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백성에게 복을 내리는 것이 무궁하다/ 김일손(두류기행록 3)

2015. 6. 8. 09:20한국의 글,그림,사람

早戒行李. 遲明. 偪屨着綦. 致其鞏固.

18일, 병오일 날이 밝자 행전을 차고 신발을 묶어서 차림을 단단히 하였다.

 

行林薄中. 路甚梗. 椔翳沒身. 其下皆苦竹. 

숲 가운데를 나아가는데 길이 매우 위험하여 쓰러진 나무가 앞을 가로막아 몸이 빠지기도 하였다.

 

笋芽出地而茁. 亂蹴而行. 蛇虺當道.

그 아래는 모두 왕대였는데, 죽순이 땅에서 삐죽삐죽 나와 있어 어지럽게 발길에 채였고, 길에서 뱀을 만나기도 하였다.

 

木之自仆者. 相着於前. 皆楩楠豫章之材也.

저절로 쓰러진 나무들이 앞에 즐비하였는데 모두 편楩․ 남楠․ 예豫․ 장章의 좋은 목재들이었다.

 

或傴僂出其下. 或蹩躠行其上.

몸을 굽혀 아래로 빠져나오기도 하고, 애를 써서 그 위를 넘기도 하였다.

 

 

제석봉 고사목

 

仍思其不遇於匠石. 不見備於棟梁之用. 而枯死空山. 爲造物可惜. 然亦終其天年者歟.

이렇듯 좋은 나무들이 훌륭한 목공을 만나지 못해 동량棟梁의 재목으로 쓰이지 못하고 빈산에서 말라죽는 것을 생각하니, 조물주의 입장에서는 애석히 여길 만하지만 이 나무들은 천수天壽를 다 누린 것이로다.

 

余健步先待於一澗石. 伯勖力熯. 腰繫一索. 使一僧挽而前.

나는 힘차게 걸어서 먼저 시냇가 바위에 앉아 기다렸고, 백욱은 힘이 부치자 허리에 끈을 묶고 한 승려에게 끌도록 하였다.

 

余迎謂曰. 僧從何處拘罪人來.

내가 그들을 맞이하며 말하기를, “스님은 어디에서 죄인을 묶어오는 것이오?”라고 하자,

 

伯勖笑曰. 不過山靈拿逋客耳.

 백욱이 웃으며 말하기를, “산신령이 도망친 나그네를 붙잡아오는 것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蓋伯勖曾遊此山. 故戲答云耳.

아마도 백욱이 예전에 이 산을 유람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희롱하여 대답한 것이다.

 

到此渴甚. 從者皆掬水和糜飮之.

이곳에 다다르자 갈증이 심하여 따라 온 사람들이 모두 물을 떠서 쌀가루를 타서 마셨다.

 

 

지리산 계곡의 힘찬 물흐름

更無蹊逕. 只千丈巖溜. 聚成一澗. 從山上而注. 如銀潢自天倒瀉澗中.

여기서는 샛길이 없었고 천 길 바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모여 한 시내를 이루었을 뿐인데, 산 위에서 시내 가운데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은하수가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듯하였다.

 

巨谷纍纍. 相疊爲梁. 苔痕滑潤. 履之易踣. 童行往來者. 累小石其上. 以識其路.

큰 돌이 첩첩이 포개져 다리가 되었으나, 이끼가 끼어 미끄러워서 밟으면 넘어지기 십상이어서 오고가는 초동樵童들이 그 위에 작은 돌을 쌓아 그곳이 길임을 표시해두었다.

 

樹陰參天. 光景不漏. 如此泝澗. 五步一息. 十步一息. 矻矻用力. 澗盡稍北.

나무 그늘이 하늘을 가려 햇빛이 새어들지 않았는데, 이런 험한 계곡에서 시내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다섯 걸음에 한 번 쉬고 열 걸음에 한 번 쉬기도 하면서 땀을 흘리며 힘을 썼다.

 

復披苦竹中. 山皆石也.

시내가 끝나고 조금 북쪽으로 가다가 다시 왕대 속을 헤치며 걸었는데, 산은 모두 돌로 덮여 있었다. 

 

攀緣磴葛. 轉轉以上. 喘喘十餘里.

바위나 칡넝쿨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10여 리를 숨가쁘게 기어올랐다.

 

陟一崔嵬. 䕽䕽花爛開. 喜其別造化. 折簪一花. 分命從者皆揷而行. 遇一巘崿.

높고 가파른 산 하나를 오르니 철쭉꽃이 만개하여 별천지에 온 것처럼 기뻐서, 꽃 한 송이를 꺾어 머리에 꽂고, 따라온 사람들에게도 명하여 모두 꽃을 꽂고 가게 하였다.

 

號世尊巖. 巖極峻拔. 有梯可上.

세존암世尊巖이라고 하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만났는데, 세존암은 매우 가파르고 높았으나 사다리가 있어 올라갈 수 있었다.

 

上而望天王峯. 可數十里.

올라가 천왕봉을 바라보니 몇 십 리 정도 되는 거리였다.

 

喜謂從者努力更進一步.

기뻐서 따라온 사람들에게 힘내어 다시 올라가자고 말하였다.

 

自此路稍低.

여기서부터 길이 조금 낮아졌다.

 

行五里許到法界寺. 只留一僧.

5리쯤 더 가니 법계사法界寺에 이르렀는데, 절에는 승려 한 사람만 있었다.

 

 

지리산 깃대종인 봄꽃 히어리

 

木葉田田纔長. 山花艶艶方開. 卽候暮春也.

나뭇잎은 이제 막 파릇파릇 자라나고 산꽃은 울긋불긋 한창 피었으니, 때는 늦은 봄이었다.

 

少憩卽上.

조금 쉬었다가 바로 올라갔다.

 

有石如船. 或如門. 由之以行. 盤回曲折. 嵌谾谽谺.

배船같기도 하고 문門 같기도 한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를 거쳐 지나가게 되었는데 길은 꼬불꼬불 돌기도 하고 꺾여지기도 하였으며, 골짜기는 휑하였다.

 

捫石角攬木根. 纔及峯頭. 而大霧四塞. 咫尺不辨.

돌부리를 움켜쥐고 나무뿌리를 부여잡고서 겨우 봉우리 위를 올랐으나,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사방에 끼어 있었다.

 

香積僧將錡子來. 得一寬地面. 巖溜淙淙. 滴成泉水. 不敢更上. 卽命淅米而炊.

향적사의 승려가 솥을 가지고 와서 넓은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샘을 이루고 있어,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쌀을 일어 밥을 짓게 하였다.

 

滿山更無他材. 有木如杉檜.

온 산에 다른 목재는 없고 삼나무나 노송나무 같은 나무만 있었다.

 

僧云枇木也. 薪而爨. 失飯味.

한 승려가 말하기를, “이는 비파나무인데 이 나무로 밥을 지으면 밥맛이 없다.”라고 하였다.

 

試之果然.

시험해보니 과연 그랬다.

 

古人知勞薪之所炊者. 因可推也.

옛 사람들이 밥 짓는 땔나무를 고를 줄 알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人傳頭流多柿栗海松. 秋風實落. 塡滿蹊谷. 居僧取而充飢者. 妄也.

사람들이 전하기를, “두류산에는 감나무, 밤나무, 잣나무가 많아서 가을이 되면 열매가 바람에 떨어져 온 계곡에 가득하여 이곳의 승려들이 열매를 주워 주린 배를 채운다.”라고 하는데, 이는 허망한 말이다.

 

他草木尙不遂其生. 況於果實乎.

다른 초목들도 오히려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데 과실이야 어떠하겠는가.

 

每歲官督海松. 民常轉貿於產鄕以充貢云.

해마다 관아에서 잣을 독촉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항상 산지에서 사다가 공물로 충당한다고 한다.

 

凡事耳聞. 不如眼見者類此.

매사에 귀로 듣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고 하는 것에 이런 부류이다.

 

薄暮. 上峯頂. 頂上有石壘. 僅容一間板屋.

저물녘에 정상에 올랐는데, 정상에는 한 칸의 판잣집이 겨우 들어앉은 돌무더기가 있었다.

 

 

천왕성모상

屋下有石婦人像. 所謂天王也.

판잣집 안에는 돌로 된 부인상婦人像이 있는데, 이른바 천왕天王이었다.

 

紙錢亂掛屋樑.

그 판잣집 들보에는 지전紙錢이 어지러이 걸려 있었다.

 

有嵩善金宗直季昷,高陽兪好仁克己,夏山曺偉太虛. 成化壬辰中秋日同登. 若干字.

“숭선嵩善 김종직金宗直 계온季昷, 고양高陽 유호인兪好仁 극기克己, 하산夏山 조위曺偉 태허太虛가 성화成化 임진년(1472) 중추일에 함께 오르다.”라고 쓴 몇 글자가 있었다.

 

歷觀曾遊人姓名. 多當世之傑也.

또, 일찍이 유람한 사람들의 성명을 차례로 보니, 당대 걸출한 사람들이 많았다.

 

遂宿祠宇.

사당에서 묵기로 하였다.

 

襲重綿加煖衾以自溫. 從者燎火祠前以禦寒.

겹으로 된 솜옷을 껴입고 두터운 이불을 덮어 몸을 따뜻하게 하고, 따라온 사람들은 사당 앞에 불을 지펴놓고 추위를 막았다.

 

夜半. 天地開霽. 大野洪厖.

한밤중이 되자 천지가 맑게 개어 온 산하가 드러났다.

 

白雲宿於山谷. 如滄海潮上. 多少浦口. 白浪驅雪. 而山之露者. 如島嶼點點然也.

흰 구름이 골짜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넓은 바다에서 조수가 밀려와 온 포구에 흰 물결이 눈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듯하였고, 드러난 산봉우리들은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 같았다.

 

倚壘俯仰. 愯然神心俱凜. 身在鴻濛太初之上. 而襟懷與天地同流矣. 
돌무더기에 기대어 사방을 둘러보니 외람되게도 마음과 정신이 모두 늠름하고 몸은 아득한 태초의 위에 있는 듯 하여 회포가 천지와 함께 흘러가는 듯하였다.

 

 

천왕봉 일출

辛亥黎明.

23일, 신해일. 날이 밝을 무렵,

 

觀日出暘谷. 晴空磨銅.

해가 양곡暘谷에서 나오는 것을 바라보았는데, 맑은 하늘에 연마한 구리거울 같은 해가 솟아올랐다.

 

徘徊四望. 萬里極目. 大地群山. 皆爲蟻封蚯垤. 描寫則可會昌黎南山之作. 而心眼則直符宣尼東山之登矣.

배회하며 사방으로 바라보니, 뭇 산은 모두 개미집처럼 보였는데, 묘사하자면 창려昌黎의 남산시南山詩와 부합되고, 마음의 눈으로 보면 선니宣尼께서 동산東山에 오르셨을 때와 바로 들어맞는다.

 

多少興懷. 下瞰塵寰. 感慨繫之矣.

어느 정도 회포를 품고 풍진 세상을 내려다보니 감개가 그지없었다.

 

 

옛 백제땅에 위치하고 있는 바래봉과 철쭉

山之東南. 古新羅之區也. 山之西北. 古百濟之地也.

산의 동남쪽은 옛 신라의 구역이고 산의 서북쪽은 옛 백제의 땅이다.

 

紛紛蚊蚋. 起滅於瓮盎. 從頭屈指. 幾多豪傑. 埋骨於此哉.

어수선하게 날아다니는 모기들이 독 안에서 생겼다 사라지는 것같이, 처음부터 손가락으로 헤아려보면 얼마나 많은 호걸들이 이곳에 뼈를 묻었던가.

 

吾輩今日登覽無恙者. 亦豈非 上之賜也.

우리들이 오늘 탈 없이 올라와 구경하는 것도 어찌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겠는가.

 

茫茫藹藹. 太平煙火中. 又念有悲歡憂喜. 吹萬不齊者.

망망하고 아득한 태평한 세월 속에서도, 생각하면 슬프고 즐거우며 기쁘고 근심스러워 갖가지 가지런하지 못한 일을 드러내어 말할 것이 있다.

 

遂語伯勖曰. 安得與君邀偓佺之輩. 凌鴻鵠之飛. 身游八紘之外. 眼窮一元之數. 以觀夫氣盡之時耶.

그래서 백욱에게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그대와 악전偓佺의 무리를 맞이하여 기러기나 고니보다 높이 날며, 몸은 세상의 밖에서 노닐고 눈은 우주의 근원까지 궁구하여 기氣가 다하는 때를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伯勖笑曰. 不可得矣.

백욱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仍命僕夫. 具貳簋泂酌. 將報事於祠下. 其文曰.

이어 종들을 시켜 제물 두 그릇과 술을 차리게 하여 사당 아래서 제사 지낼 것을 알리고 제문을 지었다.

 

昔先王制上下之分. 五岳四瀆. 唯天子得以祭之. 諸侯只祭封內之山川. 公卿大夫各有所當祀也.

"옛날 선왕先王이 상하의 분별을 제정하여, 오악五岳 과 사독四瀆은 천자만이 제사를 지낼 수 있고, 제후들은 봉지封地 내의 산천에만 제사를 지내며, 공경公卿․ 대부大夫는 각기 해당되는 제사만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降及後世. 名山大川. 至於祠廟. 凡文人行子之出其下者. 必以行具而奠. 有告焉有祈焉者. 皆是也.

후세로 내려와 명산대천에서 사묘祠廟에 이르기까지 그 아래를 지나는 모든 문인이나 행자行子는 반드시 제물을 갖추어 제사를 올리니, 신에게 고하는 것이나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모두 이러한 것들입니다.

 

 

지리산 서북능선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맨뒤의 능선)

維頭流. 邈在海邦. 磅礴數百里. 作鎭湖嶺二南之界. 環其下數十州. 必有巨靈高神. 興雲雨儲精英. 以福于民無窮已也.

두류산은 먼 바닷가에 있는 산으로 수백 리나 펼쳐져, 호남과 영남의 경계에 진산鎭山이 되었으며, 그 아래로 수십 개의 고을이 둘러 있어서 이 산에는 반드시 크고 높은 신령이 있어서 구름과 비를 일으키고 정기를 쌓아 백성에게 복을 내리는 것이 무궁합니다.

 

某與進士鄭汝昌. 守道疾邪. 平生不讀非聖之書. 行過淫祠. 必衊之毀之而後止也.

저는 진사 정여창鄭汝昌과 정도正道를 지키고 사도邪道를 미워하여, 평생 성인의 글이 아니면 읽지 않아서 음사淫祠를 지날 때면 비난하거나 무너뜨리고서야 그만 두었습니다.

 

今年夏. 作意遊山. 行及茲山之麓. 霧雨冥濛. 懼不克縱觀茲山之異也. 昨者.

금년 여름 산을 유람할 뜻을 세우고 길을 떠나 이 산 기슭에 이르렀는데, 안개와 비가 온 산을 가려 이 산의 기이함을 마음껏 둘러 보지 못할까 두려웠습니다.

 

雲陰解駁. 日月光霽. 精心默禱. 衡山之靈. 未必不厚於韓愈氏也.

구름이 걷히고 날씨가 맑게 개니, 이는 한유가 마음을 정성스럽게하고 묵묵히 기도하자 형산衡山의 구름이 맑게 갠 것과 같으니 형산의 신령이 반드시 한유에게 박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問諸居民. 以神爲摩耶夫人者誣.

거처하는 백성에게 물으니 이 신을 마야부인이라고 하는데, 이는 속이는 말입니다.

 

而佔畢金公. 吾東方之博通宏儒. 徵諸李承休之帝王韻記. 以神爲麗祖之妃威肅王后者信也.

점필재 김공은 우리 동방의 박학다식한 큰 선비인데,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 징험하여 이 신을 고려 태조의 비妃인 위숙 왕후라고 하였으니, 믿을 만합니다.

 

提甲烈祖. 以一三韓. 免東人於紛爭之苦. 立祠巨岳而永享于民. 順也.

위숙 왕후는 열조烈祖를 이끌어 세워 삼한을 통일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을 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으니 큰 산에 사당을 세워 백성들이 영원히 흠향하는 것은 순리입니다.

 

吾年弱冠. 失所怙. 老母在堂. 西山之暉漸迫. 愛日之懇. 未嘗弛於跬步之頃也.

내가 약관의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늙은 어머니만 집에 계신데, 서산의 해가 점점 기울 듯이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한 걸음 옮기는 순간에도 애일愛日의 간절한 마음 을 늦춘 적이 없습니다.

 

周文九齡. 郭琮祈年. 書籍有驗. 敢爲山行告焉. 而敢爲老母祈焉.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90세를 누린 것과 곽종郭琮이 어머니를 위해 장수를 빈 것이 서적에서 증험되니, 감히 산행을 위하여 고하고 노모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白飯一盂. 明水一爵. 貴其潔且敬也. 尙饗.

백반 한 그릇과 맑은 물 한 잔을 올리니 정결하고 공경함을 귀히 여기시어 부디 흠향하소서.”라고 하였다.

 

文旣成且酹. 伯勖曰. 世方以爲摩耶夫人. 而子明其威肅王后. 恐未免世人之疑. 不如已之.

제문을 다 짓고서 술을 따르려 하는데, 백욱이 말하기를, “세상에서는 모두 마야부인이라 하는데 그대는 위숙왕후라고 확신하니, 세상 사람들의 의심을 면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차라리 그만두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마야부인의 전설이 전해오는 마야계곡의 한 부분

余曰. 且除威肅摩耶. 而山靈可酹.

 내가 말하기를, “위숙왕후든 마야부인이든 그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산신령에게 술을 올릴 수는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伯勖曰. 曾謂泰山不如林放乎. 且國家行香. 不於山靈. 而每於聖母或迦葉. 子將奈何.

백욱이 말하기를, “‘태산泰山의 신이 임방林放만 못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하였고, 국가에서 분향을 할 적에 산신령에게 하지 않고 성모聖母나 가섭에게 하였으니, 그대는 어찌 하려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余曰. 然則頭流之靈. 不享矣. 棄山鎭而瀆淫祀. 是則秩宗者之過也. 遂止.

내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두류산의 신령이 흠향하지 않을 것입니다. 산을 진압하는 신령을 버려두고 음사淫祀를 번거롭게 행하는·것은 질종秩宗의 잘못입니다.”라고 하고서, 마침내 제사를 그만두었다.

 

半日. 但仰見雲氣之麗于天. 不知其爲半空物也. 到此則眼底平鋪而已.

나는 반평생 동안 운기雲氣가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을 올려다보았을 뿐, 그것이 허공에 있는 물건인 줄 몰랐는데 여기 올라와보니 구름이 눈 아래 평평히 깔려 있을 따름이었다.

 

平鋪處. 必晝陰也.

구름이 평평히 깔린 곳은 대낮인데도 반드시 그늘이 드리웠을 것이다.

 

日晡時. 嵐氣四合. 遂下由石門. 投香積寺.

해질녘에 남기嵐氣가 사방에서 모여들어 석문石門을 통해 내려가 향적사에서 묵었다.

 

寺僧相賀云. 老物住此久. 今年多少僧俗. 欲觀上峯者. 輒爲風雨雲陰所蔽. 無一得見頭流之全體.

이 절의 승려가 치하하기를, “이 늙은이가 이 절에 머문 지 오래되었는데, 올해에 상봉을 보고자 하는 승려와 속인들이 많았으나, 비바람과 구름에 가려 두류산 전체를 본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습니다.

 

昨晩陰雨有徵. 措大一登. 便光霽. 是亦異也.

어제 저녁에는 날씨가 흐려 비가 올 듯하였는데 상봉에 오르자 날씨가 맑게 개었으니, 이 또한 기이한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余頷之.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寺前有巖斗絶. 名金剛臺.

절 앞에는 우뚝 솟은 바위가 있는데 금강대金剛臺라고 하였다.

 

登眺則眼前奇峯無數. 白雲常繞之.

바위에 올라보니, 흰 구름이 항상 감싸고 있는 기이한 봉우리가 무수히 보였다.

 

自法界至上峯至香積. 皆轉繞層崖而行.

법계사에서 상봉에 이르고 또 향적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층층의 비탈길을 돌아서 갔다.

 

崖面皆石蕈.

비탈진 바위에는 모두 석심石蕈이 나 있었다.

 

山皆疊石. 落葉眯於石眼. 而草木之根. 因着而生.

산은 모두 첩첩의 돌뿐이었고 낙엽이 돌 틈에 끼여 썩었으며 초목이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었다.

 

枝條短折. 皆東南靡拳曲蒙茸. 不能舒展枝葉. 上峯尤甚.

나뭇가지는 짧았는데 모두 동남쪽으로 쏠려 있고, 구부러지고 덥수룩하여 가지와 잎을 제대로 펴지 못하였는데 상봉 쪽이 더욱 심하였다.

 

杜鵑花始開一花兩花. 而未拆之蕊滿枝. 正是二月初也.

두견화杜鵑花 한두 송이가 막 피기 시작하여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이 가지에 가득하니 바로 2월 초순의 기후였다.

 

僧云. 山上花葉. 五月始盛. 六月始彫.

승려가 말하기를, “산 위에는 꽃과 잎이 5월이 되어서 성대해지고, 6월이 되면 시들기 시작합니다.”라고 하였다.

 

余問伯勖. 峯高近天. 宜先得陽氣而反後. 何也.

내가 백욱에게 묻기를, “봉우리가 높아 하늘과 가까우니 먼저 양기를 얻을 듯 한데 도리어 뒤늦게 피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伯勖曰. 大地距天八萬里. 而吾行數日而到上峯. 峯之高距地不滿百里.

백욱이 말하기를, “땅과 하늘의 거리는 8만 리이고 우리가 며칠 동안 걸어서 상봉에 이르렀지만 상봉의 높이는 지상에서 백 리도 되지 않습니다.

 

則其距天不知其幾也. 不可言先陽. 特孤高先受風耳.

하늘까지 거리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양기를 받는다고는 말할 수 없고 홀로 우뚝 솟아 먼저 바람만 맞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余曰. 凡物之生. 其忌高哉. 然高不免風雨之萃. 卑且遭斧斤之厄. 將何擇而可乎.

내가 말하기를, “모든 생물은 높은 곳을 꺼릴 듯 하지만 높은 곳에 있으면 비바람을 면치 못하고 낮은 곳에 있어도 도끼에 찍히는 액운을 만나게 되니,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요?”라고 하였다.

 

香積傍. 有大木數百章積焉. 問僧何爲.

향적사 곁에 큰 목재 수백 개가 쌓여 있어서 승려에게 무엇에 쓸 것인지를 물었다.

 

僧曰. 老子行乞於湖南諸州. 漕致蟾津. 寸寸而輸. 欲新此寺. 已六年矣.

승려가 말하기를, “이 늙은이가 호남 여러 고을을 다니면서 구걸하여 섬진강까지 배로 실어온 뒤 하나하나 옮겨다놓은 것입니다. 이 절을 새로 지으려고 한 지 6년이나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余曰. 吾儒之於學宮. 其未矣. 釋氏之敎. 覃自西域. 愚夫愚婦. 奉之軼於文宣王. 民之耽邪. 不如信正之篤矣.

내가 말하기를, “우리 유자(儒者)들의 학궁(學宮)에 대한 정성은 아직 미치지 못하는구나. 석가의 가르침이 서역에서 기인하였으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를 떠받들어 문선왕文宣王을 능가하게 되었으니, 백성들이 사교邪敎에 탐닉하는 것이 우리들이 정도正道를 독실히 믿는 것과 다르구나.”라고 하였다.

 

寺可以望海.

이 절에서는 바다를 볼 수 가 있었다.

 

余謂僧曰. 天壤之間. 水多而土小. 吾靑邱. 山多於地. 而國家生齒日繁. 無所容. 汝善慈悲. 盍爲衆生. 根尋頭流之所從來. 自長白山. 平鋤以塡南海. 作原隰萬里. 以奠民居爲福田. 不猶愈於精衛乎.

내가 승려에게 말하기를, “하늘과 땅 사이에 바다는 넓고 육지는 적은데, 우리 청구靑邱는 산이 평지보다 많고 국가의 인구는 날로 번성하여 수용할 곳이 없으니, 그대는 자비심이 많으니 어찌 중생을 위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두류산이 뻗어내린 뿌리를 거슬러 올라 장백산長白山에서부터 평평하게 깎아내려 남해를 메워서 만리의 평원을 만들어 백성들이 살 곳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복전福田을 삼으면 정위精衛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僧曰. 不敢當.

승려가 말하기를,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余又曰. 高岸爲谷. 滄海爲桑田. 雲山石室. 修鍊金丹. 舍爾涅槃之道. 學彼長生之術. 待頭流爲谷. 南海爲桑田. 然後共保耆壽. 何如.

내가 다시 말하기를, “높은 언덕이 골짜기가 되고, 푸른 바다가 뽕나무 밭이 되도록 구름이 덮인 산 속 석실石室에서 금단金丹을 수련하여 그네들 열반涅槃의 도道를 버리고 저 장생長生의 도술을 배워서 두류산이 골짜기가 되고 남해가 뽕나무 밭이 되기를 기다리시오. 그런 뒤에 함께 장수를 누리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하였다.

 

僧曰. 願結因緣. 遂拍手大噱. 
승려가 말하기를, “인연이 맺어지길 원합니다.”라고 하고, 손뼉을 치며 껄껄 웃었다.

출처 : 소창대명(小窓大明)
글쓴이 : 바람난 공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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