북미와 남미를 이어주는 가늘디가는 파나마를 지나 바로 연결된 나라라는 사실도 지도를 찾아보고 확인해야만 할 정도다.

기껏해야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쓴 마술적 사실주의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나라라는 정도의 상식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인 듯 사실이 아니고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면서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준 마르케스의 소설과 보테로의 그림이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보테로의 미술 입문 과정은 일반적인 노선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으나 엉뚱하게도 투우사 양성 학교를 졸업했다. 미술을 배우지도 않은 상태에서 16세에 메데인 미술 연구소에서 개최한 그룹전에 두 점의 수채화를 출품한 것을 계기로 미술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19세에 첫 개인전까지 치른다. 피렌체와 보고타에서 미술학교에 등록하기도 했지만 그가 정작 미술을 배운 곳은 학교가 아니라 거장들의 작품이 모여 있는 미술관이었다.

1950년대를 휩쓴 추상미술이나 젊은 미술가들이 미술의 출발로 삼던 피카소나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그는 일찍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이 미래로 향할 때 그는 외려 과거로 눈을 돌린 셈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파울로 우첼로, 벨라스케스와 뒤러 등 자신을 매료시킨 과거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프레스코에 감탄하면서 연구했다. 그들의 공간을 구성하는 법과 완벽한 형태, 절제된 화면과 신중하게 선택한 색채들,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신비로운 분위기 등을 연구하고 손으로 만져질 듯한 조형미에 몰두했다.

보테로의 그림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점 원근법을 따르지도 않는다. 마치 중세의 그림처럼 그는 인물의 크기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한다. 한 화면에서 여자는 거대하고 남자는 아기처럼 작게 그리기도 한다. 커다란 몸뚱이에 비해 발은 또 어찌나 작은지 그 발로 제대로 서 있을 수나 있는지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당시 젊은 미술가들은 그것을 매우 생소하게 느꼈을 것이고 보수적이며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 외부의 비판적인 시선을 무시하고 자신의 취향과 관심, 내면의 욕구와 목소리를 따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보테로는 유럽의 고전적인 미술을 연구한 후 남미 문화의 본고장인 멕시코로 가서 디에고 리베라의 대형 벽화를 자신의 예술적 자산으로 흡수해버린다. 그의 인터뷰를 읽어 보면 그는 자신의 뿌리가 무엇인지 잊은 적이 없으며 스스로를 뼛속까지 콜럼비아 인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 우리는 서구의 예술적 자산과 남미의 문화적 뿌리를 토대로 한 자신만의 예술을 묵묵하게 만들어 나가는 젊은 보테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The First Lady 1989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로워지기

 

그가 그리는 풍만한 인물들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뚱뚱한 사람에 대해 애정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마른 사람을 선호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보테로는 한사코 자신은 뚱뚱한 사람을 그린 게 아니라고 말한다. 볼륨에 대한 애정, 사물에 비율을 달리했을 때 느껴지는 비현실적인 신비로움, 그리고 조형성 때문에 그렇게 그릴 뿐이라고 말이다. 이해할 수 있
다. 그건 어디까지나 작가의 의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관람자는 또 나름대로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도 된다. 우리는 그의 그림 속 인물을 보면서 일상에서 오는 긴장이 풀어지는 경험을 한다. ‘얼큰이’라는 말로 희화화되는 큰 얼굴의 사람들, 겹쳐진 허리와 뱃살에도 불구하고 타이트하게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여인들, 무심한 듯, 때때로 멍청한 듯한 그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근육이 경직된 채 아름답거나 친절해 보이도록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익숙한 자기 자신을 풀어 버린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도 우람한 몸매로 그려진다. 새조차도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새들도, 그리고 소매 없는 얇은 원피스를 입은 풍만한 몸매의 그녀들도 얼마나 당당한가!

 

“예술은 일상의 고됨으로부터 영혼을 쉴 수 있게 해준다.”

보테로의 말이다. 그는 예술이 지적 사유 이전의 유머와 감각적 즐거움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때론 사회적인 문제가 주제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의 그림에서 외려 예외적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면서 미소 짓고, 일상의 긴장을 풀면서 편안해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와 맞아떨어진다. 나는 위대한 예술은 특수한 주제를 보편적 정서로 끌어올려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뼛속까지 콜럼비아 인’인 보테로가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도 이해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정서로 풀어낸 그림을 우리는 그저 편안하게 즐기면 되는 것이다.

 

글 조이한 (아트 에세이스트)

 

 

SEOUL ARTS CENTER

JUN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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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Life with Green Soup

 

Fernando Botero Bailarines

 

Flamenco - Fernando Botero

 

 

picnic2001

 

Four Women - Fernando Botero

 

 

Fernando Botero La calle 50% off

 

 

Family Scene By Fernando Botero,

 

The Pinzón Family

 

 

Venus 1996

 

The Card Player 1988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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