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교화시킬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두류기행록(김일손) 2

2015. 6. 8. 09:19한국의 글,그림,사람

翌日. 盡還天嶺來隨人.

16일, 갑진일, 이틑날 천령에서 따라온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騎馬行一里許. 竝大川而南. 皆巖川之下流.

말을 타고 1리 정도 가서 큰 시냇물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모두 암천巖川의 하류였다.

 

西望蒼山. 纍纍然抑抑然. 皆頭流之支峯也.

서쪽으로 푸른 산을 바라보니 봉우리가 첩첩이 빽빽하게 들어섰는데 모두 두류산의 지봉支峯들이었다.

 

午投山陰縣.

정오에 산음현山陰縣(지금의 산청군)에 이르렀다.

 

登換鵝亭覽題記. 北臨淸江. 有逝者悠悠之懷.

환아정換鵝亭에 올라 기문記文을 보니, 북쪽으로 맑은 강을 대하니, 유유하게 흘러가는 물에 대한 소회가 있었다.

 

환아정(1950년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사진은 1912년 산청보통공립학교로 사용될 때의 모습)

 

少攲枕而覺.

그래서 잠시 비스듬히 누워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다.

 

噫. 擇而處仁里. 知也.

아! 어진 마을을 택하여 거처하는 것이 지혜요.

 

棲而避惡水. 明也.

나무 위에 깃들여 험악한 물을 피하는 것이 총명함이로구나.

 

縣號爲山陰而亭扁以換鵝. 其有慕於會稽之山水者乎.

고을 이름이 산음이고 정자 이름이 환아換鵝이니, 아마도 이 고을에 회계산會稽山의 산수를 연모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吾輩安得於此永繼東晉之風流乎.

우리들이 어찌 이곳에서 동진東晉의 풍류를 영원히 이을 수 있겠는가.

 

由山陰而南及丹城.

산음을 돌아 남쪽으로 내려와 단성丹城에 이르렀다.

 

所歷溪山. 淸秀明麗. 皆頭流之緖餘也.

지나온 계곡과 산들이 맑고 빼어나며 밝고 아름다웠으니, 모두 두류산에 서린 여운이다.

 

新安驛十里. 舟渡津而步. 投館丹城.

신안역新安驛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배로 나루를 건너 걸어서 단성에 이르러 관에 투숙했다.

 

余喚丹丘城而仙之.

나는 이곳을 단구성丹丘城이라고 바꾸어 부르며 신선이 사는 곳으로 여겼다.

 

丹之守崔慶甫. 資送加厚.

단성의 수령 최경보崔慶甫가 노자를 후하게 보내왔다.

 

花砌上有烏竹百竿. 擇其可杖者. 根斬二竿. 分與伯勖.

화단에 오죽烏竹 백 여 그루가 있어, 지팡이로 삼을 만한 것을 두 개를 베어 백욱(정여창)과 나누었다.

 

自丹城西行十五里. 歷盡阻折. 得寬原. 一淸泠注其原之西.

단성에서 서쪽으로 15리를 가서 험하고 굽은 길을 지나니 넓은 들판이 나왔는데, 맑고 시원한 시냇물이 그 들판의 서쪽으로 흘렀다.

 

緣崖而北三四里. 有谷口. 入谷有削巖面. 刻廣濟喦門四字. 字畫硬古.

암벽을 따라 북쪽으로 3, 4리를 가니 계곡의 입구가 있어서 들어서니 바위를 깎은 면에 ‘광제암문廣濟嵒門’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글자의 획이 힘차고 예스러웠다.

 

 

世傳崔孤雲手迹也.

세상에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行五里許. 見其竹籬茅屋. 煙火桑柘.

5리쯤 가자 대나무 울타리를 한 띠집의 피어오르는 연기와 뽕나무 밭이 보였다.

 

渡一溪進一里. 柹樹環匝而山之木. 皆栗也.

시내 하나를 건너 1리를 나아가니 감나무가 겹겹이 둘러 있고, 산에는 모두 밤나무였다.

 

有藏經板閣. 巋然繚以周垣.

장경판각藏經板閣이 있는데 높다란 담장으로 둘러져 있었다.

 

垣之西上百步樹林間有寺. 扁曰智異山斷俗寺.

담장의 서쪽으로 백 보를 올라가니 숲속에 절이 있고, 지리산 단속사智異山斷俗寺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단속사 동. 서 삼층석탑

 

有碑立門前. 乃高麗平章李之茂所撰大鑑師銘.

문 앞에 비석이 서 있는데, 바로 고려시대 평장사平章事 이지무李之茂가 지은 대감사명大鑑師銘이었다.

 

完顏大定年間建也.

완안完顔의 대정大定 연간에 세운 것이었다.

 

入門有古佛殿. 礱斲甚樸.

문에 들어서니 오래된 불전佛殿이 있는데, 주춧돌과 기둥이 매우 질박하였다.

 

壁畫二冕旒.

벽에는 면류관冕旒冠을 쓴 두 영정影幀이 그려져 있었다.

 

居僧云.

거처하는 승려가 말하기를,

 

新羅臣柳純者. 辭祿舍身. 創此寺. 因名斷俗. 圖其主之像. 有板記在焉.

“신라의 신하 유순柳純이 녹봉을 사양하고 불가에 귀의해 이 절을 창건하였기 때문에 단속斷俗이라 이름하였고, 임금의 초상을 그렸는데, 그 사실을 기록한 현판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余卑之不省. 循廊而轉.

나는 그 말을 비루하게 여겨 초상을 살펴보지 않았다.

 

行長屋下. 進五十步. 有樓制甚傑古.

행랑을 따라 돌아서 건물 아래로 내려가 50보를 나아가니 누각이 있었는데 매우 빼어나고 옛스러웠다.

 

梁柱橈腐. 猶可登眺憑檻.

들보와 기둥이 모두 부패하였으나 그래도 올라가 조망하고 난간에 기댈 만하였다.

 

臨前庭有梅數條. 相傳政堂梅.

누각에서 앞뜰을 내려다보니 매화나무 두어 그루가 있는데, 정당매政堂梅라고 전해진다.

 

단속사 정당매각

 

乃姜文景公之祖通亭公. 少讀書於此. 手植一梅. 後登第. 官至政堂文學. 遂得名.

바로 문경공文景公 강맹경姜孟卿의 조부 통정공通政公이 젊은 시절 이 절에서 독서할 적에 손수 매화나무 한그루를 심었는데, 뒤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당문학에 이르러 이 이름을 얻게 되었다.

 

其子孫世封植之云.

자손들이 대대로 북돋워 번식시켰다고 한다.

 

出北門. 驀過一澗. 榛荒間有碑. 乃新羅兵部令金獻貞所撰僧神行銘.

북문으로 나와서 곧장 시내 하나를 건넜는데, 덤불 속에 신라 병부령兵部令 김헌정金獻貞이 지은 승려 신행神行의 비명碑銘이 있었다.

 

李唐元和八年建也. 石理麁惡. 其高不及大鑑碑數尺. 文字不可讀.

당나라 원화元和 8년(813)에 세운 것으로 돌의 결이 거칠고 추악하였으며, 그 높이는 대감사비에 비해 두어 자나 미치지 못하고, 문자도 읽을 수가 없었다.

 

北垣之內有精舍. 住持所燕居也. 繞舍多山茶樹.

북쪽 담장 내에 있는 정사精舍는 절의 주지가 평소 거처하는 곳이었는데, 주위에는 동백나무가 많았다.

 

舍之東有弊宇. 世傳致遠堂.

그 동편에 허름한 집이 있는데, 치원당致遠堂이라 전해온다.

 

堂之下有新構一架極高. 其下可建五丈旗. 寺僧以此欲安織成千佛之像也.

당 아래에 새로 지은 건물이 있는데, 매우 높아서 그 아래에 5장丈의 깃발을 세울 만하였는데 이 절의 승려가 수를 놓아 만든 천불상千佛像을 안치하려는 것이었다.

 

寺屋之廢. 而僧不居處者. 多數百架.

절간이 황폐하여 승려가 거처하지 않는 곳이 수백 칸이나 되었다.

 

東廊有石佛五百軀. 逐軀各異其形. 怪不可狀.

동쪽 행랑에는 석불石佛 5백 구가 있는데, 그 기이한 모양이 각기 달라 형용할 수 없었다.

 

還就住持之舍. 披寺之故.

주지가 거처하는 정사로 돌아와 절의 옛 문서를 열어보았다.

 

有白楮紙連三幅. 搗鍊精勁. 如今之咨文紙.

그 중에 백저白楮 세 폭을 연결한 문서이 있었는데, 정결하고 빳빳하게 다듬어져 요즘의 자문지咨文紙 같았다.

 

其一署國王王楷. 卽仁宗諱也.

그 첫째 폭에는 국왕 왕해國王王楷란 서명이 있으니, 바로 인종仁宗의 휘諱이다.

 

其二署高麗國王王晛. 卽毅宗諱也. 乃正至起居於大鑑師狀也.

둘째 폭에는 고려 국왕 왕현高麗國王王睍이란 서명이 있으니, 곧 의종毅宗의 휘인데, 바로 고려 국왕이 대감국사에게 보낸 문안 편지였다.

 

其三書大德而一書皇統.

셋째 폭에는 대덕大德이라 씌어 있고, 황통皇統이라고도 씌어 있었다.

 

大德則蒙古成宗之年也. 考其時不合. 不可詳.

대덕은 몽고 성종成宗의 연호인데, 그 시대를 고찰해보면 합치되지 않으니, 자세히 알 수 없다.

 

皇統則金太宗年也.

황통은 금金나라 태종太宗의 연호다.

 

仁毅父子. 旣稟夷狄之正朔.

이를 보면, 고려 인종․의종 부자는 오랑캐의 연호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又致勤於禪佛如是. 而仁宗困於李資謙.

이들이 이처럼 선불禪佛에게 삼가하였지만, 인종은 이자겸李資謙에게 곤욕을 당했다.

 

毅宗未免巨濟之厄. 佞佛之無益於人國家. 如此夫.

의종은 거제巨濟에 유배되는 곤욕을 면치 못했으니, 부처에게 아부하는 것이 국가에 이로울 것이 없는 것이 이와 같도다.

 

又有蠹餘靑綾書. 字體類右軍. 勢如驚鴻. 不可得以附翼. 奇矣哉.

또 좀먹은 푸른 비단에 쓰인 글씨가 있었는데, 서체는 왕우군王友軍(왕희지를 칭함) 과 유사하고 필세筆勢는 놀란 기러기 같아서 내가 도저히 견줄 수 없을 정도였으니, 기이하도다.

 

有黃綃書者. 紫羅書者. 其字畫下於靑綾書. 而皆斷簡. 其文亦不可詳矣.

또 노란 명주에 쓴 글씨와 자색 비단에 쓴 글씨는 그 자획이 푸른 비단에 쓴 글씨보다 못하였고, 모두 단절된 간찰簡札이어서 그 문장도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又有六部合署. 朱勅一通. 如今之告身. 而亦逸其半. 然亦好古者之所欲觀也.

또 육부六部에서 함께 서명한 붉은 칙서勅書 한 통이 있는데. 지금의 고신告身과 같은 것으로 절반이 빠져 있었지만,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할 만한 것이었다.

 

伯勖足繭. 憚於登陟. 遂留一日. 有釋該上人者可語.

백욱이 발이 부르터 산에 오르길 꺼려해서 하루 쉬었는데, 석해釋解라는 승려가 있어서 대화할 수 있었다.

 

薄暮. 晉牧慶公太素. 遣兩伶. 各執其業. 以娛山行. 又遣貢生金仲敦. 以奉筆硯.

저물녘에 진주 목사 경태소慶太素가 광대 둘을 보내 각자의 기업技業으로 산행을 즐겁게 하였으며, 공생貢生 김중돈金仲敦을 보내 붓과 벼루를 받들고 시중을 들게 하였다.

 

黎明. 細雨絲絲. 蓑笠以行.

날이 밝을 무렵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려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쓰고서 길을 떠났다.

 

伶執笙笛先路. 而釋該爲鄕導出洞.

광대가 생황과 피리를 불면서 먼저 길을 가고, 석해는 길잡이가 되어 동네를 나갔다.

 

回望則水抱山圍. 宅幽而勢阻. 眞隱者之所盤旋也. 惜其爲緇流之場. 而不與高士爲地也.

돌아서서 바라보니, 물이 감싸고 산이 에워싸서 집터는 그윽하고 지세는 아늑하여, 진실로 은자隱者가 살 만한 곳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승려들이 사는 곳이 되어 고사高士들이 사는 곳이 되지 못하였다.

 

西行十里. 涉一巨川. 乃薩川之下流也.

서쪽으로 10리를 가서 큰 시내를 건넜는데, 바로 살천薩川(지리산 중산리 계곡에서 발원하는 하천)의 하류였다.

 

由川而南. 斜轉而西. 約行二十里. 皆頭流之麓也.

살천을 따라 남쪽으로 비스듬이 가다가 서쪽으로 대략 20리를 지났는데, 모두 두륜산의 기슭이었다.

 

野闊山低. 淸川白石. 皆可樂也.

들은 넓고 산은 낮았으며 맑은 시내와 흰 돌이 모두 볼 만하였다.

 

折而東向. 行澗谷. 澗水淸. 石斷斷然.

방향을 바꾸어 동쪽으로 향하면서 계곡을 따라가는데 냇물은 맑고 돌은 자른 듯 하였다.

 

又折而北行. 九涉一澗. 又東折而行. 渡一板橋.

또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시냇물을 아홉 번이나 건넜고,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판교板橋를 건넜다.

 

樹木蓊鬱. 仰不見天. 路漸高.

수목이 빽빽하여 우러러 하늘을 볼 수 없었고 길은 점점 높아졌다.

 

行六七里. 有二鴨脚樹對立. 大百圍高參天.

6, 7리를 가니 압각수鴨脚樹(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주보고 서 있었는데, 크기는 백 아람, 높이는 하늘에 닿을 듯하였다.

 

入門有古碣石. 額曰五臺山水陸精社記.

문에 들어서니 오래된 비석이 있는데, 그 머리에 오대산수륙정사기五臺山水陸精社記라고 씌어 있었다.

 

讀之殊覺好文. 卒業則乃高麗權學士適. 趙宋紹興年中撰也.

읽으면서 좋은 글임을 새삼 깨달았는데, 다 읽어보니 바로 고려의 학사學士 권적權適이 송나라 소흥紹興 연간에 찬술한 것이었다.

 

寺有樓觀甚偉. 間架甚多. 幡幢交羅.

절에는 누각이 있었는데 매우 장대하여 볼만 하였고 방이 매우 많았으며, 깃발은 마주보고 있었다.

 

有古佛. 僧言高麗仁宗所鑄. 仁宗所御鐵如意. 亦在云.

오래된 불상이 있었는데, 한 승려가 말하기를, “이 불상은 고려 인종이 주조한 것입니다. 인종이 쓰던 쇠로 만든 여의如意 남아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日暮雨濕. 遂止宿. 
날은 저물고 비도 내려 절에서 묵기로 했다.

 

詰朝.

17일, 을사일

 

寺僧以芒鞋爲贈.

이튿날 아침 절의 승려가 짚신을 선물로 주었다.

 

出洞而北. 右山左水. 道甚懸危.

골짜기를 빠져나와 북쪽으로 가는데, 오른편은 산이고 왼편은 냇물이어서 길이 매우 위험하였다.

 

行樹林中十里許. 洞口稍開豁.

숲 속을 10리쯤 가니 골짜기 입구가 조금 열렸다.

 

有膴原可以耕而食.

기름진 들판이 있어 밭을 갈며 살 만하였다.

 

又十里有居民. 揉木爲業. 鍛鐵爲生.

또 10리를 가니, 거처하는 백성이 나무를 휘거나 쇠를 달구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다.

 

余曰. 花開爲春. 葉落爲秋. 有是夫.

내가 말하기를, “꽃이 피면 봄인 줄 알고 잎이 지면 가을이라 느낀다더니, 여기에 이러한 것이 있구나”라고 하였다.

 

從僧曰. 地僻而里正無忌憚. 民苦於賦煩役重. 久矣.

따라온 승려가 말하기를, “여기는 땅이 궁벽하여 이정里正이 기탄없이 횡포를 부려 백성이 번잡한 조세와 무거운 역으로 고통받은지 오래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出五里抵默契寺.

5리를 가서 묵계사에 이르렀다.

 

寺在頭流. 最名勝刹. 而及寓目. 殊不愜前聞.

절은 두류산에서 가장 빼어난 사찰로 이름이 나 있었지만, 와서 보니 전에 듣던것 처럼 빼어나지는 않았다.

 

但寺宇明媚. 以間金奇錦. 靑紅雜製. 以爲佛袈裟. 居僧廿餘. 默然精進. 如金臺而已.

다만 절간이 밝고 아름다우며 사이사이 금실을 넣어 특이한 비단으로 청홍색으로 만든 부처의 가사와 거처하는 20여명의 승려들이 묵묵히 정진하는 모습이 금대암의 승려들같이 볼 만하였다.

 

少憩. 舍馬扶筇. 披苦竹林. 迷失道. 間關抵坐方寺.

잠시 쉬었다가 말을 돌려보내고 지팡이를 짚고 왕대 숲을 헤치며 나아갔는데, 길을 잃고 헤매다가 간신히 좌방사坐方寺에 이르렀다.

 

居僧只三四. 寺前栗樹. 皆爲斧斤斫倒.

거주하는 승려는 3, 4명뿐으로 절 앞의 밤나무가 모두 도끼에 찍혀 넘어져 있었다.

 

問僧胡然.

승려에게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물었다.

 

僧曰. 民有欲田之者. 禁亦不能.

한 승려가 말하기를, “백성들중에 밭을 일구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는데, 못하게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余歎曰.

내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太山長谷. 耕墾亦及. 國家民旣庶矣. 當思所以富而敎之也.

“높은 산 깊은 골짜기까지 이르러 개간하여 경작하려 하니, 국가의 백성이 많아진 것인데, 그들을 부유하게 하고 교화시킬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少坐. 呼笙笛吹破湮鬱.

잠시 앉았다가 광대를 불러 생황과 피리를 불게 하여,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떨쳐버리려 하였다.

 

有鶉衣一衲. 班舞於庭. 蹲蹲然其氣象可掬.

누더기 승복을 걸친 한 승려가 뜰에서 서성이다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배를 움켜잡고 웃을 만하였다.

 

遂與之俱登前峴. 有木橫道. 坐其上. 前後臨大壑.

드디어 그와 함께 앞 고개로 오르는데, 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그 위에 올라앉아 보니 앞뒤에 큰 골짜기가 있었다.

 

晩色蒼然. 笙聲和笛. 寥亮淸澈. 山鳴谷應. 神魂覺爽矣.

푸른 기운이 어스름한 저녁나절 생황소리가 피리와 어우러져 맑고 밝은 소리가 산과 계곡을 울려 정신이 상쾌해졌다.

 

興盡乃下. 坐溪邊盤石濯足. 是日猶陰. 遂宿東上元寺.

흥이 다하여 바로 내려오면서 시냇가 넓은 바위에 앉아 발을 씻었는데, 이 날도 여전히 음산하여, 동상원사東上元寺에서 묵기로 하였다.

 

夜半夢覺. 星月皎潔. 杜宇亂啼. 魂淸無寐.

한밤중에 깨었는데, 별과 달빛이 환하여 깨끗하고 두견새가 어지럽게 울어대 정신이 맑아져 잠이 오지 않았다.

 

吾庶兄金亨從喜報曰.

나의 서형庶兄 김형종金亨從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明日天王峯. 可快意登覽也.
“내일은 천왕봉에 상쾌한 마음으로 올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네.”라고 하여, 일찌감치 행장을 꾸리게 하였다.

중산리 법계사 코스에서 올려다 본 천왕봉

출처 : 소창대명(小窓大明)
글쓴이 : 바람난 공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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