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분홍색 젖가슴을 지닌 데데가 찾아오길 [유경희의 명화 & 힐링]

2015. 10. 4. 18:37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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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의 `명화&힐링`]

세상살이에 지친 당신에게…분홍색 젖가슴을 지닌 데데가 찾아오길

 

유경희 미술평론가는 한양대에서 국문학,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를 운영하며 예술과 인문학을 통해 힐링과 멘토링에 관한 글쓰기, 특강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예술가의 탄생’ ‘아트살롱’ ‘창작의 힘’ 등이 있습니다.

 

당신의 삶은 혹시 기계와 같지 않은가?

쳇바퀴 도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황폐해진 내면을 안고 살지 않는가? 감정을 거세당한 채 묵묵히 회사인간으로서의 페르소나(심리적 가면)를 쓰고 살지 않는가?

 

자신이 하는 일에 무감각해지고 세상살이에 지친 당신은 그저 쉬고 싶어 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지친 영혼을 누이고 싶다. 이는 대지모 혹은 지모신 같은 거대한 어머니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 유년 시절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빨고 있을 때의 그 충만한 관계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한다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둘만의 풍요롭고 충족적 사랑이 가능하던 오이디푸스 전 단계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아내들은 그런 어머니의 역할을 해주기 어렵다. 그녀들은 대지처럼 품어주는 자상한 어머니가 아니라 알파걸이나 엄친아를 만들어내는 너무 극성맞고 세련된 엄마들이다. 남자들은 집 안에서조차 서열에서 밀리고 어떤 위로의 메시지도 듣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우리 남정네들은 더더욱 쓸쓸하고 외롭다.

 

이런 피폐해진 남성들에게 영원한 노스탤지어를 환기하는 그림들이 있다. 풍만한 여체들, 바로 ‘누드’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서양미술사에서 누드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시작해 르네상스 시대에도 많이 제작되지만, 뚱뚱하다 싶을 정도로 듬직한 여체들의 본격적인 등장은 17세기 바로크 시대 그것도 북유럽의 플랑드르나 네덜란드로부터다. 바로크 시대 이전의 여체들은 대부분 이상화돼 있어서 만만하고 녹록한 느낌을 자아내지 못한다.

17세기 화가 루벤스 정도는 돼야 살냄새 풀풀 풍기는 우리의 누이이자 엄마 같은 육체가 등장하게 된다.

 

루벤스는 약간은 토실토실하지만 정상적인 여체를 그리던 이전의 전통에서 벗어나 셀룰라이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살찐 나부를 그린다. 그녀들은 마치 다산의 여왕처럼 관능적이고 육감적인데, 에로스와 생명력이 넘친다는 뜻이다. 이 여인들의 육체는 흰색도 분홍색도 아닌 색채와 매끄러우면서도 다양한 감촉을 드러내는가 하면, 빛을 흡수하면서도 반사하는, 섬세하면서도 탄력성 있는, 반짝이는가 하면 퇴색하는, 아름다움과 연민이 교차하는 기묘한 모습이다. 이런 육체를 그린 이는 티치아노, 루벤스, 르누아르 오직 세 사람밖에는 없어 보인다. 누구도 이들만큼 여체를 이렇게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그린 적이 없었다.

 

 

Peter Paul Rubens . The Three Graces .Museo del Prado Madrid  루벤스, 세 美의 여신.

 

 

루벤스보다 더 실감 나고 친근하게 현실 속 대지모의 화신을 그려낸 화가가 르누아르다.

 

르누아르의 여체는 살과 피부의 표현이 압도적으로 부드럽고 우아하며 촉각적인 동시에 생기를 띠면서 광채가 난다. 말년의 르누아르는 자신의 두 아들을 전쟁터(제1차세계대전)에 보내놓고도 주로 여체와 꽃을 그렸다.

사회문제나 인간 내면의 고통보다는 풍성한 몸매의 나체 여성들을 소재로 외면적인 즐거움과 행위만을 화폭에 담았다. 이를 두고 훗날 유명 영화감독이 된 아들 장 르누아르는 아버지에게 대들며 도덕이 무너지고 인간성이 황폐해가는 시기에 속물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비난했다.

르누아르는 전쟁에서 두 아들의 팔과 다리를 잃은 것으로 자기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생 자체가 우울한데 그림이라도 밝아야지. 그림은 기쁨에 넘치고 활기차야 돼. 비극은 누군가가 그리겠지!”라고 응답했다.

 

그래서였을까. 르누아르는 늘 살아 있는 것을 그렸다. 무엇을 그리든 생생한 모델이 필요했다. 특히 그는 여성의 살아 있는 육체의 보드랍고 빛나고 눈부신 모습에서 삶의 환희와 생명을 봤다.

르누아르는 죽은 아내가 섭외해놓고 간 모델을 그리면서 “데데의 가슴은 금빛이 감도는 가슴이야. 매끄럽고 둥글고 탄력이 있어. 그걸 못 느끼면 삶도 인생도 이해 못 해”라고 말한다.

르누아르가 이런 여성의 나체를 제1차세계대전 와중에 그렸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살아 있는 여체를 그림으로써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인간성에 대한 궁극적이고도 본질적인 회복과 치유를 성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The Large Bathers, Pierre-Auguste Renoir. 1887, Philadelphia Museum of Art .르누아르, 목욕하는 여인들.

 

 

르누아르가 여체에 더욱 천착했던 시기는 전쟁도 전쟁이지만, 죽음이 가까운 때였다. 노년의 르누아르는 극심한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온몸은 물론 오리발처럼 굳어진 손을 매일매일 뜨거운 물로 고통스럽게 녹여내고 다시 붓을 손에 묶어가면서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붓터치는 예전보다 훨씬 거칠게 느껴지지만, 따뜻하고 어루만지는 시선만큼은 더욱 풍부해졌다.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를 어루만지듯 그려낸 풍만한 여성들은 어떤 특정한 한 여자가 아니다. 인간이 잊어버린 풍요로운 저 원초적 땅이자 자궁이다.

 

겉멋이 한창 들었던 젊은 시절, 나는 르누아르 그림을 가볍게 취급했다. 나 역시 그의 아들처럼 르누아르가 여자의 몸이나 관음하고 있는 한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보다 근원적인 아름다움에 천착하게 된 것. 르누아르의 촉각적인 누드 그림에 매료됐다. 이런 그림들은 고단하고 피폐해진 삶 속에 근원적인 생명력을 부여하고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생생한 활기와 생명력을 갖게 한다.

 

당신은 살찐 여자를 천성적으로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눈으로 만져지는 이 충만한 여자들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는가? 모피처럼 물결치는 그녀들의 살결은 상처받은 동물같이 으르렁거리는 당신을 안아주고 불안과 공포로 떨고 있는 당신을 위로한다. 이 풍만한 여체들은 당신이 더 이상 비본질적이고 창백한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이 원초적인 여자들은 당신을 비루한 지금의 삶에서 구원해줄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유년의 잃어버린 꿈을 되찾고 자신감과 활기를 회복해 다시 태어난 존재처럼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말년의 르누아르에게 분홍색 젖가슴을 지닌 데데가 찾아온 것처럼!

 

[유경희 미술평론가]

 

/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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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piter and Callisto, Peter Paul Rubens. 1613, Museumslandschaft of Hesse in Kassel

 

Ermit and sleeping Angelica, 1628.  Peter Paul Rubens

 

 

 

Pierre-Auguste Renoir. : Diana the Huntress, 1867,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Pierre-Auguste Renoir : - By the Water

 

 

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 Bather arranging her Hair . Oil on canvas 1893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nited States)

 

 

Pierre-Auguste Renoir : Young Girl Bathing

 

 

 

 

http://commons.wikimedia.org/wiki/Peter_Paul_Rubens

https://en.wikipedia.org/wiki/Peter_Paul_Rubens

 

https://en.wikipedia.org/wiki/Pierre-Auguste_Renoir

http://commons.wikimedia.org/wiki/Pierre-Auguste_Renoir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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