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화가 박희숙의 ‘욕망과 회화’ - 여름에는 로맨스와 보양식이 필요해!

2015. 10. 4. 18:34명화

.

 

 

 

화가 박희숙의 ‘욕망과 회화’

 

- 여름에는 로맨스와 보양식이 필요해!

 

 

여름 바닷가에서 로맨스를 꿈꾸는 청춘들과 몸보신에 매달리는 중년들…육류와 닭고기, 생선 등 여름 보양식으로 바라본 회화 속 욕망의 흔적

 

 

‘해변의 누드 청년과 소녀’. 1916년. 캔버스에 유채. 빈 알베르티나 미술관 소장.

 

 

한낮의 뜨거운 햇살은 도로 위의 아스팔트를 녹여버릴 듯 위세를 부리더니 사방이 막힌 회색 빛 건물 속으로까지 쏟아져 들어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을 헐떡이게 만든다. 이렇게 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청춘들은 바닷가를 찾고 중년은 보양식을 찾는다.

 

청춘이 여름날 해변으로 돌진하는 것은 더위를 식힐 목적보다는 이성과의 로맨스를 꿈꾸기 때문이며 중년이 보양식을 찾는 것은 지친 몸의 기운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여름 날, 로맨스를 꿈꾸는 청춘이 불나방처럼 멋진 이성을 찾아 헤매고 있다면 중년의 남자는 보양식을 찾아 전국을 떠돌기 마련이다. 나이 들수록 성욕은 사라지고 식욕만 남기 때문이다.

 

여름 바닷가에서 로맨스를 꿈꾸는 청춘을 그린 작품이 키르히너의 ‘해변의 누드 청년과 소녀’다. 나무들이 우거진 곳에서 벌거벗은 청년이 두 팔을 벌리고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소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고, 소녀는 청년의 행동에 놀라 걸음을 멈추었지만 얼굴을 들어 소년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청년의 벌거벗은 몸과 발기된 남성은 건강한 성욕을 드러낸다.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 소녀 역시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키면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상징한다. 청년과 소년이 서 있는 노란색은 백사장을, 배경이 되고 있는 우거진 숲은 해안가로 인적이 드문 곳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있을 두 사람의 은밀한 행위를 연상시킨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의 이 작품은 젊은이들의 과감한 행동을 표현하고 있다. 키르히너는 피카소의 입체주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작품에서 선을 가는 직선 형태로 그렸다. 그는 발틱해의 섬 페마른에서 친구 에르나 쉴링과 정기적으로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그곳의 풍경과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실내의 두나부’라는 작품과 쌍을 이루고 있다.

 

중년 남자들 역시 젊은 청춘처럼 바닷가에서 젊은 여성과 로맨스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달달한 로맨스는커녕 젊은 여성들의 외면만이 기다릴 뿐이다. ‘식스팩’과 ‘똥배’가 주는 차이만큼 젊은 여성들의 호불호도 명확하다. 그렇기에 로맨스도 할 수 없는 중년 남자들은 몸보신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년남자들이 여름이면 찾는 보양식은 오리, 소고기, 닭고기 등 육류위주의 식단이다. 단백질이 풍부한 육류를 먹어줘야 빠진 기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붉은색 육류는 남성적 힘의 상징

 

 

‘푸줏간’. 1582~1583년. 목판에 유채.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미술관 소장.

 

 

남자에게 필요한 힘을 얻기 위해 고기를 사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안니발레 카라치의 ‘푸줏간’이다. 화면 왼쪽의 창을 든 군인이 정육업자가 저울에 고기의 무게를 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고기를 사러 온 이유는 힘이 필요해서다. 서구에서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붉은 색 육류는 남성적인 힘과 용기에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군인의 사타구니가 부풀어있는 것 역시 고기가 남성에게 힘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인이 저울에 고기를 달고 있는 정육업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고기의 무게를 제대로 달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그림 속 정육업자의 저울은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맞저울이다. 맞저울은 ‘천칭’이라고 하는데 가운데 줏대에 지렛대를 걸쳐놓아 양쪽에 똑같은 크기의 저울판을 달아 놓았다. 저울판 한쪽에는 물건을 달 물체를, 다른 한쪽에는 추를 놓아 평행을 이루게 해 물건의 무게를 다는 방식이다.

 

그림 하단에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한 손으로 양을 누르고, 한 손에는 쇠로 된 몽둥이를 들고 있다. 남자가 한 손으로 양을 잡고 있는 것은 도축업자라는 것을 나타내며 쇠로 된 몽둥이는 그가 방금 양을 도축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푸줏간 상점 안에는 정육업자가 팔을 뻗고 있으며 그 옆에는 흰색의 두건을 쓴 늙은 여인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정육업자가 도마 위의 고기를 잡은 손은 그가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는 것을, 밖으로 뻗은 팔은 고기의 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흰색의 두건은 늙은 여인의 신분이 하녀라는 것을, 그리고 이 푸줏간이 고급 상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고기, 내장, 피 등 도살이 자행되는 곳에 상류층이 드나들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정육업자는 도살된 거대한 소를 고리에 걸고 있다. 내장이 없는 소의 뼈와 살이 분리되어 있는데, 이는 솜씨 좋은 도축을 나타낸다. 푸줏간 문밖에 있는 고리에 고기를 걸어놓은 것은 고객들에게 좋은 고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안니발레 카라치(1560~1609)의 이 작품은 이탈리아 최초의 순수 풍속화다. 1585년 무렵 이탈리아 북부에서 풍속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볼로냐에서 활동하고 있던 안니발레 카라치가 풍속화의 흐름을 이끌었다. 그는 주로 음식을 주제로 풍속화를 제작해 음식과 미술이라는 테마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안니발레 카라치는 이 작품에서 사실적 그림을 그리는 플랑드르처럼 푸줏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강조하거나 갖가지의 고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그가 푸줏간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집중한 것은 당시 손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지식 계급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또한 이 작품은 작가 가족의 자전적 요소가 담겨 있다. 안니발레 카라치는 자신의 형, 그리고 종형제인 루도비코와 셋이서 볼로냐에서 ‘아카데미아 델리 인카미나티’라는 미술학교를 설립해 새로운 미술을 이끌었는데 루도비코의 친가 가업이 바로 푸줏간이었다.

 

서민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여름 보양식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닭이다. 맛과 영양도 뛰어나지만 가격이 싸고 손질하기도 쉬워 보양식으로 인기가 많다.

가정에서 닭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샤르댕의 ‘시장에서 돌아와’다.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1559년. 오크패널에 유채,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사육제와 사순절, 육류와 생선의 대립

 

 

‘시장에서 돌아와’. 1739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여인은 방안에서 한 손으로는 보자기에 싸매놓은 닭을 들고 탁자에 놓인 커다란 빵 두 덩어리에 기대어 서있지만 얼굴은 밖을 향하고 있다. 방 입구에는 물을 담아 놓은 커다란 구리로 만든 급수통과 바닥에는 나무로 만든 물동이가 놓여 있으며, 그 옆에 소녀가 문을 열고 어렴풋이 보이는 남자와 대화하고 있다.

 

여인이 머리에 쓴 외출용 모자와 스카프는 그녀가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탁자에 기대어 선 여인의 자세는 그녀가 시장에서부터 무거운 짐을 들고 와 힘이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에 보이는 커다란 빵 두 덩어리와 구리로 만든 급수통은 여인이 서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800년 이전, 유럽 대부분의 서민층 가정에서는 커다란 빵 덩어리를 사서 일주일 동안 물에 적셔 죽으로 만들어 먹었으며 형편에 따라 죽에 우유, 치즈, 양파, 과일을 넣었다.

 

수도시설이 설치되기 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급수통을 설치했었는데, 구리로 만든 것을 많이 사용했으며 뚜껑과 수도꼭지가 달려 있었다. 급수통은 물을 저장하기 위해 꼭 필요했지만 당시 전체 가정의 3분의 2만 급수통을 설치했다. 급수통이 없는 가정에서는 나무 양동이나 도기 양동이, 철 양동이에 물을 보관했다.

 

장 시에몽 샤르댕(1669~1779)의 이 작품에서 여인이 시장에서 사 가지고 온 닭은 전통적으로 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여인의 얼굴이 거실 쪽을 향하고 있는 것과 붉어진 뺨은 소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자와의 관계를 암시한다. 붉은색 리본을 묶은 여인의 블라우스 소매는 보자기에 싼 무거운 닭을 들고 있는 노동을 강조하고 있으며, 바닥에 놓여있는 그릇과 쓰러진 물병은 여인의 바쁜 가사 노동을 나타낸다.

 

샤르댕은 같은 주제로 세 가지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1739년 루브르 살롱 전시회에 출품되어 찬사를 받았다. 작품에서는 화면 왼쪽의 문을 반쯤 열어놓음으로써 여러 개의 방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여름 보양식으로 육류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어, 잉어즙, 붕어즙 등 생선을 최고로 치는 이들도 있다. 육류와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식습관을 함께 그린 작품이 브뤼겔의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이다. 이 작품은 종교화를 통해 당시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황야에서 수행했던 6주간 중 일요일을 뺀 36일 동안은 고기를 입에 대지 않고 저녁 기도 후 빵과 물만 먹는 것이다. 이와 달리 사육제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직전 행사로 그 기간에는 사흘간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이러한 계율은 18세기까지 가톨릭 국가에서 지켜졌다.

 

 

 

 

 

 

 

그림을 보면, 화면 중앙을 중심으로 왼쪽의 뚱뚱한 남자가 포도주 통에 걸터앉아 머리 위에는 고기 파이를 얹고, 손에는 꼬치에 꿴 고기를 들고 있다. 그 남자의 뒤에는 사육제 복장을 한 악사들이 따르고 있고, 여인이 달걀을 늘어놓고 팬케이크를 굽고 있다. 여인의 모습은 사육제 마지막 화요일에 남은 달걀이나 버터로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었던 당시 습관을 나타낸다.

 

중앙 오른쪽에는 노파가 삼각의자에 앉아 바구니를 머리에 쓰고 빵을 굽는 데 사용하는 긴 주걱을 들고 있다. 발 아래에는 홍합이 담긴 그릇과 ‘프리첼’이라는 납작한 빵이 널려 있다. 프리첼은 원래 아이가 기도할 때 팔 모양을 본 떠 만든 것으로 성찬례 때 쓰이는 빵처럼 성스러운 의미를 담고 있다.

 

피테르 브뤼겔(1525~69)의 이 작품에서는 왼쪽이 사육제이고, 오른쪽이 사순절이다. 고기, 와플, 버터, 달걀은 사육제의 음식을, 프리첼, 홍합, 빵은 사순절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두 음식을 대치시킨 것은 사육제와 사순절의 행사에 따라 포식의 기쁨과 절제의 고통, 만족과 후회, 악덕과 미덕, 죄와 구원의 대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건강식으로 콩요리를 먹는 남자

 

포도주 통에 앉아 있는 인물은 프로테스탄트를, 삼각의자에 앉아 있는 야윈 노파는 가톨릭을 의미하며, 두 사람이 화면 중앙을 놓고 대치하고 있는 것은 종교 간 갈등을 나타낸다. 그들 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장애인, 생선장수, 그리고 걸상을 가지고 교회로 가는 사람, 행렬을 위해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 등은 축제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콩을 먹는 남자’. 1585년경. 캔버스에 유채. 로마 콜로나 미술관 소장.

 

 

브뤼겔은 사육제와 사순절을 똑같이 풍자하기 위해 그림 중앙의 두 사람을 이끄는 바보를 그렸다. 바보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횃불을 들고 어른 둘의 길을 밝히고 있다. 이는 혼돈으로 뒤죽박죽인 현실세계를 나타낸다.

 

보양식으로 허한 기를 보충하는 것도 좋지만 요즘처럼 평상시에도 고열량 식단 위주의 식사를 하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질 좋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으면서도 건강에도 좋아 각광받고 있는 음식이 콩이다. 콩 요리로 식사를 하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카라치의 ‘콩을 먹는 사람’이다.

 

밀짚모자를 쓴 남자가 창가 식탁에 혼자 앉아 왼손으로 빵을 움켜잡고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삶은 콩을 먹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농부가 들고 있는 숟가락에서는 콩물이 흘러내려 그릇으로 떨어지고 있고, 그릇 옆에는 파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파, 콩, 무, 양파 등은 서민들이 주고 먹던 음식 재료다. 당시 귀족들은 야채를 전혀 먹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포도주와 포도주 잔, 네 조각으로 나뉜 빵 덩어리가 있고, 중앙에 있는 큰 접시에는 피자가 놓여 있다. 피자는 밀가루에 야채를 넣어 구운 것으로 당시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었다. 이 작품에서 남자가 먹고 있는 요리는 ‘파졸로’라고 하는 까치콩을 삶은 것이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까치콩은 16세기 유럽에 많이 퍼져 있었으며, 곡물조차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삶아서 먹었다. 밀짚모자는 남자가 농부라는 것을, 창가의 햇살은 그가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안니발레 카라치(1560~1609)의 이 작품에서 식탁 위에 동떨어져 있는 포도주와 포도주 잔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상징한다. 소박하지만 농부에게는 최고의 음식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혁신적 방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교훈적인 내용을 담으려 하기보다는 밥을 먹는 그저 단순한 행위를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 월간중앙

 

 

 

 

Pieter Bruegel

 

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