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타고난 재능에 비해 불우한 삶을 살았던 蓀谷(손곡) 李達(이달)

2012. 12. 31. 11:21한시


 

타고난 재능에 비해 불우한 삶을 살았던 蓀谷(손곡) 李達(이달)


얼굴이 단정하지 못하고 성품이 호탕하여 예법에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성미라 가는 곳마다 업신여김을 당하며, 몸 붙일 데가 없는 비렁뱅이, 천덕꾸러기로  자유분방하여 한 곳에 정착해 있지를 못하고 유랑하면서 시와 술을 즐기면서 일생을 불우하게 보내었다.


아버지 이수함(李秀咸)과 홍주 관기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기생이었던 탓에 글재주가 뛰어나도 세상에 쓰이지 못했다.

한시의 대가로 문장과 시에 능하고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신분적 한계로  타고난 재능 세상에 발휘해 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는 벼슬살이하던 知人들의 부임지를 떠돌며 비렁뱅이로 살았으나. 그의 몇 편의 빛나는 시로 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이름을 잃지 않고 있다


허균은 그를 추모하는「손곡산인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蓀谷(손곡)의 얼굴이 단아하지 못한데다가 性格이 또한 호탕하여 절제하지 않았고, 게다가 世俗의 禮法을 익히지 않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에게 미움을 입었다. 그는 古今의 모든 일과 自然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야기하기 즐겼으며, 술을 사랑하였다. 글씨는 진체(晉體)에 능하였다. 그의 마음은 가운데가 텅 비어서 아무런 한계가 없었으며, 살림살이를 돌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性品 때문에 그를 사랑하기도 하였다. 그는 평생토록 몸 붙일 곳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사방에 비렁뱅이 노릇을 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천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가난과 곤액 속에서 늙었으니, 이는 참으로 그 시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몸은 곤궁했지만 그의 시는 썩지 않을 것이다. 어찌 한때의 富貴로써 그 이름을 바꿀 수 있으리오.

허경진 역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시선』(평민사,2001) p.122


손곡(蓀谷)은 청아한 시편들을 많이 남겼다 그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작품 중 한 시골 늙은이가 어린 아이와 더불어 밭머리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 작품 제총요(祭塚謠)는.


白犬前行黃犬隨   野田草際塚??

백견전행황견수   야전초제총류류


老翁祭罷田間道   日暮醉歸扶小兒

노옹제파전간도   일모취귀부소아



흰둥이가 앞서고 누렁이는 따라가는데

들밭머리 풀 섶에는 무덤이 늘어서 있네.

늙은이가 제사를 끝내고 밭 사이 길로 들어서자,

해 저물어 취해 돌아오는 길을 어린 아이가 부축하네.


「祭塚謠」제사를 끝내고 (허경진 역)



老人과 어린 아이가 어떤 사이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조손간(祖孫間)으로 짐작된다. 무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노인의 아들, 그러니까 아이의 아버지일 것만 같다.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원통하게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무슨 까닭으로 세상을 일찍 떴을까? 어쩌면 전쟁터에 끌려가서 전사한 것은 아닐까? 제2행에서 무덤들이 풀 섶에 늘어서 있다는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런 죽음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마을의 젊은이들을 한꺼번에 앗아간 전화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당시 壬辰倭亂으로 말미암아 農村의 젊은이들은 징집되어 얼마나 많이 목숨을 잃었을 것인가. 그래서 마을엔 老人과 兒女子들뿐 젊은 사람은 없다. 죽은 아들의 기일을 맞아 노인은 어린 손자를 데리고 묘를 찾았으리라.

무덤 앞에 쪼그려 앉아 어린 손자를 바라다본 노인은 세상을 원망하며  한 잔 두 잔 기울인 술에 그만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비틀거리면서 밭 사이 길을 들어서는 모습이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앞서 가는 두 마리의 무심한 개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구름 속에 파묻힌, 俗世와 멀리 떨어진 절은 평소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문을 닫은 채 길도 쓸지 않는데, 쓸리는 것이 낙엽이 아니라 구름. 손님이 와서 비로소 문을 열어 보니 어느 듯 온 산에 松花로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채 自然과 함께 지내는 경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글이다.



?佛日庵 因雲/ 불일암 인운 스님에게 -蓀谷(손곡) 李達(이달)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

사재백운중   백운승불소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객래문시개   만학송화로


절집이라 구름에 묻혀 살기로

구름이라 스님은 쓸지를 않아

바깥 손 와서야 문 열어 보니,

온 산의 송화꽃 하마 쇠었네.


                    *출전: 손곡집(蓀谷集)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저녁에 먹을거리가 떨어졌다.

젊은 아낙은 빗속에 들로 나가서 보리를 베어 집으로 돌아온다.

어서 보리밥이라도 지어서 자식들 끼니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땔나무도 습기를 먹어서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게다가 어린 딸은 어머니 옷을 붙잡고 울기까지 한다.

비와 습기에 젖은 땔나무 등의 소재들은 그 당시 백성들의 처량한 삶을 표현하고 있다.


손곡(蓀谷) 이달이 동산역(洞山驛)이라는 곳을 지나며 지었다는 시다. 실제로 본 것을 작품으로 옮겼다는 보리 베는 노래는



刈麥謠 (예맥요)보리 베는 노래 -손곡(蓀谷)이달

                   


田家少婦無夜食   雨中刈麥林中歸   

전가소부무야식   우중예맥림중귀


生薪帶濕煙不起  入門兒女啼牽衣    

생신대습연불기  입문아녀제견의



시골집 젊은 아낙이 저녁거리가 없어서

빗속에 보리를 베어 수풀 속을 지나 돌아오네.

생섶은 습기 머금어 불도 붙지 않고

문에 들어서니 어린 딸은 옷을 끌며 우는구나.


 

이달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비참하게 사는 민초들의 모습을 보고 그 정황을 곡진하게 그린 시를 여러 수 남겼는데,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입니다


獨鶴望遙空  夜寒擧一足 

독학망요공  야한거일족


西風苦竹叢   滿身秋露滴 

서풍고죽총   만신추로적


학 한 마리 먼 하늘 바라보며

밤도 추운데 다리 하나 들고 있구나.

서녘 바람은 대나무 숲을 괴롭히고

온몸을 가을 이슬이 적셨구나.



산사(山寺)/손곡 이달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

사재백운중   백운승불소)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객래문시개   만학송화노


절집은 흰구름 가운데 자리하고

그 흰 구름을 스님네는 쓸지도 않네.

손님이 찾아와서 문이 비로소 열리니

골짝마다 송화가 늙어 가누나.



박조요(撲棗謠) 대추따는 노래-손곡

隣家小兒來撲棗   老翁出門驅小兒

린가소아래박조   노옹출문구소아


小兒還向老翁道   不及明年棗熟時

소아환향노옹도   부급명년조숙시



이웃집 꼬마가 대추 따러왔는데

늙은이 문 나서며 꼬마를 쫓는구나.

꼬마 외려 늙은이 향해 소리 지른다.

내년 대추 익을 때는 살지도 못할걸요.


파란하늘 아래 빨갛게 대추가 익어가는 농촌의 가을 풍경을 소묘한 것 이웃집 대추가 먹고 싶어 서리를 하러 온 아이가 있고. 작대기를 들고 나서는 늙은이가 있다. 서슬에 졸라 달아나던 꼬마 녀석도 약이 올랐다. 달아나다말고 홱 돌아서더니 소리를 지른다. 영감 내년엔 뒈져라 그래야 내년엔 마음 놓고 대추를 따먹을 수 있을 테니 하는 심정...


습수요(拾穗謠) 이삭줍는 노래 -이달(李達)


田間拾穗村童語  盡日東西不滿筐

전간습수촌동어  진일동서불만광

      

今歲刈禾人亦巧  盡收遺穗上官倉

금세예화인역교  진수유수상관창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의 말이         

하루 종일 동서로 다녀도 바구니가 안 찬다네.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도 교묘해져서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관가 창고에 바쳤다네.    


당시 농촌의 수탈당하는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농민의 뼈아픈 아픔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관리들의 수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이 시다.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들은 이삭줍기마저  어려워 바구니가 차지 않는다는 것은 관가의 수탈이 혹심하여 농민들의 마음까지도 빼앗아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손곡의 보리 베는 노래 시비   

화학(畵鶴)그림속에 학


獨鶴望遙空  夜寒擧一足

독학망요공  야한거일족


西風苦竹叢  滿身秋露滴

서풍고죽총  만신추로적


외로운 학이 먼 하늘 바라보며,

밤이 차가운지 다리 하나를 들고 있네.

가을 바람에 대숲도 괴로워하는데.

온 몸이 가득 가을 이슬에 젖었네.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슬픔, 모순적 현실을 차가운 밤으로 비유한 글은 자신을 둘러싼 짙은 어둠과, 발이 시린 추위 속에서도 학은 이슬로 제 몸을 씻으며 먼 하늘을 응시(요공 遙空)하고 있다. 그처럼 학이 어떤 현실의 질곡과 간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원대한 기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대숲을 건너온 투명한 이슬, 이 가을밤 그토록 해맑은 정신이 있어 처참한 현실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移家怨 이사가는 도중에  (이달) 



老翁負鼎林間去   老婦携兒不得隨

로옹부정림간거   노부휴아부득수


逢人却說移家苦   六載從軍父子離

봉인각설이가고   육재종군부자리


영감은 솥을 지고

숲으로 사라졌는데,

할미는  아이를 끌고

따라가지를 못하는구나.

사람들 만날 때마다

집 떠난 괴로움을 하소연하는데,

여섯 해 동안 종군하노라

애비, 자식마저 헤어졌다네.

                          蓀谷集」卷6-4)


무거운 부역으로 인해 민중들이 제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유리하는 괴로운 모

습을 그리고 있는 시이다. 허균은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시를 보게 한다면, 근심하고 두려워하

여 깜짝 놀라서 깨달을 것이다. 그들이 병들어 파리해진 백성들을 살릴 수 있도

록 훌륭한 정치를 베푼다면, 백성들을 감화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니, 어찌

이것이 작은 일이겠는가? 글을 지으면서도 세상의 가르침에 벗어난다면, 이 또한

헛되게 글을 지을 뿐이게 된다. 이러한 글들을 짓는 거스장님이 글을 읽거나 공교

롭게 분간을 하는 것보다 어찌 현명하지 않겠는가?"



도망(悼亡) 죽은 아내를 애도 하며


손곡(蓀谷)이 자신(自身)의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시(詩)로서 소동파(蘇東坡 : 1036~1101)의 시어(詩語)를 본받아 지은 작품(作品)인데, 교산 허균(蛟山 許筠)은『학산초담(鶴山憔談)』에서 “시(詩)가 너무 아름답고 정(情)을 끌기에 옛 사람의 말을 빌어다 쓴 것도 생각지 못하였다.”고 평(評)을 하기도 했다.


羅?香盡鏡生塵   門掩桃花寂寞春  

나위향진경생진   문엄도화적막춘 

依舊小樓明月在   不知誰是捲簾人 

의구소루명월재   부지수시권렴인


깁 방장엔 향(香)내 사라지고 거울엔 먼지 가득한데

문은 닫히고 복사꽃 피어나 봄은 더욱 쓸쓸하구나

작은 누각(樓閣)엔 옛날처럼 달이 밝은데

누가 있어 저 주렴(珠簾) 걷을 것인고



그의 시는 방랑 생활에서 씌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곳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만난 아름다운 경치를 시로 읊었고, 자신이 목격한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시로 옮겼다.



'선산 가는 길(善山道中)'


西風吹葉 葉聲乾  長路悠悠 厭馬鞍 

서풍취엽 엽성건  장로유유 염마안


數口在京 家食窘  一身多病 旅遊難  

수구재경 가식군  일신다병 여유난


가을바람 불어와 잎새마다 마른 소리

먼길은 아득하여 말안장도 싫증나네

두어식구 서울에선 먹을것 없을테고

이 한 몸 병이 많아 여행길도 어렵구나



  또 다른 도망(悼亡) 추사 김정희 -죽은 아내를 애도 하며   

                                                                                 

悼亡(도망)죽은 아내를 애도 하며 金正喜


那將月老冥司  來世夫妻易地爲

나장월로송명사  내세부처역지위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

아사군생천리외  사군지아차심비 


나중에 저승엘 가서 월하노인과 송사를 해서라도,

다음 세상에서는 부부의 지위를 바꾸어 놓으리라!

나는 죽고 그대는 천리 밖에 살아있어,

그대로 하여금 지금의 이 애통한 마음 절감케 하리라!


        

* 月下老人

진서(晉書) 예술전(藝術傳)과 속유괴록(續幽怪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나라 초기, 정관(貞觀) 2년에 위고(韋固)라는 청년이 여러 곳을 여행하던 중에 송성(宋城:지금의 허난 성)에 이르렀을 때 어느 허름한 여관에 묵게 되었다. 그날 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한 노인(月下老人)이 자루에 기대어 앉아 커다란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위고가 물었다. "무슨 책을 보고 계십니까?" "이것은 세상 혼사에 관한 책인데 여기 적혀 있는 남녀를 이 자루 안에 있는 빨간 끈(赤繩)으로 한번 묶어 놓으면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오." "그럼 제 배필은 어디 있습니까?" "송성에 있네. 북쪽에 채소 파는 노파가 안고 있는 아이가 바로 짝이네." 그러나 위고는 참 이상한 노인이라고만 생각하고 그 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나 위고는 상주(相州)의 관리가 되어 그 고을의 태수의 딸과 결혼하였다. 17세로 미인이었다. 어느 날 문득 예전 생각이 나 부인에게 월하노인의 말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자 부인은 깜짝 놀라면서 말하였다. "저는 사실 태수의 친딸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송성에서 벼슬하시다가 돌아가시자 유모가 채소장사를 하면서 길러주었는데 지금의 태수께서 아이가 없자 저를 양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 氷上人(빙상인)

중매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진서》 색담전에 실려 있다. 진(晉)나라에 색담이란 점쟁이가 있었다. 그는 천문과 꿈해몽에 대해 밝았다. 어느 날 영호책(令狐策)이라는 사람이 이상한 꿈을 꾸어 색담을 찾아왔다. "나는 얼음 위(氷上人)에 서 있고 얼음 밑에는 누군가가 있어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통 생각이 나지를 않습니다." 색담이 해몽을 해주었다. "얼음 위는 양(陽)이며 그 밑은 음(陰)이다. 이 꿈은 당신이 중매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혼사는 얼음이 풀릴 무렵 성사될 것이다." 과연 영호책은 태수로부터 자기 아들과 장(張)씨의 딸을 중매 서 달라는 부탁을 받아, 얼음이 풀릴 무렵에 이 결혼을 성사시키게 되었다.


이 두 이야기로부터 사람들은 중매인을 가리킬 때에 月下老人 또는 氷上人이라 부르고 이 둘을 합쳐서 月下氷人'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은이;이달(李達) 1539(중종 34)∼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서담(西潭)·동리(東里). 제자 허균(許筠)이 그의 전기 〈손곡산인전 蓀谷山人傳〉을 지으면서 “손곡산인 이달의 자는 익지이니, 쌍매당 이첨(李詹)의 후손이다.”라고 밝혀 신평이씨(新平李氏)인 것이 확인되었지만, 서얼이어서 더 이상의 가계는 확실하지 않다. 원주 손곡에 묻혀 살았기에 호를 손곡이라고 하였다.


이달은 당시의 유행에 따라 송시(宋詩)를 배우고 정사룡(鄭士龍)으로부터 두보(杜甫)의 시를 배웠다. 박순(朴淳)이 그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시도(詩道)는 마땅히 당시(唐詩)로써 으뜸을 삼아야 한다. 소식(蘇軾)이 비록 호방하기는 하지만, 벌써 이류로 떨어진 것이다.”라고 충고하면서, 이백(李白)의 악부(樂府)·가(歌)·음(吟)과 왕유(王維)·맹호연(孟浩然)의 근체시(近體詩)를 보여주었다.

주요저서 : 《손곡시집(蓀谷詩集)》주요작품 : 《습수요(拾穗謠)》《산사(山寺)




출처 : 재령이씨 인자 조 후손
글쓴이 : 운봉(雲峰:밀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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