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5. 12:19ㆍ알아두면 조은글
[소동파의 적벽부]
소식(蘇軾, 1037년~1101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른다. 현 쓰촨 성 미산(眉山)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소동파는 송시의 성격을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문장가였고 중국문학사상 처음으로 호방사(豪放詞)를 개척한 호방파의 대표 사인(詞人)이었다. 그는 또 북송사대가로 손꼽히는 유명 서예가이기도 했고 문호주죽파(文湖州竹派)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중국 문인화풍을 확립한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천재 예술가요 못 하는 것이 없었던 팔방미인으로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천 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국문예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이었다
소식
아버지 <소순 蘇洵>이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으로 이미 유명한 문인이었고, 동파의 동생 <소철 蘇轍> 또한 뛰어난 문인으로 이 세부자를 중국역사상 <삼소三蘇>라 일컬어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송나라 원풍(元豊, 송의 연호) 5년(1082) 가을 7월 16일의 달 밝은 밤에 소동파가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며 삼국의 영웅인 조조(曹操)와 주유(周瑜)의 풍류에 비겨 자신의 덧없는 인생을 생각하고, 결국은 저들이나 자신이 다 무한한 생명 앞에서는 모두 덧없는 존재라는 것과, 무한한 본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만물이 다 같은 것임을 깨닫고 시름을 잊는다는 내용을 술회한 명문입니다.
적벽강은 한(漢)나라 말엽 손권과 조조(曹操)가 싸웠던 전쟁터<삼국지의 적벽대전의 전장>이었으며, 이 작품은 소식이 황주(黃州)로 유배 갔을 때 친구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것인데. 전. 후 적벽부 2편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대만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이 작품에서 <임술지추>로 시작되는 첫 부분은 망실되어 명나라의 유명한 서예가 문징명이 보충으로 써 넣은 자료가 있어 말미에 게재했습니다.
<전 적벽부 前 赤壁賦>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 泛舟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임술지추 칠월기망 소자여객 범주유어적벽지하. 청풍서래 수파불흥.
거주촉객 송명월지시 가요조지장. 소언, 월출어동산지상 배회어두우지간.
백로횡강 수광접천
종일위지소여 능만경지망연. 호호호 여빙허어풍 이부지기소지.
표표호 여유세독립 우화이등선 어시 음주락심 구현이가지
가왈 계도혜난장 격공명혜소류광 묘묘혜여회 망미인혜천일방
객유취통소자 의가이화지 기성오오연 여원여모 여읍여소.
여음요요 부절여루 무유학지잠교 읍고주지리부. 소자 초연정금 위좌이문객왈 하위기연야?
客曰 :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객왈 : 월명성희 오작남비 차비조맹덕지시호?
서망하구 동망무창 산천상무 울호창창. 차비맹덕지곤어주랑자호?
방기파형주 하강릉 순류어동야 축로천리 정기폐공
시주임강 횡삭부시 고일세지웅야 이금안재재?
황오여자 어초어강저지상 여어하이우미록
가일엽지경주 거포준이상촉 기부유어천지 묘창해지일속.
애오생지수유 선장강지무궁 협비선이오유 포명월이장종 지부가호취득 탁유향어비풍
소자왈: 객역지부수여월호?
서자여사, 이미상왕야. 영허자여피 이졸막소장야.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개장자기변자이관지 즉천지증불능이일순
자기불변자이관지 즉물여아개무진야 이우하선호?
차부천지지간 물각유주
또, 대저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구비오지소유 수일호이막취 유강상지청풍 여산간지명월
이득지이위성 목우지이성색 취지무금 용지불갈
시조물자지무진장야 이오여자지소공적
객희이소 세잔갱작 효핵기진 배반낭자 상여침자호주중 부지동방지기백
<맨앞 5행(전체는 66행)의 36자가 파손되어서
명나라 문징명선생이 보충해서 써넣었다고 합니다....>
<후적벽부 - 소동파>
是歲十月之望, 步自雪堂, 將歸于臨皐, 二客從予, 過黃泥之坂, 霜露旣降, 木葉盡脫. 人影在地, 仰見明月. 顧而樂之, 行歌相答, 已而歎曰, 有客無酒, 有酒無肴. 月白風淸, 如此良夜何. 客曰, 今者薄暮, 擧網得魚, 巨口細鱗, 狀如松江之?. 顧安所得酒乎. 歸而謀諸婦, 婦曰, 我有斗酒, 藏之久矣. 以待子不時之需.
이 해(임술년) 10월 보름에 설당(雪堂)으로부터 걸어 나와서 임고정(臨皐亭)으로 돌아가려 할 때에 두 손(客)이 나를 따라왔다. 황토 언덕을 지나니 서리와 이슬이 이미 내리고 나뭇잎이 다 떨어졌으므로 사람의 그림자가 비쳐 땅에 있기에 우러러 밝은 달을 보았다. 돌아보고 즐거워하여 길을 걸으며 노래부르면서 서로 화답하였는데, 이윽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손(客)이 있으면 술이 없고 술이 있으면 안주가 없구나. 달은 밝고 바람은 시원한데, 이처럼 좋은 밤에 어찌 한단 말인가?” 하자, 손(客)이 말하기를 “오늘 저녁 무렵에 그물을 들어 고기를 잡았는데, 입이 크고 비늘이 가늘어 모양이 송강(松江)의 송어와 같습니다. 다만 어느 곳에서 술을 구하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돌아와서 부인에게 상의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내가 한 말 술을 두어 보관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대의 불시(不時)의 쓰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였다.
於是携酒與魚, 復遊於赤壁之下, 江流有聲, 斷岸千尺. 山高月小, 水落石出, 曾日月之幾何, 而江山不可復識矣. 予乃攝衣而上, 履?巖披蒙茸, 踞虎豹, 登?龍, 攀棲?之危巢, 俯馮夷之幽宮, 蓋二客之不能從焉. 劃然長嘯, 草木震動, 山鳴谷應, 風起水涌, 予亦?然而悲, 肅然而恐, 凜乎其不可留也. 反而登舟, 放乎中流, 聽其所止而休焉, 時夜將半, 四顧寂寥, 適有孤鶴, 橫江東來, 翅如車輪, 玄裳縞衣, ?然長鳴, 掠予舟而西也.
이에 술과 고기를 가지고 다시 적벽강(赤壁江) 아래에서 노니, 흐르는 강물 소리가 들려오고 끊긴 강 언덕은 천 길이나 되는구나. 산이 높고 달이 작으며 수위가 떨어져 돌이 드러나니,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강산을 다시 기억할 수가 없구나.
나는 마침내 옷자락을 걷어잡고 올라가서 높은 바위를 밟고 우거진 풀 속을 헤치고, 호랑이 모양의 바위에 걸터앉고 규룡 모양의 나무에 올라가고, 송골매가 살고 있는 높은 둥지에 올라가 수신(馮夷)의 그윽한 집을 굽어보니, 두 손(客)은 따라오지 못하는구나. 째질 듯한 소리로 길게 휘파람을 부니, 초목이 진동하고 산이 울림에 골짜기가 메아리치며 바람이 일고 물이 솟는 듯 하였다. 내 또한 초연(?然)히 슬퍼지고 숙연(肅然)히 두려워져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돌아와 배에 올라 중류(中流)에 이르러 배가 멈추는 대로 내버려두고 쉬었다. 한밤중이 되려 할 때에 사방을 돌아보아도 조용하기만 하였는데, 마침 외로운 학 한 마리가 강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오니, 나래가 수레바퀴만 하며, 검은 치마에 흰옷을 입고는 길게 울면서 내 배를 스쳐 서쪽으로 갔다.
須臾客去, 予亦就睡, 夢一道士羽衣翩?, 過臨皐之下, 揖予而言曰, 赤壁之遊樂乎. 問其姓名, ?而不答. 嗚呼噫?, 我知之矣. 疇昔之夜, 飛鳴而過我者, 非子也耶. 道士顧笑, 予亦驚悟, 開戶視之, 不見其處.
조금 후에 손(客)이 떠나가고 나 또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 한 도사가 깃으로 만든 옷을 펄럭이면서 임고정(臨皐亭) 아래를 지나다가 나에게 읍하고 말하기를 “적벽강(赤壁江)의 뱃놀이가 즐거웠는가?” 하여, 그의 이름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아! 슬프다. 내 그대를 알겠노라. 어제 밤에 울면서 내 배를 스쳐 지나간 것이 그대가 아닌가?” 하니, 도사는 돌아보고 웃는다. 나 또한 놀래어 잠을 깨어 창문을 열고 보니, 그가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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