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남명 조식) 유두류록 (2)

2015. 6. 8. 09:08한국의 글,그림,사람

 

(지리산 만복대에서 촬영한 사진)

 

十一日. 飯我鷄伏堂. 登道. 舍弟桓隨之. 元生右釋曾爲釋化俗. 爲其慧悟而善謳. 召與之行. 出門甫數十步. 有小兒前控曰. 追逋奴來也. 只在此路下. 未捕. 愚翁遽揮丘史四五人. 左右匝之. 俄而縛致馬頭. 果八箇男女. 遂策馬去. 共嘆曰. 偶然下手. 有怨有德. 斯何造物所使耶. 吾復竊嘆曰. 愚翁袖手五十年. 拳如醬末子. 縱未能收地於河湟千萬里. 猶得指揮方略於呼吸之間. 可謂眞大手矣. 相與折倒而去. 向夕投晉州. 曾約泓之乘舟泗川. 遡蟾津入雙磎計也. 忽遇李從事俊民於馬峴. 由湖南來覲其親. 其親則寅叔也. 更聞泓之啣差去. 旋投寅叔第. 寅叔則吾姊夫也.

 

11일. 계부당(鷄伏堂)에서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났는데, 집의 아우인 조환(曺桓)이 따라나섰고 유생인 원우석(元右釋)은 승려가 되었다 속세로 돌아온 사람으로 깨달음이 있고 노래를 잘 하여서 불러 함께 떠나게 되었다. 문을 나서서 겨우 수십보 쯤 걸었을때, 어린아이가 앞을 가로막으면서 말하기를,


“도망친 종을 좇아왔습니다. 종이 이 길 아래에 있지만 잡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우옹이 갑자기 구사(丘史) 네댓 사람을 지휘하여 좌우로 포위하게 하였는데, 조금 지나서 과연 남녀 8명을 포박하여 말 앞에 이르렀다.


그제서야 말을 달려 길을 떠나면서 함께 탄식하기를,
“우연히 손을 쓰게 되었는데, 원망하기도 하고 덕이 있다고도 하니 조물주가 무엇을 부려서 인가.”
라고 하였다. 내가 가만히 탄식하기를,


“우옹이 오십년 동안 소매 속에 손을 넣고 쓰지 않아 주먹이 메주와 같이진 줄 알았더니 황하와 황수 유역 천만 리의 땅을 수복할 수는 없더라도, 오히려 잠깐의 사이에 방법과 계략을 지휘할 수 있었으니 진실로 좋은 수완이라고 이를만 하구나.”
라고 하면서 서로 웃으면서 출발하였다.


저녁이 되어서 진주에 이르렀다. 홍지와 사천에서 배를 타고서 섬진강을 거슬로 올라 쌍계에 들어가기로 약속했었는데 마현(馬峴)에서 갑자기 종사관(從事官) 이준민(李俊民)을 만나게 되었다. 호남에서 그의 어버이를 뵈러 오는 길이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인숙 이공량이었다. 다시 홍지가 체차되었음을 듣고 둘러서 인숙의 집에 투숙하였는데 인숙은 바로 나의 매부이다.

출처 : 소창대명(小窓大明)
글쓴이 : 바람난 공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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