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34. 명나라 강남에서 풍류로 가장 유명했던 서예가

2012. 6. 20. 17:46서예가

 

34. 명나라 강남에서 풍류로 가장 유명했던 서예가


명나라 강남에서 풍류로 가장 유명했던 서예가는 축윤명(祝允明)문징명(文懲明)당인(唐寅)이다.

축윤명(祝允明, 1460-1526)의 자는 희철(希哲)이고 호는 지산(枝山)이며 세상에서는 ‘축경조(祝京兆)’라 불렀고 장주(長洲, 지금의 江蘇省 吳縣) 사람이다.  그는 문징명ㆍ당인과 더불어 ‘강남삼재자(江南三才子)’라 불렸다.  그는 시와 글씨를 잘 써서 당시에 명예를 누렸던 환관집안의 후예였다.  그는 5세 때 지름이 1척이나 되는 큰 글씨를 쓸 수 있었고 영특한 재주가 있어 조숙하고 혜안을 갖추었기 때문에, 글씨는 굳세고 호방한 자태가 많이 나타나 천하에 이름을 떨쳤으며, 대표적인 명나라 중기 서예가이다.

문징명(文徵明, 1470-1559) 처음 이름 벽(璧)이었고 자 징중(仲)으로 바꾸었으며 호는 형산거사(衡山居士)이다.  그는 축윤명과 같은 고향 사람으로 시ㆍ서ㆍ화 삼절(三絶)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풍류와 호방한 것으로 일찍이 명성을 얻었다.  그의 서예는 굳세고 표일하면서 아름답고 수려하다.  초서는 지영(智永)의 필의를 깊이 얻었고, 큰 글자는 황정견(黃庭堅)을 모방하여 조금 기굴(奇崛)한 맛을 나타냈으며, 소해서는 특히 정갈하여 글자마다 주옥같고 일사불란하여 스스로 일가를 이루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 강남의 호수와 산, 그리고 정원과 문인 생활로 필묵은 윤택하고 수려하면서 아름다워 ‘오문화파(吳門畵派)’를 형성했으며 심주(沈周)ㆍ당인(唐寅)ㆍ영(英)과 더불어 ‘명사가(明四家)’라 불린다.

당인(唐寅, 1470-1523)의 자는 백호(伯虎)이고 호는 육여거사(六如居士)ㆍ도화암주(逃花庵主)ㆍ도선선사(逃禪仙史) 등이며 강소성 소주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 뛰어난 재주가 있었고 박식하여 고상하여 아는 것이 많았으나 벼슬길에 실망하여 서화에 힘을 다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명랑하고 구속됨 없으며 소리와 여색을 즐겨 시와 술로 유전하면서 ‘강남제일풍류재자(江南第一風流才子)’라고 새긴 인장이 있었다.  그의 산수화 행필은 수려하고 윤택하면서 치밀하며 운치와 법도가 있었고, 인물화는 사의(寫意)와 아름다움을 갖추어 색깔을 칠해 예쁘게 하면서 필묵은 생동하고 자유로웠으며, 화조화는 맑고 뜻이 깊으며 날카롭고 생동적이며 세속을 벗어났다.  그의 서예는 격조가 높고 간결하면서 성글게 빼어났으며, 행필은 유창하고 자연스러우며 맑고 굳센 것이 보기 좋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은초김향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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