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준

2012. 6. 7. 08:18사람과사람들

획 하나가 장사의 팔뚝처럼 꿈틀, 이걸 단숨에 표현하는 것이 名筆”

숭례문 복구 상량문 쓴 서예가 정도준 요즘미투데이공감페이스북트위터구글
▲  정도준씨가 목멱산방에서 자신의 호 ‘소헌(紹軒)’ 액자와 붓을 배경으로 한국 서예 세계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代)를 잇는다’는 뜻의 ‘소헌’은 선친 유당 정현복 선생이 작명한 것으로, 정씨의 스승인 일중 김충현 선생이 썼다. 아래 사진은 한글 조형성과 여백미가 뛰어나 그가 각별한 사랑을 쏟는 한글 서예작품 ‘사랑’.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지난 3월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목멱산방’ 5층 작업실에서 만난 소헌(紹軒) 정도준(64)씨의 한복 차림새는 창문 너머 봄기운을 받은 남산 숲과 잘 어우러졌다. 작업실은 세필에서 빗자루만 한 왕붓까지 온갖 붓과 다양한 문양의 낙관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고 방 한쪽에는 가야·신라시대 질박하고 투박한 토기들이 고졸(古拙)하면서 은은한 향취를 뿜어냈다. 토기 위 벽에는 추사 김정희가 44세 때 부인에게 정성스레 써보냈다는 편지 액자가 기품 있게 걸려 있었다. ‘가야토기’처럼 온화하고 푸근한 미소를 띤 정씨는 인터뷰 내내 침체된 서예의 갈길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서구의 박물관장과 큐레이터 등 평론가들이 왜 서예를 3차원적 예술인 조각에 비유하는지, 한국 서예의 세계화 과제는 무엇인지가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국보 1호 숭례문 복구 상량문(上樑文)을 쓴 지 보름이 지났건만 터진 그의 입술은 채 아물지 않았다. 2500자 상량문과 문루(門樓) 천장에 가로놓일 목재인 뜬창방에 ‘서기 2012년 3월8일 복구 상량’ 한자 열다섯 자를 쓰느라 상량문 쓴 그날 오후 입술이 터진 것이다.

10m가 넘는 상량문 복사본을 거실에 펼쳐 보인 그에게 “기력이 많이 소진된 것 같다”고 물었더니 “충전 배터리가 많이 소모된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서예는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좀 큰 작업이나 오랜 기간 작업하면 얼굴이 완전히 노래지지요. 옆에서 보면 신선놀음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제 경우 늘 파스를 달고 살지요.”

지난 1, 2월 경기 파주 헤이리에서 열린 학정 이돈흥, 하석 박원규씨와 함께한 ‘서예삼협(三俠)’ 특별전은 열기가 뜨거웠다. 월간 ‘서예문화’ ‘묵가(默家)’ 등 서예전문지들은 소헌 선생을 특집으로 다뤘다. 정씨의 대표작인 ‘천지인(天地人)’과 한글서예 ‘행복’ 등을 표지로 실었다. 그뿐 아니다. 오는 28일부터 6월24일까지 국제현대
미술전시관인 프랑스 아르테비 미술관 초청으로 13번째 해외 초대전을 갖는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1999년 독일 국립 슈투트가르트 미술대학 초대전이 최초로 열렸다. 이어 독일·프랑스·미국·이탈리아·벨기에 등 서구의 국립·시립 박물관과 갤러리들이 정씨 초청을 계기로 한국 서예에 눈을 뜨고 박물관 내에 ‘한국관’ 등을 개관하고 있다.

국내외 서단의 평론가들은 ‘조형적·회화적 서예의 새 영역을 개척한 소헌의 독창적 실험’에 왜 그토록 주목할까.

그는 “1991년 근묵서학회를 만들어 오랫동안 연구해 오다 보니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의 경우 완벽한 황금비율로, 여백의 조형미가 아름답게 조율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조형적 분석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해온 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해외 초대전 등을 통해 한글서체의 ‘조형분석’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 왔다.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으로 정형화한 형태에서 벗어나 점획의 위치 변화를 통해 율동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흑백의 여백에 의한 한국적 조형세계를 창조해냈다는 평가다.

특히 해외 초대전에서 한글의 세 가지 요소인 수직(사람), 수평(땅), 원형(하늘)을 상징화한 ‘천지인’은 서구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한글의 자음이 과학적으로 이뤄져 있는 데 비해 모음은 철학적인 체계를 갖춘 글자임을 강조하는 등 모음 속에 담긴 철학적 상징성을 부각시킨 점이 주효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텐리(Tenri)화랑 전시기획자인 탈리아 브라초포울로스 박사는 소헌의 작품을 직선이 추구하는 조화와 질서의 조형 언어만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창조한 화가 몬드리안의 작품과 대비시켜 “정도준의 구성은 균형을 맞추면서 조화를 이루며 흥미로운 회화를 만들어 낸다”고 평했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화가로 2004년 초대전을 가진 프랑스 쇼몽 시립미술관 관장인 클로드 아바는 그의 서예작품을 보고 “서예가 이토록 조각작품하고 닮았단 말인가. 서예 글씨가 평면인 줄 알았는데 3차원의 세계다”고 감탄을 했다고 한다.

―클로드 아바 관장이 서예가 조각작품 같다고 한 이유는.

“본래 서예가 추구하는 것은 선도 입체여야 하고, 조형 역시 개체가 덩어리가 되도록 입체가 되는 것이지요. 서예의 획은, 대쪽을 반으로 잘라 엎었을 때 나오는 동그란 그런 선을 요구하지요. 그냥 새까만 선이 아니라 획에는 음영의 차이가 있어요.”

―서예의 선 하나를 얻는 데 평생이 걸린다고 해 ‘득선(得線)의 경지’라고 표현했는데요.

“국악인 고 한만영 서울대
교수께서 30년쯤 전에 음악을 설명할 때, 음악의 소리는 서예의 선(획)과 같다고 표현했지요. 그분이 음악의 소리를 그렇게 설명한 것은 당시만 해도 서예가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고 격이 높은 예술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어요. 세월이 지나 서예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음악 오디오, 클래식 문화가 발전하다 보니 제가 거꾸로 득음의 경지에 비추어 득선의 경지를 표현한 겁니다.”

정씨는 “득음을 못한 아랫단계인 생음은 명창의 소리와 비교하면 크게 다르다”며 “생으로 힘이 있다고 박박 그어 대는 게 좋은 선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씨가 SBS ‘K팝스타’에서 ‘소리 낼 때 밑에 공기를 갖고 내라’는 표현을 했다”며 “그 말은 글씨에서 선을 낼 때는 붓을 다 눌러서 가는 게 아니라 붓이 좀 남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 맥이 통하며, 소리가 좀 남는 게 있어야 되듯이 싸면서 나가야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파이프에 작은 구슬을 하나 딱 던지면 파이프 건반을 두드리면서 가는 것, 그게 서예의 선이지요. 거기에는 완급 조절이 있고, 장단·고저·깊이가 다 있어요. 서예에서 하나의 선은 ‘장사의 팔뚝’ 같다고 하지요. 그 팔뚝에는 뼈도 있고 근육도 있고 살도 있어요. 꼭 필요한 것이 살아 있는 게 선이지요. 죽은 개구리나 뱀을 보면 새까맣게, 납작하게 땅에 붙어 있지만 산 뱀이나 개구리는
땅바닥에서 올라와요. 꿈틀거리고 살아 움직이면서 지면에서 떠 부풀어 올라오지요. 서예의 선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걸 단숨에 표현하는 것이 명필입니다.”

―디지털시대 아날로그 매체가 쇠퇴하면서 서예는 골방영감 신세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인쇄문화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다 보니 서예를 보는 눈이 예전하고 달라진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서예가 제 본령을 찾을 때라고 확신합니다. 200여년 전 사진기의 등장으로 미술의 방향이 바뀌었듯이 말입니다. 사진에 초상화의 영역을 뺏긴 미술이 그때부터 인상주의 등 여러 가지 실험으로
급속히 진화하게 되지요.” 그는 “인쇄·영상문화 발달로 위기에 처한 서예가 과거 문학에 예속된 상황에서 벗어나 급속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씨는 “서예가 너무 인격 수양 등에 치중하다 보니 서예가 보여주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됐다”며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강조했다.

“서예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다시 찾아 세상 사람에게 보여줄 때입니다. 여태까지 우리는 글씨의 내용이 좋으면 그 내용을 가지고 얘기했죠. 인쇄
기술의 발달로 서예는 기록의 매체가 아닌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감상자에게 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독립된 예술로 위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자기 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중국 장다첸(張大千)의 서예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데 비해 한국 서예는 세인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추사의 학문이 높기 때문에 예술이 높은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 그의 예술이 높고 돋보여서 사실은 학문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구와의 접촉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담금질해온 그에게 서구 사회 화단의 흐름을 물었다.

“문화의 충돌을 통해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킨 역사를 갖고 있는 서구 사회는 지금의 한계를 타파할 충격에 목말라 있습니다. 1900년 초 후기 인상파가 일본 판화에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죠. 고흐가 일본 판화를 통해 미술을 새롭게 해석해 일본을 가보고 싶어 했고, 모네는 아예 일본식 정원을 꾸미기도 했고, 수련을 소재로 많이 그렸지요. 1930년대 아프리카 미술이 유럽에 들어오면서 입체파가 태동하게 됩니다. 지금, 서구인들이 그리워하던 동양 문화, 어쩌면 자기네들이 가까이 해보고 싶어 하는 영역으로, 특별히 서예를 소재로 삼기도 합니다. 유럽에는 우리가 모르는 서예박물관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것을 너무 소홀히 하는 반면에 프랑스 등 서구는 세계 각국의 문화를 모아 놓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요.”

그는 독창적인 ‘오행서’ 등 한글 작품에 심혈을 쏟고 있기도 하다.

그는 “한글이 단조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극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며 “한자의 초서(草書·흘림체)처럼 한글이 간단하고 표현할 게 부족하다는 것이 핑계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일찍이 한글에 대해 조형적 연구를 많이 해왔습니다. 한글 조형미의 마지막 단계가 궁체거든요. 궁에서 쓰던 조형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비율입니다. 궁체는 해서체와 비슷한데 저는 그 이전의 풋풋하고 야성미 있는 판각들을 연구하고 변형을 가해 조형미가 풍부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문화일보 201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