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화가 박희숙의 ‘욕망과 회화’ - 명화 속의 ‘신데렐라와 온달’

2015. 10. 4. 18:35명화

.

 

 

 

 

화가 박희숙의 ‘욕망과 회화’

 - 명화 속의 ‘신데렐라와 온달’

 

 

여성은 미모와 재능으로, 남성은 육체의 힘으로 신분상승 꿈꿔

… 왕과 거지소녀의 만남부터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코코샤넬도 소재로

 

 

‘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 1884년. 캔버스에 유채. 292ⅹ136. 런던 테이트 컬렉션 소장

 

 

부자 동네는 동네 어귀부터 다르다. CC-TV(폐쇄회로TV)는 물론 경비원도 상주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집을 둘러싼 담장도 높아 집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집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하는 높은 담은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부자의 본능을 표현한 것과 다름없다.

 

특히 부자 중에 부자라 할, 상위 1%의 부자는 자신들만의 성에서 한발자국도 나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담의 높이가 더 높은 경향을 띤다. 그 높은 담은 재산을 지키기위한 방어 목적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범한 중산층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심리를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생활수준이 맞지 않은 까닭이다. 부자의 높은 담은 ‘나는 너희들과 다른 사람이다’라는 것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상징과도 같다.

 

하지만 아무리 철통 경비를 자랑해도 그 담을 넘는 도둑이 있듯이 상위 1%가 아무리 싫어하더라도 그곳에 편입하길 꿈꾸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 신분상승은 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인간의 기본 욕망으로부터 출발한다.

 

거지 소녀와 왕의 첫 만남을 그린 번 존스

 

행복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안정이 우선이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것은 돈이다. 기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행복하고 싶어도 행복해질 수 없다.

 

부자는 인간의 일차원적 고민인 돈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돈으로부터 자유롭기를 희망해 부자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문의 영광이 뒷받침돼야 하는 시절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들 하지 않는가?

 

하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인생이 움직여주지 않는 것처럼 반대로 자신이 꿈꾸지 않았는데도 신분상승을 하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어느 날 가난한 사람이 로또복권에 당첨돼 부자가 되듯이 상류층 자식이 아니더라도 기적처럼 부자의 눈에 띄어 신분상승이 되는 일도 있다. 우리는 그들을 신데렐라라고 부른다. 단 그 필요조건은 미모다.

 

부자의 눈에 띄어 신분상승을 이룬 여인을 그린 작품이 에드워드 번 존스(1833~1898)의 ‘코페투아 왕과 거지소녀’다. 이 작품은 17세기 초 테니슨의 시를 통해 알려진 코페투아 왕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서 주제는 거지 소녀가 왕비가 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테니슨의 시는 ‘어느 날 코페투아 왕은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왕국 입구에 있는 거지들 무리에서 아름다운 소녀를 발견한다. 왕은 그 거지 소녀에게 반해 결혼을 신청한다’는 내용이다. 화면 중앙에 거지 소녀는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고 그녀의 발아래에서 갑옷 입은 왕이 왕관을 벗고 무릎을 꿇은 채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 거지 소녀는 왕의 청혼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고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음악가들은 앞에서 벌어진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거지 소녀에게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코페투어 왕이 왕관을 벗은 모습으로 묘사했다. 또한 원작에 아프리카인으로 그려진 코페투어 왕을 묘사하기 위해 이 작품에서는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를 가진 왕으로 묘사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쏟아지는 금빛 햇살이 실내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으며 난간을 장식한 천과 화려한 쿠션은 이곳이 엄격한 왕실의 내부라기보다는 가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거지 소녀의 낡은 옷은 화려한 왕궁의 실내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번 존스가 원작에 충실하게 묘사하려고 소녀의 옷차림을 화려하지도 지저분하지도 않게 표현했다. 번 존스는 이 작품을 통해 왕과 거지 소녀와의 첫 만남을 묘사했다. 이 작품은 중세 분위기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으로 1884년 그로스비너 갤러리에 전시됐을 때 찬사를 받았다.

 

평생 복권에 맞을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것처럼 미모가 출중하다고 해서 부자의 눈에 띄지 않는다. 부자는 길을 걸어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신데렐라가 되길 원한다면 최소한 부자의 행동반경 안에 들어야 한다.

 

 

‘검정의 조화-레이드 뮤즈의 초상’. 1881년. 캔버스에 유채. 194×130. 호놀롤루 예술 아카데미 소장

 

 

사교 클럽에서 부자를 만난 여자를 그린 작품이 제임스 휘슬러의 ‘검정의 조화-레이드 뮤즈의 초상’이다.

 

레이드 뮤즈는 천민 출신으로 런던의 사교 클럽 호스티스로 일하다가 당시 런던에서 가장 큰 양조장을 경영하던 남작 헨리 브루스와 결혼했다.

 

레이디 뮤즈는 결혼과 동시에 런던 상류 사교계로 진출하지만 상류층 사람들은 그녀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조롱거리로 삼는다. 녀는 자신을 음해하는 추문에 굴복하지 않고 상류층의 귀부인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녀는 천민출신이라는 것을 감추고자 남편의 경제력을 이용해 예술품과 보석을 사들였다. 이 작품 역시 레이디 뮤즈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상류층 사회의 분위기에 동참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높일 목적으로 휘슬러에게 초상화를 의뢰한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 다이아몬드로 치장한 여성들

 

어두운 공간에 레이드 뮤즈가 검정색 이브닝드레스에 흰색의 모피 코트를 두르고 서 있다. 빨간 입술과 짙은 아이라인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레이드 뮤즈가 입은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는 당시 무도회나 리셉션에서 입는 공식적인 패션 코드지만 심플하면서도 몸매가 잘 들어나는 디자인은 유행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여성미를 강조하기 위해 프릴 장식이 많은 드레스와 허리의 각선미를 강조하기 위해 코르셋을 선호했지만 레이드 뮤즈는 자신의 유연한 몸매를 강조하면서 우아함을 드러내기 위해 코르셋이 없는 드레스를 입었다.

 

어깨 위에 얹어진 모피 가운은 초상화를 위해 그녀가 특별 제작한 것으로 흰색의 모피는 검정색 이브닝드레스를 돋보이게 만들며 목선의 망사는 레이디 뮤즈의 성숙한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29세 레이디 뮤즈의 얼굴을 더욱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다이아몬드 티아라는 빅토리아 여왕 후기부터 공식 모임과 무도회에서 인기를 끌었던 여성 액세서리다.

 

빅토리아 여왕시절, 다이아몬드 장식품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 광산 때문이었다. 다이아몬드 광산의 발견으로 인해 보석 구입이 쉬워졌으며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 신흥부자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높여주는 수단으로 앞다퉈 다이아몬드를 구입했다. 레이디 뮤즈가 다이아몬드 티아라로 머리를 장식한 이유도 신분 상승을 위한 것이다.

 

제임스 휘슬러(1834~1903)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레이디 뮤즈의 요청대로 귀부인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귀족 초상화의 관행을 따랐다. 전통적인 귀족 초상화는 인물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고요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방식이다.

 

 

 

 

Autoportrait (Tamara in the Green Bugatti)

 

 

부에 대한 욕망으로 재능 잃은 렘피카

 

기회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부자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부자 옆에는 불나방처럼 신분상승을 꿈꾸는 미인들이 몰리기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하기 마련이다. 자신만의 특별함으로 승부해야만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독특함으로 기회를 잡은 여인을 그린 작품이 렘피카의 ‘녹색 부가티를 타는 타마라’다. 이 작품은 렘피카의 자화상으로 그녀는 직업보다는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춘 이로 유명했다.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여인이 녹색 부가티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 그녀의 눈은 반쯤 잠겨 있고 깊게 눌러쓴 실크모자 사이로 금발이 보인다. 목에 두른 실크 스카프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무표정한 얼굴과 대조를 이룬다. 스카프 뒤로 도시는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붉은색의 입술은 여성의 유혹을 상징하고 있으며 자동차는 남성을 암시한다. 남성은 여성의 지배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타마라 드 렘피카(1898~1980)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부가티를 소유한 적이 없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여성을 통해 여성의 욕망을 그렸다. 또한 그녀는 차가운 스타일의 자화상을 통해 예술가적 성공을 자축하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렘피카는 여성으로서 한계에 부딪힌다. 당시 화단은 남자들만의 세계였다. 여성의 창의력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렘피카는 뛰어난 외모로 남자들을 사로잡으면서도 화단의 주목을 받으려고 미술의 전통과 관습을 깬다. 그녀는 19세기 말 금기시되었던 동성애를 과감하게 표현하면서 화단에서 스타가 됐다.

 

파리 미술계의 스타가 된 렘피카는 전쟁 기간 동안 작가, 연예인, 예술가, 과학자, 기업인과 망명한 동유럽 귀족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녀는 사교계의 중요 인사들을 부유함은 물론 세련되고 퇴폐적인 모습으로 묘사해 인기를 끌었다. 렘피카의 방식은 당대 초상화가들 중에서 가장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가난한 망명가의 아내로 만족하지 못했던 렘피카는 무용수 나나 데 헤레나 초상화를 제작하면서 그녀의 후견이었던 부자 바론 쿠프너에게 접근해 유혹에 성공한다. 결국 무용수 나나 데 헤레나를 제친 렘피카는 바론 쿠프너와 다시 결혼함으로써 부와 명성을 거머쥔다.

 

렘피카는 남편과 함께 1939년 전쟁이 일어나기 전 미국 할리우드로 이주한다. 할리우드는 렘피카의 화려한 생활을 만족시켜주는 가장 이상적인 곳이었고 그녀는 사교계 중심인물이 된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렘피카는 부자의 아내였지 화가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돈 많은 사모님이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쯤으로 알았다.

 

렘피카는 1950년대 미국에서 화가로서 명성이 위축을 받자 파리에서의 영광을 되찾고자 새로운 양식의 그림을 선보인다. 당시 미국은 추상 표현주의가 대세였다. 그녀는 추상미술을 선보이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렘피카는 남편이 죽자 멕시코에서 자신에게 성공을 안겨준 대표작들을 모사하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말년이 되도록 그녀는 화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섹스로 부와 명성을 얻은 남자들

 

미모의 여자만 신분상승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단지 남자가 신분상승을 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형국이었을 뿐이다. 남자가 빠르게 신분상승을 할 기회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두뇌보다는 육체를 통해 얻는다.

 

섹스로 신분상승을 한 남자를 그린 작품이 제럴드 스카페의 ‘스노우던 경의 풍자화’다. 스노우던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여동생 마가렛 공주와 1960년 결혼한 사진작가 안토니암스트롱 존스다.

마가렛 공주는 공준 조종사였던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지만 왕실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평민이었던 암스토롱 존스와 결혼했다. 따라서 관습에 따라 암스토롱 존스는 스노우던 백작 칭호를 받았다.

 

손을 허리에 대고 있는 자세는 전통적으로 자만심을 상징한다. 카메라는 스노우던경의 직업을 나타내는데 카메라의 렌즈가 길게 늘어져 있는 형태는 그것이 ‘남성’임을 암시하며 그가 사진작가로서의 실력보다는 섹스로 인정받았음을 나타낸다. 늘어진 턱은 탐욕을 암시하며 축 처진 눈꼬리는 그가 멍청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벌거벗은 채 다리를 벌린 채 서 있는 자세는 자랑할 것은 ‘남성’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제럴드 스카페(1934~)는 섹스로 부와 명성을 얻은 남자를 풍자하기 위해 가슴의 털을 영국 왕실 문양으로 표현했다. 가슴털 아래에 쓰여 있는 임명되었다는 영문자는 스노우던 경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완벽한 미모와 빛나는 육체가 없고 부자들이 자주 가는 사교클럽에 갈 형편조차 되지 않는다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재능밖에 없다. 재능은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의 기회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재능으로 신분상승에 성공한 여인을 그린 작품이 마리 로랑생의 ‘코코 샤넬의 초상’이다. 샤넬은 고아 출신으로 옷 만드는 재능 하나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다. 샤넬이 푸른색의 어깨가 드러난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샤넬의 목에 감겨 있는 검은색의 스카프는 어깨를 들어낸 드레스를 강조하며 풍성한 푸른색 드레스는 당시 여자들의 필수품이었던 코르셋 착용을 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샤넬은 몸에 꽉 끼는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디자이너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검은색 스카프는 샤넬의 뛰어난 패션감각을 나타내며 새가 샤넬을 향해 날고 있는 것은 그녀의 자유로운 감성을 암시한다.

 

마리 로랑생(1883~1956)은 일본 판화의 영향으로 샤넬의 얼굴을 가면 같은 단순한 형태로 표현했다. 그는 신비로운 느낌을 부각시키고자 파스텔 색조를 주로 사용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런 전형적인 특색이 나타난다. 샤넬과 마리 로랑생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극단의 연극의 의상과 세트를 담당하면서 친분을 쌓았으며 샤넬은 그러한 인연으로 마리 로랑생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부자의 집 근처를 어슬렁거릴수록 신분은 상승되기는커녕 도둑으로 오해받는다. 부자는 피해의식이 많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평생 의심하는 것이 생활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데렐라와 온달왕자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이 드라마와 현실 간의 차이다.

 

 

/ 월간중앙

 

 

..............................

 

 

 

 

[Art | 박희숙의 미술관]

 

남자의 자존심이여 벌떡 세워 총!

 

‘스노든 경의 풍자화’, 스카페, 1965년, 종이에 펜, 73×52, 작가 소장. Gerald Scarfe

 

 

“젊은이들이여 패기를 가져라.”

하지만 가진 것 하나 없는 젊은 남자가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배짱은 패기가 아니라 페니스에서 나온다.

 

페니스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페니스가 부실한 남자는 만족스럽지 못한 섹스로 매사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 감히 총을 쏠 수도 없다. 그러니 남자 힘의 근원은 페니스며, 남자의 도전 정신은 페니스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말라야에 가야만 도전 정신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 날의 도전 또한 섹스에서 시작된다. 젊은 여자를 침대로 끌어오려면 수많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여자는 옹녀가 아니고서는 남자와의 섹스를 쉽게 허용치 않는다. 남자가 여자의 본능을 무장해제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남자의 도전과 피나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섹스다.

 

젊은 남자의 패기 넘치는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 제럴드 스카페(1934∼)의 ‘스노든 경의 풍자화’다.

벌거벗은 남자가 카메라를 메고 당당하게 서 있다. 남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여동생 마거릿 공주와 1960년 결혼한 사진작가 앤터니 암스트롱 존스다. 그는 평민이었지만, 공주와 결혼해 스노든 백작 칭호를 받았다.

 

카메라는 스노든 경의 직업을 나타내는데, 페니스를 카메라로 표현한 것은 그가 사진작가로서의 실력보다 섹스로 더 인정받았음을 암시한다. 늘어진 턱은 그의 탐욕스러움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며,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선 자세는 내세울 것이 몸밖에 없는 남자라는 의미다.

 

카메라 렌즈가 돌출된 것은 발기했음을 상징한다. 섹스로 부와 명성을 얻은 남자를 풍자한 이 작품에서 영국 왕실 문양으로 된 가슴 털은 스노든 경의 남성미를 나타내며, 가슴 털 아래 영문자는 그의 신분 상승을 다시 한 번 강조해 표현한 것이다.

 

남자는 페니스에 대해 항상 불안해한다. 성능을 확인할 상대가 여자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남자는 섹스할 때마다 여자에게 좋았느냐고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여자가 가장 짜증날 때가 그 순간이다. 무릉도원에 보내주지도 못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묻는다. 안 좋으면 그만두려나?

 

여자에게 백만 번 묻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페니스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화장실이다. 남자 화장실의 개방형 소변기는 신이 선물한 기기다.

 

1인자는 2인자가 있어야 인정받는 것처럼, 같은 남자끼리 성능을 비교해 인정받아야 진정한 고수인 법. 여자에게 묻지 말고 소변기 앞에서 옆 사람의 것과 크기, 성능을 비교해보라. 남자 화장실에 나란히 서 있는 소변기는 페니스 성능 비교 테스트 수단이다.

 

페니스를 비교하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 오브리 비어즐리(1872∼98)의 ‘라시스트라타를 위한 데생’이다. 젊은 남자는 자신의 커다란 페니스가 자랑스러운 듯 바라보고, 늙은 남자는 부러운 듯 손으로 젊은 남자의 귀두를 쓰다듬으면서 자신의 페니스와 비교한다.

머리카락이 없는 남자가 늙은 남자이며, 늙은 남자의 키만큼 솟아 있는 페니스는 젊음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커다란 페니스는 정력이 강하다는 남자만의 속설을 시각화한 것으로, 커다란 페니스를 부러워하는 남자의 문화를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비어즐리는 페니스를 강조하려고 늙은 남자의 키만큼 크게 그렸으며, 페니스가 큰 남자를 젊은 귀족으로 표현한 것은 페니스 크기가 남자의 자존심과 관련 있음을 암시하려는 의도다.

 

 

‘라시스트라타Lysistrata를 위한 데생’, 비어즐리, 1896년, 종이에 펜, 개인 소장.Aubrey Vincent Beardsley

 

 

(right) Buy My Apples from a late 19th-century popular French magazine;

(left) Buy My Bananas, composed by Linda Nochlin, 1972

‘바나나를 사세요’, 노클린, 1972년, 사진, 개인 소장.

 

 

세상 무서울 것 없다고 외치던 남자도 중년이 되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지만 자신은 분명히 느낀다.

 세상에는 두려워할 것이 있다고.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배우자 곁에 가는 것이 두렵다.

그렇다고 비아그라를 먹을 수는 없다. 예쁘고 어린 ‘여친’을 위해 남겨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년 남자의 실체를 그린 작품이 린다 노클린(1931∼)의 ‘바나나를 사세요’다.

남자가 구부정하게 서서 벌거벗은 채 쟁반을 들고 있다. 쟁반에는 몇 개의 바나나가 놓여 있으며 쟁반 위로 남자의 축 늘어진 페니스가 보인다.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 그리고 가슴 털은 남성성을 강조하지만, 고개 숙인 페니스는 팔리지 않은 바나나와 함께 남자의 성적 무능함을 나타낸다. 비굴한 표정은 기능을 상실한 남자의 심리를 드러낸다.

 

노클린은 여성의 가슴을 사과로 표현한 다른 작가의 작품을 비판하려고 남근을 바나나에 비유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미술관에서 여성 누드를 보며 관음증을 충족시켰던 관람객들에게 남자의 초라한 누드를 제시함으로써 미국 페미니스트 정신을 나타내려 했다.

 

방 안에서 리모컨 총을 들고 있는 중년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보약이다. 보약 한 재는 총구 방향을 바로잡아 주기 때문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 주간동아

 

.......................

 

 

원본 그림은 다르다^^

 

 

 

Aubrey Vincent Beardsley

 

 

Beardsley Lampito

 

 

 

 

Datei:Beardsley

 

 

 

 

 

 

 

Cinesias entreating Myrrhina to coition

 

 

Lysistrata defending the Acropolis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