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물주도 시기하는 마음이 있는 듯합니다/김일손(두류기행록) 1

2015. 6. 8. 09:18한국의 글,그림,사람

士生而匏瓜一方. 命也.

선비로 태어나 한 지역에 조롱박처럼 매여 있는 것은 운명이다.

 

旣不能遍觀天下. 以畜其有. 則域中之山川. 皆所當探討者.

천하를 두루 보고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질을 기를 수 없다면, 나라 안의 산천은 당연히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惟其人事之喜違也. 常有志而未副願者. 什居八九.

하지만 사람의 일이 기쁘기도하고 어긋나기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항상 뜻은 있어도 원하는 것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열에 여덟, 아홉은 된다.

 

余初求爲晉學. 其意則便養也.

내가 애초에 진주의 학관學官(지방에서 양반자제들을 가르쳤던 관리)를 구했던 것은, 부모님을 봉양하는 데 그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而句漏作令. 葛稚川之心. 又未嘗不在於丹砂焉.

그러나 구루句漏(갈홍이 신선술을 수련했던 곳)의 수령이 되었던 갈치천葛稚川(중국 진나라의 갈홍을 칭함)의 마음도 단사丹砂(수은과 유황을 혼합한 약재)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頭流在晉之境. 旣到晉則日理兩屐. 頭流之煙霞猿鶴. 皆余之丹砂也.

두류산은 진주의 근처에 있는데, 진주에 도착하고 나서는 날마다 두 짝의 나막신을 준비하였는데, 두류산의 운무雲霧와 원학猿鶴이 모두 나의 단사이기 때문이었다.

 

二載皐比. 徒重腹便之譏. 則引疾于鄕. 以遂徜徉之志.

학관으로 있던 2년 동안 녹봉만 축낸다는 비방에서 거듭 벗어나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는데 드디어 한가하게 노닐고 싶은 뜻을 이루었다.

 

而足迹未嘗一及干頭流. 豈非素志之未副者也.

그럼에도 한 번도 두류산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으니, 어찌 평소의 뜻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然頭流不敢忘懷也.

그러나 두류산을 마음속에서 잊어본 적이 없었다.

 

每與曺太虛先生共卜一遊. 而太虛簪纓有累. 余阻於道途之往來.

매번 조태허曺太虛(조위曺偉) 선생과 함께 한번 유람고자 했으나, 태허太虛가 벼슬살이로 인해 나와는 왕래가 끊어졌다.

 

未幾. 太虛丁內艱而去天嶺矣.

더욱이 오래지 않아 태허는 어머니 상을 당해 천령天嶺(경남 함양의 옛 이름)으로 떠났다.

 

天嶺上舍鄭伯勖. 余之神交也.

천령에 사는 상사上舍(조선시대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생을 칭함) 백욱伯勗 정여창鄭汝昌은 나의 정신적 벗이었다.

 

今年春. 歌鹿鳴於道州. 適過吾門. 約觀頭流.

올봄 도주道州(경북 청도의 옛 이름)에서 녹명鹿鳴(시경詩經의 소아小雅의 녹명鹿鳴을 칭함)을 노래할 적에 그가 마침 내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두류산을 유람하자고 약속했었다.

 

無何. 金相國殷卿. 出按嶺南. 屢以手柬. 期而未赴.

얼마 지나지 않아 상국相國 은경殷卿(김여석)이 영남에 내려와 민심을 살피면서 누차 편지를 보내와 만날 것을 기약했지만 찾아가지 못했다.

 

四月十一日己亥. 追其行上謁於天嶺.

4월 11일 기해일에 그의 행차를 따라가 천령에서 만났다.

 

問天嶺之人. 則伯勖賦二鳥於京師. 而還其廬已五日矣.

천령 사람에게 물으니, 백욱이 서울에서 이조부二鳥賦를 노래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온 지 5일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遂得相遻. 雅喜其宿願之不悖.

드디어 어긋나지 않고 서로 만날 수 있어서 오랜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매우 기뻐하였다.

 

金相國將挽余以自隨. 余辭以山行有約.

상국 김은경이 나를 붙잡고 따라 가자고 하였으나, 나는 산행할 약속이 있다고 사양하였다.

 

相國強之而不能奪也. 則資行以送.

상국이 간청하다가 내 의지를 돌릴 수 없게 되자, 노자를 주며 전송해 주었다.

 

仍恨簿書爲累. 羸瘵已甚. 未得從之遊. 介介不已.

이어 공무에 매이고 너무 허약해서 유람에 따라 갈 수 없음을 한탄하며 섭섭해하는 것이 그치지 않았다.

 

新天嶺李先生箴. 乃余杏壇執經者也. 資我亦厚.

천령에 새로 부임한 이잠李箴 선생은 바로 내가 성균관에 있을 때 경서經書를 가르쳐주신 분이었는데, 나에게 노자를 준것도 후하였다.

 

天嶺人林貞叔亦從. 以備三人之行.
천령 사람 임정숙林貞叔도 따라나서서 세 사람의 행장을 준비하였다.

 

十四日壬寅. 遂自天嶺南郭門而出.

14일, 임인일. 드디어 천령의 남쪽 성곽의 문에서 출발하였다.

 

西行可一十里. 渡一溪水. 抵一逆旅. 名曰蹄閑.

서쪽으로 10리 쯤 가서 시내 하나를 건너 객사에 이르렀는데, 제한蹄閑이라고 하였다.

 

自蹄閑西南行. 上下岡隴可十里.

제한에서 서남쪽으로 가서 산등성이를 10리 쯤 오르내렸다.

 

兩山對峙. 一泉中注. 漸入佳境矣.

양쪽으로 산이 마주하고 있고 그 가운데 한줄기 샘이 흐르는 곳이 있었는데, 점점 들어갈수록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行數里陟一岾. 從者曰當下馬拜.

몇 리를 가서 한 고개를 오르니, 따르는 자가 말하기를, “말에서 내려 절을 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余問所拜. 答曰天王.

내가 누구에게 절을 하느냐고 묻자 그가 답하기를, “천왕天王입니다.”라고 하였다.

 

余不省天王是何物. 策馬而過.

나는 천왕이 무엇인지 살피지 않고 말을 달려 지나쳤다.

 

是日雨下如注. 嵐霧渾山.

이 날 비가 물을 대듯이 내렸고 안개는 온산을 감고 있었다.

 

從者皆蓑笠.

따르는 자는 모두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썼다.

 

泥滑路澁. 相失在後.

진흙길이 미끄럽고 질퍽하여 따라오지 못하고 뒤처졌다.

 

信馬到登龜寺.

나는 말을 믿고 몸을 맡겨 등구사登龜寺에 이르렀다.

 

 

山形穹窿如龜. 以寺登其背而名也.

솟아 오른 산의 형상이 거북과 같은데, 절이 그 등에 올라앉아 있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古砌絶峻. 砌隙有幽竇.

오래된 축대가 빼어났는데 축대의 틈새에 깊숙한 구멍이 있었다.

 

澗水自北而注其中㶁㶁然.

석간수石澗水가 북쪽에서 흘러 그 속으로 흘러 내렸는데 졸졸 소리를 내는 듯 하였다.

 

其上有東西二刹. 一行皆寓於東刹. 汰還從者.

그 위쪽엔 동, 서로 두 사찰이 있었는데, 일행은 모두 동쪽 사찰에 묵기로 하고 따르는 자를 가려서 보냈다.

 

雨勢竟夜. 終朝殊未已.

내리는 비의 기세가 밤까지 계속되었고 아침까지 그치질 않았다.

 

遂留寺宇. 各就午寢.

마침내 절에 머물며 각자 낮잠을 잤다.

 

僧忽報雨霽. 頭流呈露.

한 승려가 문득, “비가 개어 두류산 가는 길이 보인다.”라고 알려주었다,

 

등구사에서 바라본 지리산 연봉(왼쪽 두번째 봉우리가 천왕봉)

 

吾三人驚起. 刮睡眼視之. 則蒼然三峯. 偃蹇當戶.

우리 세 사람이 놀라서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내다보니, 세 개의 푸른 봉우리가 문 앞에 우뚝 솟아 있는 듯 했다.

 

白雲橫斜. 翠黛隱映而已.

흰 구름이 가로지르듯 감싸고 있어 짙푸른 봉우리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少選又雨.

조금 뒤에 다시 비가 내렸다.

 

余戲曰. 造物其亦有心者歟. 潛形山岳. 似有所猜.

내가 농담삼아 말하기를, “조물주도 역시 마음이 있는가 봅니다. 산의 형세를 숨겼다가 보여주었다가 하니 시기하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라고 하니,

 

伯勖曰. 安知山靈久關騷客爲計耶.

백욱이 말하기를, “어찌 산신령이 객을 오랫동안 잡아두려는 계책인지 알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是夜復晴. 皓月流光. 蒼顏全露.

이 날 밤에 다시 맑아져서 달빛이 환하게 비추자, 푸른 산의 모습이 모두 드러났다.

 

稜稜壑谷. 若有仙人羽客來舞翩翩也.

굽이굽이 이어진 골짜기에는 선인仙人과 우객羽客이 와서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는 듯하였다.

 

伯勖曰. 人心夜氣. 於此都無査滓矣.

백욱이 말하기를, “사람 마음이 밤 기운을 받아 이때에는 속세의 찌꺼기라곤 전혀 없군요.”라고 하였다.

 

余之小蒼頭. 頗調觱篥令吹之. 亦足以傳空山之響.

나의 어린 종이 제법 피리를 불 줄 알아서 불게 하였더니, 빈 산에 메아리가 울리기에 충분하였다.

 

三人相對. 夜分方寢.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대하여 놀다가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遲明. 吾與伯勖. 着芒屩策扶老. 步下登龜一里許. 有瀑布可觀.

다음날(15일) 새벽에 나는 백욱과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고 등구사에서 1리 정도 걸어 내려갔는데 볼 만한 폭포가 있었다.

 

行十里許. 穿一孤村. 村多柹樹.

다시 10리쯤 가서 한 외딴 마을을 지났는데 그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崎嶇經丘. 緣山腰右轉而西北行. 巖下有泉. 掬而飮之. 仍盥手.

험한 고개를 넘어 산허리를 거쳐 오른쪽으로 돌아 서북쪽으로 가니 바위 아래에 샘이 있어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시고 이어 세수를 하였다.

 

出一步到金臺菴.

그곳에서 나와 한걸음에 금대암金臺菴에 닿았다.

 

一僧出汲. 余與伯勖. 率爾而入.

한 승려가 나와·물을 긷고 있었는데 나와 백욱이 암자내로 들어섰다.

 

庭中有牧丹數本半謝花甚紅.

뜰 가운데는 모란 몇 그루가 있었는데, 반쯤 시들었지만 꽃은 매우 붉었다.

 

百結衲子廿餘. 方荷袈裟. 梵唄相逐. 回旋甚疾.

누더기 승복를 입은 승려 20여 명이 가사袈裟를 입고서 뒤따르며 범패梵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余問之. 云. 精進道場也.

내가 물어보니 이곳은 정진도량精進道場이라고 했다.

 

伯勖頗解之曰. 其法精而無雜. 進而不退. 晝夜不息. 以爲作佛之功. 稍有昏惰. 其徒中捷者一人. 以木長板. 拍而警之. 使不得惱睡.

 백욱이 그럴 듯하게 해석하기를, “그 법이 정일精一하여 잡됨이 없고, 나아가되 물러섬이 없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부처가 되는 공덕을 쌓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는 자가 있으면 그 무리 가운데 민첩한 한 사람이 긴 막대기로 내리쳐 깨우치게하여 번뇌와 졸음을 없애게 합니다.”라고 하였다.

 

余曰. 爲佛亦勞矣. 學者於作聖之功. 做得如此. 則豈無所就乎.

 내가 말하기를, “부처가 되는 것도 고된일입니다. 배우는 자가 성인이 되는 공부를 이와 같이 한다면 어찌 이루는 것이 없겠습니까?”라고 하였다.

 

菴有六環錫杖. 甚古物也.

암자에는 여섯 개의 고리가 달린 석장錫杖이 있었는데 매우 오래된 물건이었다.

 

日亭午. 由舊路而返.

정오가 되어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下瞰石澗. 暴漲如湖.

좁은 바위 계곡을 내려다보니 갑자기 물이 불어나 호수와 같았다.

 

遙指上無柱君子寺. 欲往而不可渡矣.

아득히 상무주암上無住庵과 군자사君子寺를 바라보면서 가보고 싶었지만 냇물을 건널 수 없었다.

 

山路將下甚側. 足不停地.

산길을 내려가려니 매우 험난해서 발을 땅에 붙일 수가 없을 정도였다.

 

遂以杖拄前滑瀡而下.

그래서 지팡이를 앞으로 내짚으며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鞍馬已候於山下.

안장을 얹은 말이 산 아래에 기다리고 있었다.

 

騎行纔移一步. 吾所乘獨蹇一足. 如下舂然.

말을 타고 가는데, 겨우 한걸음을 옮기자마자 내가 탄 말만 한쪽 다리를 절룩거려 방아를 내려 찧는 것 같았다.

 

顧謂伯勖曰. 蹇驢風味. 詩家固不免矣.

내가 백욱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절뚝거리는 노새를 타고 가는 풍미風味는, 시인이 참으로 면할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라고 하였다.

 

沿澗北崖. 東行至龍游潭.

시냇물 북쪽 언덕을 따라 동쪽으로 가서 용유담龍游潭에 닿았다.

 

潭南北. 幽窅奇絶. 塵凡如隔千里.

용유담 남북은 깊고 그윽하며 기이하고 빼어나서 풍진과 천 리나 떨어진 듯하였다.

 

貞叔先待於潭石上. 具饌以待.

임정숙이 먼저 도착하여 용유담 바위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點罷遂行.

점심을 먹고 길을 떠났다.

 

時適新晴. 水襄兩崖. 潭之奇狀. 不可得而窺矣.

때마침 날이 맑아졌지만 물이 양쪽 언덕에 넘실거려 용유담의 기이한 장관은 볼 수가 없었다.

 

용유담(블로그 산간벽촌에서 차용)

 

貞叔云. 此佔畢公爲郡時禱雨齋宿處也.

임정숙이 말하기를, “이곳은 점필공佔畢公(김종직의 호)이 고을을 다스릴 때,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재계하던 곳입니다.”라고 하였다.

 

潭石鱗鱗. 如田之畇畇. 多宛然之迹. 又有石如瓮如金鼎類者. 不可勝紀.

용유담 바위의 비늘 같은 모양들은 밭을 갈아엎은 것같이 완연한 흔적이 많았고 항아리와 가마솥 같은 부류의 것들도 있었는데, 모두 기록할 수 없었다.

 

民以爲龍之器皿也.

백성들은 용이 사용하던 그릇이라고 하였는데,

 

殊不知山澗湍急. 水石流轉. 相磨之久. 而至於成形. 이들은 산골짜기의 급류가 계곡의 돌을 굴려 오랫동안 서로 연마되어 이런 모양을 이루게 된 줄을 전혀 알지 못하니,

 

甚矣. 細民之不料事而好誕說也.

백성들이 사리를 헤아리지 않고 허탄한 말을 좋아하는 것이 이처럼 심하구나.

 

由潭而東. 路極險阨. 下臨千尺. 竦然如墜.

용유담을 돌아 동쪽으로 나아가는데 길이 매우 험난하였는데, 그 아래를 보니 천척이나 되는 절벽이어서 떨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人馬脅息而過者幾三十里.

사람과 말이 숨을 죽이고 거의 30리를 지나갔다.

 

隔岸望頭流之東麓.

강가 언덕에서 두류산 동쪽기슭을 바라보았다.

 

蒼藤古木之間. 指點先涅古涅等方丈. 不知其幾也.

푸른 등나무와 고목사이로 선열암先涅庵과 고열암古涅庵 등을 가리키며 바라보았는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一葦如隔弱水. 雖欲跋一步以登而不可得矣.

한 조각의 배가 약수弱水를 사이에 두고 있는 듯하여, 한 걸음에 올라 보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路漸低而山漸夷. 水漸安流.

길이 점점 낮아지고 산세도 점차 평평해지고, 물의 흐름도 점점 안정해졌다.

 

有山自北而斗起爲三峯. 其下居民僅十數屋.

산이 북쪽에서 우뚝 솟아 세 봉우리가 된 곳이 있었는데, 그 아래에 겨우 10여 호 정도 민가를 이루고 있었다.

 

名曰炭村. 前臨大川.

탄촌炭村이라고 하였는데, 그 앞에는 큰 시내가 있었다.

 

伯勖曰. 此可居也.

백욱이 말하기를, “이곳은 살 만한 곳입니다.”라고 하여,

 

余曰. 文筆峯前. 尤可卜也.

내가 말하기를, “문필봉文筆峯 앞이 더욱 살 만한 곳입니다.”라고 하였다.

 

前行五六里. 篁竹林中. 有古寺曰巖川.

앞으로 5, 6리를 가니 대나무 숲 속에 오래된 절이 있었는데, 암천사巖川寺라고 하였다.

 

土壤平廣. 可以廬其居也.

토양이 평평하고 넓어서 집을 짓고 살 수 있었다.

 

由寺而東一里. 峙壁千尋.

절을 돌아 동쪽으로 1리를 가니, 천 길 절벽이 있었다.

 

人鑿斜逕於壁間而行一里許.

사람들이 절벽 사이로 1리 정도 갈 수 있는 비스듬한 길을 뚫어놓았다.

 

踰一小峴北行. 出貞叔田園之下.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 북쪽으로 가니 임정숙의 전원田園이 있는 아랫마을로 나왔다.

 

貞叔邀請不已.

임정숙이 자꾸 자기 집에 가자고 청하였지만,

 

日已暮. 又恐雨益甚水益漲. 辭曰.

날이 저물고 비가 내려 물이 더욱 불어날까 근심이 되어 사양하기를,

 

王子猷. 到門而返. 不見安道. 況今與貞叔共數日之遊. 不必更入門矣.

“ 왕자유王子猷는 문 앞까지 갔다가 대안도戴安道를 만나지 않고 돌아갔는데, 지금 정숙과 여러 날 함께 유람하였으니, 집에까지 들어 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貞叔謝以足疾. 未得卒陪杖履云. 與之別.

임정숙이 발에 병이 나서 끝까지 모시고 다닐 수 없다고 하여 정숙과 작별하였다.

 

曛黑投沙斤驛. 兩股疼痛. 更不可步. 
저물녘에 사근역沙斤驛(경남 함양군 수동면에 있던 역)에 이르렀는데, 두 다리의 통증이 심하여 걸을 수가 없었다.

 

출전 :『김일손金馹孫』「탁영집濯纓集」'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

출처 : 소창대명(小窓大明)
글쓴이 : 바람난 공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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