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남명 조식/ 유두류록 12

2015. 6. 8. 09:14한국의 글,그림,사람

二十四日. 晨嚥白粥. 登東嶺.  24일. 새벽에 흰죽을 먹고 동쪽 고개를 올랐다.

 

嶺曰三呵息峴. 嶺高橫天. 登者數步三呵息. 故名之. 이 고개는 ‘삼가식현(三呵息峴)’이라 부르는데, 고개가 높이 솟아 하늘에 가로놓여 있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몇 걸음 가서 세 번이나 숨을 내쉰다 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頭流元氣. 到此百里來. 偃蹇而猶未肯小下者也. 두류산의 원기가 여기까지 백 리나 왔지만, 오히려 높이 솟아 있어 작아지거나 낮아지려 하지 않는다.

 

愚翁乘剛而馬. 獨鳴鞭先登. 우옹은 강이의 말을 타고 채찍질하여 혼자 먼저 올라갔다.

 

立馬第一峯頭. 下馬據石而揮扇.  제1봉의 고갯마루에 올라 말을 세우고 말에서 내려 바위에 걸터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衆皆寸寸而進.人馬汗出如雨. 良久乃至. 말과 사람이 비오듯 땀을 흘리며 조금씩 올라가, 한참이 지나서야 이르렀다.

 

植忽面折愚翁曰. 내가 느닷없이 우옹에게 면박하기를,


 

지리산 주능선상의 명선봉과 삼각봉 사이에 위치한 연하천대피소의 모습

 

君憑所乘之勢. 知進而不知止. 能使他日趨義. 必居人先. 不亦善乎. "그대는 말 탄 기세에 의지하여 나아갈 줄만 알고 그칠 줄을 모르는구려. 만약 훗날 의를 좇게 되면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앞장설 것이니,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소?"라고 하니,

 

翁謝曰. 우옹이 사과하며 말하기를,

 

吾已料君應有峭說. 吾果知罪. "나는 그대가 꾸짖을 줄 알고 있었소. 내가 내 죄를 알겠소."라고 하였다.

 

剛而顧視頭流. 陰雲掩翳. 不知所在. 강이가 두리번거리며 두류산을 찾았으나 짙은 구름이 가리고 있어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乃嘆曰. 바로 탄식하며 말하기를,

 

山莫大於頭流. 近在一望之中. 衆人瞪目而視之. 猶不得見. 况賢不能大於頭流. 近不能接於目前. 明不能察於衆見者乎. "산 중에서 두류산보다 큰 산은 없고, 한눈 안에 두류산이 가까이 있건만, 여러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지만 그 모습을 볼 수 없는데 하물며 두류산보다 크게 어질지도 못하고, 눈앞에 접할 듯 가깝지도 않으며, 여러 사람의 눈에 환히 드러날 정도로 밝지도 않은 사람은 어떠하겠소?"라고 하였다.

 

相與四顧流觀. 東南面蒼翠最高者. 南海之殿也. 正東之彌漫蟠伏. 波相似者. 河東. 昆陽之山也. 又東之隱隱嵩天如黑雲者. 泗川之卧龍山也. 우리는 사방을 두루 훑어보고, 동남쪽으로 푸르스름하게 가장 높이 솟아 있는 것은 남해의 끝에 있는 산이고, 정동쪽에 파도가 연이어 물결치는 듯한 것은 하동과 곤양의 산들이며, 동쪽에 먹구름처럼 아득히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것은 사천의 와룡산(臥龍山)이었다.

 

其間如血脈之交貫錯綜者. 江河海浦之經絡去來者也. 그 사이에 마치 혈맥이 엉켜 있는 듯한 것은 강과 포구가 서로 연이어진 것이었다.

 

山河之固. 不啻魏國之寶. 臨萬頃之海. 據百雉之城. 猶爲島夷小醜. 重困蒼生. 寧不爲嫠緯之憂乎. 우리나라 산과 강의 견고함은 위나라가 보배로 여길 뿐만 아니라, 넓은 바다에 접해 있고 1백 치의 성에 근거해 있지만 백성들은 보잘것없는 섬나라 오랑캐에게 곤란을 당하고 있으니, 어찌 그 옛날 길쌈하던 근심을 하지 않겠는가?

 

晩到橫浦驛. 늦게 횡포역(橫浦驛)에 이르렀다.

 

饑甚. 㗖寅叔行箱中果子乾雉. 飮秋露一勺.  배가 몹시 고파서 인숙의 가방에서 과일과 말린 꿩고기를 꺼내 먹고 추로주(秋露酒) 한 잔을 마셨다.

 

午到頭理峴. 下馬愒樹下. 정오에 두리현(頭理峴)에 도착하여 말에서 내려 나무 아래에서 쉬었다.

 

渴甚. 人各飮冷泉數瓢下. 갈증이 심하여 차가운 샘물을 몇 바가지씩 마셨다.

 

忽有芒鞋襦直領人下馬. 翩翩而過. 見剛而. 輒坐. 그때 짚신을 신고 직령을 입은 사람이 말에서 내려 재빨리 지나가다가 강이를 보고 앉았다.

 

問其所之. 乃光陽校官也. 그가 가는 곳을 물으니, 바로 광양의 교관이었다.

 

有雄雉而鳴. 李栢挾弓飮. 邏繞之. 雉忽飛去. 衆皆笑之. 그때 장끼 한 마리가 끼룩끼룩 울어 이백이 활을 잡고 화살을 시위에 얹어 살금살금 다가가자, 꿩이 갑자기 날아가 버리니, 우리 모두는 그 광경을 보고 웃었다.

 

方在雲水中. 非雲水則不入眼. 纔到下界. 所見無他. 廣文之過. 山雞之飛. 猶足以掛眼.

우리가 구름 속이나 계곡에 있을 때 구름이나 계곡 물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가 인간 세계에 내려오니 보이는 것이 다른 것이 없고, 지나가는 광양의 교관이나 날아가는 산꿩 정도가 보였다.

 

所見如何不養乎. 그러니 어찌 안목을 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夕到旌樹驛. 저녁에 정수역(㫌樹驛)에 이르렀다.

 

館前竪有鄭氏旌門. 鄭氏. 역관 앞에는 정씨의 정문이 세워져 있었다.

 

趙承宣之瑞之妻. 文忠公鄭夢周之玄孫. 承宣. 義人也. 정씨는 승선(承宣) 조지서(趙之瑞)의 아내이며, 문충공(文忠公) 정몽주(鄭夢周)의 현손녀이고 승선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高風所擊. 隔壁寒慄. 거센 바람이 부딪히는 곳은 벽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춥고 떨린다.

 

知燕山不克負荷. 退居十餘年. 猶不得免. 그는 연산군이 자신이 지고 있는 일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을 알고 10여 년을 물러나 살았지만, 화를 면할 수 없었다.

 

夫人沒爲城旦. 乳抱兩兒. 背負神主. 不廢朝夕祭. 節義雙成. 今亦有焉. 부인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성을 쌓는 죄수가 되어, 젖먹이 두 아이를 끌어안고 살면서도 등에 신주(神主)를 지고 다니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를 지내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니 절개와 의리를 둘 다 이룬 것이 지금에도 이 정문에 남아 있다.

 

看來高山大川. 非無所得. 높은 산 큰 내를 보고 오면서 얻은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而比韓鄭趙三君子於高山大川. 更於十層峯頭冠一玉也. 千頃水面. 生一月也. 海山三百里. 獲見三君子之跡於一日之間. 그러나 한유한, 정여창, 조지서 세 군자를 높은 산과 큰 내에 견준다면, 십 층의 높은 봉우리 끝에 옥을 하나 더 올려놓고, 천 이랑이나 되는 넓은 수면에 달이 하나 비치는 것이다. 바다와 산을 3백 리 길이나 유람하였지만, 오늘 하루 사이에 세 군자의 자취를 다 보았다.

 

看水看山. 看人看世. 山中十日好懷. 翻成一日不好懷. 물만 보고 산만 보다가 사람을 보고 그 세상을 보니, 산 속에서 10일 동안 품었던 좋은 생각들이 하루 사이에 좋지 않은 생각으로 바뀌었다.

 

後之秉鈞者. 來此一路. 不知何以爲心耶. 후에 정권을 잡는 사람이 이 길을 와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런지 모르겠다.

 

且看山中題名於石者多. 三君子不曾入石. 또한 산 속에서 바위에 이름을 새겨놓은 것을 보았는데, 세 군자의 이름은 어디에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而將必名流萬古. 曷若以萬古爲石乎.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반드시 만고에 전해질 것이니, 어떻게 바위에 이름을 새겨 만고에 전하려는 것과 같다고 하겠는가?

 

泓之又令饔人致饎於驛. 已四五日矣. 홍지가 또 사람을 시켜 이 역관으로 음식을 보낸 지 벌써 4, 5일이나 되었다.

 

李生員乙枝. 曹秀才元佑來見. 생원 이을지(李乙枝)와 수재 조원우(曺元佑)가 찾아왔다.

 

及昏. 乙枝嚴君以酒來. 趙光珝亦來. 저녁에 이을지의 아버지가 술을 가져왔고 조광후(趙光珝)도 왔다.

 

夜就郵店. 一室僅如斗大. 밤이 되어 우점(郵店)으로 갔는데 겨우 말(斗)만한 크기의 방 하나뿐이었다.

 

佝僂而入. 房不展脚. 壁不蔽風. 허리를 구부리고 방에 들어갔지만 다리를 펼 수 없었고, 벽은 바람도 막아내지 못하였다.

 

方初怫然如不自容. 旣而四人抵頂交枕. 甘寢度夜. 처음에는 답답함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았으나, 잠시 후에는 네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 베고서 단잠이 들어 밤을 보냈다.

 

可見習狃之性. 俄頃而便趨於下也. 여기에서 사람의 습관이란 잠깐 사이에도 낮은 데로 달려가는 것을 알 수 있다.

 

前一人也. 後一人也. 前入靑鶴洞. 若登閬風. 猶以爲不足. 又入神凝洞.方似上瑶池. 猶以爲不足.   앞에도 한 사람이고 뒤에도 같은 사람인데, 전날 청학동에 들어가서는 마치 낭풍산(閬風山)에 올라 오히려 부족하게 여겼었고, 신응동에 들어가서는 요지에 올라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又欲跨漢入靑霄. 控鶴冲空. 便不欲下就塵寰. 또한 은하수에 걸터앉아 하늘로 들어가거나 학을 부여잡고 공중으로 솟구치려고만 하였고, 다시는 세상으로 내려오려고 하지 하였다.

 

後之屈身於坏螻之間. 又將甘分然. 그러나 뒤에는 몸을 굽혀 좁은 방에서 자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분수로 감내하려고 하였다

 

雖是素位而安. 可見所養之不可不高. 所處之不可小下也. 여기에서 평소의 처지에 만족한다 하더라도, 수양하는 것이 높지 않으면 안 되고 거처하는 곳이 작고 초라해서는 안 됨을 알 수 있다.

 

求見爲善由有習也. 爲惡由有狃也. 向上猶是人也. 趨下亦猶是人也. 只在一擧足之間而已.
사람이 선하게 되는 것도 습관으로 말미암고, 악하게 되는 것도 습관으로 인한 것을 알 수 있고 위로 향하는 것도 이 사람이 하는 것이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같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 한번 발을 들여 놓는 사이에 달려 있을 뿐이다.

출처 : 소창대명(小窓大明)
글쓴이 : 바람난 공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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