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손과정 서보의 미학사상

2012. 5. 28. 23:23서예일반

孫過庭『書譜』의 미학 사상

  손과정(孫過庭)은 당나라 초기 우세남(虞世南)과 이세민(李世民) 등이 체계를 세운 서예 미학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우세남과 이세민 등이 주장한 서예 미학의 표준은 충화(沖和)의 미학이었다.『필수론(筆髓論)․계묘(契妙)』에서 우세남은 “서예를 하는데 있어서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기운을 온화하게 하면 현묘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심신과 지기가 바르지 못하면 글씨도 바르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도리는 비면 기울고 차면 엎어지고 적당하면 바르게 되는 공묘(孔廟)의 제기(祭器)와 같다. 바르다는 것은 충화(沖和)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세남은『지의(指意)』에서도 ‘충화’를 강조하였으며 이세민도『필법결(筆法訣)』에서 우세남과 같은 말을 하였다. ‘충화’의 미학 범주는 ‘태충(太沖)’과 ‘태화(太和)’ 등의 기운으로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철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혁본(傅奕本)의『老子』에는 ‘沖’자를 ‘盅’자로 기록하고 있으며 허신(許愼)은『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충(盅)은 빈 그릇(虛器)이다. 그릇(皿)의 의미가 있고 소리는 중(中)을 따른다.『노자』에서는 도(道)는 텅 비어야 사용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노자』에서는 ‘도(道)’는 ‘허(虛)’한 가운데 사용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도’의 작용이 영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궁무진한 창작 요소를 갖추게 된다고 강조하였다. ‘충(沖)’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으며 만물의 호흡을 주재하는 우주와 같은 것으로 ‘허정(虛靜)’하고 ‘현묘(玄妙)’한 심미적 범주를 갖추고 있다.『역(易)․건(乾)․단사(彖辭)』에서 말한 “태화(太和)”의 의미도 장재(張載)가『정몽(正蒙)․태화편(太和篇)』에서 말한 것과 같이 만물의 근본인 우주와 같은 것이다. 우세남과 이세민이 제시한 ‘충화’의 심미적 표준은 도가와 유가 철학의 ‘충(沖)’과 ‘화(和)’의 범주와 의미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그들은 다같이 우주의 생식(生息)이 무위(無爲)로 이루어지며, 또 그것이 ‘자연(自然)’을 심미적 경지의 표준으로 하듯이 서예의 자연스러운 심미적 경지를 ‘충화’로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세남과 이세민이 추구한 ‘충화’의 심미적 표준은 그들이 ‘숭진상왕(崇晉尙王)’의 이상으로 동진 시대와 왕희지의 서예를 탐색하고 그 심미적 특징을 추구하여 얻은 결과이다. 이들의 미학 사상이 도가와 유가의 철학을 사상적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은 당나라 초기에 유학(儒學)을 제창하는 것과 동시에 도학(道學)을 숭봉(崇奉)한 사상적 배경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세남과 이세민의 서예 이론이 서로 상통하고 특히 서예 미학에서 ‘心正氣和’ 등의 자세로써 ‘충화(沖和)’의 심미적 표준을 요구한 것은 이후 당나라 시대의 서예 미학이 ‘중화(中和)’의 심미 표준의 범주 속에서 발전하고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세남과 이세민이 심미적 표준으로 제출한 ‘충화’의 미학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대표적 서학자는 바로 손과정이다. 그는 이세민이 왕희지의 서예를 ‘진선진미(盡善盡美)’로 평가한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시대적 풍조의 영향을 받아 왕희지의 서예를 이상으로 삼았다. 봉건 왕조 사회에서는 황제나 국왕의 영향력이 매우 강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이상이 전체 국민의 관점이 되기도 하였다.『맹자(孟子)』에서 “위에서 애호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더욱 애호하게 된다.”라고 한 것과 군주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막강했던 당태종 이세민이 왕희지의 서예를 특별히 좋아한 것은 당시는 물론 당나라 시대 전체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왕희지의 서예가 남조의 남양(南梁)시대부터 왕헌지를 제치고 최고의 수준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으나 왕희지에 대한 당태종의 특별한 사랑은 왕희지를 서성(書聖)의 위치로까지 부각시켜 중국 서예사에서 영원불변의 법칙으로 확고한 자리 메김을 하도록 하였다. 서예를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전대의 현자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 번뿐인 인생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행복과도 같은 것이다. 왕희지에 대한 이세민의 사랑은 당시 서예의 예술적 지위를 크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서예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당태종 재임 말기에 태어나 시풍의 영향 속에서 자란 손과정은 자연스럽게 왕희지를 익히게 되고 왕희지의 서예를 표준으로 삼게 되었다.

  손과정은『서보』의 시작에서 자고이래 서예에 뛰어난 사람으로 동한(東漢)의 장지(張芝), 한위(漢魏)의 종요(鍾繇),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의 사현(四賢)을 꼽았다. 그러나 그는 남양(南梁)의 무제(武帝) 소연(蕭衍)이 “왕헌지가 왕희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왕희지가 종요와 장지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고 한 일반적 비평이 다 맞는 것은 아니라고 부정하였다. 손과정은 왕헌지가 왕희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요와 장지의 장점을 겸비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손과정의 역대 서예가에 대한 인식은 이상에서와 같이 왕희지를 표준으로 하고 있으며 종요와 장지 그리고 왕헌지를 함께 비교하며 그들을 서예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다.『서보』에서 손과정이 논술한 다양한 서예 이론과 미학은 바로 왕희지의 서예를 이상으로 하는 미학 사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왕희지의 서예 속에서 손과정은 ‘중화(中和)’의 심미적 표준을 탐색하였고 그것을 서예 미학의 근본으로 삼았다.

손과정이『서보』에서 왕희지의 서예를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중화(中和)’를 심미적 표준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그의 진보한 역사관과 도가와 유가를 융합한 철학관이 바탕이 되었다. 현재에도 그러한 경향이 뚜렷하지만 과거에는 옛 것을 존귀하게 여기고 지금의 것을 폄하하는 ‘존고비금(尊古卑今)’의 역사관으로 문학과 예술을 평가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었으며 서예 미학 사상에서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유가학파의 창시자인 공자(孔子)가『논어(論語))』에서 ‘호고(好古)’를 강조한 후 숭고(崇古) 정신은 유가에서 매우 중시하는 사상으로 자리잡았으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유가와 배치되는 사상을 타파하고 유가만을 중시한 ‘독존유술(獨尊儒述)’의 한나라 시대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 존고비금의 문화 사조가 보편적으로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문화 사조로 말미암아 숭고의 정신은 서예 이론과 서예 미학 사상에도 직접적 영향을 끼쳐 전서를 숭상하거나 예서와 초서를 숭상하는 미학 사상이 크게 성행하였다. 그러나 손과정은 지금이 과거보다 못하다는 ‘금불체고(今不逮古)’의 역사관으로 옛날의 서예를 높게 평가하고 지금의 서예를 나쁘다고 하는 ‘존고비금(尊古卑今)’의 가치관으로 예전의 서예를 질박(質朴)하기 때문에 좋고 지금의 서예가 연미(姸媚)하기 때문에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부정하였다. 그는 질박하거나(質) 연미한(姸) 미감은 시대와 시속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이치(物理常然)라고 인식하고 옛날의 질박함(古質)과 지금의 연미(今姸)한 심미적 범주를 모두 긍정하였다. ‘고질(古質)’과 ‘금연(今姸)’은 자연적 현상으로 매우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서예를 ‘존고비금(尊古卑今)’이나 ‘후금박고(厚今薄古)’의 관점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손과정의 관점이다. 그는 옛것을 배우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어긋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따르더라도 속되지 않을 것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고불괴시(古不乖時)와 금부동폐(今不同弊)의 역사관과 미학 사상은 한나라 시대 최원(崔瑗)이『초서세(草書勢)』에서 굳이 옛것만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역사적 미학관을 더욱 발전시켜 옛과 지금, 질박과 연미의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해는 손과정이 서예 미학 사상 뿐 아니라 역사관에서도 ‘중화’를 표준으로 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손과정은 서예를 창작 주체의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고 감상할 수 있는 ‘표정달성(表情達性)’의 예술로 인식하였다. 한나라 시대 채옹(蔡邕)의 서예 미학 이론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정성(情性)’의 관점은 왕희지가 ‘의(意)’, 왕승건(王僧虔)이 ‘신채(神彩)’, 우세남과 이세민이 ‘심(心)’의 문제를 토론할 때 강조되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心)’과 ‘손(手)’, 혹은 창작과 학습의 문제에서 ‘마음(心)’의 역할과 ‘손(手)’의 작용, 서예의 ‘의취(意趣)’와 ‘신체(神彩)’에 관해서는 깊이 인식하였으나 서예를 진정한 의미의 ‘표정달성(表情達性)’의 예술로는 깊이 인식하지는 못하였다.『서보』에서 손과정이 서예를 ‘표정달성(表情達性)’의 예술임을 강조하고 반복적으로 논증한 것은 중국 서예 미학 이론사에서 서예를 예술로서 완전하게 자각한 최초의 이론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장자(莊子)』에 나오는 孔子의 말을 인용해 “비록 어떤 사람들은 서예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보고서 어떤 이치가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이론을 내놓는다. 서예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억지로 형식적 서체의 이름을 만들어 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모두 다 같이 각 부분별로 구분을 지어 분석한다. 그런 사람들이 어찌 서예 작품이 마음속 내면의 정감이 움직여 언어로서 형용한 것임을 알 수 있겠는가! 이것은『시경(詩經)』과『이소(離騷)』의 창작 의도와 부합하는 것이다. 봄과 여름은 대자연 스스로 편안하고 즐겁기에 생겨나고 가을과 겨울은 쓸쓸하고 처량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천지 자연의 마음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체세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미 서예를 공부하는 그 진실 된 성정을 잃어버렸으며 그 이론도 서예의 진실과는 서로 위배되는 것이다. 서예의 근원을 탐구하는데 어찌 형식적 자체가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서예의 심미적 본질은 성정(性情)을 표현하고 감상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정이 서예의 심미적 본질이라는 미학 사상은 한나라 시대의『모시서(毛詩序).』, 남양 유협(劉勰)의『문심조룡(文心雕龍)』, 남양 소명(昭明) 태자의『문선(文選)』등에 등장한 전통의 문예 미학 사상을 계승하여 서예 미학의 ‘본체론(本體論)’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시(詩)가 창작 주체의 사상과 감정 등 마음 속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서예도 인간의 본성과 심령의 정감을 표현하고 감상하는 예술이라는 것이 그의 미학 사상이다. 춘하추동의 변화와 계절에 따른 기후의 차이는 천지의 마음이 본래 그렇게 변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처럼 사람의 정감도 외물의 영향을 받아 수시로 변화하는 것이 진리이다. 마음의 정감이 움직여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바로 천지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의 변화와 같이 서예도 때에 따라 변화하는 창작 주체의 정서를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것이 손과정이 주장한 서예의 ‘본체론’이다.

  손과정은 서보를 저술하게 된 것이 천지 자연의 마음이 움직여 사철이 생겨나는 것과 같이 자신의 마음이 움직여『서보』를 저술하였으며 서예의 창작과 비평에서도 ‘표정달성(表情達性)’을 표준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그는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이나 당태종 이세민 보다는 객관적 비평 기준으로 왕희지의 서예를 평가하였다. 손과정이 비평 기준으로 삼은 것은 바로 그가 예술성의 본질이라고 인식한 ‘표정달성’이었다. 그는 왕희지의 작품 가운데에서『악의론(樂毅論)』은 마음이 울적하고 불편함을 표현하였고,『황정경(黃庭經)』은 허무한 인생의 이치에 대하여 깨달은 마음을 표현하였고,『동방삭화찬(東方朔畵讚)』은 진기한 상념에 빠지고 현묘한 경지에 이름을 표현하였고,『태사잠(太師箴)』은 사방으로 종횡무진 떨치는 마음을 표현하였고,『난정서(蘭亭序)』는 세속을 초월한 정신의 경지를 표현하였고,『고서문(告誓文)』은 부모의 묘 앞에서 출사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여 감정이 구속되고 무거우며 의지가 참담함을 표현하였다고 하며 이 모두가 당시의 마음이 움직여 이루어진 서예의 명작들이라고 하였다. 손과정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고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마음이 흥분되며 입가에서는 웃음이 흘러나오고 슬픈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탄식이 쏟아지며 슬픈 표정을 짓게 되는 것이다. 예술은 바로 이와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서예도 바로 창작 주체의 성정과 정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사람이 기쁠 때는 웃음이 나오고 슬플 때는 울음이 나오는 것과 같이 감정의 변화에 따라 심미적 특징이 다르게 표현된다는 것이 손과정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그는 서예의 오묘함은 바로 가까이 창작 주체의 몸에서 취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가까이서 취한다’는 말은 ‘본래 천지의 마음이다(本乎天地之心)’라는 말과 상통되는 것으로 창작 주체의 심신을 모두 나타내지만 성정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문심조룡』에서 유협이 정감이 일어나서 짓는 문장은 예술적 가치가 높지만 문장을 짓기 위해 정감을 조작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한 것에 비유한다면 정감이 움직여 저술하였다고 한 손과정의『서보』는 서예 이론적 내용과 서예적 예술성이 모두 뛰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협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서보』는 역대 서예 미학사에서 다시 찾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내용이며 초서 또한 예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창작 주체의 ‘표정달성’을 서예의 본질로 인식한 손과정은 ‘정성(情性)’을 심미적 범주 가운데 ‘형질(形質)’의 변증(辨證)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정자체는 점획으로 형질을 삼고 사전(使轉)으로 정성(情性)을 삼으며 초자체는 점획으로 정성을 삼고 사전으로 형질을 삼는다.라 하여 서예의 ‘형질’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정성’의 심미적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남제(南齊)의 왕승건(王僧虔)이『필의찬(筆意贊)』에서 제시한 ‘신채(神彩)’와 ‘형질(形質)’의 심미적 개념과 상통하는 것으로 ‘정성’은 곧 작품의 내면에 함축되어 있는 심미적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신채(神彩)’는 곧 작가의 정신이며 사상으로 작품을 통하여 작가의 ‘정성’을 표현하고 또 감상하는 것이 서예이다. 따라서 손과정 서예의 창작에 있어서 창작 주체의 성정을 표현하는(達其性情) 것을 중시하였고 ‘억지로 체세를 붙이는(强名爲體)’ 것을 부정한 것이다. 손과정이 제시한 ‘표정달성’의 서예 ‘본질론’은 동진시대 왕희지와 우안길(虞安吉)을 중심으로 이룩되어 남제 시대의 왕승건, 당나라 시대의 우세남과 이세민으로 이어지는 ‘상의(尙意)’의 미학 사상을 더욱 깊이 있게 체계화 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고질(古質)’과 ‘금연(今姸)’의 미학 관점과 ‘성정(性情)’과 ‘형질(形質)’의 서예 본질 문제를 변증적 이론으로 논증한 것과 같이 손과정의 서예 이론은 변증적 사유를 중심으로 한다. 점획(點劃), 결자(結字), 용필(用筆), 장법(章法) 등 창작 요소는 물론 작가의 장단(長短)과 서체 등 서예의 모든 것이 상반되면서도 상성되는 변증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손과정의 이론이다. 만물이 항상 변화하는 것이 순리이며 당연한 도리라고 한 것과 같이 변증적 이론은 그가 서예 미학의 인식에 있어서 매우 생동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서예를 다양한 변화와 기운이 생동하는 예술로 인식하였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질(古質)’과 ‘금연(今姸)’, ‘성정(性情)’과 ‘형질(形質)’, ‘평정(平正)’과 ‘험절(險絶)’, ‘강(剛’)과 ‘유(柔)’, ‘지(遲)’와 ‘질(疾)’, ‘방(方’)과 ‘원(圓)’, ‘곡(曲)’과 ‘직(直)’, ‘심(心)’과 ‘수(手)’, ‘위(違)’와 ‘화(和)’, ‘범(犯)’과 ‘동(同)’ 등 손과정이 서예의 학습과 창작, 감상과 비평 등의 이론에서 요구한 미학 사상은 어느 한쪽으로 편파됨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까닭은 그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철학을 미학 사상의 튼튼한 바탕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논어(論語)․자로(子路)』에서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고 한 철학적 명제를 “필획이 서로 위배되지만 침범하지 아니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지만 일률적으로 똑 같지는 않다.(違而不犯. 和而不同.)”의 미학적 명제로 발전 승화 시켰다. “옛것을 거스르지 않고 세속에 동화되지 않는다.(古不乖時, 今不同弊).”고 한 미학 관점은 역사에 대한 변증적 사유를 ‘중화(中和)’의 미학 사상으로 승화시킨 것이라면 “위이불범, 화이부동(違而不犯. 和而不同).”의 관점은 서예의 형식미에 대한 변증적 사유를 ‘중화’의 미학 사상으로 승화시킨 것이라 할 있다. 그는 점획(點劃), 결자(結字), 결구(結構), 장법(章法) 등 서예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형식적 요소에 대하여 “많은 필획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도 그 형태는 각각 다르고, 수많은 점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어도 서로 다른 형체를 이루게 한다. 하나의 점이 한 글자의 규칙이 되고, 한 글자가 전편을 이루는 준칙이 된다. 필획이 서로 엇갈리고 있으나 서로의 자리를 지켜 침범하지 아니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서로 똑같은 모양이 아니어야 한다. 머무르는 듯한 필획이 결코 항상 느리지는 않아야 하고, 자유롭게 펼치는 호방한 필획이 항상 빠르게 운필하지는 않아야 한다. 먹빛의 변화를 다양하게 하여 바싹 마른 빛을 띠고 있을 때는 윤택한 빛을 띠게 하고 앞으로 짙은 빛을 띠려고 하면 메말라 있어야 한다. 방필(方筆)과 원필(圓筆) 가운데에 규칙이 숨겨져 있으며, 전절(轉折)의 운필속에 법도가 감추어져 있어야 한다. 어느 때는 노봉(露鋒)으로 운필하다가 순간 장봉(藏鋒)으로 운필하여 행필인 듯 하다가 또 멈춘 듯 변화가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도록 한다. 변화의 자태를 붓끝에서 모두 다 표현하고 작가의 감정과 품격을 종이 위에 표현한다. 마음과 손이 서로 호응하여 마음속의 심미적 요구를 손으로 다 표현해 내고 하나의 법칙에 속박되지 않아야 한다.”라 하여 ‘중화’를 심미적 표준으로 삼았다. ‘병(並)’과 ‘이(異)’, ‘제(齊)’와 ‘괴(乖)’, ‘위(違)’와 ‘화(和’), ‘범(犯)’과 ‘동(同)’, ‘지(遲’)와 ‘질(疾)’, ‘윤(潤)’과 ‘고(枯)’, ‘방(方)과 원(圓)’, ‘곡(曲)과 직(直)’ 등의 상대적 개념에서 편파적이지 않는 ‘중화’의 보편적 규율을 중시하였다. 형식미에 대한 ‘중화’의 규율을 요구한 손과정의 서예 미학 이론은 ‘화해(和諧)’의 범주에 대한 미학적 완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화’를 심미적 표준으로 하는 손과정 미학 사상의 근본인 “違而不犯, 和而不同”은 다양성의 화해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의 철학적 사유를 미학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違而不犯’은 ‘和而不同’의 사유에서 쉽게 인식될 수 있는 화순(和順), 정제(整齊), 통일(統一) 등 형식미의 단순함을 다양한 변화와 기운이 생동하는 총체적 형식미의 사유로 전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대로 ‘和而不同’은 ‘違而不犯’의 심미적 추구에서 쉽게 생겨날 수 있는 혼란과 괴리(乖離)를 다양성의 조화로 변화하는 역할을 한다. 손과정이 ‘위(違)’와 ‘범(犯)’의 미학 범주를 제시한 것은 바로 ‘화(和)’의 심미적 취향이 ‘동(同)’의 범주로 기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과 동시에 다양성의 화해(和解) 가운데에서 심미적 객체들의 차이(差異), 대립(對立), 변화(變化) 등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다.

  ‘화(和)’와 ‘동(同)’의 미학 사상은 전통적 철학 사상을 기초로 하는데『좌전(左傳)』,『국어(國語)』,『논어(論語)』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들에 의하면 ‘화(和)’는 ‘동(同)’과 다른 철학적 개념으로 ‘동(同)’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끼리 결합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이되면 아무런 발전성이 없게 것이다. ‘화(和)’는 서로 다른 것 심지어 서로 상반되는 것을 결합하여 모순 속에서 상호 협조를 이루고 상보상성(相輔相成)의 관계 속에서 전체적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미학의 범주에서 이해하면 심미적 객체가 심미적 주체의 감관에 인식될 때 부족하거나 넘침이 없이 조화를 이루는 ‘중화(中和)’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상의 문장을 통하여 손과정이 주장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은 곧 서로 다른 예술 요소들을 조화롭게 하면서 단조로움을 피하는 것으로 예술 형식미의 근본 요구임을 알 수 있다. 심미적 객체가 다양성의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심미적 주체의 예술적 감흥은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눈과 귀만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손과정이 상보상성(相輔相成)하고 호삼호보(互滲互補)의 미학적 범주로 ‘위(違)’와 ‘화(和)’를 강조한 것은 심미적 객체가 다양성의 조화를 이룰 때 예술적 아름다움이 극치에 이르게 된다는 것으로 서예 미학 이론사는 물론 중국 미학사에서 위대한 업적으로 남을 만하다.

  ‘중화(中和)’의 미학 사상은 이상에서 예로 든『서보』의 ‘발전론’, ‘본질론’, ‘심미론’ 이외에도 ‘창작론’, ‘비평론’, ‘학습론’, 풍격론‘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손과정이 창작론에서 제시한 변증적 이론으로 대표적인 개념은 ‘합(合)’과 ‘괴(乖)’, ‘심(心)’과 ‘수(手)’이다. 그는 서예를 창작하는데는 각각 다섯 가지 좋은 조건과 나쁜 조건이 있다고 하였다. 서예 작품의 창작은 작가의 주관적 요소와 외부의 객관적 요소의 영향에 승패가 좌우된다. 손과정은 주관적 요소로 창자 주체의 마음과 몸을 들었고 객관적 요소로는 날씨와 서사 재료 그리고 일과 다른 사람을 예로 들었다. 작품의 좋고 나쁨은 이들 주관적 요소와 객관 요소가 어떻게 어울리는가에 달려 있다. 한쪽으로 치우쳐 다른 것이 부족해서는 안되며 개관적 요소가 최상의 조건일 때 주관적 요소도 잘 호응하여야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紙), 필(筆), 묵(墨), 연(硏)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결코 좋은 작품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손과정은 창작 주체의 정신과 정감 등 주관적 조건들과 기후와 재료 등 객관적 조건들이 화해의 상태를 이룰 때 비로소 ‘신융필창(神融筆暢)’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중화’의 심미적 경지에 이르기 위해 손과정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심수쌍창(心手雙暢)’, ‘심수회귀(心手會歸)’, ‘무간심수(無間心手)’의 조건과 아울러 ‘세심한 마음과 숙련된 손(심정수숙, 心精手熟)’, ‘마음으로 먼저 구상한 후 글씨를 쓰는 의선필후(意先筆後)’의 조건을 요구하였으며 이와 같은 조건이 갖추어 지면 신체와 형질이 모두 뛰어난 ‘한묵신비(翰墨神飛)’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서예는 창작 주체의 ‘정성’을 표현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는 예술이지만 각고의 연마와 훈련을 거쳐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손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심령의 정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비평론’, ‘학습론’, ‘풍격론’ 등에서는 ‘和平’과 ‘격려(激厲)’, ‘평정(平正)’과 ‘험절(險絶)’, ‘골력(骨力)’과 ‘주려(遒麗)’ 등의 변증적 이론으로 논술하였으며 마찬가지로 ‘중화(中和)’를 이상적 표준으로 삼았다. 그가 서예의 심미적 모범으로 생각한 왕희지의 서예는 지기(志氣)가 화평하며 격렬하지 않는 ‘중화(中和)’의 미가 있기 때문에 영원한 법칙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평정’을 귀하게 여기고 넘치는 것이나 모자라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그가 심미적 표준으로 요구한 ‘위이불범, 화이부동(違而不犯, 和而不同”의 미학과 일치하는 사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손과정은 서예를 창작 주체의 ‘정성(情性)’을 표현하는 예술로 인식하였으며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중화’의 심미적 표준을 추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중화’의 미학 사상은 손과정 서예 미학 이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정성(情性)’과 ‘중화(中和)’를 강조한 손과정의 미학 사상은 양진(兩晉)시대 이후 서예 미학의 핵심 사상으로 자리 잡아온 ‘상의(尙意)’의 심미론을 한층 더 발전 승화 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동시에 중국 미학사에서 형태미의 심미론에 획기적 공헌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06년 8월 12일

출처 : 중국과 서예
글쓴이 : 동방노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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