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忠誠을 다했으면서도 오형(五刑)을 받아 죽은 李斯(이사)

2012. 12. 31. 11:22한시

 

 


忠誠을 다했으면서도 오형(五刑)을 받아 죽은 李斯(이사)


李斯(이사)의 무모했던 통치 방식에 대해 당(唐)나라의 시인 조업(曹?)은 <독이사전(讀李斯傳)>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업:땅이름 업 業+邑부)


一車致三穀  本圖行地速

일거치삼곡  본도행지속


不知駕馭難  擧足成顚覆

부지가어난  거족성전복


欺暗尙不然  欺明當自戮

기암상불연  기명당자륙


難將一人手  掩得天下目

난장일인수  엄득천하목


不見三尺墳  雲陽草自綠

불견삼척분  운양초자록



한 수레에 바퀴 세 개를 단 것은

원래 빨리 달리려는 것인데

이는 수레몰이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

출발하자마자 뒤집어질 수밖에

남이 모르는 것을 속이려 해도 잘 안 되는 법인데

세상이 아는 것을 속이려 했으니 죽음을 불렀지

한 사람의 손으로는

천하의 눈들을 가리기 어려운 법

못 보았는가! 석 자 높이의 무덤에

그늘 졌다 햇볕 들었다 하면서 풀빛만 푸르른 것을


또 다른  독이사전(讀李斯傳)은 - 李?(이업)


기암상불연(欺暗尙不然) 남이 모르는 것을 속이려 해도 잘 안 되는 법인데

기명당자륙(欺明當自戮) 세상이 아는 것을 속이려 했으니 죽음을 불렀지

난장일인수(難將一人手) 한 사람의 손으로는

엄득천하목(掩得天下目) 천하의 눈들을 가리기 어려운 법


마치 조업(曹?)의 시 <독이사전(讀李斯傳)>이라는 시 중 五, 六. 七. 八 의 四 句만 採錄(채록)한 듯한....



李斯(이사)는 楚(초)나라 上蔡(상채) 사람 韓非(한비)와 함께 荀子(순자)를 좇아 帝王의 術을 배우고 法術刑名學(법술형명학)으로 秦始皇(진시황)을 섬겼다. 始皇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는 丞相(승상)이되어 郡縣制(군현제)를 정하고 禁書令(금서령)을 내렸으며 蒼詰(창힐)이 만든 문자를 정리하게 하여 小篆(소전)을 만들게 했다.

秦二世 때에 趙高의 참언에 의해 咸陽의 거리에서 腰斬刑(요참형)에 처해졌다. 秦始皇 때에 있었던 焚書坑儒(분서갱유)는 그의 進言(진언)에 의한 것이다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의 말미에서는 이사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이사(李斯)는 작은 마을의 미천한 몸으로서 諸侯를 遊說하고 진(秦)에 들어가 진왕(秦王)의 신하가 되었다. 열국(列國)의 분쟁을 교묘히 이용하여 공작을 하고 진왕(秦王)을 보좌하여 마침내 진왕(秦王)으로 하여금 시황제(始皇帝)가 되게 하였고 자신은 삼공(三公)이 되었다. 진실로 귀중하게 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사(李斯)는 육예(六藝)와 경전의 근본 뜻을 잘 알아 政治를 공평하게 하고 임금의 모자라는 점을 잘 보충하였으나, 높은 벼슬과 녹(祿)을 가지고서도 아첨하고 영합하였으며 명령을 엄하게 하고 刑罰(형벌)을 혹독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조고(趙高)의 요언(妖言)에 현혹되어 적자(嫡子)를 폐하고 서자(庶子)를 세웠다. 제후들이 이반(離反)하자 비로소 임금에게 간하려 했지만 이미 때가 늦지 않았던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사(李斯)는 나라에 충성을 다했으면서도 오형(五刑)을 받아 죽었다고 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이사(李斯)의 행동에는 세속의 말과 다른 점이 많다. 그렇지만 않았던들 진실로 이사(李斯)의 공적은 그로 하여금 주공(周公), 소공(召公)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을 것이다.”


                 먼 훗날 우리가 살았던 이 時代(이 政權)를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려낼가?


                     

 

     憫農(민농)  - 李紳

 

鋤禾日當午 汗滴禾下土

서화일당오 한적화하토


誰知盤中? 粒粒皆辛苦   저녁밥 손

수지반중손 입입개신고


한낮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매니    

땀방울이 벼 아래 흙에 뚝뚝 떨어지네.

누가 알랴, 그릇에 담긴 밥이

한 알 한 알 괴로움이 영근 것인 줄을.

 


李紳의 같은 제목에 다른 詩는


春種一粒粟  秋收萬顆子

춘종일입속  추수만과자


四海無閑田  農夫猶餓死

사해무한전  농부유아사



봄에 곡식을 한 알 뿌리면

가을엔 만 알의 곡식을 거두데

천하 놀리는 밭이 없는데

농부들은 굶어 죽는다네.


이신 [李紳, 772~846] 자는 공수(公垂)이며, 장쑤성[江蘇省] 우시[無錫] 사람이다. 진사에 급제한 뒤 국자조교(國子助敎), 절동관찰사(浙東觀察使)를 거쳐 무종(武宗) 때에는 재상에 올랐다. 백거이(白居易), 원진(元? )과 매우 친하였고, 가장 먼저 악부신제(樂府新題) 20수를 지어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 시는 전해지지 않고, 추석유시(追昔游詩)(3권)와 잡시(雜詩(1권)가 현존한다.


출처 : 재령이씨 인자 조 후손
글쓴이 : 운봉(雲峰:밀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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